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36화
95단계 ? Lv.635 B-561 개척 항성계(1)
내 마인드맵을 열어본다.
포인트는 자잘하게 쌓여 있다. 하지만 특별히 투자할 곳은 없다.
이미 너무 멀리 나가 버렸다.
소드 마스터와 마투사라는 두 가지 상위직을 동시에 취득한데다가 나머지 포인트는 [피의 군주]를 위해 할애되었다.
추가적으로 더 포인트가 생기면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마인드맵은 경향성을 가진다.
이것은 곧 유배자가 그 회차에서 걸어온 삶과도 같은 것이다.
겁쟁이에게는 겁쟁이다운 스킬을.
전사에게는 전사다운 스킬을.
특히나 금빛으로 테가 둘러진 열매로 나타나는 유니크 스킬은 그 삶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괜히 한 회차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북부의 왕이 가졌던 유니크 스킬은 [짐승의 왕]도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그놈은 관상학적으로도 짐승같이 살았을 놈이다.
우습게도 이것은 게임이 현실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게임할 때 스킬 트리를 타며 저런 걸 신경 쓰겠는가.
그저 조건과 성능을 따지며 좀 더 효율적인 빌드를 만들려고 할 뿐이지.
그러나 현실이 되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삶의 궤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개발자들이 모두 이것을 온전히 고려하여 게임을 만들어 낸 것일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이미 [피의 군주]라는 뱀파이어 종족 전용 유니크 스킬을 획득했다.
이 스킬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엔 이유가 있다.
뱀파이어가 썩 고성능의 종족이 아닌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그 조건이다.
일종의 버그성 능력치인 바르바로이의 망토를 얻은 덕에 한줄기로 쭉 그어서 끝나긴 했다.
하지만 본래는 거대한 삼각형 꼴의 가지를 엮어냈어야 그 끝에 맺힐 수 있는 스킬이다.
[종말의 붉은 짐승]이라는 피아를 가리지 않는 소환수를 보면 알겠지만, 이건 학살자의 스킬이다.
아마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정을 쌓아서 마침내 출현시키려고 했다면 아마 46서버의 인간 대부분을 죽여 흡수해야 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이미 획득한 유니크 스킬들은 동시에 다른 모든 유니크 스킬의 획득 확률에 강력한 보정을 가한다.
하위 스킬들이 가지는 보정을 모아서 낮은 확률을 조금씩 올리고 또 올린 끝에 뽑아낸 유니크 스킬들이니 당연하다.
그리고 본래 종족 전용 스킬은 다른 유니크 스킬의 획득을 제한한다.
이걸 가진 시점에서 나는 이미 전사를 위한 [원초의 힘] 따위의 유니크 스킬은 가질 수 없다.
이 경우의 확률은 그저 0이다.
뱀파이어의 군주가 된 나는 어디까지나 뱀파이어로 남아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개발자들은 강제적인 롤플레이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이 또한 현실이 되고 나서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미궁은 현실이지만 동시에 게임이기도 하다.
* * *
그런 설명을 들은 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럼 오빠는 더 강해질 수 없는 건가요?"
"시스템 보정으로서는 그렇지. 하지만 나는 어차피 스펙만 갖추어진다면 대부분 해낼 수 있으니까 스킬 유무는 메인 던전 돌입 전까지는 중요하지 않아."
"천사 종족 스킬은 뭐예요?"
전사의 종족 천사 중에서도 마법과 밀접한 대천사의 경우에는 뜬금없이 회복과 보조에 특화된 [천상의 빛] 같은걸 가진다.
치천사는 천사 공용 스킬인 [신성한 분노]의 상위호환인 [신의 진노]를 가진다.
기천사는…….
"[오버클럭 익스텐션]? 이름 엄청 멋있네요. 그런데 뭔가 좀 천사 같지는 않은데요."
"기천사는 천사 삼종족 중 하나지만 배경 설정이 좀 다르거든."
