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38화
95단계 - Lv.635 B-561 개척 항성계(3)
리더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전사들은 상위 랭커 수준이 되지 않는 이상 광역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제니의 입장에서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당장 저 레벨이 1000을 갓 넘은 대머리 그림의 아들도 주먹질 한 번이 광역기다.
그때 도끼를 멋들어지게 날리고 남모르게 식은땀 흘리던 리더도 괴물이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아케인 경비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아케인의 그랜드 마스터가 구해준 숙소는 정말로 지구의 도시가 생각날 만큼 잘 정비된 곳이었고, 그곳에서 일어난 소동을 전담하는 고레벨 경비대마저 존재한다.
건물이 무너지면 당연히 중무장하고 뛰어든다.
어찌 돌려보내긴 했으나 제니는 저 괴물딱지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진행될 일에 대해서 듣고 나자 왜 광역기가 부족하다 운운하였는지 깨달았다.
25억…….
미궁은커녕 바깥에서의 통계로조차 잘 와닿지 않는 숫자다.
납득은커녕 이해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의 두 배? 아니, 두 배는 안 되나?
바깥의 지구,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홀로코스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제니는 정말로 회의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차를 타버린 것 아닌가 후회했다.
물론 그 생각은 이미 거두어들였다.
그럼에도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멍한 상태는 어쩔 수 없었다.
강하 캡슐에 들어간 채 강하하며 제니는 아무 생각이나 떠올렸다.
이거 뭔가 아는 장면이다.
우주에서 행성으로 내리꽂히는 캡슐, 그 안에 탄 것은 그 행성을 멸망시키려는 초인적인 침략자다.
바깥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만화의 내용 중 하나였다.
덩치가 큰 쪽 이름이 내퍼였던가.
작은 쪽은, 베지터였던 거 같은데 내퍼를 빼면 성별이 모두 여자다.
그것까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군.
그런 아무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을 외면 중이라는 것 자체는 마음 한구석에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직시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숫자가 커서 와닿지 않으나, 동시에 그 숫자의 크기만큼은 온전한 박력이 되어 실감 난다.
굉음과 함께 행성의 구석에 침략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저절로 캡슐이 열린다.
제니는 사이어인이 된 기분으로 빠져나왔다.
내퍼가 말했다.
"괜찮은가. 제니."
바이킹에 대한 많은 현대인들의 편견과 다르게 에길은 아주 신사적인 전사였다.
리더를 인정하고 그 아래로 들어간 순간부터 파티원들은 전부 그의 동료였으며 전우이자 친우였다.
상대적 일반인인 제니는 에길에게 많은 염려를 받았다.
지난 일주일간 말이다.
그래, 그렇겠지.
저 위대한 전사가 보기에 제니는 전투에 익숙하지 못하고, 약하고, 칠칠맞은 동료겠지.
마음 써주는 건 고마우나 그 자체가 이미 불편하다.
이 파티는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다.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기분이다.
그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제니는 자신이 흐려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어떤 대량 살인마가 남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때때로 가졌다.
나는…… 뭐지?
침략자들은 걷기 시작했다.
내퍼와 여자 베지터가 앞장선다.
제니는 힘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이곳은 테라포밍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 대기가 옅었다. 자연스레 숨을 더 열심히 들이쉬어야 한다.
완전히 ‘처음의 행성’처럼 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처음의 행성’이라니. 그래 심지어 지구조차도 아니다.
새삼스럽게 떠나온 바깥, 떠나온 고향이 어딘지 되새기게 된다.
집에 가고 싶어.
내퍼가 다시 말을 걸었다.
"괜찮은가. 제니?"
제니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대답했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그만해 주세요. 에길."
그 말에는 저도 모르게 가시가 돋쳐 있었다.
에길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무슨 소리예요?"
바이킹에게 설교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제니는 다시 거절 의사를 표하려고 했다.
