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242화 (24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42화

왕국 - Lv.2701 일그림 파티(1)

이건 어떤 의미로는 심리 문제다.

맥은 일그림의 파티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맥은 누군가의 성격과 심리를 파악하는 데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과연 이게 나 같은 가짜 인싸와는 다른 진짜 인싸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맥의 통찰은 사람을 꿰뚫는다. 묘하게 날카롭고, 나조차도 어떻게 넘겨짚어서 어느 순간 핵심에 도달할 것만 같은 그런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교 능력과는 별개로 입으로 새어 나가는 정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일그림이 이 총잡이 때문에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을 많이 겪었을까?

어쨌건 나는 그의 도움으로 칼질 몇 번 이외에는 교류가 없었던 하이랭커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여 블러핑, 거짓말, 나아가 함정일 확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긴 했다.

그건 가끔 술자리에 어울려 줄 때 이루어졌다.

하이랭커를 취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술은 사실 이미 술이라기보다는 독극물에 가깝다.

맥은 내가 그의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저지른 짓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그 결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일그림과 에리나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잘 알게 되었다.

출처가 실제로 오랜 친구인 맥이니 거의 틀리지 않으리라.

"별말은 없어?"

"갑자기 연락을 안 받아. 이러다 하이랭커 파티에 낄 기회가 날아가는 게 아닐까 모르겠네."

다른 파티원의 존재는 숨겼다.

내 숙소조차 실제와 다르게 알고 있을 정도다.

돈은 많으니 따로 빌렸고, 몇 번은 초대도 했다.

맥과 레베카는 나와 미아가 지내는 집을 전혀 다르게 알고 있다.

이쪽에서 새어 나갈 정보는 충분히 통제했다.

비상시가 닥치더라도 일그림과 친구들은 한동안 헤매게 되리라.

"뭐, 나는 기본적으로는 연구자라서."

"연구자가 칼을 차고 다니나?"

"처음부터 연구자였던 건 아니지."

"그건 알 것도 같군. 랭킹에 욕심이 없는 유배자들도 의외로 많단 말이야. 하이랭커니 뭐니 해도 더 강한 유배자도 찾아보면 한 트럭은 나올지도 몰라."

동의한다. 이전 회차에서 하이랭커였거나, 심지어 신이었던 유배자도 있다.

이번 회차에서도 똑같이 살라는 법은 없다.

은거기인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자면 지금 맥의 눈앞에도 말이다.

맥과 짧은 술자리, 내 입장에서는 정탐을 마치고 진짜 숙소로 돌아간다.

가짜 숙소에서 마법으로 이동하는 식이기에 걸릴 리는 없다.

* * *

희우가 생각을 말했다.

"그럼 날아오는 것이겠네요?"

"크게 지쳤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 게 좋아.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어느 정도 기초 스탯이 된다면 천사의 체력은 사실상 무한해."

"그렇죠……. 정신이 먼저 지칠 테니."

"일그림도 아마 에리나가 태워서 날아올 건데, 치천사의 최고 속력을 생각하면 내일 도착한다."

강연 이틀 전이었다.

미아가 속도를 계산한다.

"소리와 비슷한 속도네요."

"깃털 날개로 그런 속력이 나온단 말이죠? 저보다 빠르진 않겠죠?"

"하늘 유적에서도 비행은 너보다 빠르진 않았어. 반응할 핸드 스피드는 나온 거고, 더 강했던 거지."

일그림을 태우고 있는 탓에 느려지기도 할 거다. 맨몸으로 내는 속도는 마하3까지도 가능할 테니까. 기천사는 기본적으로 마하 10은 넘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천사인 하이랭커가 직접 비행하는 것은 미궁의 다른 어떤 이동수단보다도 빨랐다.

에리나를 상대해야 하는 희우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를 시뮬레이션해 보는 듯하다.

에리나의 스킬셋은 이미 맥을 통해서 노출되었다. 맥은 결코 스킬셋을 유출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상대했냐를 말했다.

사실상 미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상대에게 그런 짓을 한다면 알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생각해 볼 것이 많을 테니 내버려 두기로 한다.

미아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물어본다.

"저는 레베카 교수님을 죽여야 하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왕국 방어를 위해서라도 하이 랭커는 가능한 살아 있어야 해. 일그림이 우리에게 왜 적대적인지는 알고 있어. 그러니 이건 그저 아주 실전적인 대련이 될 거야."

영특한 미아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저를 죽이려고 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 어떤 그랜드 마스터보다도 마법 잘하는 거 아니었어?"

"그치만……."

