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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67화 (26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67화

43서버 - Lv.568 용사 키우기(3)

러셀의 존재는 편리했다.

그는 이미 무수한 용사 육성 경험이 있었으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용사 후보는 집도 절도 없는 출신성분을 가진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경험 많은 변태는 아주 유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그 또한 나를 유용하게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러면서 왜 우리 파티원들을 슬쩍슬쩍 보는 거야.

“저런 괴물들을 만들 자신이 없다.”

“누구보고 괴물이래!”

“그럼 아닌가?”

“아, 되었으니까. 하던 말이나 해보시죠.”

러셀은 불편하게 말했다. 어딘가 자존심을 굽히는 종류의 불편함이다.

“육성은 네게 맡기겠다. 용사를 어떻게 굴릴지 말이다. 대신 그 준비는 내가 하자.”

“물자나 식량 같은 것 말이죠? 좋군요.”

그렇게 기묘한 협력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러셀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을 살펴볼 짬을 얻었다.

레미가 말했다.

“리더 얼굴보기 힘드네요.”

“아직도 리더라고 말해주네? 고마운걸.”

“뭐, 은인이니까요.”

“나보다는 여신님께 더 감사하지 그래.”

“그건 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탕 레시피 좀 알려주시겠어요?”

“뭐……?”

“감사하는데 필요해서…….”

「크흠!」

잘 모르겠지만 군말 없이 자세하고 다양한 레시피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바깥에는 없는 미궁만의 이상한 재료가 원료인 나만의 레시피니 어디서 못 구하긴 하지.

한때의 취미는 다양하게 도움이 된다.

그러는 동시에 일 이야기를 한다.

“삼의회는 어때? 아직도 얌전해?”

“어제도 미팅을 갔다왔는데 별다른 낌새는 없었어요. 저희가 리더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 알고는 있을 거야. 그냥 46서버의 열쇠를 쥔 유배자들을 하나라도 더 남겨놓고 싶은 거겠지.”

“어차피 경영하는 놈들은 그냥 밀어버릴 예정이었다고 안 그랬어요?”

그건 옳다. 하지만 아마 그 녀석들끼리도 완전히 의견이 일치할 리는 없지.

“주도권 문제일거야. 마법사는 여러 가지 자원이 잔뜩 필요하지. 마법의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전사는 그냥 갑옷에 무기 한 벌, 그리고 내구도를 대비한 예비 서너 벌이면 끝이다.

대개 자원에 목마른 것은 마법사들의 집단이다. 전사들은 심지어 미스릴 같은 걸 썩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린 스킨 위주일 수밖에 없는 전사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마력 전도율 같은 게 아니라 튼튼하고 묵직한 재질이다.

미스릴은 순수한 전사에게는 쓸 만하지만 어딘가 아쉽다.

“그 구조는 이해했어요. 그럼 한번 갈아엎은 후의 세계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싶다는 거겠군요.”

“막말로 시티즌이 방관한다면 마법사를 상대로 이기긴 힘들어지니까 말이야.”

레미가 한심하게 대답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왜 그렇게 클래스별로 갈라서고 있죠? 막상 랭커급은 또 성직자의 나라에서 파티 모집이나 하고 있던데.”

그건 나도 한때 가졌던 의문이었다.

게임 시절에는 그저 설정이니 자연스레 받아들였으나 현실이 되고 모두가 생각을 하는 상황에선 의아하기 짝이 없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자. 바깥에선 세상일이 합리적이디?”

당연히 레미는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의 이상한 일들은 그냥 옛날부터 하던 대로 살아와서 그렇게 되는 거야. 몇 년 차였더라?”

“이제 7년이 다 되어 가네요.”

“꼰대 같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도 연차가 낮을 때나 하는 거야. 지내다 보면 포기하게 되거든.”

등신 같은 문화라고 생각하다가도 실제로 PVP를 한번 당해보면 생각이 바뀐다.

미궁이 구축한 강력한 상성 관계를 이용하여 같은 유배자를 사냥하는 이들은 많다.

랭커들이 그 장비 덕에 늘 습격의 위협에 시달린다고 한들, 배부른 소리다.

어디를 가나 밑바닥이 가장 더럽고 추잡하지.

레미는 한숨을 내쉰다.

“그러네요. 저에게 당했던 이들도 마법사라면 치를 떨게 되었겠지요.”

“그래, 너도 암살자 상대로 수작부릴 생각은 안 했을 거 아니야.”

