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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77화 (27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77화

43서버 - Lv.3365 언더 그라운드(7)

상정 외의 상황은 언제나 일어난다.

나는 상황을 조금 늦게 파악했다.

파티원들의 임기응변을 완전히 신뢰한 탓도 있지만, 여신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에서는 늘 지켜봤지만 왕국 이후부터는 교세가 확장되며 그러지 못하고 계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전투에서는 어김없이 훈수 두는 관전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기에 여신님의 경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리온이 죽었다고? 아니, 잠깐만. 그게 아니라 미아가 뱀파이어화 시켰다고요?’

생각을 여유롭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포인트 대부분을 투자하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여러 가지 유니크 스킬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도 맞지만, 마법 쪽으로 더 특화할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공격력은 제한적이지만 이미 완성되어 있다.

조커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이상 추가적인 기능을 확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포지션은 엄밀히 따지면 가장 앞장서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짬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공격에 무기를 가져다 대고.

적의 시체를 방패 삼아 비겁한 공격을 구사하고.

수시로 뒤쫓아 오는 에길의 뒤로 숨으며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뱀파이어인 나는 천사들에게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약점으로 보이기에 대부분의 천사가 나와 에길에게 묶여 있다.

그런 행동을 수행하며 꼬여 버린 상황을 장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문제가 없다. 네 딸이 지키고 있다.」

확실히 지금 미아의 주변은 완전히 안전지대나 다름없다. 어둠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저 주변이 더 위험하겠지.

플래시백 되는 수많은 끔찍한 기억들을 보고 싶지 않다.

지워 버린 기억도 가끔 되살아나서 고생하기 때문에 진짜로 사양이다.

지금도 흑염의 주변에는 가능한 다가서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장애물로만 활용 중이다.

천사들 역시 다가서기 힘든 곳이니까.

개활지가 아닌 좁은 곳이라면 기동력과 자유비행의 장점은 크게 퇴색된다.

‘검은 곰 길드원들은 잘 버티고 있습니까?’

대답에는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미아나 제니에게 고개를 돌려 좀 보라고 말한 것이겠지.

「아직…… 까지는?」

과연 정예 탱커들.

손쉽게 짓눌려도 이상하지 않은 고레벨 천사의 격류를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대열의 교대 숙련도가 아주 높다. 스킬 쿨다운도 서로가 제대로 파악 중인 모양이군. 하지만 이제 사상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긴 쿨다운의 액티브 스킬들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는 뜻일 거다.

다음 타임까지 기다릴 수 있냐의 문제겠지만 어렵다고 본다.

‘일단 여기를 다 정리하고 나서 생각하겠습니다.’

「그래. 당장 파티원 중에 죽은 이는 없다.」

그렇게 말하며 흑염의 사이로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냉기를 품은 검은 불길이 뻗어 나간다.

그 뒤편에서 돌아 들어오려던 천사 하나가 불이 붙어 바닥에 추락했다.

함부로 다가가지 않고 최대 사거리에서 정확히 급소만을 찌른다.

죽진 않아도 죽을 때까지 의식을 차리진 못하리라.

그리고 보스 룸에 가득 차오른 어두운 불꽃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아가 뱀파이어화하는 작업을 끝내고 마법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적들을 조이고 활동 반경을 극단적으로 좁힌다.

하지만 아무리 약점 속성인 어둠이라도 천사를 완전히 제압할 수는 없다.

결국 다른 파티원들이 막타는 제대로 쳐야 한다.

그럼에도 한결 쉬워진 것은 분명하다.

여유가 잠깐 생겨 탱커들을 살핀다.

미아의 흑염이 그쪽 방향으로도 움직이고 있다.

뒤편을 알 여유가 전혀 없었던 탱커들이 기겁을 한다.

“거기! 조금씩 물러나요! 쉬게 해줄 거니까!”

바깥의 천사들은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천사들에 비해 레벨이 낮다.

고밀도로 응축된 강력한 어둠의 원소가 쏟아진다. 천사의 격류가 주춤했다.

그럼에도 눈이 돌아간 바깥의 천사들은 불길에 휩싸인 채 안쪽으로 뛰어들지만, 버텨내는 검은 곰 길드원들이 훨씬 편안해진 것은 분명하다.

전황이 극적으로 유리해지고 있었다.

* * *

미아는 결국 아빠에게 조언을 구해야 했다.

