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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34화 (23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34화

왕국 ? Lv.981 바이킹 전사 에길(3)

전사들은 마법사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에길은 특별히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노르드인에게도 주술사는 있었다.

앞길을 예언하고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일이었다.

그게 좀 더 화려하고 파괴적이게 되었을 뿐, 미궁의 마법이라는 것 역시 그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렇게 편견이 없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처음 이 미궁에 발을 들였을 때는 드디어 발할라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겁쟁이들이 섞여 있는 게 좀 이상하고, 전사가 아닌 괴물들과 싸워야하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다.

그래도 싸우다 죽으면 다시 살아났고 강력한 전사를 마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몇 번의 죽음을 반복한 후에 마침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위 고참이라 불리는, 그때는 그저 아는 체하는 약한 놈들이라 생각했던 이들 덕이다.

"발할라가…… 아니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헬헤임인가?

자신의 최후를 돌이켜본다.

사악한 날개 달린 도마뱀이 빈란드에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명예로운 전사로서 찾아갔다.

함께하는 수많은 전사들과 사투한 끝에 마지막으로 목을 벤 것이 자신이다.

그 뒤로 다시 눈을 떴더니 이곳이다.

그것이……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었단 말인가?

혼란에 빠진 바이킹은 어떻게든 유배자들이 말하는 왕국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가 죽은 것은 사실이다. 죽은 후에도 발할라에 도달하기 위한 또다른 시련이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는 전진해야 한다.

어렵지는 않았다.

에길은 여전히 강력한 전사였으며 심지어 이 미궁이란 곳이 부여하는 불가사의한 요술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더 강해질 필요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전진하는 것만으로도 왕국이라 불리는 낙원에 도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온갖 바다 괴물들이 날뛰는 서해 바다를 롱쉽 하나에 의지하여 지나는 것은 어떠했던가.

하물며 빈란드로 향하는 길은 이 튜토리얼이라는 구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앞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원래 모든 삶이 그랬다.

강인한 바이킹은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의 발할라는 어디에 있는가.

그를 맞아줄 명예로운 전사들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가.

오딘이시여, 토르시여, 부디 나를 인도하소서.

그는 여전히 발할라를 찾아 헤매고 있다.

마법을 익혀볼까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 * *

3일 차.

마법은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요술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런 짓을 전투에서 하느니 도끼를 한 번 더 휘두르는 편이 낫다.

하지만 동시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 뭔가 더 배울 필요는 있었다.

에길도 정말로 자신이 마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아는 게 더 많아진다면 언젠가 주어질 단서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정도뿐이다.

그랬기에 오히려 이 정도 성취를 해내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되는군."

"잘했어."

본래 속성 스파르타 방식으로 공간에 대한 개념을 구겨 넣기만 하는 캠프다.

사실 수료한 후에도 제대로 공간이동을 활용하게 되는 케이스는 드물다.

그럼에도 찾는 이들이 꾸준한 것은 몸에 익힌 기술만이 다음 회차에도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금이며, 그렇기에 교관이나 조교들도 성의껏 임한다.

안 그랬다간 전투력을 지닌 유배자 훈련생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계가 있음은 자명한 법.

교관들도 훈련생들 중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이들을 우선으로 가르치게 된다.

대신 좀 뒤처지는 이들에게는 기초적인 잡기술을 더 알려줄 뿐.

하지만 에길은 그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마력 방벽을 만들어낸 것도 기적에 가깝다.

본래도 마법에 적성이 없는 종류의 유배자가 종족마저 인간이다.

특별히 마법과 관련이 없을뿐더러 좋은 점이라곤 찾기 힘든 유배자의 기본 종족.

이런 이가 부당하다고 날뛴다면 큰 문제가 된다. 지가 재능이 없음을 교육의 부실함으로 돌리는 건 비일비재한 일.

그래서 아케인 소속 전 랭커들이 상주하는 것이다.

에길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교관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훈련 간 사용하던 스태프에 손자국이 남은 것을 보고는 더더욱 그랬다.

이거 미스릴인데?

마력을 움직이고 술식을 구축하라고 했는데 근육을 움직여 근력을 발휘하고 있군.

이런 근력은 적어도 랭커급 전사다.

교관은 쫄았다.

여전히 싸우는 것이 좋았다면 이런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교관은 가장 우등생이며 이미 공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기 시작한 밴디지에게 에길을 고스란히 떠넘겼다.

둘은 죽이 잘 맞았고,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밴디지는 곧잘 에길에게 무언가 습득시켰다.

지극히 전사스러운 그 언어를 알아들으려는 노력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잘못됨을 붙잡는 것에 전념한다.

