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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78화 (27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78화

왕국 - Lv.3212 [하드스록](1)

러셀은 자신이 지원 담당으로 물러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르골이라는 사내의 방식은 비록 랭커인 그조차도 질릴 정도긴 했으나 강함을 가장 빠르게 주입하는 방법임은 확실했다.

하이랭커급 파티에 껴서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하는 일.

그 정도 급에 들어서 보지 못하여 정보도, 능력도 부족한 러셀은 베풀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43서버의 인류를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물러섬.

대신 그 방식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모르던 여러 가지 숨겨진 던전에 대하여는 꼬박꼬박 메모하고 있다.

언제고 다시 쓸 일이 있지 않겠는가. 그가 유배자로서 수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달리는 좀 편해지기도 했다. 적어도 이제 습격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다만 본디 러셀이 할 일을 오르골이 대신 해주는 셈이니 그에게도 일은 있었다.

솔로 플레이로 랭커에 도달할 정도면 모든 일에 능숙해야 한다.

몰래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 뒷조사를 하는 일은 낯설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다만 이번엔 그 대상이 하드스록이다.

그러기 위해 이 국가에 오랫동안 뿌리를 박고 있어 왔던 사람을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누가 봐도 나이트 크로우스러운 복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리에 찬 무기, 각종 소모품, 클래스에 대한 정보 따위를 숨기는 데는 망토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얼굴을 가리는 후드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복식이다.

그렇게 기다린 곳은 트롤 같은 거대한 종족들이 이용하기에도 지장이 없는 음식점이었다.

그다지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다.

애초에 하드스록에 덩치 큰 종족을 위한 식당은 흔하다.

문도 달려 있지 않은 입구로 트롤 하나가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더니 이미 앉아 있는 러셀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중간에 주문도 하고 여유롭게 걸어온다.

러셀은 그 여유에서 저 트롤이 바깥에서 고위공무원을 역임했단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통성명조차 한 적 없다. 저 트롤은 제 가명조차 밝히는 법이 없다.

가능한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느껴졌다.

참으로 노회한 트롤이다.

의외로 늙은 트롤은 멍청하지 않고 도리어 교활해진다고 하니 또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삼의회의 일원, 신전과 신앙을 총괄하는 트롤 의원이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러셀.”

“귀찮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저돌적인 건 여전하군. 아직도 인류를 위해 어쩌고 하며 나이트 크로우 코스프레하나?”

“코스프레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진심이니.”

“하나 보군.”

트롤이 멋쩍게 웃었다. 아직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못한 채 던진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하고 있다면 진심이겠지. 솔직히 말하면 전에 보았을 때도 멀쩡한 놈은 아니구나 생각했어.”

“최근엔 나 정도면 평범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긴 했지.”

“그 선배님을 만났나?”

“알고 있다면 편하군. 정보를 얻으러 왔다. 우리가 썩 친하진 않아도 그 정도 거래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

“좋지.”

러셀은 오르골 파티의 정보를 푸는 것을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하드스록]은 어차피 알고 있을 것이다. 규율의 신이 알고 있으니.

하지만 삼의회 정도의 애매한 선이라면 모른다.

정보는 유배자로서 높은 곳에 도달할수록 점점 더 중요해진다.

트롤이 주변의 엿듣기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간단한 마법 도구다.

“알고 있겠지만 때가 흉흉해. 그쪽 선배님들도 아무래도 나나 그 용인 녀석보다는 마이어를 신뢰하는 것 같고.”

“그럴 수밖에. 네놈의 음흉함은 척 봐도 누구나 알지 않나.”

“쯧, 항상 이렇게 살아온 걸 어쩌겠나. 신들도 가만 보면 정치인이랑 별로 다를 게 없거든.”

“하지만 그래서 네놈에게 온 거다. [하드스록]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지? 최근 동향부터 해서 말이야.”

“지금부터 이야기해 볼까.”

그릇이 왔다. 거대한 덩치 이상으로도 빠른 신진대사를 가진 트롤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러셀이 들어가 목욕을 할 수도 있을 만큼 큰 그릇에 고기가 잔뜩 담겨 있다.

“가끔은 이런 싼 맛도 그립지.”

상대가 고기를 뼈째로 씹어 먹는 가운데 러셀은 샌드위치를 씹었다.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는다. 겉에서 본다면 평범한 인간 전사와 트롤 전사의 합석으로 보일 것이다.