여신님 역시 큰 힘을 다루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전문적인 마법사는 아니다.

여신님의 견해는 대부분 두들겨 맞아보며 익힌 것이고 디테일한 사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아빠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이 파티의 유일한 마법사로서 스스로 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다.

마법은 미아의 삶이요 끝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축적된다. 미아는 큰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의 마법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배우고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견본도 있었다.

미아가 하고 싶었던 것은 13층에서 보았던 그 장엄함의 재현.

하나의 목표이자 이정표로서, 마도의 길을 걸어나가는 마법사로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미아가 처음 본 별빛.

공허한 우주를 가로지르던 어두운 빛줄기를 재현할 때다.

마법사가 직접적으로 천사를 제압하는 것은 효율이 나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약한 이들의 변명인 것이다.

몸과 일체화되어 있던 노심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그사이 자신을 구성하는 어둠을 끊임없이 복제하여 다시 내뱉고 있던 마력로는 더욱더 커져 있다.

통제하지 못한다면 세상을 삼킬 어둠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제어하는 것은 오로지 미아의 정신력이었으니까.

우주공간도 아닌 곳에 이런 것을 풀어놓는다면 끊임없이 유적을 통해 새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한 국가를 멸망으로 이끈 후에야 잦아들 것이다.

어떻게 다루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같은 실습은 다시 있기 힘들다.

미아는 지팡이를 쥔 팔을 내뻗었다.

그러는 동시에 아직 의식이 없는 어린 뱀파이어 리온을 발로 밀친다.

어둠이 호응하여 물리력을 발휘한다. 쓰러진 엄마 옆으로, 아마도 안전할 그곳으로 보내 버린다.

이 보스룸은 완전히 미아의 장악하에 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안다.

짙은 어둠이 방출되자 천사들이 몸서리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민 손이 붕괴하는 것 역시 보였다. [피의 샘]이 소모되며 재생한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가깝다.

피의 소모는 점점 더 가속되고 있다. 어차피 언데드화시킬 것이니 리온의 피를 한계까지 빨았다.

그렇게 회복했기에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농밀한 마력이 신체에 좋을 리가 없다.

일부 병기들이 남기는 잔흔인 방사능조차도 마력의 일종에 불과하다.

못지않은 힘을 다루며 몸에 아무런 부하가 가해지지 않을 리가.

조금씩 흐릿해지려는 시야 사이로 손가락에 걸려 있던 링 몇 개가 부서져 흩어짐이 보인다.

대신 부하를 감당하다 내구도를 다한 것이리라.

더 이상 유지할 수도 없다.

더 낮은 스펙으로 둘을 동시에 유지하고 되쏘아낸 아빠는 어떤 영역에 도달하였는지 아직도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실마리는 잡았다.

어둠의 구체가 압착된다.

점점 크기를 불려 나가던 힘이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

그 비명은 빛과 번개가 되어 새어 나온다.

이제 어둠에 민감하지 않은 파티원들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깨달았다.

검은 곰 길드의 탱커들도 깨달았다.

압착되어 사방으로 여파를 흩뿌리기 시작한 구체의 조준점이 그들의 방향이었다.

누군가 숫자를 세어줄 필요는 없었다.

베테랑인 그들은 정확한 순간 몸을 날려 사선에서 벗어났다.

13층에서 미아가 보았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노심 자체를 탄환 삼아 가속하여 발사했다.

단 일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옳겠으나.

지금은 좀 더 지속력 있고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구체화된다.

어둠이여 빛이 되어라!

발사의 순간 사방에 들끓던 흑염도 빨려들어 왔다.

공간을 잡아 늘인 듯 부자연스럽게 주욱 늘어나며 불길이 잡아먹힌다.

의지에 의하여 압축된 어둠의 구체에 길을 낸다.

결정화되기 직전이었던 원소가 풀어준 방향으로 새어나간다.

그것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어떤 현상이었다.

어둠은 빛이 되었다.

가장 마력의 본질적인 형태인 입자이자 파장으로서, 가시영역에서는 일직선의 빛줄기로서.

그러는 동시에 물리적 압력마저 지닌 채 직선의 복도를 꿰뚫었다.

아다만타이드 복도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일그러졌다.

형태가 변하고 달아올라 녹는다.

그러나 차가운 어둠은 그것을 식혀 다시 형태를 강제로 유지시킨다.

