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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79화 (27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79화

왕국 - Lv.3212 [하드스록](2)

언제 적이 올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게 이제 먼저 치면 되는 깔끔한 상황으로 정리가 끝났다.

하드스록에 둥지를 튼 지도 오래고 이미 여기서 일주일은 보냈음에도 아무 입질이 없는 이유가 밝혀졌기 때문.

리프트만 드나들며 얼굴을 가능한 비치지 않던 생활을 유지할 필요도 사라졌다.

실무를 담당하는 삼의회조차도 각자 생각이 다르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건 신경 쓰는 이는 없다.

「규율의 신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더군.」

“자신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 아닐까 합니다. 신좌는 그런 곳이니까요.”

「그것도 맞긴 해. 결국 신이 하는 모든 행위는 취미생활 같은 거니까. 제대로 안 되면 그뿐인 일이지. 자기 목숨이 달린 것도 아니니까.」

“여신님처럼 자살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생각하면서 왜 그냥 목숨을 주진 않으셨습니까?”

죽음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모든 신도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도전자에게 쓰러지면 될 뿐인 일을.

「쪽팔리는 소리는 왜 하는 거냐……. 사람의 감정이란 원래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이 그렇게 추…… 추했지.」

“알고 계시니 다행이긴 합니…… 윽!”

말하는 와중 신벌이 내렸다. 머리 위로 양철 세숫대야가 떨어졌다.

피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였고, 대야에 구멍이 났다.

“아야야. 신벌 내릴 신앙도 있으시고 요즘 잘 풀리시나 봐요?”

「사실 난 아직 한 게 없지. 레미와 헨리가 너무 잘해주고 있다. 가끔 조언이나 해주고, 네 말대로 신도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신언을 내리고 그러는 게 전부지.」

“그거 엄청 바쁜 일 아닙니까?”

성직자의 나라에 신전이 세워질 정도라면 메이저한 신좌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신전에 존재만 하며 교세는 별 볼 일 없는 신들은 많다.

「아니, 사실 신도는 별로 안 많아. 그냥 아는 신들이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을 뿐.」

이 왕국 최초의 신.

그 무시무시한 인맥이란…….

“그, 혹시 권능 확률 조작 몇 번 더 해주실 생각은…….”

「싫어! 너 신 해봤다며. 그거 할 짓 아닌 거 알지 않느냐.」

그렇긴 하다. 제 존재가 깎여 나가는 느낌.

신으로서 고정된 영혼이 손상되는 그 느낌은 단순히 사령술이나 마법적인 영혼간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일이다.

기억을 잃는 등의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고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자신이 아닌 남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네가 두 번 그걸 사용하기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존재인지도 잘 모르겠다.」

“견딜 수 있을 수준에서만 썼습니다. 이젠 회복되고 있겠지요.”

「가능하면 좀 마지막 한 번도 안 썼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시지만 비상시에는 또 기꺼이 도와주시겠지. 내가 바라지 않더라도 입을 벌리고 떠 넣을 것이다.

“뭐, 스스로는 추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심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좀 귀여우시긴 했으니까요.”

「흠? 그러냐? 내가 또 좀 한 귀여움 하지.」

“짜리몽땅하신데 귀엽기라도 하셔야…… 윽!”

한 대 더 맞았다.

의외로 키에 진지하게 신경 쓰시나?

하긴 유배자로서 나이가 쌓여가며 외형과 괴리되는 경험은 썩 좋진 않을 것이다.

짝수 층에서 엄청 피곤해지니까 말이다.

「길쭉한 것들 다 죽어! 내심 동지라고 생각했던 녀석들도 쑥쑥 커버리질 않나! 이제 미아뿐이야!」

“생각보다 많이 진심이셨군요…….”

「자연스럽게 바위 난쟁이라고 생각되는 설움을 네가 아느냐! 웃어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뭐, 어쨌든 신좌의 부품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군요. 그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머지까지 찾으면 신좌로 통하는 길을 열 수 있겠죠.”

「내 시대에 나 정도면 작은 게 아니었는데……! 음, 그런데 보통 게이머라고 불리는 녀석들도 그렇게 자세히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넌 그걸 왜 아는 게냐?」

“겜창과 게이머는 좀 다른 겁니다. 그냥 클리어만 하고 접으면 모르죠.”

무수한 게이머들 중에서 시스템을 구석구석까지 다 꿰고 있는 것들은 또다시 한줌이다.

아무리 유튜브 에디션이 발달해도 그걸 찾아보는 녀석들은 또 한줌인 탓이다.

뭐 게임이 더 흥했으면 모르겠는데 하는 놈들만 하는 게임인 감이 좀 커서 말이지.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모양이군. 아무튼 기대하고 있으마. 다시 왕국에 발을 디딜 날을…….」

아직 신좌의 부품이 가지는 기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완성하려면 2개를 더 모아 조립해야 한다.

