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70화
43서버 – Lv.1365 용사 키우기(6)
다시 리온의 시점에서 한 달여가 더 지났다.
그간 어린 용사 지망생을 좌절케 하는 요소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이 유배자 파티에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다.
그것도 리온 본인보다도 어려 보이는 아이가.
작은 몸집에 폭신폭신하게 컬이 들어간 은발을 늘어뜨린 붉은 눈의 마법사는 리온에게 아주 친절했다.
얼마나 친절하냐 하면, 무시무시한 리더의 눈을 피해 슬쩍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다.
“화염 저항 마법 몰래 도와줄까?”
“앗, 아니. 괜찮아.”
“그래?”
화산 분화구의 용암 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악어를 상대해야 하는 참이었다.
이번 목표는 저 분화구 속의 지옥 같은 환경을 헤치고 들어가면 용암 속에 잠겨 있다고 한다.
장비는 주어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장비일 뿐이다.
죽지 않을 정도의, 단숨에 죽지만 않을 정도의 불 저항력을 제공한다.
용암의 바다에서 생존하기에는 턱도 없는 정도다.
그랬기에 리온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건다.
무릇 용사된 자, 마법에 능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후읍!”
마법이 몸을 감싼다. 느껴지는 열기는 그대로지만, 피부에 가해지는 부담이 거의 사라진다.
푹하고 파고들었다.
용암은 점성이 높아 끈적끈적했고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마력적인 시야를 사용해야 한다.
익숙하지 못한 탓에 멀리까지 볼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을 익히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마법 교실의 수강생이 되었다.
처음에 리온은 그 사실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교실의 교수님인 은발의 자그마한 마법사는 틀림없이 리온보다 어리지만, 끔찍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훈련 덕이다.
마법사를 상대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대련을 하게 되었다.
전력을 다해도 된다고 했으나 조금 저어되는 부분이 있었다.
피떡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결코 자신이 손대중을 할 상대가 아니다.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찍어 눌러질지도 모른다.
전투의 순간 한없이 진지하게 서른여섯 발의 디버프를 박아 넣고, 속박 주문만 다섯 개를 추가 캐스팅한 후, [헬 파이어]를 때려 넣으려던 전율스러운 모습에 리온은 그만 아래가 샐 뻔했다.
아니, 사실 약간 샜을지도…….
“멍청아! 쟤는 그거 맞으면 죽어!”
“……죽어요?”
그 당시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다시 본 마법사의 눈빛이 조금 연민을 띄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과연 강한가? 강해지고 있기는 한가?
이건 제대로 된 게 맞나?
번뇌는 늘어만 간다.
그러나 적들이 그것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 법이다.
용암 속에서도 느껴지는 존재감의 거대한 악어가 보인다.
리온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효율적이다.
팔다리를 잃는 정도만 아니면 어떻게든 된다.
자신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지난 시간동안 확실하게 느꼈다.
사고방식은 착실하게 개선되고 있었다.
* * *
우주전이라면 이미 겪었지만 미궁에 존재하는 온갖 거지같은 환경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정말로 어느 곳에나 몬스터와 보상이 배치되어 있고 가 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었다.
현실이 되어서도 그것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희우가 말했다.
“어째 저때보다 더 열심히 굴리는데요?”
“내가 계속 지켜볼 수 없으니 속성으로 주입하는 거야.”
그럼, 사심은 결코 없다.
희우가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뜬다.
“혹시 질투해요?”
“아니니까. 조용히 해.”
“흐응, 난 완전 좋은데. 저만 바라보는 건 가끔 아쉽다고 할까.”
“걱정 마. 달은 태양 없이 빛나지 못하니까.”
“엥? 제가 태양이에요?”
“그럼.”
“뭔가 별로예요. 달 할래요!”
“달의 공주?”
“그거 좋네요!”
문 프린세스 파워로 사정없이 용서해버릴 거 같은 발언이야.
희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요즘 미아가 리온한테 되게 잘 해주는 거 알아요?”
“뭐?”
몰랐다. 그러나 의식하고 나니 짚이는 곳이 있다.
마력의 흐름을 몇 번인가 느낀 적은 있었는데, 빠르게 되새겨 보니 리온을 어딘가로 투입할 때였다.