“못 이기니까요.”

“결국 미궁이 그런 걸 원하는 거지.”

수천 년간 어쩌면 수만 년간 켜켜이 쌓여온 인식일 것이다.

누가 그걸 처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정말 미궁에 의지가 있을까요? 뭔가를 원해서 모두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일까요?”

“모르지. 그러니 클리어해 봐야지.”

로그라이크 게임답게 게임 시절에도 미궁이란 것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설명이 없었다.

차후 업데이트할 거란 이야기는 들었으니 실제로는 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 의미로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살아왔다.

레미가 웃는다.

어딘가 가식적인 평소의 모습들과는 다르게, 제 나이에 어울리는 편안한 미소였다.

“응원하고 있을게요.”

“고마워.”

* * *

친애하는 마이어 씨와 만났다.

그동안 굳이 이렇게 친애한다는 언급을 꾸준히 했던 것은 정말로 그렇기 때문이다.

한길 속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태도에서 드러나는 진실성은 있다.

마이어는 경영자들과 특별히 관련이 없다.

아직 확신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배제할 만큼 지켜봐 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그리고 레미가 직접.

그리고 레미는 이런 방향으로는 꽤 능수능란하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얼굴 초췌하네. 괜찮아?”

“요즘 골치 아픈 일이 많아서…….”

아마 나 때문이다.

미개척 서버나 다름없는 46서버도 문제일 거고, [아케인]의 대마탑도 문제겠지.

거기에 학장이 침공 대비를 선언했으니 당연히 모든 곳이 술렁일 수밖에.

아케인의 [아케인] 파티가 가지는 위상을 생각한다면 UN에서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 같은 소리를 한 것과 비슷하다.

온 세상에 대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그건 고스란히 실무자의 부담이 된다.

일단 좀 떠볼까.

“아케인에서 한 말 덕분에 난리도 아닌 모양이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건지.”

“진짜일지도 모르지.”

“그런 말 마십쇼.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하드스록] 이야기인가.

어차피 밀어버릴 거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인가 보다.

그들로선 그게 편하긴 할 거다. 나까지 묻어버리고 깔끔하게 리셋.

나로서도 의외였지만 일그림 파티와 커넥션이 있는 랭커들은 은근히 많았다.

그만큼 현재의 상황에 불만 가진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만간 싹 치워 버릴 생각이니 대응도 없다.

아귀가 다 들어맞는다. 모든 것이 확실하니 잴 것도 없다.

다 쓸어버리고 다음 침공을 막으면 되겠군.

일으키지 않아도 일어났을 침공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46서버 출신의 랭커 몇몇이 나타났습니다.”

그럴 때가 되었지.

힘이 없다면 열쇠로 이용당하고 버려질 뿐이다.

제 지분을 제대로 챙기고 싶다면 힘을 키워야 했으리라.

지난 8년간 과실을 생각하며 노력했더니 선점당했다. 찌르러 오는 바보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꿀 빠는 거 보니 배가 아팠나 보지.”

“혹시 46서버의 열쇠가 더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더군요.”

“뭐라고 그랬어?”

“저 말고 다른 의원이 협상 중입니다. 도의상 말씀은 드려야할 것 같아서.”

“고마운 걸? 그 양반들도 쓰도록 해. 별로 문제는 없으니까.”

누군지 확인만 해두었다. 마이어는 정보 제공에 고분고분했다.

아마도 나보다 강해보이는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양풍의 검사?

현 시점에서는 우리 파티의 행적이 대륙 동부에는 닿지 않기는 했다.

용과 용인, 그리고 온갖 종족이 뒤섞여 사는 땅.

바르바로이 클랜의 고향이다.

별 연관은 없겠군.

그쪽 용왕을 때려잡은 게 우리였는데 아마. 그럼 용왕을 때려잡은 시점이 언제이려나.

* * *

용사 후보생 리온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리온은 아직도 나이트 크로우와 접촉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 생각도 없다.

이쪽 주민들의 사정에 어울려 가며 용사를 쓸 생각은 없다.

미래를 보면 썩 좋은 녀석들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여기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대륙 심부입니다. 난쟁이 왕국 수도가 있던 곳 근처지요.”

아, 어째 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럼 대충 여기쯤이군.”

러셀이 구해온 지도가 있다. 실제로는 제니가 구해왔다. 제니는 이래봬도 43서버에서 수십 년간 벌어먹고 산 베테랑이다.

