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268화 (26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68화

43서버 - Lv.590 용사 키우기(4)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

그것이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통용되던 사실이었다.

물론 마법사는 비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가능했지만 드문 존재였다.

용사 후보생 리온의 좁은 세계에서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경우는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괴물에게 맞아 날아갈 때뿐이었다.

그렇기에 리온은 마지막까지도 정확히 어떻게 자신을 목표 지점까지 날린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념 자체가 없으니 당연히 추측도 할 수 없다.

이상한 쇳덩이 속에서 속고 있는 건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그의 주관에선 바로 직전에 목숨을 구원받은 참이다.

여기서 이들을 믿지 않는 것은 어린 리온이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그래서 눈만 멀뚱멀뚱 뜨며 얌전히 있었다.

난쟁이들이 만들어 쏟아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병기들과 흡사하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쇳덩이의 꽁무니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을 때, 마침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건 아니다!

“아닌 것 같우아아아아악!”

강렬한 G가 걸린다.

물론 그런 말은 알지 못했다. 중세가 끝나고 마도 공학의 시대가 이제 개막하려는 시대의 용사는 그렇게 하늘로 솟구쳤다.

왕국과 다르게 각 서버의 대륙은 하나의 행성이다.

정확히 인지하기 힘들지만, 체감은 억겁과도 같다. 어느 순간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무수한 보호마법과 타고난 육신의 튼튼함으로 재빨리 정신을 차린 용사는 비로소 심호흡하였다.

그가 탄 쇳덩이에는 창이 있었다.

투명한 재질이 하필 탑승부였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아케인] 역시 침공이 격화되면 비슷한 짓을 하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왕국에서 지나치게 높아 괴물들의 노림을 받을 수 있는 고도보다는 아래, 하지만 지상의 [침공]이 노리기엔 또 너무 높은 곳.

그 정도의 위치에서 견디다가 내려올 수 있는 그런 로켓이었다.

그걸 재가공하고 다시 조립했을 뿐이기에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재질이 있었다.

리온은 자신이 대기권 밖으로 벗어났다는 개념조차 몰랐다.

이 땅이 둥글다는 것도 몰랐다.

눈을 돌리자 보이는 곳은 광활하고도 신비로운 지상.

위쪽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우주.

낯설지만 익숙한 그것에 리온은 한순간 매료되었다.

장엄한 세상의 풍경, 그리고 아름다움.

세상 만물 모든 것의 경험을 말 그대로의 경험치로 치환하는 용사의 재능에 그것은 충격이요 깨달음이었다.

입이 벌어진다.

작은 세상에서 보다 큰 세상으로.

이런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나를 쏘아 올린 것인가.

물론 아니다.

다음 순간 다시 강렬한 충격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번엔 물리적인 충격이었다.

올라갈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이 두둥실 떠오르고 무게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

충분한 고도에서 충분한 위치에 도달한 로켓이 다시 곤두박질치며 목표를 향해 내리꽂혔다.

* * *

“우웩. 어지러워요.”

미아도 무릎을 꿇은 채 이마를 부여잡고 있다.

반복된 리프트 출입에 나 역시 속이 나빠졌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왔다.

“제대로 왔군. 저기 위에 보이지?”

반짝이는 별이 있다.

대낮의 별이란 점이 우습지만 어쨌건 말이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곤두박질치는 로켓은 상정된 위치에서 대단한 오차를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미아가 마법을 자아낸다.

시간이 없으므로 나도 돕는다.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한 물리 공간적 왜곡이 발생하고 희우가 날아올라 로켓의 착지점을 더 정확하게 확인한다.

마법진 채로 들고 옮겨 블로킹하듯 로켓을 받아냈다.

산산조각 나고 부서지는 가운데 탑승부만은 멀쩡하다.

리온이 내려와서 토하기 시작했다.

“우웨엑. 우엑!”

희우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 기분 안다는 듯한 감성적인 표정을 지으며.

리온은 그 모습을 보더니 구역질을 참기 시작했다.

“먹인 걸 바로 토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아까 주면 안 되었는데.”

“더 챙겨왔으니 상관없겠죠.”

반고리관도 초인적인 용사후보생은 금세 어지럼증에서 회복한다.

나는 그동안 야영지를 구성했다.

충격을 최대한 줄였다곤 해도 대지를 강타한 로켓의 폭음은 적지 않다.

