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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30화 (23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30화

왕국 - Lv.98 영재 진학반(4)

나이트 크로우는 인도주의적인 조직이다.

대체로 국가나 적어도 유력귀족의 후원을 받는 인류의 수호자들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인간에게만큼은 언제나 선이다.

이런 중세 판타지 월드, 아니,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근세라고 봐야겠지만.

어쨌건 소년병을 터부시하기에는 너무 험악하며, 동시에 여유가 없는 이런 세계에서조차도 그렇다.

현대적인 윤리관과는 다른 이유지만 이들은 결코 소년병을 쓰지 않는다.

어린이는 보호 대상이지 전력이 아니니까.

그런 낭만적인 조직에서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것 같은 아이를 쓴다? 그것도 책임을 지는 자리인 분대장으로 앉혀둔다?

범상치 않은 전투력을 가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이건 용사 스토리의 일부다.

용사 같은 낭만 넘치는 존재가 나이트 크로우처럼 낭만 넘치는 조직에서 소년기를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징표 하나를 받아가도 되겠소이까?"

"무슨……?"

부대를 이끄는 대장의 얼굴에 바로 경계심이 깃든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징표란 유배자가 말하는 키 아이템이다.

중세를 넘어간 시점부터는 저들도 안다. 유배자가 다시 나타나려면 연관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민인 그들이 무언가 징표를 건네줌으로써 외계의 침략자인 유배자들이 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자신과 관련된 곳으로.

"그건, 상부로부터 허가되지 않은 일이오."

다시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서버는 유배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편이군.

유배자와의 관계가 좋은 곳이라면 선뜻 넘겨주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하오."

"고맙소."

순순히 포기하자 다시 긴장이 누그러진다.

이렇게 넘긴 징표는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언젠가 위기 상황에서 구출하러 오겠다는 뜻이 된다.

그 반대라면……. 내가 왕국에서 이 징표를 팔아넘겨 누군지 모를 괴한들이 주변에 나타날 거란 뜻이지.

조심하는 게 더 보통이긴 하다.

돌아서서 계단으로 향하며 희우에게 눈짓했다.

기천사의 날개가 순간적인 급가속.

바람이 몰아친다.

말이 놀라 날뛰고 수십 명이 풍압으로 쓰러졌다.

부대장이 놀라 검을 뽑아 든다.

우리는 달렸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계단으로 쏙 하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희우가 순간적인 가속으로 용사에게서 훔쳐낸 물건을 건네주었다.

강탈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많이 봐준 거다.

저들로서도 당장 몰살시킬 수 있는 수준의 유배자가 이 정도로 끝낸 것이니 호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려나?

용사 꼬마가 우릴 싫어하지 않게 되면 좋겠군.

"뭐야 이건?"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품속의 로켓인데요."

"아니, 이건 징표로 삼기엔 너무 민감한 부분인데."

열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흐릿한 초상화 같은 게 있다.

"야, 이거 부모님의 유품 같은 거 아냐?"

"헉!"

"이거 [키 아이템]으로 쓰면 사라지는데."

"허억!"

어쩔 수 없지. 중요한 건 사진이 든 로켓 부분이니까…….

목에 거는 줄 정도는 바쳐도 되겠지?

유품을 훼손해서 미안하게 되었군.

제43서버

10(+19) 단계

KILL

그린스킨 2,107명

요정 456명

난쟁이 399명

키메라 217체

[유시우 Lv. 717 + 4]

[정희우 Lv. 625 + 3]

[제니 Lv. 380 + 5]

* * *

희우는 비행의 미세 조정을 연습하러 갔다. 은밀한 정씨 가문 고유의 움직임을 비행으로 구현한다.

이게 절대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할 줄 모른다. 내가 쓰는 동작은 오랜 세월 내 마음대로 최적화한 동작이라 희우와는 결이 다르다.

스스로 해낼 과제를 내준 후에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이제 강의 준비다.

"여신님, 그래서 마법의 신, 그 양반은 강림한답니까?"

「안 한다던데.」

"믿을 수는 있고요?"

「그럴 리가. 딱 봐도 구라 치고 있는데.」

"그런 말 좀 쓰지 마십쇼. 위엄 없게스리."

「그럼 너부터 그 말투를 좀 더 경건하게 바꿔라.」

나는 잠깐 고민한 후에 대답했다.