"에엑?"
기천사의 기는 기계(機械)의 기(機)다. 영문권 번역은 메카니컬 엔젤이라구?
"헉! 안드로이드?"
"그것보단 바이오로이드 아닐까?"
어쨌든 생물은 맞다. 차라리 사이보그 같은 느낌에 더 가깝겠지.
"그래서 종족 스킬의 효과는 뭐죠?"
"그야, 기천사가 가장 빠른 종족이잖아. 당연히 더 빨라지는 스킬이지."
정말 엄청나게 빨라지긴 한다. 날개의 기동력이 비상식적인 수준까지 폭증하니까.
하지만 공격력면에서는 보정이 전무하기에 아쉽다. 치고 빠지기에 특화된 원거리 공격수들에게 더 어울린다.
"그렇군요. 그래서 [은빛 섬광]인가요?"
"천사는 종족 자체로 그 유니크 스킬의 획득 보정을 받아. 바람 관련 칭호가 큰 보정을 주는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날아다니는 종족이 유리하단 거군요."
"기왕이면 날개도 있으면 더 좋고."
하피, 드래곤, 천사, 하다못해 페어리 정도가 보정을 받는 종족이다.
용인도 바람 속성인 하얀 용인은 날개가 있으니 보정을 받을 수도 있고.
"어렵네요. 정말 다양한 게 마인드맵에 관여하는군요."
"그래서 난 이걸 누구에게 굳이 가르치려고 들지 않아. 솔직히 무슨 개소리인지 잘 모르겠지?"
"알 거는 같아요."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달달 외워야 할게 너무 많지. 그냥 내가 해주는 게 더 편해."
"좋아요. 오빠에게 의지할게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마인드맵의 보정에 관해 배우고 싶다고 그래서 설명했던 참이다.
막상 희우보다는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미아가 더 잘 이해한 것 같다.
제니는 완전히 포기했다.
"음, 그러니까. 열심히 살면 복이 찾아온다는 그런 말이죠?"
"아마도?"
그렇게 단순하면 좋겠지만……. 삶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결국 그것뿐인 말이다.
운이 좋다면, 정말로 운이 오질 나게 좋다면 다 의미 없어지는 이야기지.
「크흠!」
"여신님은 뭐, 제가 여기저기서 들은 증언에 따르면 누구보다 용맹하고 두려움 없이 온갖 던전들을 들쑤시고 다녔다던데요."
「응? 여기서 갑자기 얼굴에 금칠이냐? 난 운이 좋은 사람이 여기 있다고 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어디 운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겸허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후후후. 고맙군.」
뭐 저 운 언급은 여신님보다는 희우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기는 했다.
그걸 관장하는 것 자체가 행운의 신이다.
솔직히 희우가 행운의 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도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로서는 행운의 성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장이 제대로 캐내건 못 캐내건 짐작은 간다.
적어도 하이 랭커급이 얽혀있으리라. 더 나아가면 [아케인] 그 자체가 말이다.
행운의 성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
로그라이크에서 확률에 관여하는 것만큼 핵심적인 시스템을 건드는 것도 없다.
개발자들은 행운의 성물을 다른 대신격의 성물보다 훨씬 더 손에 닿기 어려운 곳에 배치해 두었다.
예를 들자면 [메인 던전]의 심부라거나.
혹은…….
행운의 신전이다.
그러나 학장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혹시 이번에는 암살이 성공한 거 아닌가 싶어 찾아가 보았더니 태평한 그루터기 요정답게 자기 할 일을 우선하고 있었다.
수명이 길면 시간감각이 달라지는 법이지.
가서 땡깡을 부렸다.
"나 강연 안 해요!"
"아니? 왜!"
"아! 거, 자기 목숨 달린 일부터 하라니까! 그거 나한테도 엄청 중요한 일이야!"
"불의 마탑 그랜드 마스터로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나도 바쁘다네!"
