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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47화 (24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47화

왕국 - Lv.2701 일그림 파티(6)

영감님이 여독을 풀게 내버려 두고 전투에 대한 피드백을 한다.

대단한 것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각자 제 역할을 잘해주었다.

특별히 아쉽다고 할 점도 없다. 에길이 생각 외로 전투에 심취했다는 점이나, 일부 방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된다.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방심이 없다면 어려울 일도 쉬워진다.

그러니 나는 파티원들을 기계적으로 가다듬는다.

일단 희우에게 무릎 꿇고 손 들라고 했다.

"히잉……."

"느슨해져 있었어. 죽어도 부활하니까 심리적 안정감이 대단하지? 응?"

"잘못 했어요……."

내가 기초 스탯이 높은 이들 위주로 파티를 구성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유배자들은 대체로 필살기를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공격형 액티브 스킬들은 전부 굉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전투를 편하게 해준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버티다가 제대로 꽂아 넣는다면 상대적 강자에게도 승리할 수 있다.

고위종족 쯤 된 게 아닌 마당에야 더욱 그렇다.

적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유배자보다 전투적으로 노련하며, 육체적으로도 강인하다.

이 세상을 게임이라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플레이어는 언제나 단순 스펙상으로는 적보다 열세여야 한다.

그걸 더 노련한 플레이 방식으로 극복해내는 것.

그게 언제나 게이머의 임무니까.

현실이 되어 훨씬 복잡해져도 그 틀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순 스펙, 그러니 평타 싸움에서 불리한 유배자들은 대신 [스킬]이라는 이름의 필살기로 보스들을 이겨낸다.

하지만 내 파티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따지자면 평타 위주의 파티다.

그런 필살기를 다량 탑재하는 대신 최대한 스펙에 투자한다.

기초 스탯이 높은 이들이니 그런 마인드맵 구성의 효율도 남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포인트를 스펙에만 투자한 결과, 필살기라고 할 만한 단 하나의 액티브들도 정말로 필살의 위력이 나온다.

"[은빛 섬광]도 그 타이밍에 쓰는 건 아니었지? 수는 숨기는 게 최선이야.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데 쓴다면 그다음이 힘들어진다고."

"네에……."

물론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실수를 대비하여 스펙에 투자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최전선에서 직접 무기를 맞대야 하는 이들에게는 보험도 주렁주렁 단다.

필살기를 여럿 탑재하지 않으니 대신 그런 곳에 투자할 포인트가 많다.

희우에게 달려 있는 보험만 두 개다.

쿨다운이 만 하루인 즉사 방지기 [기사회생].

단 한 번은 HP가 1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식으로 작동하는 패시브 스킬이다.

게임이 아닌 현실의 미궁에서는 보통 쓸모없다고 여겨진다. HP가 1이라는 상황은 결국 잠시 후에 죽는 상황이니까.

희우의 종족이 천사라는 불합리한 스펙의 종족이라 그 타이밍에 포션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입에 머금은 포션을 삼킬 힘도 없을 수 있다.

거기에 북부의 왕이 가지고 있던 [부활].

이건 횟수 제한이다. 쿨다운은 없다. 소모되면 그걸로 끝이다.

에리나에게 어쩌면 그게 빠질 뻔했다.

미아가 잘 대처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빠졌다. 그럼 그걸 뽑는 데 든 200포인트 가량이 증발하는 것이다.

"항상 우리 마법사에게 감사하도록."

"고맙습니다……."

"에이, 제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칭찬받은 미아가 쑥스러워 한다. 최근에는 겸손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사고를 치지만, 거기서 배우기도 하는 존재다.

"그리고 에길……."

전투가 끝나자 그는 다시 중후한 장년의 전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책망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

"옆을 봐! 옆을 좀 보라고! 일그림을 상대하느라 다른 걸 하나도 안 봤잖아! 이 탑솔러 같은 양반아!"

"으음……?"

에길의 역할은 전차와도 같다.

맨 앞에서 적을 몰아내고 아군에게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물론 에길 본인이 탱커라는 뜻은 아니다.

에길은 아주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전사지만 무기를 휘두르는 이상의 공격 수단이 없다.

도끼를 던지는 건 마스터리를 생각할 때, 단기적이라면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은 판단이 아니다.