지금은 이렇게 꿈에서나마 신좌의 위치로 가서 잡담하는 정도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대로 사용하려면 신 역시 기능을 알고 호응해야 한다.

아마 지금껏 손에 넣은 유배자는 있어도 그 가능성을 아는 사람까진 적었겠지.

꿈의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기상할 시간인 모양이군.

인간으로 돌아오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체온의 상승이다.

뱀파이어는 아무래도 몸이 서늘하다보니 좀 더워진 기분, 혹은 온도를 더 차갑게 느껴 서늘해진 기분.

그런 여러 가지가 동시에 감각을 교란한다.

며칠 있으면 익숙해지겠으나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이제 몸을 마음대로 재생할 수 없단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비행 기능이나 소환 기능도 사라졌다.

인간 종족으로서의 나를 머릿속으로 짜 맞추며 눈을 뜬다.

덥다.

“아니, 잠깐만. 이건 그냥 더운 게 아니잖아.”

얇은 이불 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들어있다.

확 들쳤더니 희우가 보였다.

날개는 다소곳하게 접고 옆에 바싹 달라붙어서 자고 있다.

새근새근 숨소리는 고르고 평안하다.

“네 방은 여기가 아닐 텐데. 어?”

하얗고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잡고 죽 늘린다. 젖살은 빠졌어도 원래 뺨이 동글동글한 편이다.

늘어나는 뺨의 반대편으로 침이 흘러 굳어진 자국이 보였다.

“얼씨구.”

내 옷자락으로 슥슥 닦아주었다.

매끄러운 피부 위에 들뜨듯이 붙어있는 침자국은 쉽게 사라진다.

“으, 기름 묻었어.”

피지분비가 왕성할 나이인가? 천사의 개기름이라니. 하지만 그래서 반들반들 윤이 나서 더 반짝반짝해 보이는 것도 웃기다.

어차피 종족 특성상 피부 내구도는 무적이나 다름없으니 아무 상관없겠지.

잠깐 자는 얼굴을 감상했다.

항상 어딘가 분위기를 깨는 부분이 있다. 지금도 침만 닦아놓으니 전형적인 여신계의 미형이다. 늘 떠 있는 치기 어린 표정이 없으니 더 좋다. 좋군. 아주 좋아.

흐트러진 희우의 잠옷을 조용히 수습해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혹시 모르니 밤새 뭘 당했나 좀 확인해보자.

물론 그런 건 없다.

그냥 혼자서 못자는 아이 같은 감각으로 들어온 건가.

“그나저나 침입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잠은 안 자고 피로도 없는 언데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본데.”

반성 또 반성.

침대에서 일어나 적당히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면 신전이다.

혼돈의 교단은 병원을 중심으로 많은 구호사업을 벌이고 있다.

돈은 연방이 무제한적으로 제공 중이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졸지에 하드스록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 된 레미가 고생일 뿐.

자게 내버려 두고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천사가 눈을 번쩍 떴다.

“어? 오빠 일어났어요? 나도 깨워야죠! 옷 갈아입고 올게요!”

날개까지 펴고 바람을 일으키며 제 방에 들어가더니 ‘매지컬 환복!’ 같은 미친 외침이 들려온다.

또 달려와서 찰싹 달라붙기에 일단 꿀밤을 때렸다.

“아얏! 왜 때려요!”

“아니, 천사 머리 더럽게 튼튼하네! 내 손이 더 아프다 이놈아! 그리고 사과는 네가 먼저 해야지. 왜 남의 침대에 들어와 있어!”

“그동안 손도 못 잡았으니까! 벌충!”

허리께에 손을 딱 짚더니 스스로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자신만만하고 바보 같은 얼굴이 된다.

“여자는 끊임없이 사랑의 증거를 갈구하는 생물이라고요! 스킨십은 사랑의 증거, 애정의 증표! 그리고 저한테는 복리적용이니까 빨리 벌충하세요. 자! 자! 여기 완전 이쁘고 귀엽고 섹시한 천사 애인을 자유롭게 허그할 찬스! 대 바겐 세일!”

중간부터 듣지 않고 그냥 안아줬다. 이히히히 하면서 좋아하는 소리가 품속에서 울린다.

“내려가기 전에 잠깐 이리 와봐.”

희우의 방으로 들어가서 빗으로 머리 빗겨주고 얼굴도 닦아주고 눈곱도 떼준다.

천사의 눈곱은 또 신성을 띄고 있어서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

“으엑, 하지 마요! 씻고 올게요!”

“어허, 세수도 똑바로 못하는 녀석이!”