그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 중이다.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안타깝군. 그건 조금 더, 이렇게 슈웅 쾅 부웅 콰앙 하는 느낌이다."

"그렇군. 다시 해보겠다. 흐으읍!"

"아니다. 지금 그건 슈웅이 아니라 휘웅이었다!"

"헛, 그렇군."

그래, 정말로 최소한의 도리는 다 했다. 하지만 이번 기수가 수료한다면 저 전사의 언어에 대해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마법적 언어인가?

마법의 본질은 언어라고는 하지만 대체 이건 무슨.

에길은 그날 마력 장벽을 온전히 구현하기 직전까지 갔다.

* * *

4일 차.

에길은 자신에게 끝없는 친절을 베푸는 갈색 머리의 요정 여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할당된 과제를 빠르게 끝내고 조용히 옆에 와서 조용히 지켜본다.

그리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한다.

그 지적은 어딘가 감각적이지만 그런 동시에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가는 그런 것이었다.

노르드 전사는 다양한 병기에 통달한다.

그랬기에 전해지고 있다.

때로는 대검을 휘두르듯이 또 다른 경우에는 은밀하게 손도끼로 암습을 가하듯이.

마법이라는 불가해한 요술을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 흡사하게 번역해준다.

에길은 이 친절한 요정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돈만 날렸으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고맙다."

"별것 아니다."

요정 여인은 슬쩍 웃어보였다.

청순하다거나 가련하다거나 그런 이미지가 있는 요정이지만 이 요정은 전혀 달랐다.

그보다는 어딘지 연륜마저 묻어나는 백전연마의 웃음이다.

애초에 요정들은 보통 한손검을 쓴다. 더 나아가 봐야 쌍검사.

민첩 전사와는 큰 인연이 없는 에길에게는 꽤나 다른 존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무기에 숙련도가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호감이었다. 일종의 갭이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요정들이 전사의 싸움에 이리도 일가견이 있다니.

돌이켜보면 최초의 칭찬도 육체에 대한 것이었던가.

전사에게 단련된 육신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혹여 내게 마음이…….

에길은 거기서 고개를 저었다.

걸음걸이부터 예사롭지 않은 상대다. 단지 한 발 내딛는 것에도 빈틈이 없다.

언제든 습격, 혹은 자신이 암습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른 일에 집중할 때도 무심코 내비치는 은은한 살의는 물리적 온도조차 내릴 지경이다.

정말로 셀 수 없는 전장을 넘어 단련한 살기임이 틀림없다.

남녀 간의 무언가는 이 자리에 없다.

하지만 등을 맡기고 싶은 전사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일단은 마법에 집중하자.

이 요술에 대한 이해가 약간이나마 생기는 것 같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에길은 그날 마력 장벽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 * *

5일 차.

블랑쉐는 마침내 발할라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발할라 말이다."

"음."

"좋은 곳인가?"

에길은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다.

"좋은 곳이지. 싸움이 가득하며 죽음도 없다. 그리고 술이 무한하게 제공되지."

"언젠가 신들에게 닥쳐올 파멸을 막아낼 첨병이 될 수도 있고?"

에길은 다시 멈칫했다.

신앙이라. 그건 크게 고민 안 해봤는데.

노르드 전사들은 모두 신실한 신앙인이지만 그것은 전사로서의 신앙이다.

전장에서 신들이 가호할 수는 있을지언정 싸우는 것은 언제나 그 자신이다.

이 미궁의 신들이 실질적인 가호를 내린다는 건 꽤나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서 에길은 신앙을 가져본 적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신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 발할라를 찾는다는 인식은 없었다.

그저 더 많은 싸움. 그리고 더 훌륭한 전사로서 거듭나는 자신.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게 신들에게 바치는 전투가 될 수는 있겠군."

상대 요정은 어쩐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블랑쉐는 오르골에게 보고를 하고 칭찬을 들었다.

"좋아!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제대로 알아야 할 정보를 알아내고 있군. 발할라에 눌러앉고 싶어 하진 않을 것 아냐."

"나는 일단 첩보원이었다."

"사람 죽이고 서류나 데이터만 빼오는 첩보원 아니었어? 그건 그냥 암살자라고 부르는데."

"내 임무 중 일부는 그랬지."

"일부? 정말로 일부냐?"

"……."

어쨌건 그날 블랑쉐는 잠자리에 누운 채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낮의 그 대화가 생각나서였다.

아주 좋은 접근이었다.

결과도 좋다. 제대로 친해지고 있다.

대본 없이 이루어낸 결과다.

미지를 제대로 극복해내고 있다.

* * *

6일 차.

블랑쉐는 에길을 만나러 출발하기 전에 신화에 대해 더 공부했다.