에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니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현대인. 그래 ‘현대인’이라고 스스로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유배자의 주류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도 보아왔다."
블랑쉐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굳이 따지자면 이 여자 베지터는 미래인 일 거다.
제니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길의 목소리는 아주 낮은 저음이다. 전투 중에는 무시무시한 짐승처럼 으르릉거리지만 평범하게 이야기할 때는 무게감 있고 설득력을 주는 진중한 울림이었다.
"나에게는 모두 미래의 사람들이고, 그들은 자주 영문 모를 이야기를 내게 강요하곤 했지."
강요?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여기게 되긴 하겠지.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전사가 아니었어. 도덕, 윤리,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기본 같은 이야기를 곧잘 내게 하곤 했다."
제니는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시대가 다르다. 야만스러운 바이킹에게는 먹히지 않을 논리였겠지.
"개중 내가 가장 의아하면서도 신기했던 것은 ‘인권’이라는 개념이었다."
인권? 제니는 그것이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달았다.
지금 죽이러 가는, 그리고 죽을 무수한 생명들에게도 인권이 있지 않겠는가.
비록 종족이 ‘인간’은 아닐지언정.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군. 난 딱히 그 개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더군.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먼 과거의 사상과 사고를 지니고 온 과거인이니까."
에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블랑쉐도 멈췄다.
제니도 멈춰 섰다. 에길이 돌아본다.
제니는 한참이나 고개를 들어야 올려다볼 수 있는 거인과 눈을 마주쳤다.
에길은 배려하듯이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직은 황량한 대지의 먼지가 푸석하고 피어오른다.
제니는 체구가 큰 편이 아니다. 키는 파티에서 두 번째로 작다.
에길이 자리에 앉았음에도 눈높이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난 그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의 시대에도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명확하게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살인이 나쁘다는 생각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했다."
"그래도 이런 학살과 살인은 전혀 다른 거잖아요."
에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수없이 죽인 살인마는 내 시대에는 흔했지. 사실 전사란 게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들은 존중받았다. 왜 그런지 아나?"
"왜죠?"
"명예와 미덕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게 뭔데요?"
제니는 힘없이 대꾸했다.
중세인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현대인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나도 잘 몰랐지. 그래서 공부를 했다. 현대인은 너무나도 많았고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지. 그래서 나는 내 명예와 미덕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내 시대의 전사들은 자연스레 알고 실천하던 것이었으나 그렇게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와 내 동료들이 중요시 여기던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했다."
에길의 목소리가 좀 더 무거워졌다.
"전사의 명예는 지향점이다. 강자와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것은 꼭 발할라에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저 가치관이지."
에길은 물병을 꺼냈다. 바이킹답게 호쾌하게 벌컥벌컥 들이킨다.
입술을 핥은 후에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미덕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선이었다. 우리는 동료를 죽이지 않았다. 전우를 배신하지 않았다. 적이 되지 않은 자와는 싸우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니는 이 바이킹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다만, 적이 된다면 가차 없이 죽였지. 여자도 어린아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항하지 않는 약자라도 필요하다면 죽였다. 이건 꼭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지 필요해서였지."
옆에서 흐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블랑쉐가 낸 소리였다.
에길은 계속해서 말했다.
"‘현대인’들의 역사에서도 이런 기준은 끊임없이 변하더군. ‘필요’에 따라서 말이다."
그때, 블랑쉐가 끼어들었다.
"너희가 말하는 그 현대라는 것은 내게는 과거다. 하지만……. 그때의 도덕성이라는 것은 우리 시대보다도 우월하더군. 미래는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블랑쉐의 그 말에 에길이 껄껄 웃었다. 그는 물었다.
"제니, 너는 더 정확하게 어느 시대에서 왔나?"
"2020년이었어요. 그날도 카지노에 출근하고 있었죠. 딜러였거든요."