“아니야! 괜찮아! 이런 거 보여주기 싫어!”

몸단장을 끝마치자 희우가 풀이 죽었다.

“저도 할 수 있는데. 스스로도 잘하는데!”

“그럼 있다가 미아 일어나면 미아한테 해줘.”

“앗! 그럴까요!”

슝 날아가서 자고 있는 미아의 방 앞에서 기다린다.

약간, 텐션을 현실이 못 따라가고 있는 상태인가? 너무 신이 나서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리온이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냥 내버려 두고 아래로 간다.

조금 있으니 예정대로 검은 곰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찾아왔다.

레미의 안내로 들어온 그는 일단 무릎부터 꿇었다.

“의뢰는 거부하고 위약금도 그대로 돌려주고 왔소. 이제 우리는 당신과 적대하지 않소이다.”

“일어나서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 별로 악감정도 없으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특별히 위험한 적도 아니었다. 단지 방패 전사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기 좋은 상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그 사실을 알겠지만 굳이 강조하는 것은 꼽주는 것과 다름이 없지.

좋게좋게 대하자고.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하드스록의 의뢰를 까버린 이상 이곳에 남아 있기도 곤란할 것이다.

정확히 그 니즈를 관통한다. 갈 곳을 제공해 주기.

“어차피 당신들 성직자의 나라로 갈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의뢰라고 생각해 주면 고맙겠군요.”

손가락을 딱 튕기자 레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상자를 들고 왔다.

블랙 베어 앞에서 그 상자가 열린다.

나한테는 보이지 않았다.

“어……? 어…….”

“소문은 들으셨을 것 같은데. 우리가 남는 게 재화와 재료들이거든요? 신앙 갈아타라고는 안 할 테니까 이거 받고 거기서 호위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게…….”

“그 편이 그림도 좋고. 어차피 혼돈의 교단이 거기 새로 짓는 신전도 있어서 숙식도 해결되고 어떻습니까?”

물론 하이랭커라면 자신이 믿는 신의 교단에서도 대단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탱커인 저들의 신은 철벽의 신이다.

그리고 그 신은 메이저한 신이 아니다. 탱커 자체가 숫자가 적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 도달하기는 더욱 힘들다.

두들겨 맞는 것이 일인 포지션이다 보니 사망자가 많아서다.

거기에 권능이 수수한 점도 있어 교세가 큰 경우는 드물다.

이번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직자의 나라에 철벽의 신의 신전이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

만신전의 일원으로 끼여 있을 뿐인 마이너 신이다.

애초에 신의 성향으로 보아도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 교단의 운영이나 교세의 확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였다.

마치 마법의 신처럼 말이다.

마법의 신이야 마법사들은 일단 믿고 보는 신이니 그래도 관계가 없겠지만, 철벽의 신이라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검은 곰 길드는 틀림없이 철벽의 신의 가장 중요한 신도지만, 그 신은 그 사실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이다.

그런 신도 있는 법이다.

그저 영생에 만족하고 신좌에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의를 두는 신.

신언도 신탁도 내려온 적이 없겠지.

하이랭커라면 그런 신의 성향도 제대로 알고 있다.

간섭이 없으니 편하다고 여기고 고르는 녀석들도 있다.

어차피 권능을 처리하는 것은 신좌의 일이니 신이 아무 간섭하지 않더라도 문제없다.

블랙 베어는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재보였을 것이다.

사실 나도 저 상자에 뭐가 들어있는지 구체적으로는 몰랐다.

우리 교단의 실무진은 대전사인 내가 아니라고!

그래서 블랙 베어가 물러가고 나서 슬쩍 물어보았다.

“뭐가 들어 있었어?”

“케이오스 엑스프레스 센추리온 카드요.”

“엥?”

“은행이랑 카드 사업 시작했거든요. 모르셨어요?”

몰랐는데. 요즘 보고서 들어오는 것을 좀 대충 보기는 했다. 리온에 집중한 탓도 있고.

“나는 안 주냐?”

“여기요.”

레미가 품속에서 카드를 꺼낸다.

재질이 무려 미스릴. 지구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검은 디자인이다. 혼돈의 보랏빛이 은은하게 감돈다.

그에 새겨진 마법은 엄청나게 고도한 것이다. 이런 걸 만들 정도의 능력자들이라면…….

“아케인의 협조를 듬뿍 받고 있지요. 리더가 거기 학장님 생명의 은인이라면서요. 거기에 이런 걸 한다고 하니 마법의 신께서도 재밌어하시던데.”

“흠, 요즘 좀 관심을 안 가졌더니…….”

“파고들 수 있는 곳은 모두 파고들어야죠. 시티즌에서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레미가 피식 웃었다.