서로 단답형으로 교환이 이어졌다. 각자 아는 것이 상대에게는 귀중한 정보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여 둘 다 아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결국 하수인인 셈이다.

서로의 뒤에 누가 있는지 모두 아는 상황에서 트롤이 말했다.

“재밌게 돌아가는군. 우린 이제 살아남을 생각이나 해야지. 어디 공표도 못하고 말이야.”

“침공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말인가?”

“그래. 그건 사실이야. 너도 알지 않나?”

“…… 나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공이 시작되면 리프트에 들어 있던 모든 유배자들은 왕국으로 강제 송환 당한다.

그저 각 서버로 도망치는 것만으로 쉽게 넘길 수 있다면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말이라고 불릴 리도 없다.

트롤이 제안했다.

“러셀, 난 너를 싫어하진 않아. 솔로로 랭킹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지.”

“본론만.”

“이쪽으로 붙는 게 어떤가?”

“그쪽이 어디지?”

“[하드스록]이다. [더 시티즌]이 아닌 [하드스록] 말이야.”

러셀은 그 말의 진의를 가늠키 위해 잠시 침묵했다.

“갈라서는 건가?”

“그래.”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을 늘어놓을 수 있는 트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진심일 거라고 여겨졌다.

러셀은 충분히 고평가받고 있다. 적어도 어디선가 객사하기에는 아까운 인재라고 평가 받는 게 확실하다.

이것은 일종의 스카웃 제의였다.

“내가 일그림과 엮인 쪽인데도 그런 제안을 하나?”

“그 녀석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하이랭커라고 해봐야 중간쯤에 머무는 녀석들은 경영자들을 이길 수 없어. 알지 않나.”

확실히 그건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지배체제가 공고했던 것이니.

그러나 이제 변수가 있다. 이미 [아케인]의 두명을 제거함으로서 자신을 증명한 변수가.

“그건 방심이지.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보나?”

“모를 일이지.”

정말로 모를 일이다. 어차피 둘 모두 각자 등에 업은 하이랭커의 진면목을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러셀은 자신이 어차피 이렇게 배제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용사 후보생 아르바리온을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비밀이 드러날 것이고, 그것을 자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삼의회의 일원인 트롤 역시 마찬가지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하드스록]은 그동안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왕국을 리셋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네. 그래서 요새를 만들었지. 대량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요새를.”

트롤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내가 보기엔 가장 생존확률이 높아. 어차피 [더 시티즌]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을 테니까.”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 그럼 끝이다.

하지만 [하드스록]은 다르다.

이전 같았으면 솔깃했을지도 모르겠다.

러셀은 한 가지를 물어보아야 했다.

“클리어할 생각은 있나?”

“클리어?”

트롤이 어이없어하며 반문했다.

“그런 도시전설을 아직도 믿고 있나. 그딴 건 없어. 이 미궁이 우릴 놔줄 생각이 있는 곳으로 보이나? 무엇보다 나는 바깥이 하나도 그립지 않아.”

“[하드스록]도 그런가?”

“그래. 대체 왜 클리어를 노리나? 그건 바보들의 꿈이야.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바보들의 꿈. 여기가 아직도 게임 같나?”

그 냉소적인 말에 러셀은 그만 웃고 말았다.

“뭐가 우습지?”

“아니. 그렇다면 없던 일로 하지. 아무래도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이니까 말이야.”

트롤이 멍해졌다.

“그 선배님은 진심으로 클리어를 노리는 건가? 그래서 [아케인]도 [하드스록]도 용납하지 못하고?”

씹던 고기를 내려놓는다.

“미치광이로군.”

“나도 그렇지.”

“그래. 그렇군.”

트롤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미치광이잖아. 그들이 메인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왕국에서 공격받는 우리는 무슨 죄인가? 그걸 대체 누가 바란다고?”

러셀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나 같은 미치광이들.”

트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없었던 말로 하지.”

그릇을 밀쳐 버린다.

“입맛이 떨어지는 말이군. 후. 너니까 한마디 더 하겠다.”

러셀은 가만히 기다렸다.

“마이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놈은 너무 낭만적인 바보야. 뭐라고 해도 제 맘대로 하겠지. 용인은 아마 [더 시티즌]에 붙겠지. 그 간잽이 녀석은 항상 강한 곳에만 붙으니까.”

“너는 [하드스록]에 붙고?”

