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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60화 (26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60화

43서버 - Lv.1780 용사 방어전(1)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레미. 오랜만이야. 우리 나이트 크로우의 러셀 씨가 어쩌다가 여길 찾아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오랜만에 보는 레미는 직접적인 외모는 달라진 바 없으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마법사인 걸 드러내 놓고 다닐 필요도 없으니 적당한 사제복에 검도 차고 다닌다.

완드는 틀림없이 품속에 있겠지.

그리고 어딘가 표정이 굉장히. 음.

위압적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과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혼돈 교단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니까 저렇게 되는 모양이다.

이전의 어딘가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던 소녀는 참 빠르게도 우화한 모양이다.

그래도 좋은 일이다.

얼굴도 밝아 보이고, 피로는 있으나 업무에 따른 피로지, 그 이상의 걱정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여교황이라도 된 게 아닌가 싶은 온화하면서도 서늘한 미소로 대답한다.

"리더, 일그림이라는 양반은 믿어도 된다면서요."

"어, 그랬지."

"그 양반 파티원을 통해 왔다던데요. 그 빅맥인가?"

"아하. 그렇게 된 건가."

러셀 양반은 [무기고]의 길드마스터인 베티의 친구였고, 맥은 그곳의 고객이었다.

어떤 식으로건 접점은 있으리라 보는 게 옳다. 그리고 맥은 알다시피…….

최소한의 주의는 하되 자잘한 건 아무 데나 가서 잘 털어대는 녀석이다.

맥은 좋은 친구다. 하지만 귀찮은 친구다. 정말 귀찮은 놈이다.

하여튼 간에 일관성이 넘치는 친구다보니 이번엔 귀찮은 일로 돌아오는군.

러셀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다.

신전이 된 병원 안으로 들어와 레미를 만나고 대화를 하는 동안 내내 그러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뭘 못할 것 같아서 일단 들어보기로 한다.

"뭐가 문제입니까? 용사랑 제가 어떤 관계가 있다고."

"43서버! 용사와 네가 엮여 있다고 들었다!"

어, 그건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 거지?

"알다시피 나는 용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가진 최강의 히어로 유닛인 만큼 각 서버의 인류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지."

"아, 예. 예."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용사 후보자들은 많고 누가 진짜 용사로 각성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건 그런 시스템이 맞긴 하다. 용사 후보자 수준에서 그치는 이들도 아주 많다.

"내가 지원하던 용사 후보자들이 모두 전쟁 중에 죽었다. 나는…… 구하지 못했어."

"음?"

"그리고 남은 한 명이 있었지. 어릴 적부터 나이트크로우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아이.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도무지 접근을 할 수가 없었어. 어느 놈이 먼저 침을 발라둬서 막혀 있다는 느낌이었지."

NPC와의 인연이라는 게 그런 거긴 하다. 러셀이 대부로서 지원하고 있던 용사 후보자들은 내 쪽에서 접근할 수 없었을 터.

"새로 개변된 43서버의 근미래 구간 역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니 나는 아예 더 먼 미래에서 행적을 찾았다. 그 용사에게 침을 바른 것은 네놈이렸다?!"

"아니, 어. 그렇죠."

"책임을 져야겠다. 역사에 기록되기로는 분명 너희 파티로 추정되는 이들이 그 용사를 길러냈다."

미래는 변할 수 있다. 러셀은 어떤 식으로건 인류가 다른 종족 연합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낙오될지도 모르는 그런 용사 후보자들을 거두어 만에 하나의 가능성, 그러니까 인류 최강의 존재가 등장하지 못하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선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군. 1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랭킹을 유지할 정도면 당연하긴 하지.

같이 듣고 있던 희우가 스팀을 뿜기 시작한다. 두뇌 풀가동이군. 내버려 두도록 하자.

"그러니 나는 너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혹여 네가 왕국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빠서 용사를 방치하다가 다른 형태로 미래가 변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지금 정착된 43서버의 미래는 인간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인 모양이다.

"그렇다. 이게 다 어느 미친 녀석들이 저질러 준 덕분이지."

"저지르다니요?"

"난쟁이들은 43서버가 처음 생성될 때부터 패권 국가였어. 너도 난쟁이들이 지배종족일 경우의 문제는 알고 있겠지?"

흠, 난쟁이들은 의외로 잔인하다. 정확히는 바위 난쟁이가 아니라 이끼 난쟁이들이 그렇다.