그러니 그는 적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압도적인 공격력과 치고받는 능력을 통하여 적을 몰아가야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시선을 모아 아군이 공격할 틈을 만들거나, 오히려 무시당할 경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공격력으로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일그림을 묶어두는 것은 아주 좋았어요. 하지만 너무 정직한 1대1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이상을 할 수 있었어요. 욤스비킹 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군. 납득했다. 홀로 지낸 지 너무 오래되었던 모양이군."

모르는 게 아니다. 잊고 있었을 뿐.

욤스비킹은 북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바이킹 용병집단. 하물며 내가 아는 지구보다 훨씬 더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괴물과 초인이 가득하던 세상이다.

그곳에서 전설이었던 남자가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모를 리는 없지.

그리고 미아.

"잘했다. 레베카에게 좀 밀리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했어."

"아니에요. 더 노력할게요."

레베카는 스킬에만 의존하는 얼치기 마법사가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경험이 풍부하며 강력한 힘을 가진 워메이지다.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팽팽했다면 충분하다. 미아는 정말로 잘해주었다.

"그래도 블랑쉐가 너무 활약하는 바람에 서로의 마법을 차단하는 마법전만 있었던 게 좀 아쉽네."

서로 차단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마법쇼를 펼치는 상황에서는 경험이 더 중요해진다.

대련이 아니라 정말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살의 있는 마법전은 손짓 한 번의 템포에도 승자가 바뀌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블랑쉐의 입꼬리가 꿈틀댄다. 웃음을 아주 열심히 참고 있다.

무표정에 가까운 건 여전한데도 의기양양함이 느껴진다.

아주 그냥 좋아 죽지.

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

"좋아. 인정하지. 네가 최고야. 네가 다 해먹었어. 못한 부분이 없다."

"훗."

안간힘을 다해 한번 웃음소리를 내더니 구석으로 가서 앉는다. 얼굴은 이쪽에서 보이지 않게 가린다.

엄청 좋아하는 것 같으니 잠깐 저대로 내버려 두자.

그리고 제니는 어딘가 불안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난 제니가 아주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의 주인공은 제니였다.

"마지막에 한 호흡을 벌어주는 그 판단 진짜로 좋았어. 역시 판단력은 좋아.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정말요?"

"정말로. 어지간한 랭커입네 하는 놈들보다 훨씬 낫다."

어쩐지 조금 웃다가. 웃는 그대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아가 쪼르르 달려가서 눈물을 닦아준다.

제니가 풀썩 미아의 품에 안겨 흐느낀다.

뭔가 북받치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버스만 타서 레벨만 높은 뭐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판단력은 정말로 좋다.

생각 외의 인재란 말이지.

그래도 좀 더 자존감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벌벌 떨며 길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항상 상대와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할 뿐이지.

더 자세한 디테일을 좀 더 따진다.

에길이나 희우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블랑쉐는 무표정한데도 의기양양한 기묘한 상태 그대로 듣고만 있다.

슬슬 끝날 무렵, 푹 자고 일어난 영감님이 방에서 나왔다.

"흐음? 열심이군그래. 그 클리어인지 뭔지는 잘 되어가나?"

"그럼요. 별문제 없이 순항 중입니다."

지난 그 어느 회차보다도 순항 중이다.

따지자면 바로 전 회차가 더 순항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결국 왕국 내분으로 끝장나 버렸으니.

* * *

솔직하게 말해보자.

불의 마탑의 그랜드 마스터이자, 몽환의 숲까지 원정 가서 학회를 개최할 정도로 마법에 대해 열정이 넘치는 학장.

그는 그다지 자신의 암살에 대한 뒤를 캐고 싶지 않았다.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까워서다.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남자, 그 아주 대단한 마법사인 유배자도 거기까지 알지는 못했으리라.

아니라면 알고 있음에도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학장에게 의지하기보다는 결국 스스로 조사에 나설 것 같은 인상의 남자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두 제 스스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

고명한 마법사들이 보통 그렇다.

그래. 고명한 마법사들은 보통 그런 성격이다.

그래서 학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낯선 이가 앉아 있었을 때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속으로다. [아케인]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까.

수수하고 낡은 잿빛의 로브.

하잘것없어 보이는 허름한 고목나무 스태프.

헤지고 찢어져 흐물흐물한 고깔모자까지.

그 모든 것을 호호백발의 노인이 갖추고 있으니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동화 속의 마법사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라고 할 것까지 있습니까? 얼마 전에 제게 자객을 보내셨던데."

"그래서 와보았지. 난 자네가 사고사인 게 형편에 좋았거든."

