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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55화 (25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55화

왕국 – Lv.3956 [아케인](5)

지팡이를 잃었다 하더라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노인과 소년은 강하다.

그들이 왕국을 지배하는 것은 다수의 하이랭커 상대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점된 유니크 스킬, 자원, 장비, 그리고 긴 세월 간 쌓아온 경험.

그래서 노인은 조금 황당해하긴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넓은 공간인 하늘은 마법사에게 더 편안한 공간이다.

사수의 사격이 빗발처럼 날아드는 가운데 노인은 마력방벽을 유지하고 뒤로 물러났다.

천사가 날아든다. [블루 제트]로 구름이 모조리 날아갔다.

그 보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쉬우나 나쁠 것은 없다.

마력의 잔량은 아직 넉넉했다.

수십의 번개 구체들을 만들어 띄운다.

주변을 기뢰처럼 감싸 접근을 용하지 못하게 한다.

날아드는 천사를 향해서는 연속되고 무질서한 [라이트닝]의 다발을 쏟아내었다.

회피하는 모습을 보며 노인은 미소지었다.

"그래. 성치는 못하구나. 안 그랬다면 내가 자존심이 상할 뻔했어."

어찌 살아남았을까? 요새로서 건축된 마탑 내부는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순간적으로 부수고 나가기에는 너무 튼튼할뿐더러 정지해 있는 시간은 그 자체로 파괴를 어렵게 한다.

하물며 [블루 제트]는 왕국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는 마법이다. 어딘가의 홀수 층에서 그걸 본 자들은 모두 죽었다.

비장의 수는 알리지 않는 법이다.

"어렵군. 어려워."

공간이동을 정신없이 반복하면서도 번개를 맺어 뿌리는 것은 익숙하다.

천사가 피하는 모습을 보고 마력 감지를 터뜨린다.

아래쪽의 잔해를 딛고 뛰어오르는 다른 전사가 있었다.

"일반적인 [시간 정지]에는 잘 반응하는군. 어디서 나온 녀석들이지?"

번개 몇 번을 받아내는 전사를 보며 노인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리더인 소년이 훨씬 편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슬슬 소년이 처리하고 빠져나올 때가 되었다.

일반적인 인간이 그 속에서 저항할 방법은 없다.

차원을 넘나들며 솟구치는 마력의 검은 암살자의 은신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은밀한 공격이니까.

자신의 연구 분야에 조금 정통한 정도로는 닿을 수 없다.

하물며 소드 마스터 듀얼의 마검사라니. 듀얼 클래스는 어지간한 레벨로는 효율을 낼 수 없을 텐데.

그렇게 고레벨인 유배자를 자신들이 남겨두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짧고 연속된 공방의 잠깐이 그에게 한 가지 결론을 제시한다.

"적 마법사는 죽었거나, 이탈했군."

아무런 간섭이 들어오지 않는다. 추가적인 지원도 없다.

결정적인 순간을 대비해 힘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지.

노인은 오만하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마법사다.

마력 탐지가 거세게 뻗어나간다.

되돌아온 마력이 그에게 수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천사는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이전과 달리 쉽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적어도 포션은 이미 끝났다.

애당초 저 파티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이 권능 속에서도 움직였을 것이다.

이제야 합류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잔챙이일 수밖에.

확신이 서는 순간 노인은 공간이동과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잔해들은 비행 능력이 없는 자들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엄폐물이 된다.

마법사는 비겁하게 싸우기에 마법사다. 당당할 것이었다면 전사가 되었겠지.

* * *

"흠."

블랑쉐는 노인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자신을 노릴 것이라 예견했다.

아군에 마법사가 없음을 간파하는 순간 감춘 것이 아닐까?

탐색을 위해 대놓고 공격은 견디며 마력 소모를 감수했던 모양.

블랑쉐도 즉시 모습을 감추었다.

[은신]은 비록 금방 벗겨질 하급 스킬이지만 눈에 잘 보이는 것과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의미는 있다.

잔해 사이로 날갯짓하며 움직인다. 천사만큼 빠른 비행은 할 수 없다. 애초에 그건 물리적인 비행도 아니지 않나.

원거리 사격을 위한 긴 총신을 가진 형태였던 총기를 원상태로 되돌린다.

범용성이 높은 이 무기의 원래 형태는 장거리 사격용이 아니다.

도리어 권총에 가까운 무언가다.

무리하게 역장으로 총신을 전개하지 않으면 감지될 위험도 줄어들고 총기의 안정성도 훨씬 올라가는 법.