미아는 스스로 말을 끊었다. 어떤 구상이 떠오른 모양이다.

"제니와 이야기해 볼게요!"

딸내미도 사라진다.

블랑쉐와 에길은 뭐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둘은 원래부터도 싸움의 프로였다. 그리고 미궁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유배자를 죽이는 것에도 충분히 프로다.

그저 하이 랭커급의 전투에서 달라지는 전투의 결 몇 가지를 짚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상대의 수단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면 이제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에 대한 전투를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이 둘은 간혹 내게 스킬간의 상성을 묻기만 했다.

그런 동시에 조용히 살기를 갈고 닦는다.

살기란 건 바깥에서는 초현실적인 무언 가였지만, 미궁에서는 전투를 앞둔 생물의 마력 파장 형태다.

사고에 의해 움직이는 마력의 미세한 움직임들이 어떤 의지, 혹은 느낌을 만들어 낸다.

죽거나 죽일지도 모르는 전투를 준비하는 두 사람의 마력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실 이건 마법사가 제대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 큰 변화는 아니다. 생물이 그걸 느끼도록 진화했기에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미아라면 육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별일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파티원들의 일상에는 고민과 의논, 그리고 토론의 시간이 추가되었다.

이건 바람직한 일이다.

각자의 전법을 갈고닦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하나의 연계로서 완성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홀몸으로 이겨낼 시련이 고작인 미궁이었다면 나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희우가 모두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어떻게 했냐?"

"오빠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했어?"

"사랑의 힘!"

"하아."

장난으로 넘길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 과정을 추적했다.

희우는 정말로 나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힌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니, 진짜 어떻게 했어?"

"하루 종일 생각하면 되요."

"뭘?"

"오빠를."

장난인가 했는데 드물게도 장난기를 싹 지운 진지한 표정이었다.

조용히 말이 이어진다.

"모습을, 동작을, 말을, 생각을, 전투를, 방법을, 하나하나 눈에, 귀에,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따라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니까 똑똑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똑똑해진 것 자체는 사실이긴 할 거다. 지능 스탯이 엄청나게 올라갔으니까.

그 사실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로 사랑의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 거로 해두자.

그렇다하더라도 굉장한 노력은 언제나 보답을 준다. 희우는 굉장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분명히 사랑의 힘이 맞을 것이다.

내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희우가 화를 냈다.

"좀 더 감동하라고요!"

장난으로 때려도 큰 대미지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완전히 몸에 밴 듯하다. 날 때리는 대신 허공에 주먹을 붕붕 휘두른다.

마력 소모를 감수하며 꼭 안아주었다.

희우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동료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무수한 회차에서 나는 교주였던 적도 있었다.

그래, 신앙의 힘으로 사람들을 모두 묶어두면 굉장히 편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추종자만큼이나 많은 적을 만들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에는 미궁의 시스템이 보장하는 신좌에 앉아보기로 결정했었던 기억이 있다.

희우는 그 어떤 광신도보다도 나를 더 열렬히 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떤 사람보다 나에 대해 궁금해했던 게 희우다. 정말로, 내 97+25년을 모두 통틀어서 말이다.

어쨌든 나는 조언만 하는 자세를 고수했다.

PVP는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하는 법이다.

유배자는 아마도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을 것이며, 그들 하나하나가 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사연의 수만큼이나 많은 마인드 맵과 전법이 존재한다.

그러니 결국 상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식으로건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안정성이다. 적어도 유배자 중에서 자살 돌격을 하는 상대는 없을 테니까.

일그림의 파티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제공한 정보는 이미 극단적으로 변수를 줄였다.

가만히 지켜보며 허점만 지적하면 될 일이다.

아주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전의 날이 다가왔다.

* * *

아케인의 둘은 일그림과 에리나의 연락두절을 대단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이 랭커가 왕국에서 갑자기 살해당할 일은 없다.

그러니 그저 사소한 변덕이나 어떤 개인적인 일에 의한 연락 두절일 것이다.

왕국의 정점에 가까운 유배자로 살아가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쨌건 둘은 짐을 챙겨야 했다.

성직자의 나라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은 출발을 해야 한다.

레베카는 맥에게 열차표 예매를 떠넘겼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이 예매 따위를 할 필요는 없다.

하이랭커는 신좌에 오르지 않은 신이나 다름없고, 신 후보와도 다를 것 없다.

물론 하이랭커들이 보기엔 아무리 그래도 신좌에 오른 진짜 정점들과 그들의 격차는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기엔 알 수 없는 격차다. 랭커는 무적이고 하이랭커는 신이니까.

일반 랭커만 되어도 이런 곳에서 갑질을 하는 이들은 많았다.