"위대하신 혼돈의 어머니시여, 제가 감히 당신께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 갸륵한 정성을 어여삐 여겨, 내 허하도록 하노라.」

"마법의 주인이 감히 혼돈의 어머니의 행사를 방해하니 어찌 벌할 방법이 없겠사옵니까?"

「…… 집어치우지. 못 해먹겠네.」

"어휴, 그래도 좀 연습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왜?」

"나중에 왕국에 전도를 할 건데 그래도 좀 위엄이 있는 편이……. 가만, 그게 아닌가."

「무슨 끔찍한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불현듯 프로듀스 혼돈의 여신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이건 성직자의 나라에 다시 혼돈의 신전을 세울 때, 다시 고민해 보기로 하자.

여신님은 신성한 느낌은 쥐뿔도 없지만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분이시다. 털털하고, 가끔 귀엽고, 꽤 자주 멋지시지.

그건 줄여 말하면 카리스마다. 방향성이 좀 다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마법의 신이 몰래 온 손님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거군요."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 기회에 그냥 인지도나 좀 쌓고 아케인에 비호를 요청하는 건 어떻냐?」

"그것도 고려 중이긴 합니다만 결국 문제가 많긴 해서요."

학장은 대외적으로는 몽환의 숲 클리어에 관한 일로 바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행운의 성물의 출처를 찾느라 바쁘다고 한다. 그곳에 제 목숨을 노린 적이 있을 테니까.

하하호호 웃는 것처럼 보여도 아케인 역시 왕국의 일부요, 미궁의 일부다.

사람 한둘 죽어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닌 곳이지.

「확실히 목숨을 맡기기엔 좀 저어되는 부분이 있군.」

"그리고, 뭐 그렇게 재미없게 도망만 다니는 게 아니라 한 번쯤 박살도 내줘야죠. 다행스럽게도 열차에서 우리 친구 맥이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스킬 세팅은 다 파악했어요."

맥이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무용담을 들려달라고 유도했고, 고단계 공략 썰을 좀 들었을 뿐이다.

뭘 상대로 무엇을 했냐를 대충이나마 알면 스킬셋이 나온다.

"이렇게 최적화를 잘하기는 쉽지 않은데."

게이머일지도 모르겠다. 프로방스를 만난 이후로 언제 건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멘탈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다. 이번 회차의 초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불안이 컸던 것 아닐까?

다음 기회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원래 불안정함을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다. 자기합리화는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나.

그래도 이번 회차는 놀라울 정도로 잘 풀려가고 있고, 희우도 귀엽다.

그래서 내게 불안이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냥 여기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무심코 들만큼.

「후후후, 거 봐라.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살아가는 법이다.」

"옳으셨다고 해두겠습니다."

「늙은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게야.」

여신님이 뭔가 건방진 말투로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기 시작했지만 무시하고 검을 뽑아 든다.

[레바테인]은 아주 귀한 아티팩트다.

입수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다.

적절한 제물로 홀수 층 [무스펠헤임]으로 이동하여 수르트의 아내인 신모라를 쓰러뜨리고 털어오거나, [침공]에 나타난 수르트 본인을 쓰러뜨리거나.

이거 둘밖에 없다.

그리고 불과 어둠을 동시에 지닌 듀얼 속성의 아티팩트는 아주 귀하지.

이 아티팩트에 대한 해석만 줄줄 늘어놓아도 학장이 만족할 만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원소의 융화와 정착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군. 권능의 마법적 해석도 곁들여야 하니까 훨씬 복잡하겠지만.

원소의 융화 하니 우리 딸내미는 잘하고 있을까?

들어보니 첫날에 비슷한 걸 연구하는 애가 울며 뛰쳐나간 모양이던데.

골목대장이 따로 없다.

그 소식은 뜻밖의 인물이 물고 왔다.

"저기요! 리더?!"

"무어야. 나 바빠. 여신님도 계속 머릿속에 대고 자랑하는 거 그만두지 않으시겠습니까? 완전 꼰대 같아요."

여신님이 신언으로 시무룩해지고 제니가 말했다.

"지금 대광장에서 난리가 난 모양인데요! 고등부 대학 진학반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제 귀에도 소문이 들어올 정도니 다들 거기로 향하고 있어요."

"그럴 수도 있지 마법사들은 원래……. 응? 잠깐만. 진학반? 거기 우리 딸내미 있잖아."

불길한 느낌이 든다.