예민하게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노인은 블랑쉐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이 나타난 순간의 에길은 방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묠니르]를 잠깐 빌린 전사가 되었다. 위대한 토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전신에 힘을 가득 주고 있던 참이었다.

노인은 나타나자마자 어떤 마법을 구사했다. 공간의 균열이 열린다.

하지만 어딘가 불길한 보랏빛인 균열의 건너편은 왕국 내의 다른 공간 따위가 아니다.

[추방]

아득한 고위 마법사의 추방에 에길의 레벨로 저항할 수단은 적다.

물리적 방어력이라면 이 파티에서 최고겠으나, 전사란 본디 마법에 농락당하는 존재.

다른 점이라면, 그에게 [묠니르]가 있다는 사실이다.

성스러운 번개가 사방을 뒤덮는다. 노인이 만들어내는 현상으로서의 번개가 아닌 권능으로서의 번개다.

에길을 삼키려던 [추방]이 밀려 나가 사라진다.

그리고 망치를 냅다 집어던졌다.

그와 동시에 노인은 약간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마법을 다루는 손짓은 멈추지 않는다. 뒤편에 떠 있던 메모라이즈 구슬 몇 개가 빛이 된다. 그사이에 다시 10개가 가득 채워져 있다.

[뇌신의 구속구]

번개의 고리가 에길의 몸을 뒤덮는다.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동을 구속하는 마법이다.

근육에 힘을 잔뜩 집어넣는다. 사라진 메모라이즈 구슬의 개수가 넷이었다.

지금 풀고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사다.

마법의 간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놓쳐서는 안 될 디버프가 들어오는 순간을 캐치하기 위해 집중한다.

근육질 거한의 이마에 핏줄이 바짝 섰다.

[에테리얼 바디]

에길의 저항력 관련 패시브가 약간의 저항을 했다. 그러나 천사에게도 유효타를 넣는 마법사의 디버프다.

에길의 몸이 금세 반투명해졌다.

물리 방어력이 굉장히 올라가는 대신 마법 저항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상태다.

[무장 해제]

에길은 이것을 기다렸다.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마법은 마스터리의 비중이 극도로 높은 전사에게 아주 치명적이다.

무기가 손에서 떨어진다면, 단순히 약해질 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하락한다.

모든 전사는 그래서 순간적으로 디버프를 무효화하는 정화계통 액티브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구속할 수 없는 분노]

세 가지 디버프가 모두 사라지며 다음 타격의 공격력 보정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에길은 이미 공격을 했다.

투척한 묠니르가 동시에 노인의 마력방벽에 가서 닿았다.

번개가 터져 나가고 방벽도 터져 나갔다. 노인은 거의 사출되다시피 했다.

에길은 고함쳤다.

"이 간악한 마법사 녀석!"

마법사 동료를 가지고, 마법사에 편견을 가지지 않는 전사일지라도.

마법사를 상대하는 순간만큼은 증오를 품게 된다.

전사에게 선공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매치업이기에.

[광화]

분노로 강화된 신체능력으로 뛰어오른다.

튕겨 나가는 바로 뒤편에 몸을 숨긴 하피의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에길은 사납게 웃었다.

* * *

마법사의 사고는 그 어떤 클래스보다 빠르다. 술식을 구현하는 속도만큼이나 생각의 속도도 빠르다.

노인은 공간의 균열을 열며 생각했다.

습격자들의 준비가 너무 단단하군.

하나하나의 실력도 녹록지 않다. 그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도 스펙의 격차가 현격한 덕분이다.

방금 죽을 뻔했다. 전사이기에 조금 깔본 것도 있으나 상대가 지나치게 훌륭하게 대처했으며 그가 안이했다.

로브부터 하여 모조리 아티팩트로 두르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심하게 위험했으리라.

망치 저건 뭐지? 아티팩트인 것 같군.

단순히 마법이 걸린 망치 수준은 아니다.

번개. 성스러운 번개.

[묠니르]군.

이제야 찾아드는 의문.

이런 수준의 파티는 이미 하이랭커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장비 수준을 보았을 때, 랭킹에 등재되길 피하며 숨어 다닌 수준이 아니다.

이 습격자들은 정말로 어디서 튀어나왔는가?

적어도 수십 년은 이 습격을 준비했을 것이 분명하다.

일그림 파티가 생각난다.

불온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짓이기에 내버려 두었다.

뒷구멍으로 이런 짓을 준비하고 있었나?

레벨링은 하고자하면 몰래할 수 있다.