물질계에 그대로 현현하기에는 지나치게 파괴적인 힘이, 미처 부서지지도 못하는 복도 사이를 내달렸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빛조차 사라지는 검은 광선이 지나온 던전 전체를 되짚어간다.

들이닥치던 천사들의 생명을 헤집으면서.

* * *

한창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43서버의 대륙.

함대결전이 이루어지고 있던 상공에 정체불명의 빛줄기가 나타난 것이 같은 시간이었다.

뒤늦게 농밀한 어둠의 원소임이 판명된 그 현상은 30여 초간 지속되었으며 단지 그 30초만으로도 무수한 여파를 낳았다.

난쟁이들의 순양함들이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직 여명기의 마도공학은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막대한 어둠의 원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마법사들은 그 직후, 마법의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소의 균형이 완전히 붕괴했다.

국지적으로 마법은 먹통이 되었다.

마도공학 역시 먹통이 되었다.

쏟아지는 어둠 속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병기들을 부여잡은 난쟁이들은 어쩔 수 없는 후퇴를 선택해야 했다.

43서버를 거점으로 둔 하이랭커로서, 인간 측의 전력으로 참전 중이던 일그림과 에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 어느 인간들 짓인지 알 것 같지 않아?”

“흠. 도움이 되었으니 문제는 없다.”

레베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뭘 어떻게 한 것인지 해석이 잘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일개 마법으로 되는 일인가?

맥에게 푸념하고 싶었으나 시티즌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별일은 없기를.

레베카는 조용히 입술을 삐죽였다.

미아가 한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참이었다.

“저런 걸 뿌려대면 이 전장에 한동안 언데드가 창궐할 텐데.”

“그 미래에서 소식 들은 ‘죽은 자의 땅’이라는 지역이 이렇게 만들어진 모양이군.”

“아……. 그게 그렇게 된 건가!”

나서서 제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후 많은 유배자와 대륙의 모험가들에게 생업을 제공하는 위험지역이 되니까.

끊임없이 번져 나가는 죽음의 땅은 모든 종족들이 우주로 진출하여, 더 이상 이 좁은 대지를 두고 다투지 않게 된 시기에나 사라졌다.

그 이전까지는 발생시키던 경제적 효과가 너무나도 대단했던 탓이다.

여러 시간대를 넘나들다 보면 이런 부분에서까지도 유배자의 영향력을 느끼는 법이다.

“43서버를 좀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주면 좋겠어…….”

일그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투창을 던져 추락 중인 순양함 하나를 꿰뚫었다.

* * *

리온은 눈을 떴고, 자신에게서 무엇인가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파티 리더와 마법사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음 역시 느꼈다.

“어, 저기. 어떻게 된 건가요? 천사님은 무사하신가요?”

“음, 완전 무사하지. 지금 잔당을 정리 중이야.”

사방에 천사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다.

위치는 아직 보스룸인 것 같으나 전투가 끝나진 않았다.

달려 들어왔던 복도 쪽에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럴 것이 아니라 합류해야.

일어서는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몸을 낮추고 바닥을 짚는다.

그제야 몸 상태를 깨달았다.

그간 단련한 힘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공허하다.

아니,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무언가도 사라진 것 같다.

동시에 한 가지 더.

무언가. 왠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사명이 그의 어깨를 떠났음 역시 느껴졌다.

그것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일이었다.

“어 어?”

“일단 이거 마셔.”

혈액팩이라 당황했으나 놀랍게도 그 맛은 달았다.

“잠깐만요. 저 혹시?”

“아, 그래. 뱀파이어가 돼 버렸어. 혹시 그 뭐 왠지 모르게 느껴지던 압박감? 지향점? 사명감? 그런 거 아직 남아 있니?”

리온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게 사라진 줄 어떻게 아시는 거지?

그리고 리온은 처음으로 이 파티의 리더가 성대하게 낭패한 표정이 되는 것을 보았다.

“아, 망했는데. 용사는 유사 히어로 유닛이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고 어떻게 안 되는데.”

“죄송해요…….”

“아니지. 죄송은 이 친구가 해야지. 어쨌든 살린 건 좋은 생각이었어. 잘했어.”

리더와 마법사의 대화를 들으며 리온은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시 떠올렸다.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정신이 들고나니 깨달은 사실이다. 아마도 천사님은 그때 그의 판단만큼 위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어 달간 유배자와 함께했다고 사고가 완전히 전환될 수는 없는 법이다.

