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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57화 (25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57화

왕국 - Lv.678 불의 마탑(5)

일단 쓸 만해 보이는 것은 대체로 다 쓸어왔다.

그러고도 대마탑을 모조리 털지는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둘러본 곳도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심지어 공간이 몇 겹으로 중첩된 영역도 발견했으며 온갖 비밀스러운 창고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미아가 그 기법에 대해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대마탑은 실로 [아케인]이 만들어둔 던전이며, 그들의 요새다.

중간층이 분리되어 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이건……. 확실히 생존만이 목적이라면 유효한 수단이야. 아예 저 우주 영역에 있는 고도까지 올라가서 침공을 버티는 거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의외인데, 네놈은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냐?」

"자랑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침공을 상대로 도망쳐 본 적이 없는지라."

「그냥 자랑이라고 해라.」

"거 참 송구스럽군요. 그래도 그 녀석이 바보같이 [소우주]를 걸어줘서 다행입니다. 큰일 날 뻔했지 뭡니까."

「누가 알았겠는가. 제 상대가 이렇게 이상한 놈일 줄은. 나도 옛날에 그 마법에 당한 기억이 몇 번 있는데…….」

어쨌건 이 비행 요새는 침공이 온다면 확실히 써먹을 수 있다.

거기에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발상이기에 새롭다. 이런 새로움은 오랜만이야.

나는 마탑을 만든다면 도주용이 아니라 섬멸용으로 세웠던지라…….

이야, 참. 그립군. 마신의 탑이라고 불렸었지.

다음 날이 밝았다. 제대로 잘 수 있었던 파티원은 없었다. 제각각 챙겨온 보화를 뒤적이느라 정신없다.

쓸 수 있는 것을 추리고 나머지는 두고 가야 한다.

"블랑쉐!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흠."

그리고 나는 [유니크 스킬]에 대하여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그것들은 한 회차에 단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미 어느 유배자가 가지고 있다면? 제 아무리 노력하여 획득 조건을 만족하고 확률 보정을 걸어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선점이 중요하다.

이미 잔뜩 발전하고 인구가 많은 왕국에 온다면 인프라가 구축된 점은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원하는 유니크 스킬이 누군가의 손에 있을 확률도 크다.

스노우 볼링, 미궁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역시 누군가가 이미 가지고 있나?"

"그래. 다행스럽게도 일그림 파티는 왕국에 아주 오래 있었지."

아케인에 남은 레베카가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해 주었다.

유추할 수 있는 범위 내에는 블랑쉐가 얻으려는 [검은 날개]를 보유한 이가 없다.

하지만 여신님의 권능까지 동원하여 시도했음에도 블랑쉐는 보유한 포인트로 [검은 날개]를 얻지 못했다.

끔찍하게 운이 나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너무 낮다. 이건 이미 선점당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조건이 꽤 빡빡한 유니크 스킬이다.

어중이떠중이가 가지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더 시티즌]."

"맞아, 그 녀석들 중 하나일 것 같다."

"죽여야겠군."

"선량한 시민에게 찾아가서 대뜸 당신의 유니크 스킬이 필요하니 죽어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블랑쉐가 설핏 웃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블랑쉐도 분위기가 꽤나 풀린 기분이 든다.

이따금 드러나는 그 묘하게 귀여운 본심이 아니라, 철저하고 냉혹해 보이는 겉모습도 말이다.

에길과 희우가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아도 될까?

그럼에도 아마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는 순간 가장 결단력 있는 파티원이겠지.

"그럼, [은빛 섬광]은 조건이 더 어려운 건가?"

"그래. 그건 정말로 선점당하긴 힘들지."

[은빛 섬광]은 유난히 까다롭다.

적어도 3개의 상위 칭호, 그리고 공간과 바람 계열의 위업 칭호 하나씩.

속성이 지정된 위업이 큰 문제다.

심지어 여기서 상위니 위업이니 하는 건, 시스템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숨겨진 시스템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칭호의 마인드맵 보정과 함께 현실이 된 미궁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애초에 바깥에서도 데이터 마이닝의 결과로 밝혀졌었다.

미궁의 칭호는 시스템적으로 급이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최상위 유니크 스킬들은 대부분 급 높은 상위 칭호의 조건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시간의 천사].

극악의 확률을 돌파해야 하기에 무엇보다 구하기 힘든 칭호 중 하나며 위업이다.