타고난 상인인 그들은 규율의 신이나 이 왕국의 경영자들처럼 이윤을 추구한다.

종족적 특성이 욕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그린스킨이 패권을 쥐고 있던 46서버와는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다.

그린스킨 제국은 힘자랑은 열심히 하고 건드리면 끝장이 나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진 않는다.

아니, 뭐 사실 심심하다고 전쟁을 벌이긴 하겠지만…….

크게 보자면 국가적 규모로 반드시 세계를 통일하려고 든다거나, 약탈을 위해 짓밟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전사에게는 적이 필요하다. 모든 적을 제거하면 전사는 더 이상 전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난쟁이들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런데 어느 미친놈들이 난쟁이 왕국의 수도를 날려 버렸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제국이 되었을 텐데."

"오호."

"그리고 미래에 난쟁이들이 숨죽이고 기술을 발전시켜 거침없는 확장 행보를 보이고 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호라."

이거 듣고 있으니 다 우리 때문이군. 난 43서버에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명목상의 인간 편을 들 여지를 남겨두었을 뿐이다.

키메라 연구소로부터 이어진 연계 퀘스트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난다면 자연히 해소되리라.

"다만, 그 덕에 인류가 지나치게 유리해졌다. 그래서 나서는 놈들이 생겼지."

"다른 유배자들이 용사 사냥을 다니고 있다?"

"나는 그래서 실패했다."

자, 이거 생각 좀 해보자. 러셀은 이래 봬도 어마무시하게 강력한 양반이다.

게다가 검과 방패를 쓰는 전사.

PVP에서의 검방 전사의 위엄이 어느 정도냐 하면, 홀수 층에 입장할 경우에는 검과 방패를 따로 준비하는 유배자도 있을 정도다.

마, 우리 파티에 검방 있다. 함 뜰까?

일단 더러워서라도 피하게 된다.

스킬 보정을 듬뿍 받은 방패는 실력 여하에 따라 모든 것을 막아낸다.

마법사 역시 검방 전사를 상대로 상성의 우위를 유지하기만 할 뿐, 제압할 수단이 적어진다.

일단 방패용인 [패리] 같은 스킬이 좀 흉악하긴 해서.

달리 말하면 공격용이 아니기에 주어진 사기적인 성능이다.

방어만 잘하는 건 의외로 미궁에서 대단한 쓸모가 없거든.

그런 검방 전사 랭커인 러셀이 물러서게 만들었다니.

최소한 일대일은 아니거나 하이랭커다.

"랭커들이 단체로 나섰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일그림 파티와 친분이 있다는 건, 그리고 베티와도 친하단 건 아마도……."

"그 아마도는 맞다. 나이트 크로우 왕국 지부의 멤버다."

"네?"

레미가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일그림 씨는 자신은 그런 단체에 속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러셀이 낮게 후후후 하고 웃음을 흘렸다. 소름 끼치는데, 의외로 또 잘 어울린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컨셉충의 관록일까?

정말로 베테랑 나이트 크로우 요원이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명예 멤버지. 시초의 파티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드는지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건 결국 인류의 존속에 방해가 된다. 사악한 녀석들."

"아 예, 그러시군요."

"그러니 알겠지. 나를 방해하고 있는 녀석들이 누구인지도 말이다. 바로 그래서 네가 도와줘야겠다."

"어, 그렇죠. 제가 시작한 일이긴 하군요. 돕도록 하지요."

"이해해 줘서 고맙군."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시작한 일은 맞지만, 맥이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흘리진 않은 모양이다.

이 자식 항상 아슬아슬한 선까지만 흘리네? 나한테 자기네 파티원 이야기할 때도 그러더니.

그래도 이건 물어봐야겠다.

"[하드스록]이 시비 털고 있습니까?"

"그 녀석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그보다는 [검은 곰] 길드다."

"어, 거기 탱커들 위주라는 거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왜?"

하드스록의 가장 큰 기둥이 [하드스록] 파티라면, 그 산하에 있는 다른 기둥들 중 하나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다.

[검은 곰]은 많은 랭커와 하이랭커도 일부 보유 중인 거대한 길드다.

그리고 일그림의 말에 따르면 특별히 경영자들과의 관계는 없다고 한다.

길드 성향을 들어보면 그럴 법도 한 곳이고.

"글쎄다. 하지만 그놈들이 거부할 이유는 있나? 용병 집단에 가까운 놈들인데."

