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44화
왕국 ? Lv.2701 일그림 파티(3)
충격에 의해 의식이 잠깐 사라지는 일은 생물에게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냐는 생물 개개인의 육체적 구조, 그리고 미궁에서는 보정이 얼마나 되냐에도 달렸다.
에리나가 다시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칼날이 코앞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는 약간의 혼란.
그러나 뇌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고개를 젖히면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고개를 숙여도 된다는 뜻이다.
천사에게는 아주 좋은 신체기관이 하나 달려 있다.
천사의 링은 모든 종류의 천사에게 있는 것이며, 본체에게는 물리력을 전달하지 않는 파괴 불능한 무언가이다.
통상적으로는 투구나 모자를 쓰는 게 불편해지는 것 외에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불편한 장식도 근접 격투에서는 하나의 방패로 기능하는 법.
상대의 단검이 링에 걸리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에리나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날개로 추진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주먹으로 그대로 보디 블로.
링과 단검이, 상대의 몸과 주먹이 교차했다.
쾅 하는 충돌음, 에리나는 자신의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안 좋다는 걸 깨달았다.
"큭……!"
빠른 것은 언제나 좋다. 선공권을 가지며 원한다면 도주해 버릴 수도 있다.
기천사와 치천사는 태생적으로 날개의 성능이 다르다.
이대로 거리를 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치천사의 날개는 그렇기에 다른 기능을 한다.
온몸을 고치처럼 날개로 감싼다.
에리나의 링 다음으로 단단한 신체 부위가 날개다.
리프트 고단계에서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체감한 신체 손상의 자가진단.
내장은 대부분 성한 것이 없으며 안구를 포함한 감각기관도 손상이 크다.
근육도 중요한 부분은 다 끊어놓았다. 실로 살인 전문가의 솜씨다.
그러니 방금 보았다고 생각한 것은 시각이 아니었다.
주변의 마력을 감지하는 패시브 덕분에 보았다고 착각했다.
포션 병을 어디 보관하는지는 유배자마다 갈린다.
에리나는 가슴팍이다.
병의 절반이 비워진다.
그 정도가 아니면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이다.
회복은 거의 한순간.
날개를 다시 펴고 주먹을 휘두른다.
상대는 병의 위치를 더 적당하게 두고 있다. 허리춤은 쓰기는 더 편하겠지만 파괴 불능의 아티팩트인 병의 방호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곳이다.
기천사의 허리춤에 찰랑이는 병의 수량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대미지 교환은 이미 끔찍할 정도로 손해였다.
아니, 그걸 넘어. 힘 위주의 공방일체 스킬들을 잔뜩 스택 하는 격투가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와앗! 비겁해! 그 날개 뭐예요! 나도 줘!"
"네가 할 소리냐!"
당한 것은 무슨 스킬이었지?
[공간 베기]? 느낌은 흡사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이런 위력이 나오지 않는다.
그쪽 계통 상위 스킬, 어쩌면 유니크 스킬, 아니, 거의 확실히 유니크 스킬.
기억 속을 뒤져보아도 무슨 스킬인지 모르겠다.
가장 위험한 것은 미지의 적이다.
일그림이라면 알까?
* * *
"이런, 이런."
블랑쉐는 어딘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임무에서 저격전을 하는 일은 생각 외로 자주 있었다.
최고의 암살이다. 그냥 멀리서 정확한 한 방.
하지만 기분만 비슷하지 미궁의 총격전은 바깥과 전혀 다르다.
소리를 가르고 날아오는 탄은 육안으로 포착하기 힘들다.
실제로도 그건 효율이 나쁜 방식이다.
사수는 위력에 직접 관여하는 스킬이 없는 클래스다. 그들은 대신 이동과 감각에 투자한다.
수없이 스택 된 그 스킬들은 오감을 비현실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그 감각에 무언가 걸려드는 순간 지체 없이 몸을 날린다.
굴린다 정도로는 통하지 않는다. 하이랭커 사수가 지닌 총기는 이미 미사일과도 같다.
이런 수준의 전투에서 회피라는 것은 적어도 100m 단위다.
손가락만 한 탄임에도 언덕에 코끼리가 달려갈 만한 구멍이 생긴다.
그리고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궁의 불합리한 파괴력 보정은 사수에게 스킬로써 작용하는 대신, 그들이 사용할 총기에 작용한다.
예를 들어 지금 상대가 쏴 갈기고 있는 자동소총.
그래. 자동소총이다.
이딴 위력이 나오는데도 말이지.
그렇기에 연사된다. 수초 만에 지형을 평탄화시킬 수 있는 화력이 그녀를 노린다.
블랑쉐가 이동한 방향으로 줄지어 사격이 일어난다. 몇 가지 공중 기동을 가능케 하는 스킬로 회피, 옆을 지나가는 탄이 갑옷에 손상을 주려고 한다.