“맞아. 삼의회는 이제 곧 끝이야. 가능하면 하드스록을 떠나길 추천하지. 차라리 어디 산골짝에 홀로 숨어 있는 편이 생존율이 높을 거야.”

“새겨듣지.”

러셀은 예의상 그렇게 말했다.

* * *

“흠. 그래요?”

“그렇다더군.”

러셀이 삼의회의 일원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독고다이라고는 해도 정말로 모든 것을 혼자 해낼 수는 없다.

파티원 같은 긴밀함이 없을 뿐, 인간은 결국 사회적인 동물이다.

도리어 솔로로 랭커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처세에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한을 잔뜩 사고 다닌다면 이미 어딘가에 묻혔을 테니까.

“말이 되는군요. 그럼 [하드스록]은 지금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뜨뜻미지근한 태도도 이해가 된다. 여신님도 알 정도로 오래된 ‘그분’이라는 녀석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텐데.

그건 시티즌이다.

물리적 거리도 있고 거기서 뭘 하라고 하니 하는 척은 해야 해서 이러고 있었을 뿐이지.

그저 침공을 대비하고 살아남은 후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을 뿐인 것이었다.

“하지만 클리어는 전혀 생각이 없다?”

“솔직히 말하지. 그건 네가 아니라면 누구도 생각이 없을 거다.”

“그건 맞죠.”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까지 해먹다가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다.

지배자를 쳐내고 자신들이 온전히 지배자가 되고 싶어 할 가능성도 있고, 어떤 경우건 썩 편안한 기분은 아닌데.

“그래서 특별히 나를 경계도 안 하고?”

“제 할 일 하는 거겠지.”

“노골적이네.”

얕본다기보다는 우리를 신경 쓸 정신도 없는 거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드스록]의 멤버는 모두 4명.

그리고 [아케인]과는 다르게 메인 파티 외에도 길드원으로 다양한 파티를 두고 있다.

그 모두를 수용하는 지하요새를 건축 중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대충 뭘 하려는지 알겠다.

상당히 많은 인원을 아군으로 삼아 침공을 이겨내고 그대로 [더 시티즌]도 밀어버리겠단 거지.

그 정도 전력을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 파티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적은 [더 시티즌]이니까.

레미와 혼돈의 교단이 생각보다 아무런 견제도, 아니, 그걸 넘어 관심조차 못 받은 이유도 알겠다.

온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럼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문을 두드리러 가야겠네.”

불필요하게 죽일 필요는 없다고 말해두자.

유배자는 의외로 그런 부분이 또 좋다.

사지를 철저하게 못 쓰게 만들고 포션병을 빼앗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도마뱀처럼 자꾸 재생하니까 가능한 방식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다른 것이다.

“아서가 있다고요?”

“그 아서가 맞는 것 같다. 노인이 되었다더군.”

“내가 아는 아서는 나이 서른 정도로 생성되는데.”

“적응한 고정 NPC지. 보통이 아닐 거다.”

나이 70먹은 아서라고?

잠깐 생각을 해보자. 희우가 상대할 수 있을까?

상성이 나쁘다.

에길이 상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최강의 고정 NPC 유배자’ 아서왕은 철저한 중장 전사다. 무기도 가리지 않고 방패에 거부감도 없다.

시간이 흐른 만큼 레벨도 어마어마할 것이며 애초부터 아서왕은 40년 차 설정이다.

현재 이 파티에서는 상대할 수 있는 것이 나뿐이다.

레미에게 갔다.

혼돈의 교단을 운영하며 46서버의 열쇠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와중이다.

당연히 시중에 내게 필요한 것이 나돈다면 구입해 달라고도 요청했었다.

“인간 카드요? 여러 장 쟁여두긴 했는데요.”

“그래. 잠깐 [용사]를 해야겠다.”

“용사?”

“그런 게 있어.”

“흐응, 몸조심하세요.”

리온과 키 아이템을 조율하여 용사를 주웠을 시기로 간다면 당장 칭호를 딸 수 있다. 포인트는 많이 모아두었다.

레벨 감소가 좀 있겠지만 [용사]를 생각하면 이득이다.

고마워. [피의 군주]. 그동안 잘 썼어.

[용사] 자체도 계속 사용할 생각은 없지만 원래 거쳐 가는 과정으로는 딱 좋다.

클랜 마스터는 미아에게 주자.

내가 인간으로 돌아가면 우리 천사님이 가장 기뻐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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