일단 달렸다. 마법으로 신체 증폭까지 하고 최선을 다해 달렸다. 대광장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그대로 날아올라 지붕을 타고 달린다.

곧 보이기 시작했다.

대단한 마력이 응집되고 있었다.

심지어 마력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들도.

미궁이 먼저인가. 마법이 먼저인가.

이건 미궁의 마법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명제다.

그게 어려운 이유는 미궁의 불가사의한 환경들을 마법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건 어느 정도 미궁의 보정 또한 들어간다.

마력 이외의 뭔가 다른 것, 미아는 지금 그것까지 불러오고 있다.

12층에서 샤크마에게 대응할 때 저 아이를 핵으로 환경을 구성하는 걸 보여줬었지.

지식이 깊을지는 몰라도 넓지는 않은 미아니까 뭔가 연구 과제를 고른다면 아는 것 중에서 고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때 샤크마를 유인했던 그것은 [메인 던전]에나 깔려 있는 어둠이다. 그걸 여기서 구현했다간 참사가 날 수도 있다.

위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남다른 것 같은데.

딸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나 희우 같은 건 아니란다.

제니를 좀 더 표준으로 생각해 주지 않겠니?

그런 생각을 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그것도 아닌데?"

좀 더 가까워지자 무엇이 소환되고 있는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멀리서 짐작한 것과 비슷한 건 맞았다.

그러나 미아가 불러내고 있는 미궁의 ‘어떤 환경’은 12층에서의 그 어둠조차도 아니었다.

여신님도 알아보았다. 마법을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감으로 알아냈다.

「지금 멈추라고……. 아니, 못 멈추겠구나. 네가 날려버려야 한다. 제대로 발동하기 전에 파손시켜야 해!」

"애가 저런 걸 만드는데 왜 그냥 보고 계셨습니까!"

「난 마법 몰라!」

"으아아아! [레바테인]!"

세상을 불태우는 수르트의 마검에서 불길이 해방된다.

이상한 게 소환되기 전에 일격에 날려 버린다!

* * *

레베카 교수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연구실 앞에 메모되어 있다.

날 때부터 요정이 아니었던 유배자들의 시간감각은 촉박하다.

바쁘게 사는 게 나쁜 일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교사는 그래서 약간 아쉬움을 곱씹으며 다시 대광장으로 돌아왔다. 그 새 인파는 더 늘어 있었다.

몇몇 교수들은 아예 그의 학생과 함께 무언가 그리고 있었다.

학생들도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마탑의 마스터인 위대한 마법사들의 지시를 받으며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인맥이란 게 별 것 아니다.

이렇게 안면을 트는 것이 인맥이며, 그러다가 얼굴이 기억에 남아 약간이라도 더 뽑힐 확률이 높아지면 그게 인맥이다.

리틀양이 만들어낸 이 작은 소동은 학생들에게도 뜻깊은 경험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교사는 검지로 코밑을 쓱 닦으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레베카 교수를 불러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교수가 교사를 알아보았다.

"자리에 없던가?"

"그랬습니다."

"아쉽군. 그녀가 이걸 봐야했는데."

"과연 제대로 작동할까요?"

"이론상으로는 충분한 것 같네. 이 증명은 꽤 중요할 것 같군."

한눈에 무엇인가를 정확히 꿰뚫어보기에는 복잡했다.

저 작은 아이의 머릿속에 어떤 발상과 관념이 잠들어 있는가. 이것이 바로 재능 아니겠나.

교수는 만족스럽게 웃음 지었다.

"이것만으로도 다들 채가려고 안달이 나겠군. 자네 정말 대단한 아이를 키웠군 그래."

"사실 저는 한 게 없습니다."

"겸손은 되었네."

"어, 정말로……."

그때 현장에 있던 다른 교수 둘이서 훠이훠이 하며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완성되었군. 어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세나."

마법사들은 결국 다 그런 족속들이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이들.

그게 아니라면 워 메이지가 되었지 이런 연구에 종사하지는 않으리라.

그리하여 대광장을 가득 메운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안개가 환상처럼 찾아든다.

짙은 안개는 순식간에 시야를 흐려지게 했다.

그리고 난데없는 숲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감쪽같군.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게 환상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하겠어."

"그런데 안개 낀 숲이라니,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순간, 교사의 뇌리에 최근에 클리어된 어느 악명 높은 홀수 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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