이미 최고 등급 칭호로, 동급은 있어도 이보다 더 큰 보정은 없다.

이것으로 [은빛 섬광]에 필요한 공간계통은 클리어다.

심연과 시간은 결국 둘 모두 시공의 신.

어느 쪽이 더 부각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시간의 신전이 먼 과거의 어느 회차를 구성해 줄 수도 있고, 심연의 시간은 이상하게 흐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외에도 희우가 가진 다른 칭호들로는 얼마 전에 수동 메테오로 얻은 [대멸종].

그리고 익히 아는 [몽환의 숲 정복자].

나와 파티원이기에 가진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

나에게는 [화신의 대적자]로 존재하는 [아바타 슬레이어 파티].

그 외의 여러 가지 칭호들.

이건 죄다 위업이기에 더 희귀한 스킬이 나올 확률을 확연하게 올려준다.

그렇기에 칭호는 유배자의 삶 그 자체.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는 마인드맵은 비록 좀 운이 날뛰긴 하더라도 유배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된다.

위업 넘쳐나고 있는 희우에게 없는 것은 바람과 관련된 위업급 칭호였는데, 이건 노정령왕을 통해 해결했다.

사실, 희우가 레벨링 기간에 바빴던 것은 저녁마다 꾸준히 실피드와 함께 노정령왕을 방문한 탓도 있다.

[바람 정령왕의 친구]는 아슬아슬하게 위업이다. 게임 시절에도 급하면 날로 먹기 위해 써먹었다.

조건은 그냥 적대적이지 않은 바람 정령왕의 옆에 오래 같이 있기.

충분한 식량과 우호적인 정령왕을 준비하고, 옆에 캐릭터를 세워두고 다른 일을 하다 오면 얻을 수 있었다.

현실이 된 미궁에서는 거의 하루 종일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내가 실피드를 온종일 소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령계에서 그 정도 머무르는 것도 몹시 위험하다.

마침 딱 좋은 대상이었다. 초월적 존재들과는 많이 아는 사이일수록 좋다.

대단한 사이가 아닐지라도 말이지.

그리고 유사 정령계를 구축하고 있던 노정령왕에게 실피드 하나의 존재를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트동트 영감님이 그랬듯, 노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모양이다.

다른 세계의 정령왕쯤 되면 어디서 못 구하는 신선함이기도 하지.

실피드가 뭔가 못된 걸 배우진 말았어야 하는데.

"[은빛 섬광]은 복잡하군.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유배자가 극히 드물 거라는 건 알겠다."

"이걸 만족한 다음에는, 궁수나 사수가 아닌 민첩 계열이기도 해야 해. 사실상 암살자 계열이란 말이지."

"그럼 거의 불가능하겠는데."

"그렇지."

암살자 클래스는 일반적으로는 PVP 클래스에 더 가깝다. 당연히 PVE에서 위업을 달성하긴 힘들다.

[은빛 섬광]은 성능을 보면 알겠지만, 긴 쿨다운을 가진 일격 필살의 스킬이며 당연하게도 암살자 계통이다. 이쯤 오면 암살자 역시 PVE 성능이 좋아진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암살자가 드물어서 그렇지.

그리고 블랑쉐에게 세팅할 스킬 역시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하다.

손에 넣기는 까다로우나 그만큼 고효율의 스킬.

블랑쉐의 지난 8년 덕에 조건이 만족된 스킬이다.

"왕국에서 보낸 네 지난 시간이 썩 훌륭하다고는 못하지. 하지만 그 또한 어떤 루트기도 하니까."

블랑쉐는 슬쩍 미소 짓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가서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검은 날개]는 그 우중충한 이름대로 평범하게 획득하는 스킬은 아니다.

조건 칭호가 정확히 지정되어 있다.

[방랑자], [낙오자].

심지어 이건 모두 나쁜 보정을 가하는 칭호다.

그나마 암살자에게는 어느 정도 쓸 만하다. 어둠과 은신에는 좋은 보정을 주기 때문에.

하지만 저런 칭호를 얻을 정도의 인물이 유니크 스킬을 얻을 정도의 레벨에 도달하는 일은 드물다.

이걸 이미 보유하고 있는 녀석은 일그림처럼 게이머일까?

혹은 그의 동료일 게 분명한 여신님이 아는 녀석.