도와준다면 그 타이밍이긴 하지. 흠, 혹시 얘도?
“그건 아니고 모자란 남동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게 그렇게 되는 거야?”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파티에선 미아가 막내잖아요.”
“확실히, 제니도 존중받고 있고 그런 감이 있긴 하지.”
백전노장이거나 하다못해 왕국과 서버에서 잔뼈가 굵은 제니와 다르게 미아는 순수하게 고아 출신이다.
클랜원으로서 뭔가 했던 것도 아니니 모든 경험이 우리 파티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란 원래 동생을 원하는 법이라구요.”
“너도 그랬니?”
“막내여서 좀 그런 느낌은 있었죠. 제 밑에 아무도 없다는 건 어딘가 허전하고 섭섭하고 그런 기분이에요. 그래서 저 마음은 알 것 같아요.”
뭐, 사실 희우가 미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딸이라기보단 여동생 같긴 하다. 그런 발로였군.
솔직히 말해서 희우의 가정 사정을 생각하면 어머니에 대한 인풋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미아도 어쨌건 리온을 새로운 막내로 대한다라……. 모자란 남동생…….
감정을 숨기는 것엔 영 재주가 없는 미아이니 뻔히 드러나고 있을 것이다.
리온의 자존감이 괜찮을까 모르겠네.
그리고 화산 분화구의 용암 호수에서 첨벙 하고 리온이 솟아 나왔다.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던 미아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얼른 가서 용암을 식혀 떨어뜨려 주는 것이 뭔가 느껴진다.
제 키보다 훨씬 크다 보니 마법을 동원해 둥실 떠올라서 머리도 말려주고 아주 그냥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좀 이상하긴 하다.
“희우야. 저게 아주 마음이 없는 걸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 여기 연애 고수 같은 건 없다. 나도 잘 모르겠다.
* * *
부단한 개인 교습도 진행되고 있다.
에길은 장병과 중병의 무기술을 가르쳤고 천사님은 기습에 대해 가르친다. 리온은 어째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전장에서 어떤 무기를 손에 쥐게 될지는 자신이 고를 수 없다.
온 세상이 불타는 와중이다.
뭐든지 할 수 있는 편이 좋다.
상성이라는 개념도 배웠다. 일반적으로 나이트 크로우 등에서 말하는 상성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정말로 이 세상에 정해진 법칙마냥 존재하는 상성.
자연스러웠기에 의심해 본 적은 없으나 물리법칙이라는 개념에 더해 실전에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리온은 두들겨 맞는 역할이다.
에길에게 두들겨 맞았으며, 블랑쉐에게 바람구멍이 났고, 천사님에게 그래플링으로 제압당했다.
그나마 제니와는 어떻게 싸움이 성립은 되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
고양이귀 요정은 그런 식으로 배려를 해주었다.
“저 사람들 다 괴물딱지거든. 못 이기는 게 정상이야. 막 실망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물론 그렇게 말하는 제니도 쓰러진 리온을 밟고 선 채로 속삭이는 건 다를 바 없다.
리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여섯 번의 숨겨진 던전을 돌았다.
이 던전이라는 말도 생소했으나 익숙해졌다. 유배자의 용어이리라.
그리고 지도를 본 리온도 눈치챘다.
여섯 개의 히든 던전은 육망성의 꼭짓점에 위치해 있다.
“이제 마지막이야. [언더 그라운드 유적]이군.”
“지하에 있을 것 같은 이름이네요.”
용암 화산의 보스였던 ‘지층에 새겨진 히드라’를 썰어버린 후 저렇게 태연하게 말하고 있다.
기사단의 성과도 비슷한 크기로 용암 호수를 들이마셔 비워 버리고 솟아난 그 괴물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었다.
일단 머리가 100여 개에 가까운 생물이 대체 뭐란 말인가.
그가 태어난 대륙은 상상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었다.
하긴 현실감으로 친다면 해저 신전을 삼켜 버리고 나타난 거대한 고래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고래라고 불러도 되었던 걸까? 뭔가 좀 더 다른 생물이 아니었을까?
그 외에도 그치지 않는 태풍 속에서 걸어 다니던 천둥의 거인이라거나, 사막의 움직이는 피라미드라거나.