목숨에 대한 집착도 별로 안 큰 건 마법사라서 그런가.
안 먹힌다면 필살기다.
"하, 기다려 보쇼."
아케인의 만신전에 찾아갔다. 마법의 신이 얼른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저 괘씸한 놈 덕분에 강연이 취소될 위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뒤 좀 캐라고 신언 좀 내려봐요. 그럼 강림해도 뭐라고 안 할게."
「정말입니까? 아,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건 강연에서 해드리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혹시 몰라요? 행운의 성물 어디서 나온 건지."
「아, 저는 별로 신좌 시스템에 관심이 없어서……. 아마 아케인 파티 아닐까요?」
"나도 그건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하긴, 모든 신들이 전략 시뮬레이션에 열중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어느 회차나 마법의 신은 신도에게 간섭을 안 하는 것을 넘어 관심도 없는 양반들이 많다.
지들 연구가 더 중요하거든.
이렇게 신언으로만 대화했지만 마법의 신은 희희낙락했다.
아케인의 마법사들은 절대다수가 마법의 신의 신도다. 학장 역시 그랬다.
툴툴거리며 업무에 열중하던 학장은 잠깐 졸게 되었고, 꿈에서 댄디한 악마를 만났다.
그 악마는 빨리 제 목숨을 소중히 하라고 호통을 쳤다.
무려 마법의 신에게 갈굼당한 학장은 영문도 모른 채, 업무를 잠시 내려두고 뒤를 캐기 시작했다.
저 양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난 이제 좀 준비할 게 있으니까 너희들끼리 레벨링 하고 와!"
"헉! 이 경우에 제가 리더가 되나요?"
"그래!"
레벨링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어느 정도 단계를 들어가야 안정적인지부터 해서 개판이 나도 문제없을 정도로는 숙지했다.
무엇보다 제니가 생각 이상으로 베테랑이다.
좀 게으르게 살긴 했어도 수십 년 리프트 생활을 딱지치기만 하고 보낸 건 아니지.
"흠, 흠."
블랑쉐가 에길과 함께 가고 싶은 눈치였다. 처음 자력으로 사귄 친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에길 역시 블랑쉐를 향해 신뢰를 쏘아 보내고 있지만.
"넌 3연속 블링크 성공할 때까지 가서 훈련 받아야지!"
"뭣이?"
"원래 목적을 잊지 마. 사수에게는 기동력이 생명이라는 거 알잖아."
두 바보는 침통하게 헤어졌다.
비어 있는 숙소에서 에길을 낚기 위해 거치해 둔 레바테인을 본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내가 이걸 더 쓰게 될 것 같다.
스탯 제한 술식은 이미 완전히 고쳐 썼다. 학장에게 말만하면 대체로 무슨 설비건 대여해 올 수 있다.
"흠, 어떡하지? 솔직히 말하면 대충, 이걸로 하면 되겠지 생각만 해본 건데."
연구와 강연, 갑자기 뚝딱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
평생을 마법에 바치고 있는 이들 앞에서 떠들어야 하니까.
거기에 마법의 신이 나한테 실망한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더 써먹을 일이 많을 테니까.
동시에 어그로를 좀 모아야 한다. 그래야 레미가 저 멀리 떨어진 이국, 하드스록에서 하는 사업이 잘 되지 않겠나.
결국 그것도 내 사업이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참 머리를 싸맨 끝에 주제를 정했다.
"아티팩트의 속성 변환에 관하여. 딱 좋군. 심플하고, 아무도 모를 것 같고."
아티팩트는 대체로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회차에서도 레바테인은 레바테인이다.
그 속성을 불과 어둠이다.
이것은 불변의 속성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그러하다.
그 속성은 미궁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미아가 보여줬듯 미궁도 가끔은 오류를 일으킨다.
마법이 먼저인가 미궁이 먼저인가.
그건 그래서 생겨난 명제다.