현 랭킹 1위인 그놈이 게이머일까?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비록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하이랭커겠지.

하지만 일단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암살자의 정보를 미리 캐는 것은 아주 힘들다. 일격필살은 미지에서 나온다.

상대가 나를 안다면 성립하기 극히 힘들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유난히 제 능력을 숨기는 데 집착한다. 처음부터 정면 승부의 클래스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이후,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일이리라.

* * *

아케인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대 원소를 대표하는 마탑의 마탑주들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한날 한시에.

[아케인]의 소년 마법사 본체가 사망함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이거 그거 아니에요? 지하에 있던 그 [마리오네트] 술사?"

"그런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지."

"와, 세상에……. 정말로 장악하려고 했던 거군요."

"어찌 움직이는지 좀 보자고."

무너진 대마탑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무늬만 의회인 하드스록의 삼의회와 다르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아케인 의회가 바빠졌다.

내 강연의 여파도 아직 어찌 되지 않은 와중이다.

대부분의 그랜드 마스터나 마스터들은 그들이 알게 된 새로운 이론에 집중했다.

그들 중에서는 의원을 겸직하는 이들도 많았으며, 따라서 불참하는 의원들도 많았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면 [아케인]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급사한 마탑주들이 인형이라는 사실은 공표되지 않았다. 조사하면 반드시 밝혀질 일임에도 그랬다.

의회에 출석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케인]의 하수인을 추려낼 만큼 적었다.

모두는 아니겠으나, 저 중에 있다.

"그러고 보면 그거 알아?"

"뭐요?"

"학장은 생각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어."

"그랜드 마스터인 거요? 그게 구체적으로 얼마나 높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불의 마탑에서 굳이 서열을 나누자면 2위였지."

"위에 마탑주밖에 없었던 거군요."

"그래."

블랑쉐가 날려 버린 노인의 지팡이.

미아가 수색을 진행했다.

시간의 성물을 회수하는 것도 회수하는 것이지만, 그 지팡이 자체가 최고로 훌륭한 물건이었을 테니까.

거기에 기대하는 것은 하나가 더 있다.

학장이 의문사했을 때, 그를 되살리려고 시도했던 강령술사도 있었다.

그는 영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인은 조치를 취했다. 학장이 언데드 따위로 되살아나 무언가 증언을 하면 귀찮아진다.

그리고 영혼을 복원할 수 없는 방식으로 파기하는 건 생각보다 귀찮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마법의 전문가들이 득실거리는 아케인이 아닌가.

예상대로 지팡이를 찾아온 미아가 말했다.

"안에 영혼이 아직 살아 있어요."

"흩어지지 않았군. 육신 없이 보낸 시간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러니 학장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라면 정신력으로 유지하고 있겠지."

"언데드로 되살리나요?"

"아니. 더 좋은 게 있지."

육체라면 아주 좋은 게 있지 않나.

대마탑에는 예비 인형들도 굉장히 많았다.

특히나 소년의 모습을 한 것이 둘 더 있었다. 가장 고성능의 인형이다.

외형이 미소년인 건 일종의 페티시일까?

영혼을 이식하는 건 꽤나 고전적인 마법이다.

세련된 방식도 아니고 술식이 깔끔하지도 않다.

애초에 술식이라기보다는 의식에 가까운 무언가다.

고로 미아보다도 적합한 사람이 있다.

"영혼을 인형에 넣는다고?"

트동트 영감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영혼은 곧잘 다루어보긴 했지. 주술사는 장례도 주관하게 되니까."

주술 자체가 좀 더 원시적이고 고대의 마법 같은 것이다 보니 말이지.

미아가 보조하고 나와 영감님이 영혼을 인형에 정착시켰다.

소년의 인형이 눈을 떴다.

"음? 으음? 으으음? 내가 지금 살아 있나?"

"이승으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학장이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세상에. 이 몸은……. 인형이군?"

"엄청나게 고성능입니다. [아케인] 멤버의 예비 육체니까요."

"맙소사……."

멍한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학장이 말했다.

"허허, 목숨을 빚졌군."

"그렇죠. 그러니 제 부탁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말만 하게."

"혹시 학장님, 연기 잘하십니까?"

[아케인]의 강력한 공간 마법사와 완전히 똑같은 외모를 한 소년이 미심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무슨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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