팔 다리 한두 짝 없어지는 것은 생채기에 불과한 것이 유배자인데.

“아, 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리온에게 리더가 설명하기 시작한다.

인류의 중요한 운명을 쥐고 있는 히어로 유닛의 존재, 리온이 그 후보였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방금 리온은 그 자격을 잃었다.

용사 후보생은 그 혼자만이 아니다.

제대로 ‘용사’가 되기 전에 인간이 아니게 되면서 상실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곳에서 태어난 또 다른 용사 후보생이 용사가 될 뿐이다.

리더가 맥 빠진 얼굴로 말한다.

“리온, 그럼 이렇게 된 이상 말이야.”

“네…….”

“마왕이 되어줘야겠다.”

“네?”

“오해 하지 마. 다른 용사 후보생을 죽이란 말이 아니니까.”

[마왕].

악마의 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용사의 대적자를 뜻하는 것이자 스킬이다.

용사 자격을 상실한 리온이 획득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니크 스킬이었다.

“나이트 크로우로 돌아가라. 그리고 세상을 떠돌며 용사를 찾아서 키워라. 마왕만큼 그걸 하기 쉬운 자리가 또 없어. 운명으로 엮여 있기에 용사가 존재하는 한 만나게 되어 있지.”

리온은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렴풋이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당했던 걸 그대로……?”

비로소 리더가 활짝 웃는다.

“똑똑하군. 그러기 위한 힘이라면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오르골 클랜의 뱀파이어가 된 것을 환영한다. 이건 클랜 마스터로서의 명령이야.”

리온은 뭔가 자신의 인생이 아주 대차게 꼬였음을 느꼈다.

“그리고 아직 훈련은 더 남았어. [마왕]도 쉽게 되는 건 아니거든?”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이제 대충 윤곽이 잡힌다.

종적을 감추었다는 용사는 애초에 리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용사가 이상할 정도로 강했던 것도 이유를 알겠다.

리온이 붙어 다녔겠지. 애초에 용사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르골 클랜의 뱀파이어 로드 중 하나로서 온갖 강력한 지원을 받고, 마왕으로서의 보정까지 받는 리온이 말이다.

원래 자연 발생하는 마왕은 용사 후보생 중 타락한 녀석이 라이벌처럼 성장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운 것을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유배자의 소양 아니겠는가.

용사로서의 마음가짐이나 강함이란 무엇인가.

그런 교훈들을 공들여서 뼈에 새겨준 녀석이 여기 있다.

이놈이 알아서 하게 해두고, 마지막에 용사의 시련이 되어주든가 해서 각성시키고 칭호를 날름해야겠다.

일단은 검은 곰 길드 양반들 이야기도 좀 들어봐야 하니 한동안 신경 쓰기 어렵다.

일이 끝나고 마저 진척상황을 보자고.

일단 넌 죽었어.

뱀파이어는 클랜 마스터의 사유물인 법.

사고를 친 만큼 부려 먹어주마.

심지어 마왕은 용사의 부산물이기에, 용사 일대기가 끝나도 그대로 서버를 떠날 수 없는 용사 본인과도 다르다.

구체적으로는 용사가 사명을 다하는 순간부터는 히어로 유닛이 아니다!

“우리 서버로 데려가야겠군.”

거기서 용사를 하나 더 키우게 하면 되겠다. 비상시에 리프트와 관계없이 현지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할 전력도 되고 말이야.

그쪽 인간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규율의 신을 견제할 수도 있겠군.

리온 정도는 되어야 대성녀 메이릴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톱니가 착착 맞아 들어간다.

미궁은 이런 재미가 있다.

사실은 이렇게 된 거군 하고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그리고.

“아티팩트가 셋이라. 신좌 부품을 빼도 남는 장사야.”

바깥의 천사들이 모조리 정리 되고나자 마침내 보상이 손에 들어왔다.

선주문명의 기술이 깃든 장비.

본래는 까는 순간 결정되는 랜덤 보상이지만 아예 행운의 성물을 몇 개 깨부수며 깐 결과, 블랑쉐와 에길이 사용하기 꼭 좋은 것들이 나왔다.

성물을 전혀 아끼지 않았더니 이제 슬슬 몇 개 안 남았으나 이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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