일그림의 파티는 방침으로서 그런 일을 금지하고 있다.

대외적인 시선을 신경 쓴다는 점도 있으나, 파티의 궁극적인 목표가 그런 방향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하이랭커가 표를 끊고 행차하자 역장이 마중 나왔다.

그 외에도 시티즌에서 열차를 운행하는 사업의 본부장이 찾아와 고개를 숙인다.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어쩌고저쩌고. 맥도 레베카도 관심 없는 내용이다.

구경 한번 하겠다고 사방에서 기웃거리는 다른 승객들도 많다.

사인 요청도 받는다. 레베카는 피로하게, 맥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해줬다.

"하아, 내 사랑스러운 제자와 헤어져야 하다니."

"나도 빅맥을 99.99% 구현할 수 있는 친구와 헤어져야 하다니 너무 슬프군."

"KFC는 못 만든대? 아니지. 혹할 뻔했어. 언젠간 그 뺀질이로부터 내 제자를 입양할 거야. 내 딸이 되렴. 후후후."

맥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네 제자라는 아이도 우리 파티에 아예 영입을 하는 건 어때?"

"일그림한테 연락은 했어."

"오, 그거 우연이군. 나도 마검사 하나 더 파티에 넣을 생각 없냐고 물어봤었거든."

"게에엑, 설마 그 녀석?"

"아니, 뭐 부녀가 함께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레베카는 잠깐 상상을 하고는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정말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잘생김 알레르기라도 있어?"

"마법의 신님을 모욕하잖아. 그렇게 대단하면 자기가 마법의 신을 하지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대? 내 제자의 재능은 진짜지만 난 그런 녀석을 신뢰할 수 없어."

"햄버거 만드는 실력은 진짜였는데……."

시덥잖은 농담, 결국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될 것이다. 일그림이 좋다고 판단한다면 될 일이고 둘은 모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레베카는 문득 맥이 무슨 생각으로 영입을 추진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맥은 한마디로 대답했다.

"숨기는 게 있는 친구야. 왜, 내 유니크 스킬은 위기 감지잖아?"

"정확한 위기의 원인을 모른다는 게 문제겠지만."

"아마 나 빅맥 친구랑 붙으면 이기기 힘들 거야. 지지도 않겠지만."

레베카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뭐? 은둔 하이랭커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스펙은 내가 분명히 위란 말이지. 그 친구는 아마 일반 랭커 정도야."

"그럼 PVP 전문?"

"그럴지도."

당연하지만 PVP 전문 유배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클래스 별로 반목이 생기는 것도 상성의 문제 아닌가.

"더 께름칙해졌어."

"그렇지만 의외로 그냥 강한 걸지도. 하여간 스킬이 경고는 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나한테 악의는 없었으니 다행이지."

"넌 너무 경솔해. 그 정도면 엄청나게 위험한 인물이라고! 일그림한테도 보고했어?"

"그렇게 말해두긴 했지."

레베카는 화를 낼까 하다가 말았다.

에리나라면 맥을 쥐 잡듯이 잡아 줄 텐데.

레베카는 여기서 자신이 진지해 봐야 맥이 웃어넘길 거라 생각했다.

레베카 본인은 진지하고 싶어도 남들이 보기에 진지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

혼자 심통이 나서 팔짱을 끼고 볼에 바람을 넣었다 뺀다.

맥이 알았다면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누구를 혼내지 못하는 거라며 웃었을 것이다.

VIP 대기실에는 둘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열차를 향해 갔다.

그리고 무언가 느꼈다.

"어라? 저거 에리나 아니야?"

사수는 시력이 좋다.

붉은 머리의 치천사는 익숙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밑에 매달린 파티 리더도.

소닉붐과 함께 두 하이랭커가 착지한다.

여파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역장이 뛰어나온다.

일그림과 에리나는 즉각 전투 태세를 취하며 주변을 경계한다.

맥이 어이없어했다.

"잠깐만, 무슨 일이야?"

"지금 혹시 그 영입 대상들이 이 주변에 있나?"

레베카가 대답했다.

"아니."

"좋아, 함정은 아니군. 지금 당장 무장해."

"어느 정도로?"

"대 하이랭커 수준으로."

맥과 레베카는 일단 군말 없이 따랐다. 일그림은 파티 리더다.

"싸움이야? 누구랑? 아케인은 아니겠지?"

"너희가 영입하려고 했던 그 둘, 전에 말한 적 있는 게이머 파티야."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진 않았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쉽게 살진 않았다.

다만 레베카의 표정이 몹시 나빠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