리온이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얼굴이 창백하다.

“여기는…… 밀림인가요?”

“지도상으로는 본 적 있는 그곳이야.”

“정말 그 짧은 시간 만에 이곳에 도달하는 게 가능하군요.”

“난쟁이들이 이런 거 쓰는 거 본 적 있지? 아직 그 녀석들도 유인로켓은 제대로 못 만들걸. 하하하하.”

“유배자란 정말 대단한 존재입니다.”

어리벙벙하고 있는 가운데 미안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해야겠다.

“떨어진 위치가 아주 좋아. 주변의 짐승들이 전부 놀라서 일단 물러났을 거야.”

“그렇군요.

내 말을 따라가지 못한 리온이 멍하니 대답한다.

“하지만 이런 대륙 남부에 형성되는 밀림과 습지는 약육강식 그 자체나 다름없는 미친 생태계를 보여주지.”

“어…….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 전투를 준비해.”

“네?”

우리가 튜토리얼을 보낸 46서버의 밀림도 그렇다.

그린 스킨 트롤 기병들이 타고 다니던 공룡들 생각나는가?

바로 그 녀석들의 서식처가 이런 곳이다.

짝수 층, 즉 각 서버의 필드들은 아무래도 홀수 층 보다는 쉬워 보이기 마련이다.

최고 난이도인 메인 던전도 홀수 층이며, 각종 기믹으로 무장한 피곤하기 짝이 없는 ‘몽환의 숲’ 따위도 죄다 홀수 층이니까.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감수해야할 고통이 있는 법. 리온, 너는 힘을 원한다고 했지?”

“아, 넵. 그렇습니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힘은 없다. 우선은 이 밀림에서 살아남아라.”

“네?”

홀수 층이 무조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궁을 잘 몰라서 그렇다.

짝수 층에도 하늘 유적처럼 숨겨진 곳은 아주 많다.

하늘 유적 따위는 제대로 된 난이도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밀림의 심부도 그중 하나다.

그린 스킨 팩션과 친하게 지내면 주술사 사이의 소문 따위로 알게 된다.

거대한 밀립과 습지의 가운데 어딘가에는 정체불명의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 있다고.

일종의 히든 지역이라 볼 수 있는 이런 곳은 대부분 시대가 흐르면 자연 소멸한다.

지금 같은 근 미래까지만 간신히 남아있는 곳들이다.

물론 리온을 아직 거기에 투입하기엔 이르다.

리온이 상대해야 할 것은 약육강식 그 자체인 이 밀림의 괴물들이다.

“한 시간 정도면 일단 놀라서 달아났던 짐승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야. 그 시간이 준비 기간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말해. 그 후에는 보급해 주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리온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곧 생기가 깃든다.

어쨌든 전장에서 이미 시간을 보낸 케이스다. 부대장급이었던 것을 보면 이미 연 단위로 참전했겠지.

나이트 크로우가 소년병으로 쓰게 만들 정도의 인재다.

건강 검진을 한 것은 바로 굴릴 수 있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 *

하루가 지났다.

리온은 해냈다.

덤프트럭이 우스운 크기의 공룡들 사이에서 검 한 자루를 들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때로는 도망치고, 서로의 싸움을 유도하고, 일대일은 승리하며 생존했다.

야영지는 서둘러 설치한 마법진들 덕에 짐승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유일한 안전지대인 이곳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무기가 다 떨어졌을 때뿐이다.

살고 싶다면 싸워라.

사실, 적들의 강함을 빼면 그다지 가혹한 환경은 아니었다.

인류와 나머지 전부의 대전쟁이 진행 중인 이 땅에서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리온은 십여 번을 죽었다.

희우가 수호천사처럼 따라다니며 회복시키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용사 후보생은 유배자의 사고방식을 익힌다.

죽기 직전이라면 죽은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기에 알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러셀이 평했다.

“과연,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배자로 만들어버리는 거군.”

“러셀, 당신은 어떻게 굴렸는데요?”

“나는……. 솔직히 말하지. 주민들에게는 주민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 그편이 후유증이 없긴 하죠.”

“저런 식이면 사람이 망가지니까.”

러셀은 인간을 좋아한다. 나아가 인류를 좋아한다.

조금 지켜보며 느낀 바로는 나이트 크로우를 자처하는 것은 결국 그 연장선이었다.