“그 녀석들에게는 무한한 재력과 마법의 신까지 닿는 인맥이 없었죠.”

이건 쉽고 어렵고,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을 보통은 하지도 못할 거다.

“너 너무 일 크게 벌이는 거 아니야?”

“아니, 뭐 최선을 다해 왕국을 교단의 이름 아래로 제압하라고 하셨잖아요. 헨리 대신관님이랑 이야기도 많이 해보았고 여신님과도 의논해 보았는데. 그냥 해보고 아니면 말지?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거예요.”

“하긴……. 망하면 망하는 거긴 하지.”

아니, 그래도 말이야. 정도라는 게 있지 않아?

레미가 계속 말한다.

“다들 튜토리얼에서 수십 년씩 구르고 왕국에 자리 잡으니 머리가 굳은 거 아닐까요? 건물이나 기술 같은 건 현대 지구처럼 올려놓고 사는 건 왜 그렇게 주먹구구인지.”

눈을 가늘게 뜨고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짓는 얼굴에 뭔가 품격마저 느껴지려고 한다.

“좋은 건 다 해봐야죠. 독과점한다고 세금 폭탄 때리고 해체시킬 정부가 있는 것도 아닌 세계인데.”

그야 보통 그렇게까지 안 하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침공으로 갈려 나갈 거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어서이기는 하겠지만…….

레미가 다가와서 눈을 애교 있게 치켜뜬다.

“그러니까, 그 침공인지 뭔지 막아주셔야 해요?”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저걸 받아갔다는 건 저 검은 곰씨는 그럼 그냥 그거 아니냐?”

“사실상 우리에게 고용된 거죠. 천문학적인 연봉으로. 하이랭커면 그럴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요?”

“세상에.”

“서부 슬럼의 왕과도 최근 교섭 중인 참인데 용병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선 최강에 가까웠던 검은 곰을 손에 넣었네요. 일이 더 쉬워지겠어요. 시티즌의 ‘협회’와도 이야기해 볼 수 있어질 것 같아요.”

좋아, 레미는 정말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약간 무섭다.

그래서 여신님께 슬쩍 물어봤다.

‘혹시 저거 다 여신님이 생각하신 겁니까?’

「난 몰라. 쟤가 다 알아서 해버리더라고.」

‘막내, 아니, 헨리 신관이 한 일도 아니고요?’

「레미가 뭔가 제안할 때마다 온화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해되는 녀석들을 적극적으로 치워 버리긴 하더군. 근미래 마약 카르텔이라고 했나? 진짜겠던데. 아, 오해는 하지 마. 설득부터 하긴 해.」

‘만약 거기서도 계속 거부하면 엔젤이 날아갔겠군요…….’

「그 요리사……. 사람도 잘 요리하더라.」

힘과 돈을 쥐어준 것은 내가 맞다.

그러나 그것을 실시간으로 권력으로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은 레미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에 몇 번 도움은 줬던 거 같긴 한데, 언젠가 부터는 단순히 보고만 날아오더라니.

‘이 카드 이거 뭐 사용자는 많습니까? 안 그러면 의미가 없을 건데.’

「성직자의 나라부터 공략 중이다. 거기 랭커들은 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기도 귀찮지 않겠냐.」

‘이런, 그래서 제가 몰랐군요.’

레미라면 왕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지도 않을까?

갑자기 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잘하는데?

약간 혼란해진 머릿속을 가다듬으며, 이젠 혼돈의 신전 본점이 되어버린 병원 건물 뒤편으로 간다.

에길이 새로 뽑은 매끄러운 검은 도끼를 휘둘러 보고 있다.

블랑쉐도 총신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좋아. 집중하자. 아직 [용사]를 취득한 것도 아니며 새 무기에 적응도 시켜야 한다.

[하드스록]은 강할 것이다.

자리에 앉아 마인드맵을 열었다.

상당부분이 초기화된 나의 우주는 더 이상 배경에 붉은 기운이 없다.

혼돈의 보랏빛 기운만이 남아 넘실거리고 있다.

뱀파이어일 때, 대부분의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보존했기에 레벨 손해도 거의 없었다.

빠르게 합산하면 현재 내 레벨은 2112.

짧은 기간 동안 177이나 더 올라갔다.

이 수준에서 이렇게 레벨 업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리온도 고생했지만, 우리 파티원들이 더 고생했으니 당연하다.

막판에 천사 대부분을 쓸어 담은 미아가 2400가까이 되어 최고레벨이 되어버린 점이 우습긴 하지만.

명상하듯 앉아서 포인트를 하나씩 투자하기 시작했다.

레바테인은 한손 검이다. 아서의 엑스칼리버가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있다면 양손 검이다.

그 점을 고려하며 빌드를 설계한다.

빛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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