그대로 아래로 내리꽂힌다. 이 또한 현실의 물리법칙은 무시하는 이동 방식이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가운데 대응 사격.
베티가 블랑쉐의 레일건을 보고 곧바로 아티팩트냐고 물었던 이유는 그 호환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종류에 맞게 다양한 총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은 사수의 큰 단점이다.
블랑쉐의 레일건은 필요한 구경으로 변할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마법적 속성을 가진다.
[설정 : 다중 원소 폭발]
다음 순간 저쪽의 언덕이 폭발했다. 여러 가지 색의 원소로 화려하게 얼리고 불태우고 지진다.
연발은 아니되 파괴력과 범위는 훨씬 크다.
하지만 맥은 죽지 않았다.
블랑쉐는 모드를 변경하고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이번에는 곡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흐릿하게 신영이 사라진다.
다음 사격이 잔상을 갈랐다.
* * *
맥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아니, 저거 뭐야? 말이 되나?"
상대의 몸놀림에 대한 놀라움은 이미 지나갔다.
일그림에게 전달받기로는 이미 조우한 셋도 스펙을 뺀 숙련도에서만큼은 놀라운 수준이라 했다.
그렇다면 납득 가능.
맥은 깊이 생각하는 남자가 아니다.
문제는 장비다.
총기를 바꾸는 시간이 아예 없다.
사격의 형태, 구경, 위력, 속도, 심지어 속성!
그 모든 게 시시각각 달라지는데도 그렇다.
들고 있던 자동소총은 계속 사격한다.
이쪽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한걸음에 300m 정도를 이동하는 이동기로 피하고, 빈손으로 수납함을 연다.
사수를 위해 존재하는 차원 수납 주머니, ‘병기창’은 마치 신기루 진열장처럼 흐릿한 홀로그램으로 맥의 뒤편에 펼쳐진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장엄해지는 수집품들이다.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오로지 주인인 맥의 눈에만.
수백 종의 수집품 중에서 아주 평범하게 생긴 스나이퍼 라이플을 향해 손을 뻗는다.
실체화되며 손에 들어온다.
탄창이 바닥난 자동소총은 집어넣는다.
1초로 세기도 힘든 시간 동안 무기가 교체되었다. 이걸 멀리 떨어진 상대는 알 수 없다.
사수 간의 PVP에서는 완급이 중요하다.
불합리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화기도 좋지만, 전사가 아닌 이상 제대로 헤드샷이 뜨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다.
포탄 세례 같은 탄막 사이로 조용하게 평범한 탄 하나가 발사되었다.
* * *
블랑쉐는 그걸 놓쳤다.
몸통 정중앙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잠깐 자세가 무너지고, 호흡이 끊어졌다.
전사를 상대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저지력이지만 사수 겸 암살자인 블랑쉐에게는 충분히 현실적인 타격을 준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필요에 의해 던지지 않으면 결코 깨지지 않는 포션병이 총탄을 튕겨냈다.
다음 사격이 스친다.
팔이 못 쓰게 되었다.
몸을 틀어 어차피 못 쓰는 팔로 급소를 방어한다.
위력은 그리 높지 않으나 탄속만 비정상적으로 빠른 종류다.
그야말로 PVP용. 같은 사수와 마법사를 죽이기 위한 탄.
최대한 멀어지며 은폐했다.
엄폐는 의미가 없다. 위치가 노출된 순간 방어할 수 없는 화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잽싸게 자신의 병기창에서 장애물을 꺼내 설치, 뒤편에서 상처를 치유.
저쪽에는 타격을 전혀 주지 못했다. 대미지 교환은 대손해.
"졌네. 총 쓰는 PVP는 저쪽이 더 잘하는걸?"
하지만 애초에 블랑쉐는 순수한 사수가 아니다.
좋은 기초 스탯을 살리기 위해서도 순수한 사수는 손해다.
블랑쉐는 듀얼 클래스다.
그녀의 몸이 [점멸]했다.
* * *
맥은 상대가 격추되었음을 알았다. 완전히 사망하진 않았다. 그랬으면 튕겨 나가지 않고 그대로 움직임만 멈췄을 테니.
그런 현상은 잘 알고 있다.
"가슴팍 정중앙이었나? 심장 쪽일 거라 찍어 봤는데 틀렸군."
똑같이 내구가 약하고 초신속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사수 미러전이다. 이때, 제일 중요한 심리전은 포션 병의 위치다.
화력 투사 사이에 은밀하게 날아드는 필살의 극초음속 탄.
그럼에도 같은 사수라면 투자한 감각 스킬 덕에 인지는 하겠지만 피할 수는 없다.
이제 적 사수의 복귀까지는 아주 짧은 여유가 생겼다.
이런 집단 PVP에서 사수 본연의 역할은 마법사 죽이기다.