"뭐 돈을 잔뜩 안겨주었겠군요."

"그게 파멸로 가는 길이란 걸 모르는 채로 말이지. 후후후."

저 낮은 웃음이 너무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옳은 말이다. [검은 곰]은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하며 떠드는 친목 길드에 가깝다.

길드 마스터가 너무 유명하고 대단한 이라서 이렇게 커졌을 뿐이다.

"잠시만요. 동료들의 의향도 묻고 오지요."

"그래. 기다리도록 하지."

그러며 망설임 없이 기도실로 향한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혼돈의 신도십니까?"

"아니. 하지만 신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나는 신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인류라는 종족처럼 말이지. 후후."

"아…… 그럼 지금은 왜 기도를?"

"골치 아픈 난쟁이들을 박살 내서 인류가 착취당하던 43서버의 미래도 박살이 났다. 누군지 모를 그 유배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

미친놈.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마치고 헤어지도록 하자. 어차피 [하드스록]을 만나게 되는 길이기도 한 것 같으니까.

하드스록에 대마탑 같이 보기 좋은 구조물은 없다.

여기가 보스룸입네 하는 곳도 없다는 뜻이다.

러셀을 돕는 편이 가장 빠르게 [하드스록]을 치워 버릴 방법이 맞는 것 같다.

* * *

"[용사]를 의식하고 있는 걸까요?"

머리에서 스팀을 피워 올리던 희우가 의외로 핵심에 바로 도달했다.

"똑똑한데?"

"그럼요. 하지만 [용사]가 어느 정도 스킬인지는 모르겠어요. 그게 그렇게 세요?"

"게임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할까. 결국 마지막에 인간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클리어의 조건이 ‘인간 유배자’니까요."

"그래서 그냥 뉴비들이 물어보면 두말없이 [용사] 빌드 타라고 그랬지. 인간이면서 드래곤 종족에 필적할 수 있는 유일한 빌드거든."

"개사기네요."

"그게 [용사]니까."

특별한 액티브 없이 그저 스펙 자체를 전천후 인간병기로 만들어버리는 게 [용사]다.

인간 플레이의 원점이자 정점.

그리고 가장 많은 뉴비들을 엔딩으로 인도하는 갓 스킬.

하지만 그렇기에 게이머가 있다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스킬이다.

"저쪽에도 역시 있겠군요."

"이미 프로방스와 일그림을 보았지. 이제 반드시 더 있다고 생각해야지."

"진짜 ‘오르골’이란 건 숨겨야겠죠?"

"맞아. 그냥 웬 어중이떠중이 하이랭커 출신 정도로 생각하게 둬야지. 오르골은 사칭에 불과하단 걸로."

규율의 신이 내가 어느 수준의 게이머였냐는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숨기고 또 숨기는 일상인 미궁이라도 내가 공개한 정보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까진 생각 못 하겠지.

밑천을 다 털지 않고는 보여줄 수 없는 퍼포먼스였으니까.

일그림은 아주 노골적으로 말했다.

자기가 저쪽 게이머라면, 오르골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다 집어치우고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올 거라고.

내 위상이 진짜 그 정도였나 조금 의아하긴 하다. 당신 내 구독자라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어쨌든 일그림이 이번 회차에서 겪은 무수한 게이머들은 모두 나와 같은 지구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그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혹여 드물게 게이머 태그가 달린 유배자를 조우하더라도 그는 나와는 다른 지구에서 다른 형태로 게임 지식을 접한 자였다.

시공의 폭풍 리그가 2022년에도 존속되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상상의 지구 말이다.

그래서 오르골 사칭도 많이 겪었다는 모양이었다.

아마 아직 모르는 미지의 상대방 게이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같은 환경이면 같은 판단을 하리라. 오르골인 척하는 놈이겠거니.

"그리고 뭐, 프로방스가 3층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봤지? 일단 게임 잘한다고 미궁도 잘하는 건 아니거든."

"확실히, 97년 묵은 진짜 오르골이 이 회차에 당도했다고 생각하긴 힘들 수 있겠네요."

"하지만 며칠 더 지나면 알게 될 수도 있지. 그 정보가 전파되어 저쪽에서 화들짝 놀라 달려오기 전에 [하드스록]도 치운다."

상대가 바보는 아니다. 계속해서 상식을 벗어나는 것만이 허를 찌를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튜토리얼부터 정면으로 헤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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