처음에는 귀찮은 일이었으나 공통의 화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의 여동생과의 대화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주로 저쪽이 떠들고 블랑쉐는 듣는 쪽이다.

지금은 블랑쉐가 주도하고 있다.

아아,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인가.

대화의 즐거움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은 향상심을 불러일으킨다.

마법에 대한 공부도 순조롭다. 한 달로 예정된 과정이지만 더 빨리 수료해도 문제가 없지 않나 싶다.

블랑쉐 스스로서는 여전히 마법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나 몸이 알아서 한다.

악마란 그런 종족이니까.

그리고 그 몸이 알아서 하는 것을 궁리 끝에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에길은 큰 도움을 받았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 호감을 더 극대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전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암살자란 건 미궁에서의 분류다.

바깥에선 그런 게 없다. 마스터리로 인한 무기의 제약 역시 없다.

따라서 블랑쉐는 총기는 물론 냉병기 전반에 있어서도 달인이다.

대검이나 워해머 같은 게 아니라 나이프나 봉 위주의 기술이긴 했으나 결국 모든 병기술은 한 가지로 통하는 법.

그날 캠프가 끝나고 에길이 거처로 향할 때 블랑쉐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무기를 맞대어 보자고?"

"너는 훌륭한 전사다. 한 수 견식하고 싶군."

"기꺼이."

벤치마킹이기도 했다.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스승이 어떻게 저 오르골의 마음을 붙잡아 내었는가.

격렬한 육체의 대화는 곧 마음의 대화이기도 하다.

날붙이가 부딪히며 싹트는 교감은 더 긴밀하며 강렬한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에길은 지극히 우직하고 강하며 빠른 전사였고, 블랑쉐는 재빠른 몸놀림을 메인으로 흘려내고 파고들며 싸우는 타입이었다.

합을 겨루기보다는 서로의 허점을 파고드는 가벼운 대련 끝에 서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치 로키의 몸놀림과도 같군."

"너는 토르의 분노와도 같았다."

"하하하."

"후후후."

그 후의 술 한 잔은 아주 달았다.

그 자리에서 공부한 지식을 활용해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길은 의외로 박식했으며 자신이 믿는 신화가 미래인들에게는 이야기로만 전해진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후대의 해석과 당대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즐거웠다.

수르트의 마검에 대한 이야기를 해둘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영감님이 가지고 있는 묠니르는 아직 이곳에 없다. 그렇다면 증거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불의 마검 레바테인 뿐이다.

수르트를 쓰러뜨린 증표.

때가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오르골은 그날의 보고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뭔데? 전투 데이트 같은 건가? 누구한테 배운 거야."

* * *

7일 차.

블랑쉐는 공간의 균열을 여는 데 성공했다.

에길은 더 이상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한계라고 볼 수 있었다.

지능을 거의 채택하지 않은 마인드맵은 보정조차 주지 못하는 탓이다.

에길은 퇴소하기로 했다.

차라리 리프트를 떠돌며 단서를 더 찾아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블랑쉐는 당황했다. 일단 오르골에게 보고했다.

서둘러 리프트에서 빠져나온 오르골이 달려왔다.

"좋아. 그럼 날 소개해."

"어떻게?"

"알아서."

"……좋다."

블랑쉐는 자신이 아는 가장 뛰어난 전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에길은 미심쩍어하며 블랑쉐를 따라왔다.

리프트에서 쉬지 않고 레벨링을 하는 동시에 강연 준비를 위한 실험 자료를 만들고 있던 오르골이 에길을 맞이했다.

"이게 뭔지 알겠나?"

연출적인 의미로 레바테인이 지닌 속성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던 참이었다.

블랑쉐는 용의주도하게 레바테인에 대한 화제를 많이 꺼냈다.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에길은 낯선 타향에서 자신의 문화에 공감하는 블랑쉐에게 깊은 호감을 가진 참이었고, 그 호감은 그대로 낯선 남자에게도 어느 정도 이어졌다.

거기에 이 미궁 어딘가에 아스가르드가 존재한다면, 자연스레 요툰헤임 역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어제 나누었던 참이었다.

최근 지속된 관심사는 신화였다.

그리고 전설의 무구.

어느 정도 유도된 사고의 끝에 에길은 말했다.

"수르트의 마검……?!"

블랑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오르골은 어쩐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요즘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긴 했지.

블랑쉐는 임무 완수에 만족했다.

바깥에서도 임무가 끝나면 늘 그랬던 버릇대로, 속으로 중얼거린다.

‘MISSION COMPLETE…….’

아주 오랜만이었다. 블랑쉐는 아직도 훌륭한 첩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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