학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진작 이렇게 직접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건 내가 한 게 아냐. 보고는 얼마 전에 받았거든. 내 밑에 놈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으니까 신경 안 썼지. 거기에 자꾸 내가 직접 죽이려고 하면 누가 내 밑에 있겠나?"

"그래서 직접 오셨습니까?"

"숲에서 무슨 꼴이 일어났을지 뻔히 보이는데 살아 돌아왔지. 몽환의 숲 정복자까지 달고 말이야. 이건 정말 궁금해지지 않겠나."

노인은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나도 그럴 자신이 없어. 내가 가면 그게 나올 거거든."

"마법의 신님 말씀이십니까?"

"그자가 신좌에 앉아버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말은 바로 하셔야죠. 신좌로 쫓아낸 것 아닙니까."

"그렇게도 말할 수 있지."

학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마법의 신께서 지금 제 눈으로 당신을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못 보고 있어. 성물을 쓰고 있거든."

"시간의 성물입니까?"

"귀한 물건이지. 내 유배자로서의 삶 최대의 업적이니까."

비로소 학장은 고목나무 지팡이 끝에 박혀 있는 금빛의 보석을 보았다.

그렇군, 저게 성물인가.

이거 끝장이군그래.

저걸 보여주는 거 보니 아예 죽이러 온 거다.

어떻게 클리어했나 싶어서 정말 완전 무장을 하고 왔군.

학장은 품속에서 완드를 뽑아 들었다.

"그런데 대체 저는 왜 제거되는 겁니까?"

"몽환의 숲 클리어 이전에?"

"예. 가는 길에 좀 알려는 주시죠."

노인은 학장의 연구에 대해 읊었다. 나열되어 가는 진척 상황에 틀림은 없다.

완전히 다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죽어야 할 죄야. 얌전히 실용 마법이나 공학 쪽을 파면 얼마나 좋아? 왜 애꿎은 미궁을 건드리고 그래."

"건드려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군요."

"그러다가 버그라도 일어나면 미궁이 수정하려고 들거든. 그 과정은 아주 끔찍하지. 난 그래서 항상 그런 연구를 하는 녀석들을 주시하고 있어."

이건 레베카 교수도 위험하겠군.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학장보다 더 핵심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으리라.

"친절도 하셔라."

"나도 마법사니까. 가는 길에 궁금증은 없어야지. 잘 가게."

그냥은 안 되지. 학장은 재빨리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염이 치솟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어붙었다. 시간의 권능을 쓰는 것처럼.

그러나 학장이 그 시간을 인지하고 그 사이로 끼어들었을 때는 이미 조금 늦어 있었다.

"대신격들은 참으로 편리해. 어느 한 회차의 어느 한 왕국에서 자기들 힘을 좀 끌어다 쓴다고 뭐라 그러질 않잖나."

학장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지팡이 끝을 보았다. 그곳으로 생명이 빨려 나가고 있었다.

다른 말로는 영혼이다. 강령술로 되살아나는 일마저도 막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마법을 짜내었다.

"폭발이여……."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폭발이 번져 나간다. 그러다가 멈춰 섰다. 금빛 섬광이 감싼다.

시간이 되감기듯 폭발이 다시 모여들고 완성되지 않은 술식이 된다.

"행운의 성물만 아깝게 되었군. 어차피 쓸데도 없는 거지만. 한데, 그럼 그 마법의 신이 들으러 온다는 강연 쪽인가? 한번 보러 가야겠군."

공간의 균열이 아무런 전조 없이 열린다. 마력의 파문조차 번져 나가지 않는 은밀함이었다.

노인이 사라지자 금빛의 권능도 흩어져 사라진다.

술식이 다시 형성된다. 완성되고, 폭발했다.

집무실이 통째로 날아갔다.

학장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어?"

"왜 그러나?"

영감님이 내가 보는 방향을 보았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죽었습니다. 강연 때 확실히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학장에게 조용히 묵념했다.

접촉이 있을 경우 그 사실만 알고자 은밀한 술식으로 상태를 알 수 있게 해두었다.

아무래도 [아케인]은 아직 나에게 관심이 크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이쪽에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목표였던 학장부터 처리하는구나.

학장은 충분히 조심스럽게 지금 상황을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케인]이 뭔가를 알게 되었더라도 그냥 두고만 볼 만한 상황 말이다.

불행하게도 [아케인]이 우리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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