장비 파밍을 몰래할 수 없을 뿐.

혁명을 꿈꾸는 어리석은 상위랭커들이 몰아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노인은 공간의 균열을 마저 열었다.

그와 함께 단검을 든 사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 녀석도 듀얼인가?

하피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폴리모프]는 아닐 터, 이블인가?

내지르는 단검을 보며 입꼬리를 비튼다.

지금 그는 단순히 공간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찔러라. 그 순간이 네 마지막일 테니.

그 순간, 도끼가 날아왔다. 노인을 향해서가 아니다. 날을 세운 상태도 아니다.

옆면을 통해 때려서 밀어내듯이 날아와 하피 암살자를 쳐낸다.

상상도 못한 공격에 하피 암살자의 눈이 멍해진다.

전사 놈이 똑똑하군.

그렇게 노인은 심연으로 사라졌다.

품속에서 심연의 성물이 빛났다.

* * *

"무슌지시냐!"

머리가 날아갈 뻔 했으나 대신 이가 날아간 블랑쉐가 화를 냈다.

에길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친구. 그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스스로를 [추방]하고 있었다."

블랑쉐의 화가 순식간에 식었다.

그 마법사를 찌르는 데 성공했다고 죽었을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한 상태로 함께 심연으로 끌려간다면?

"조타. 너느 내 목수믈 구해따."

"음, 일단 상처부터……."

서브 리더가 다가온다.

가장 빠른 자유 비행이 가능한 만큼 여전히 주변을 경계 중이다.

"없는데요? 진짜 없다. 도망간 건가?"

잠시 후에 멈춘 시간 속의 잔해들을 펄쩍펄쩍 뛰어 제니가 건너온다. 품에는 미아가 안겨있다.

파티의 유일한 전문 마법사가 그것을 긍정했다.

"도망쳤어요……. 감지되지 않아요. 제 눈은 못 속이니까 확실해요."

"그럼 오빠를 기다려야겠네."

희우가 한숨을 내쉰다. 놓치는 건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기습의 충격은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특히 다른 클래스와 조합된 고위마법사는 그 자체로 재앙이다.

단독으로 상대하고 다대일이었는데도 이 꼴이니.

"미안해요. 마지막에 적극적으로 지원 못 해서."

"아니, 포션이 다 떨어졌다면 옳은 판단이지. 즉사할 위험이 언제나 존재하는 적이었다."

"하하,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포션은 결국 여벌 목숨이다. 빠진 쪽이 소극적이게 되는 것이 올바른 방식.

"저쪽 포션 얼마나 뺐을까요?"

"한 모금?"

"우리 심각하네요."

"으음."

약간의 침통한 분위기.

그때 대마탑의 중심에 공간이 일렁였다.

스며 나오듯이 파티 리더가 빠져나온다. 시체 하나가 멱살 잡히듯이 붙잡혀 끌려 나왔다.

희우가 반색했다.

* * *

한 가지 찝찝한 점.

이거 죽여 놓고 보니 가짜인 것 같다.

스킬의 구사가 조금 딜레이가 있는 느낌도 있었고, 굉장히 화내기는 했지만 막상 외통수를 깨닫자 순순히 포기하는 느낌도 그렇고.

"이겼어요?"

"죽이긴 했는데. 놓친 거 같아서 빨리 찾으려고 나왔다."

"네?"

"이거 진짜 육체가 아니야."

"헉……."

"[마리오네트] 같은데. 정교한 인형이다. 조사할 시간은 없지만 심증으론 확실해."

하지만, 당연히 이 대마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마법사가 하드스록에 제 본체를 맡겨두었을 리는 없고, 믿을 수 없는 남의 요새인 시티즌에 두었을 리도 없지.

"너희들은 잡았냐?"

"놓쳤어요."

그래? 의외인데.

"정말로?"

"심연으로 스스로 탈출했어요. 언젠가는 돌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야 할까요?"

희우가 힘없이 대답한다. ‘언젠가’라니 이 녀석 하나 잊고 있군.

"심연의 성물이 있었을 텐데."

"어?"

행운의 신은 독립적으로 확률을 관장하지만, 심연과 시간의 신은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심연은 공간의 신이다.

미궁의 심연은 수명을 다한 무수한 스테이지들이 무너져 내려오는 곳이니 적절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심연은 시간이 이상하게 흐르는 곳이고.

시간과 공간은 사실 다른 게 아니라 하나던가 그랬지. 그래서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지도 모르겠다.