"내가 공부한 게 정확하다면, 미궁에서 곧잘 문제가 되곤 하는 그 ‘인권’이라는 것은 생긴 지 50년도 채 되지 않은 개념일 거다."
"내가 온 시대에서는 이미 사라진 개념이고 말이다. 24세기에서는 말이다."
그랬던가.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제니는 특별히 역사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워듣는 것은 있다. 제네바 협약인지 뭔지도 생긴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포로를 죽이는 것이 썩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고 그랬지.
그렇지만 미래에 사라진다는 건 좀 충격이네.
그 감정은 불편함으로 변했다.
제니는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딱히 아무것도."
"그럼 왜 이 말을 한 거죠?"
"그냥 말하고 싶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에길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나빠질 만도 한 반응이었으나 제니는 그렇지 않음을 느꼈다.
이 바이킹은 어쨌건 아주 친절하고 신사적이며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전사가 자신을 염려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태도조차도 세심한 배려였다.
"난 동료를 잃고 싶지 않다. 동료를 위하는 것이 내 미덕이다. 제니 너는 훌륭한 전사다. 발할라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놈의 발할라! 그만 좀 말하면 안 되나요?"
"많은 현대인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더군. 하하."
에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병을 집어넣는다.
"내가 목이 말라 지체되었군. 계속 가지."
다시 출발하며 에길은 말했다.
"제니, 너는 잘하고 있다. 네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라. 미궁은 어려운 곳이다. 많은 것이 뒤섞여 있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지. 그럼에도 네 자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건 이미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발이 성큼성큼 앞서나간다.
"나는 여전히 발할라를 믿는다. 너는 여전히 그 ‘인권’을 믿으면 된다. 우리 리더도 그러고 있다. 서브 리더도 그렇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서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우리 시절의 명예나 미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 미궁의 명예와 미덕이겠지."
제니는 멍하니 서 있었다. 멀어진 에길의 등에서 분명하고도 설득력 있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니, 너는 잘하고 있다. 네가 꼭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네가 꼭 괴로워해야 할 필요도 없다. 이곳의 죄는 누구의 죄도 아니다. 그냥 미궁이 그러할 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계속해서 발할라를 찾기로 했다."
다시 한번.
"제니, 너는 옳다. 네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언젠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이곳의 일은 잊어라. 단지 어느 날의 꿈일 뿐이니."
집.
제니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결국 랭커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여 따라온 것은 그녀다.
이걸 한다고 했을 때 파티를 뛰쳐나가지 않은 것도 그녀다.
그녀는 단지 누가 저렇게 말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신 부담을 짊어져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의 부담을 말이다.
결국 제니 자신의 선택임에도.
제니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제니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긍정했다.
여전히 눈물은 났다.
제니는 눈물을 닦으면서 걸었다.
* * *
혼돈의 여신님은 흥미롭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미궁의 죄수인 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유흥거리는 신도들의 삶 그 자체다.
특히나 제니는 흔하면서도 드문 인물이었다.
제 발로 저렇게 랭커가 되어보겠다고 나서는 이는 많지만 끝까지 따라오는 이는 극도로 드물다.
심지어 이 파티는 이미 아득히 정상을 초월했다.
제니는 그런 파티의 일원으로 힘들지만 어떻게든 발맞추어 나가고 있다.
에길은 자신이 믿는 신들을 위해, 그 가치관을 위해 혼돈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제니의 시점으로만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충분했다.
여신님 또한 중세인으로서,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미궁인으로서.
제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시에 긍정했다.
그리고 에길의 마음가짐 역시 긍정했다.
이 미궁에서 낼 수 있는 답이란 결국 저런 것뿐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저것은 옳다.
왜냐하면 더욱더 밑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미궁은 어째서 경험치의 획득에 쾌감을 설정해 두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그 경험치의 쾌락에 한도가 설정되지 않았을까?
이런 대학살은 결국 효율이 감소한다.