“여기쯤까지 쏘아 보내면 적당한 수련 장소라고 할 수 있겠어. 지형이 이 모양이면 여기다 형성되는 법이거든.”

“오호, 그런 것에서 법칙을 찾아내었는가.”

“다들 랜덤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단서는 주어지는 법이지. 그 단서를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

“네놈 게이머인가?”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러셀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지금 자신의 편이라 그런 것일까.

용사가 그 위치를 보고 있더니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여기로 가라고요?”

“응, 그래야 우리도 너를 따라갈 수 있으니까. 여기서 힘을 키울수 있도록 도와주지.”

“어…….”

태어난 지 겨우 십 하고도 몇 년.

서버와 미궁이라는 진실의 파편에 접촉하기엔 너무나도 이른 나이다.

리온에게는 이곳에서의 삶과 이 전쟁이 전부였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보인다.

유배자들이 모두 악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렇게 전면전이 되어버린다면 도리어 지지하는 세력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열성적이다.

고로 지금 이 서버의 인간들에게 유배자란 상당히 좋은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전의 자잘하고 끊임없던 패악질은 당면의 전쟁에서 든든한 우군들을 보면 잊히는 법.

낯선 사람이 분명한 우리의 막무가내 제안에도 솔깃해하는 것은 틀림없이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서버는 NPC 키우기를 하고 있는 유배자가 은근히 많으며, 리온은 자신에게도 그런 친절한 유배자가 찾아온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으리라.

거기서 뭐 더 검은 속셈 이런 걸 잴 나이는 아니니까.

그래서 리온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 저는 오랜 여행 경험 같은 건 없습니다.”

믿고 따라 준다는 점에서 아주 기특하다.

대륙을 횡단하는 수준인데도 말이지.

“괜찮아. 탈것은 우리가 갖고 왔다! 딸내미!”

최근 마도 공학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당면 과제 덕에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는 미아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대마탑에서 털어온 막대한 재료와 연구의 부산물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실현시킬 만큼 대단했다.

리온이 불안하게 미아가 꺼내는 것들을 본다.

다 같이 조립을 시작했다.

완성된 형태는 정교하게 설계된 대륙 간 탄도 미사……. 아니, 유인 로켓이다.

물론 리온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이건…… 사람이 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난쟁이들의 무기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오, 벌써 이런 게 실전 배치되었어? 역시 전쟁은 발전의 씨앗이군. 슬프게도 말이지. 자자, 유배자의 위대한 기술력을 믿으라고!”

리온은 엄청나게 불안한 표정으로 좌석에 탑승했다.

안전벨트와 함께 미아가 온갖 방호마법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나는 러셀과 함께 탄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계산하는 건 나고, 지형지리를 조사한 것은 러셀이다.

“좀 오차가 있더라도 착지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리온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난쟁이들이 MD 요격 체계같은 것까지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쪽은 난쟁이 순양함들이 움직이는 곳이라고 한다.”

“피해야겠군.”

작업이 끝나는데는 30분 가량이 걸렸다.

리온은 그동안 꼼짝 없이 로켓 속에 묶여있었다.

희우가 동병상련의 표정으로 리온을 본다. 발사체가 되어본 경험은 이쪽에도 있구나.

리온의 얼굴이 빨개진다.

“좋아, 용사여. 그럼 저쪽에서 다시 만나자.”

미아가 신나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발사!”

“잠깐만요! 이것 좀 아닌 것 같우아아아아아아악!”

길게 꼬리를 남기며 날아가는 미사일을 보며 희우도 같이 날아올랐다.

혹여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구출하기 위해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대과학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어떤 안 좋은 일들의 디테일은 대부분 마법이 뒤섞이며 해결된다.

마도공학의 세계인 각 서버들의 우주 진출이 이상하게 빠른 것은 그 때문이다.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희우가 돌아왔다.

맵의 가장자리의 벽에 부딪혀서 이마가 빨개져 있다.

“마하로 머리를 박았더니 너무 아파요!”

“호 해줄까?”

“좋아요!”

적당한 위치로 용사가 잘 배송되었기를.

이건 원래도 가끔 원하는 지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써먹는 방식이었다.

인연이 있는 [키 아이템]을 가진 채, 그 주인을 어딘가로 보내면 자연스럽게 나도 그 맵에 입장할 수 있으니까.

이러니 대륙의 주민들과는 친하게 지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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