"어, 그러니까. 성물이면 심연의 시간 꼬임에 영향을 안 받고 원하는 때에 나올 수 있고……."

에길이 먼저 답에 도달했다.

"혹시, 심연에서 고위 마법을 캐스팅하고 나오는 건가?"

"이제 슬슬 나올 거 같은데. 지금 봐, 다들 딱 좋게 방심하고 있잖아. 저쪽도 알 거란 말이야. 이거 심리전이야."

지금까진 정말 잘 통했을 거다. 심연의 권능을 제대로 체험하거나 능숙하게 쓰는 상대를 만날 일은 아주 적다.

같은 하이랭커여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좀 얕보였네. 상대가 안다면 반드시 기다릴 텐데. 어디서 사라졌어?"

심연에서 돌아올 때의 규칙 하나.

정확히 그 자리 그 장소로 돌아간다.

이것만은 정말로 심연 신의 신도가 되어 사용하는 상위의 권능이 아니라면 어길 수 없다.

성물은 권능의 일부를 제한된 횟수만큼 사용하게 해줄 뿐이다.

[아카샤의 눈]처럼 특정 고위 권능만이 사용 가능하게 제한된 경우도 있지만 그건 성물 중에서도 아티팩트다.

일단 이 사실을 아는 유배자는 극도로 적다.

대신격의 신앙 자체가 극도로 희귀한 마당에 어쩌겠는가.

"이것도 모르면 죽어야지에 해당하는 테크닉이지. 다음엔 안 당하게 조심해."

노인은 약간의 시간 더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났다.

희우와 블랑쉐가 찔렀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잘 통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노인은 온몸에 마법적 떡장갑을 두르고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 번개의 술식이 튀고 있다.

[블루 제트]에 대응되는 [레드 스프라이트]다. 방심하고 있다가 맞았으면 전멸했겠지.

물질 분해 블레이드가 노인의 목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혹여 대기하더라도 한 타이밍만 벌었다면 그의 승리였을 것이다.

우리 파티원들이 저쪽을 모르는 만큼 저쪽도 우리를 몰랐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지.

"그럼 이 인형의 본체가 깨어나기 전에 찾으러 가볼까?"

"이미 도망친 것 아닐까요?"

"아냐. 이거 그렇게 좋은 마법 아니거든. 안정성만 좋아. 그리고 저 시체가 걸친 거 죄다 아티팩트니까 다 챙겨."

대마탑의 구조를 안다면 어디에 뭐가 있을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

나도 이런 걸 만들어봐서 아는 거다.

이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숨기려면, 지하일 수밖에 없다.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술자인 노인이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시간을 멈추었다.

탈진한 미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간 속으로 안정적으로 끼어든다.

"내려가자."

아직 깨어나지 못한 본체는 계속해서 시간을 멈춘다면 그 틈새로 끼어들지 못한다.

제대로 무너지지도 못하고 잿빛으로 굳어 있는 대마탑의 1층까지 돌아갔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끼어들지 못했다.

몇몇 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급 마법사들이 뒤늦게 시간의 틈새로 끼어들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지하로 가는 길은 찾기가 귀찮다. 마력을 불어넣고 희우와 에길이 파냈다.

"지금 무슨 짓이요!"

"아, 마법의 신께서 허가하셨습니다."

"어엇? 당신은?"

대충 그런 대화가 오간 후에 인형과 연결된 실을 찾아내었다.

더 파고 들어가자 완전히 밀폐된 방공호 같은 곳이 나타났다.

예쁘장한 소년의 모습을 한 인형과는 다르게 대충 막 생겨먹은 노악마가 하나 있었다.

아직 의식이 없기에 시간 속으로 끼어들고 있진 못하다.

"이게 본체에요?"

"그렇지."

희우가 옆에 서서 검을 들었다. 시간이 다시 흐르는 순간 죽이려는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자고."

그리고 신성이 내려왔다. 강림이나 화신은 아니다.

단지 신언을 전하기 위한 힘의 행사였다.

애초에 이 방공호는 작은 신전처럼 꾸며져 있다.

마법의 신을 섬길 리가 없는 이 마법사들의 후원자인 신.

금이 번쩍이고 재물이 가득하다. 나는 이런 신을 알고 있다.

꼬박꼬박 존대하는 말투의 신언이 들려온다.

「오랜만입니다. 우린 좋은 거래 상대였다고 생각했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아, 오랜만입니다. 규율과 금전의 신."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지금뿐입니다만. 싸게 해드리죠.」

"안타깝지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희우가 입을 딱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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