레벨이 2000에 가까워지면 아무래도 다수의 저 레벨을 살해함으로써 얻는 경험치는 의미가 사라지기 마련.
미궁의 경험치는 자신의 레벨을 기준으로 위나 아래로 크게 멀어지는 대상일수록 획득이 감소하니 어쩔 수 없다.
평균 레벨이 훨씬 높아지는 미래에서도 이번 이후로는 더 이상 유의미한 레벨링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쾌락은 아니다.
그건 제한이 없다. 단 1의 경험치에도 동등한 쾌락을 부여한다.
그리고 1000의 경험치를 얻을 것이라면 그걸 1로 나누어 1,000회를 동시에 겪는 것이 훨씬 큰 쾌락이 된다.
심지어 이것은 점점 커지는 경향조차도 있다. 종래에는 어떤 마약보다도 더 큰…… 쾌락을.
언젠가 소녀에게 경고한 바 있듯이, 그 쾌락에 길들여진 자들은 사냥 중독이 되곤 한다.
사냥의 대상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모든 것.
기나긴 신좌에서의 삶은 많은 것을 보고 듣게 해주었다.
여러 회차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회차의 왕국 역시 여러 번 명멸했다.
그 과정에서 꼭대기에 서는 자들은 언제나 선택을 한 이들이었다.
바깥에서 도덕이 유지되는 이유는 개개인이 압도적 다수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궁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양심과 도덕을 저버리면 쉽게 해결된다.
그 와중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자들도 참으로 많다.
미궁의 모든 것은 스노우볼링이다.
보통 선점한 자들은 더 빨리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사다리를 걷어차고자 한다.
이 회차에서 아직 신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때, 여신이 신이 되고자 할 때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다.
왕국의 개척 초기는 유배자끼리 뭉쳐 살아남고자만 하더라도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시절의 그녀 역시 떳떳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에길의 말처럼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00레벨 이후는 떳떳할 수 있다. 운이 충분히 좋았던 덕에 강력한 괴물들을 상대로 쌓아 올린 레벨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보통 신좌가 찾아온다.
그럼 신좌가 찾아오지 않은 강력한 유배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신이 된 유배자와 비견되는 힘을 가졌음에도 신좌가 찾아오지 않거나, 발견해도 걷어차 버린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가장 먼저 쾌락과 이득에 타락하여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한 끝에 왕국의 정점에 서게 된 하이랭커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왕국을 경영한다.
클리어는 이미 잊은 지 오래.
부와 명예, 그리고 쾌락을 위해 질서를 만들고 통제하며 경영을 시작한다.
어느 회차나 그랬다.
세상은 선량한 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궁은 더더욱 그렇다.
[침공]으로 리셋되기 전에 정점에 서는 유배자들은 항상 그런 선택을 한 자들이다.
최선이 없고 차악뿐인 이 미궁에서조차도 오로지 악덕으로 쌓아 올린 왕국이여.
그 이름은 [하드스록], [더 시티즌], [아케인]일지니.
랭킹의 최상위에 군림하는 그 파티들부터 쳐부수지 않는다면 왕국은 결코 클리어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 이제 그녀의 대전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자.
이 신좌에서 벗어나 그것을 직접 도울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럼에도 흥미로웠다.
사색을 마친 여신님은 차가운 신좌에 앉아, 잠에서 깬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사탕을 꺼내 들었다.
이 또한 중대한 쾌락. 경험치의 쾌락을 이겨내기 위해 찾아낸 또 다른 쾌락.
냠냠. 존맛탱.
대전사가 들으면 위엄이 없다고 어디서 배운 말이냐고 뭐라 그러겠지.
깜찍한 녀석 같으니라고.
제니는 이제 울음을 그쳤다.
블랑쉐는 그런 제니를 흘깃 쳐다본다.
저 악명 높은 블랑쉐는 사실 에길의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침으로서 제니를 도왔다.
이 파티는 정말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