다시 병기창이 잠깐 번쩍이고 삼각대가 달린 기관총을 세운다.
아마도 여유라고 해봐야 약 3초?
마법사가 죽기엔 충분한 시간.
레베카의 귀여운 제자 앞에는 전사가 하나 서 있지만, 투구에 달린 고양이 귀 자리를 보면 잎사귀 요정. 그렇다면 민첩 검사. 아마도 쌍검사.
"안녕, 아가씨들?"
* * *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드는 화력을 감당하기 위해 마력 방벽이 쳐져 있다.
그 방벽이 번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제니는 제 역할을 해냈다.
미아를 들고 달렸다.
최선을 다해 달린다.
총탄 몇십 발은 몸으로 때웠다. 갑옷과 투구에 맞고 튕겨 나간 도탄이 대지를 황폐화한다.
저게 내 몸에 맞고 튕겨 나간 거라고?
갑작스러운 스펙업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단지 점프했을 뿐인데 지형이 순식간에 변해가는 것도 적응이 안 된다.
지나치게 빠르고 튼튼해졌다.
곧 미아가 공간이동 마법을 구현한다.
번쩍이며 둘은 함께 사라졌다.
미리 구축해 둔 안전지대로 임시 대피다.
이러면 전사들이 레베카에게 노출된다.
하지만 그러기로 했다.
더 안정적이니까.
블랑쉐가 사격전에서는 열세인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된 일이었다.
제니에게 안긴 채 미아는 뱀파이어에겐 필요도 없는 심호흡을 하고, 빠르게 다른 마법들을 다시 메모라이즈했다.
"다친 곳 없죠? 돌아갈까요?"
"응, 부탁해. 제니."
제니는 미아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폭음이 들려오는 전장을 향해. 고양이처럼 잔뜩 움츠린 후, 도약했다.
[슈퍼 점프]
액티브 스킬이 발동하며 그대로 날아간다. 레베카가 감지해낼 마법적 이동이 아니라 물리적 이동이었다.
제니의 역할은 결국 미아 받침대다.
하지만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 중 하나인 저쪽과 칼을 맞대느니 이 역할이 만족스러웠다.
* * *
순간적으로 제자가 전장을 이탈했다.
죽지 않았음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하지만 마법사는 지능 스탯이 높고, 그렇다면 원할 때 한없이 이성적일 수 있다.
연민을 피어오름과 동시에 찍어 누르며 정해진 수순을 실행한다.
지금 이 전장에 그녀를 방해할 마법사는 없다.
[하이퍼 그래비티]
혈투 중이던 천사들의 위로 갑작스럽게 문자 그대로 ‘과격한’ 중력이 작용한다.
두 천사가 그대로 바닥으로 처박혔다.
대지조차도 제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지만 천사들의 비행을 막으려면 그조차도 부족하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마력의 벽을 내리꽂는다. 일종의 염동력이다.
두 천사는 바닥에서 일어나지만 비행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치천사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
천사의 마법저항력을 생각하면 환경조성이 더 효율적이다.
마침 아래에 있던 일그림이 그 상황을 받아먹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바이킹에게 밀려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적응 못 한 바이킹의 틈으로 빠져나간다.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는 기천사를 향해 일그림과 에리나가 함께 들어갔다.
바이킹이 서둘러 따라가려고 했으나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맥의 사격이 움직임을 봉쇄한다.
얼마나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이킹은 동료를 구하러 이동하는 대신 파괴되는 대지의 물리력에 의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다시 처박혔다.
높게 뜨지는 않았다. 천사조차 비행할 수 없는 상태니까.
하지만 그래서 움직이기 힘들겠지.
레베카는 몇 가지 마법을 더 메모라이즈하는 동시에 공격에 활용하려고 했다.
무언가 번쩍였다. 꽤나 멀지만, 충분히 가까운 곳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상대편 사수가 보였다.
아니, 암살자다. 한 손에는 총, 다른 손에는 단검.
듀얼 클래스?
공간이동, 공간이동을 해야.
상대의 손에 들린 총기가 마력방벽을 박살 낸다.
레베카는 공간의 틈을 열고 자신을 밀어 넣었다.
비현실적인 궤도로 기동하며 암살자가 쫓는다.
간발의 차이로 공간이동이 따라잡혔다.
레베카의 안전지대는 맥의 곁이다.
서로를 엄호하는 파트너로서 말이다.
레베카의 공간이동을 감지한 맥이 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사격이 공간이동을 추격한 상대에게 몇 발 적중했을 때, 레베카는 목이 꿰뚫렸다.
그리고 팔이 날아갔다.
마법사용이 완전히 봉쇄된 상태에서 죽지만 않은 채 기절한다.
"이런 제기랄. 암살자? 숨어 있었나?"