그런 그에게 히어로 유닛이기에 그 서버를 벗어날 수 없는 용사는 온전히 그곳의 주민이다.

“저도 사람을 봐가면서 굴립니다. 저런 스트레오 타입의 용사는 잘 버텨낼 거예요.”

“못 버티면 어떻게 하나?”

“기억을 지우죠. 감정이란 결국 기억에서 나옵니다. 멘탈 보존에는 최고죠. 저도 제 스스로 지운 기억이 좀 있어서.”

“…….”

아니, 왜 그렇게 또 미친놈처럼 보는 거야.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리온이 우리 천사를 보는 눈빛 알겠습니까?”

“음, 저런 건 확실히. 사춘기 소년다워.”

“이미 우리 천사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리온은 그 강함에 아름다움에 깊은 인상을 느낀 듯하고요.”

“흠.”

“동경하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말 그대로 수호천사처럼 곁에서 보듬어준다면 뭐든지 이겨낼 수 있죠. 용사들이 왜 전부 소년기인지 압니까?”

“…… 가장 무모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겠지.”

“아, 역시 러셀 씨는 말이 잘 통한다니까.”

첫사랑에 의한 맹목, 그리고 점차 동경으로 변해가는 사랑.

유배자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버팀목이다.

우연찮게도 리온은 희우에게서 이미 그것을 찾았다.

그 사랑이 순탄하게 끝나지는 않을지 몰라도, 힘을 손에 넣기까지의 버팀목은 되리라.

죽음의 순간마다 나타나서 구해주는 아름다운 수호천사라.

완전 그림이 되잖아.

이건 이용할 수 있다.

러셀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모르겠군.”

“아니, 거기서 그렇게 말하면 갑자기 저만 미친놈 되는 거 아닙니까.”

“미친놈이 맞다.”

뭐, 그건 인정하도록 하지.

“그래도 곱게 미쳤지 않습니까.”

러셀이 내 눈을 마주 본다. 그리고 올곧은 내 눈빛에 감화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목소리는 좀 떫지만.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군.”

“흐흐, 우리는 역대 최강의 용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아, 그래.”

희우가 녹초가 된 리온을 들고 날아왔다.

단 하루 만에 살이 빠진 게 보일 정도였다. 잘 먹여야겠군.

이 경우 식사는 맛있을수록 좋다. 내가 요리를 배운 가장 큰 원인이다.

삶의 버팀목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식도락은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고 말이다.

구경도 해본 적 없는 식재로 요리된 눈부신 맛을 즐기며 리온이 미소 지었다.

약간 영혼이 외출한 듯한 상태의 공허한 미소였다.

내가 마주 앉아 식사하며 다음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 여긴 청소했으니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아직 밀림의 중심에 도전하기엔 약하니까 환경에 변화를 주자고.”

“어, 혹시 밥 먹고 바로입니까?”

“흠, 어디 보자. 3시간은 쉬도록 해줄게.”

용사 후보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갈 곳이 많다. 잡몹 처리는 리온에게 시키겠지만 결국 우리 파티 파밍의 일환이다.

지금 이곳에 없는 에길은 이미 트롤용 양손 도끼를 들고 익숙해지려고 훈련 중이다.

그린스킨과 연관이 큰 밀림의 심부 같은 곳엔 전사를, 나아가 트롤과 오우거를 위한 장비들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화산, 빙하, 심해, 지하도시.

리온의 육성과 우리 파티의 파밍을 위하여 가 봐야 할 곳은 너무 많다.

눈이 좋은 사수라는 이유로 주변 정찰에 투입되어있던 블랑쉐가 식사를 위해 돌아왔다.

혈액팩을 쭉쭉 빨고 있던 미아가 그 모습을 보고는 마법 교실을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블랑쉐는 미아보다 먼저 내게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얻어 가는 게 있는 모양이더군. 혹시 나는 뭔가 없나?”

흠, 말하는 걸 깜빡했나?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굴러가니 놓치는 게 생긴다.

“있지. [언더 그라운드 유적]에서 찾을 수 있는 아티팩트들은 사수를 위한 총기도 많아.”

“음.”

블랑쉐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마법을 배우러 갔다.

탱커를 뚫을 수 있는 총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의 레일건은 어디까지나 아티팩트로 보일 정도로 훌륭할 뿐, 아티팩트는 아니니까 말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하드스록]을 사냥하는 일은 좀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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