"냉기 속성 레바테인을 만들어가야겠군."
이 또한 미궁을 속이는 방법에 해당한다. 어떻게 본다면 마법의 본질일지도 모르는, 시스템을 벗어난 수단.
보여주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이건 세상을 완전히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마법사와 현실로 인식하고 있는 마법사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극한에 도달한다면 이제부터는 발상의 싸움이니까.
내가 이런 시도를 하는 것 또한 게임시절에는 에디터로 가능한 일이었기에 해볼 생각을 한 것에 불과하다.
코드로 되어 있는 세상을 주무른다고 생각하면 발상의 지평이 넓어진다.
가끔 생각하는 바이지만 미궁을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효율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현실이다.
그러니 게임으로만 생각한다면 버틸 수 없거나 잃게 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때 여신님께서 신언으로 속삭이셨다.
현재 묠니르의 주인인 영감님의 소식이었다.
「트동트 영감, 지금 성직자의 나라에 있다는데 이제 출발하겠다는군.」
"그럼 내일은 도착하시겠군요."
「아니. 걸어온다는데.」
"예?"
들어보자 하니 기차가 문제인 모양이다.
한 번 타보긴 했는데, 다시는 못 탈것 같다나.
"아니, 우주선은 잘만 타고 다니셨으면서……?"
「그건 뭐가 뭔지도 몰라서 그냥 타고 다닌 건데 기차는 영 께름칙한 모양이야. 흉물스럽다는군.」
"그러고 보면 많이 노인이시긴 했죠."
「여기까지 오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더군. 그래서 걷고 싶다는 이유도 있는 모양이야.」
"위험할 텐데."
「그래서 묠니르를 가지고 있으라고 했던 것 아닌가?」
길 가다가 랭커를 만나는 게 아닌 이상 노련한 전사이자 주술사인 영감님은 대부분의 위협을 격퇴할 수 있다.
성직자의 나라는 길 가던 랭커와 쉽게 조우하는 곳이긴 하지만 뭐 짬이 어디가진 않으셨겠지.
* *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레벨링과 레벨링, 그리고 또 레벨링만 반복하는 일주일이었다.
블랑쉐는 신경 쓸 에길도 없어지자 이틀 만에 최소한의 실전배치는 가능한 정도의 마법을 익히고 수료했다.
거의 감으로 구사하는 것 같긴 하지만, 바로 그래서 악마가 고위 종족인 것이다.
악마가 되면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거든.
희우는 유니크 스킬을 쌓아 올리기에 충분한 포인트를 모았다.
미아는 마인드맵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소소하지만 마력량부터해서 다양한 레벨 보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에길은 뜻밖에도 쉽게 파티에 적응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애초에 희우부터가 바이킹과 그리 큰 차이 없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에길의 태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결국 미궁산 정상인들이니까.
미궁의 비정상인이 고통스러워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요?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랭커가 되어보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죽여줘……."
하지만 저렇게 우는 소리를 하는 제니조차도 어디서나 레벨만으로 대우받을 반열에 도달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항상 눈 밑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껴 있다. 발랄한 고양이귀 요정은 이미 죽었다.
눈에 빛이 없는 레벨링 머신이 존재할 뿐이다.
잠조차도 자지 않는 강행군으로 희우조차 녹초가 되어 늘어졌다.
전쟁이 벌어진 43서버의 근미래에서는 이제 할 만큼 했다.
다른 레벨링 구간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강한 소수의 적을 상대하는 것은 레벨링보다는 장비 파밍을 위한 것이다.
레벨링은 약한 다수를 잡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드워프 왕국의 인구는 230만 정도였다.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는 당연히 더욱 더 인구가 많다.
[유시우 Lv. 721 + 95]
[정희우 Lv. 628 + 121]
[제니 Lv. 385 + 180]
[미아 Lv. 530 + 96]
[블랑쉐 Lv. 459 + 50]
[에길 Lv. 981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