아니다. 한순간 보인 모습은 상대 사수와 같다.
맞아서 절명하면 좋겠지만 빗맞았다.
상대도 타격은 크겠으나 [은신], 아니, 그보다는 상위의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오며 종적을 감추었다.
핏자국은 많이 남아있다.
"암살자 듀얼 클래스?"
총기를 바꾼다. 쌍권총.
결국 사수는 총알을 상대의 머리통에 적중시켜야 승리한다.
두 손으로 쏘는 총은 총구 방향으로 사선을 알기가 너무 쉽다. 사수의 연약한 보정으로 시행하는 개머리판 타격이나 총검술은 별 의미도 없다.
결국 작은 권총, 그것도 헷갈리도록 두 개.
가능하면 사선을 예측 못 할 초근거리.
바깥이라면 실용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건카타는 그렇게 미궁에서 실전성을 가지게 된다.
초근접전이 예상되므로 즉시 수인화한다.
늑대인간인 맥의 체격이 약간 커진다.
훨씬 더 민첩하고 예리해졌다.
유지시간은 길지 않지만 사수에게 필요한 스탯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종족 자체의 도핑이다.
혹시 죽었나? 아니라면 적어도 빈사일 것 같은데.
급하게 꺼내서 쏜 권총이지만 약한 총은 아니다.
레베카까지 날려 버릴 걱정이 아니었다면 일격에 끝장낼 만한 화력을 갈겼을 텐데.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긴장을 끌어올린다.
맥은 이런 상황을 싫어하진 않는다.
좋지 않은가.
이 짜릿함, 이 아드레날린.
매 초를 수천으로 쪼갠 듯한 인지시간.
"그으윽, 탐색할게. 맥."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지하는 시간의 밀도가 살짝 줄어들고,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
레베카가 포션을 제때 마셨나? 머금고 있었나?
좋아. 그럼 레베카를 노리겠지. 마법사를 지켜야…….
바로 뒤편에 아직 쓰러져 있는 레베카를 보는 순간 무언가 잘못됨을 알았다.
하지만 기척도, 분위기도, 말투도 똑같았는데?
"체크…… 메이트."
또 하나의 레베카가 맥을 찔렀다. 그리고 품속의 포션 병을 꺼내서 던져 버렸다.
스르륵 하며 맥을 찌른 레베카의 모습이 변한다.
완벽한 암습이었다. 끔찍할 정도의 암습 보정이 맥의 모든 방어적 패시브와 장비를 찢어발겼다.
"이블……. 개사기……."
맥을 자신의 유언이 엄청 멋없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엎어졌다.
그러나 블랑쉐의 상태도 몹시 나빴다.
한쪽 팔은 없다. 어깨부터 사라져 있다.
피가 샌다.
병을 마시려고 했다.
마시다가 들킬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무리가 과했다.
비틀거리며 의식이 멀어져 간다.
훈련은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건 본능이며, 적이 쓰러졌음을 확인한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다.
블랑쉐는 자신이 무뎌진 거 같다고 생각했다.
포션 병을 깨뜨리면 맥도 눈을 뜬다. 마셔야 하는데. 적어도 발라야 하는데.
딱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의식이 끊어진다.
* * *
공간의 틈에 숨은 채로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누구도 죽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게 대기 중이었다.
사망 직전의 레베카에게 포션을 뿌리는 동시에 [사일런스]를 걸고.
죽을 위험은 크게 없어 보이는 맥은 방치한다. 아니, 오히려 눈을 뜨지 못하게 더 확실하게 조치했다.
그보다는 블랑쉐가 훨씬 위험하다.
특별히 쇼맨십으로 맥에게 변신이 해제되는 장면을 보여준 게 아니다.
생명력이 다해가서 해제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체크 뭐?
이건 대사 욕심인가?
"그래도 잘했어. 블랑쉐. 2킬이라니 역시 살인 전문가잖아?"
미리 곡사로 점멸단검을 쏘아두었다. 저 레일건은 대체로 무엇이건 쏠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줬겠지만, 레베카가 시간이 지나 떨어지고 있는 [점멸 단검]의 주변에 있어 주었다.
이건 잘한 거다. 운도 자기가 만드는 거니까.
아주 잘했으니 억지로 깨어나게 두지는 말자.
직후에 포션에 축축하게 젖은 레베카가 눈을 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묶여 있고, 마법도 봉쇄당했다.
풀려고 하는 것 같지만 내가 건 [사일런스]를 그렇게 쉽게는 못 풀지.
술식 자체가 형성되지 않을 거다.
혹시 모르니 빠르게 몸수색을 해서 이상한 아이템이 없는지 확인하고 내가 챙겼다.
레베카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려고 했다.
"쉿, 레베카 교수님. 얌전히 기다리세요. 아니, 울지 말고."
아이고, 너무 서럽게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