그런 모든 모습이 용사의 뇌리에 생생히 새겨져 있다.
리온은 자연스럽게 로켓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이번 발사가 마지막인가요?”
“발사로서는 마지막이지. 우리가 급한 일은 다 끝났으니까.”
“혹시 이런 마경이 이 세상에 더 존재하나요?”
“열 개가 넘게 존재할 수 있는 연계 던전 중 하나를 끝냈을 뿐이니까. 위치를 알려줄게, 혼자서 도전할 수 있도록.”
고통이 끝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반대로 아쉬움도 찾아왔다.
싱숭생숭한 무언가였다.
“괜찮아. 이후에도 계속 볼 거 같으니까. 지금은 왜 그런지 말 못 해주겠지만.”
“그런…….”
“자! 리온 7호 발사!”
“발사!
이제 몸에 걸리는 G도 익숙해졌으나, 말하고 있는데 냅다 쏴버리는 건 참아줬으면 한다.
* * *
하늘 위의 섬. 자못 장엄하게 검고 각진 기둥들이 솟아 있는 거대한 구조물.
이런 것이 떠있는 데도 어째서 지상의 햇빛이 가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런 것까지 모두 신비하니 히든 던전이라고 불릴 것이다.
일단 이름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전혀 언더 그라운드가 아닌데요!”
“그 언더 그라운드가 지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
“기천사가 나오는 곳이었죠?”
몽환의 숲에서 에르메스의 경험으로 불러낸 적이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착하려면 각 봉인을 해제한 후 이렇게 그 중심에 있는 하늘 유적으로 와야 한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그냥 어쩌다가 운이 나빠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도 책정되어 있다는 점이 미궁의 무서운 점이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언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해. 여긴 선주문명의 흔적이거든.”
“그런 설정도 있나요?”
세상을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군. 자연스럽게 저런 말도 나오고 말이야.
“원래는 그냥 편의주의적 설정에 맥거핀이었는데, 왕국 상공과 지하에도 번외 던전 같은 게 있다는 건 들었지?”
“네.”
“그것도 선주문명의 흔적이지. 먼 옛날 멸망한 위대한 옛 존재. 대충 그런 거야.”
신화라면 욤스비킹 출신인 에길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 없다.
“혹시 신을 말하는 것인가?”
물론 중세 바이킹식 사고에서는 벗어난 지 오래다. 에길에게도 미궁에서의 경험은 쌓여 있으며, 나는 최대한 게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강요해 왔다.
“아마도, 그럴걸요. 떡밥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그 옛 문명이 만든 게 신좌니까요.”
「뭣이?!」
요즘 조용하던 여신님이 화들짝 놀란 신언을 보내왔다.
뭘 그리 놀라신담.
“여신님, 신은 흔히 미궁의 죄수라고 일컬어지지 않습니까.”
「그래! 혹시 그거냐?」
“죄수는 탈옥할 수 있죠. 그 조각 중 하나입니다.”
신들을 지상으로 불러올 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시간이다.
리온 덕에 편해졌을 뿐, 원래부터 언젠가는 할 일이었다.
어차피 이걸 써먹는 건 지금이 아닌 나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일단 이거 지금 우리는 못 깨.”
에길이 고개 끄덕인다.
“그럴 만도 하군. 신좌와 연관이 있는 던전인 것 아닌가. 레벨 스케일링부터 차원이 다르겠군.”
“그러니 싸우지 않고 전리품만 털어온다. 대마탑에서 털어온 성물과 우리 기천사가 나설 차례지.”
“제가요?”
요정은 요정 NPC 들을 상대할 때 이득을 보고, 난쟁이는 난쟁이 NPC들을 상대할 때 이득을 본다.
그 경우에는 우호도 따위지만, 천사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같은 천사라면 그것만으로도 날로 먹을 수단이 생기는 법이다.
일단 행운의 성물 한 포대를 꺼냈다.
본래 정공법으로 뚫긴 많이 힘든 곳이다.
누군가 뚫어내더라도 난이도 대비 전리품의 균형이 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임 시절에도 온통 꼬아서 숨겨둔 컨텐츠니 별수 없다.
이미 현실이 된 미궁에서 어떻게 게임 파일을 뜯어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