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284화 (28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84화

왕국 - Lv.2908 [웨펀 마스터] 카롤리(1)

지옥석의 폭발은 강력하다.

그리고 그 폭압에 의한 추진력 역시 강력했다.

방패인지 뭔지 모를 판떼기가 나타나고, 그것이 쏘아져 오는 것을 보며 카롤리는 감탄했다.

“미친놈들인가……!”

그러나 동시에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상인의 발상은 아니다.

미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안정을 추구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죽음이 끝은 아닐지라도 한 세상의 끝인 것은 사실이다.

그곳의 인연도, 장비도, 능력치도 그 무엇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한다.

카롤리는 유배자가 된 순간 생각했다.

스포츠 스타로서의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말이다.

이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긴 하겠으나 그것은 전혀 다른 삶일 뿐이다.

그는 매번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죽기 싫어 최선을 다한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트롤이라는 종족 선택도 그래서다. 잘 죽지 않기 때문이며 그 강인함이 마음에 들어서다.

그런데 저렇게 목숨을 내던지는 미친 발상이라니 미처 해보지 못했다.

사실 생각은 해봤다. 하나 생각은 하더라도 실천으로 옮겨본 적은 없다.

그야말로 미치광이의 행동!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군!”

유니크 스킬 [웨펀 마스터]

유니크 액티브 [달인의 병기창]

사수들이 다량의 총기를 보관하기 위해 흔히 쓰는 전용 차원 수납 주머니 ‘병기창’은 이 스킬을 보고 카피한 것이다.

당연히 카피는 열화되어 있다.

[웨펀 마스터]는 모든 무기의 마스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모든 무기를 제공한다.

무기의 내구도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웨펀 마스터]의 무기는 끝이 없으며, 본인과 함께 성장한다.

지금은……. 창이다!

라고 생각했다.

날아드는 상대 파티의 앞을 가리고 있던 공간 균열이 치워졌다.

거대한 은빛 드래곤이 전조 없이 출현했다.

카롤리는 흠칫했다.

드래곤? 규율의 신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적에 드래곤은 없었다.

그런 수준의 고위 종족이 또 존재한다면 싫어도 소문이 날 것이다.

천사나 악마, 혹은 거인만 되어도 동네방네 널리 알려지는 법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엄청난 흡입력이 발휘되었다.

“바람의…….”

공기가 없으니 목소리도 낼 수 없다.

정령왕!이라고 하는 뒷부분은 뻐끔거리는 입 모양으로 대체되었다.

카롤리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기에 대책은 있었다.

일부 불운한 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한순간에 진공에 가까울 정도로 공기가 빨려 들어감에도 버티고 있었다.

그 불운한 이들도 다들 한가락 하는 자들이다.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으되 실제 스펙과 실력은 준하거나 이상인 자들.

빨려 들어가는 이들을 건져오는 마법사들도 있다.

훈련은 효과적이었다.

‘좋은 돌발 상황! 그리고 좋은 대응!’

그러나 저 정령왕이 빨아들인 대기가 어디로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 공기는 그대로 빛이 되었다. 압축이라는 영역조차 넘어서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이 감지된다.

멀리서 보아도 눈부실 지경이다. 저건 아마 내버려 둬도 제멋대로 마력을 토해내겠지. 이미 바람의 원소로 만들어진 마력로다.

정령왕이 입을 벌린다.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의 정령을 불러온 정령사들도 몇 명 있다.

단순한 최상급 정령부터 대정령도 있으나 비장의 무기는 그것이 아니다.

하반신이 없는 거대한 조각상이 땅에서 치솟는다.

드래곤과 드잡이질할 만큼 강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몸체에서 느껴지는 원소의 기운은 짙은 흙내음이 난다.

대지의 정령왕이다.

카롤리가 외쳤다.

입만 뻐끔거린다.

다시금 대기가 없음을 깨달았다.

음파로 뜻을 전달하는 대신, 온몸으로 정령사에게 웅변한다.

창을 집어넣고 병기창에서 방패를 꺼내들었다.

창으로 맞대응? 죽는다. 전사는 방패 역시 잘 사용해야 전사인 법이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스프링처럼 도약한다.

트롤의 강인한 다리가 대지를 박차는 순간 땅이 짓눌리고 무너지려고 하지만 정령왕이 그 작용을 지탱했다.

그만큼의 힘이 고스란히 반작용이된다.

날아드는 상대의 드래곤과 비슷할 정도의 속도로 카롤리는 비행을 시작했다.

정령사는 그렇게 나서는 카롤리의 뜻을 알아들었다.

대지의 정령왕에게는 바람 드래곤이 내뿜는 숨결에 대응하는 대신, 다른 해야 할 일을 한다.

이곳이 한순간에 진공이 되었다는 것은 주변 산맥부에 존재하던 무수한 대기가 빨려 들어온다는 뜻과도 같다.

그것은 폭력적인 힘이요 자연재해에 가까운 파괴다.

폭풍이 다가온다. 북부 눈덮인 산맥의 눈과 바위를 머금고 막대한 물리력 그 자체의 격류가 되어 휘몰아친다.

계약자의 의지에 호응하여 대지의 정령왕이 주먹을 내려쳤다.

사방에서 바위 장벽이 일어난다. 요새가 폭풍에 직격하지 않기 위한 방벽이 솟구친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카롤리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눈앞에 집중한다.

먼 곳에서 들이닥치는 눈이 뒤섞인 폭풍, 그리고 훨씬 가까운 위치에서 그것을 일으킨 용이 아가리를 벌린다.

여의주라도 물고 있었던 것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원소의 광구가 번뜩였다.

눈부신 광선이 시야에 새겨진다.

눈을 부릅뜨고 타이밍을 잰다.

유니크 액티브 [달인의 병기창]에서 만들어진 방패는 단단하기 그지없다.

트롤인 그의 특성과 전사인 그의 클래스에 맞추어 더없는 자가 복구력과 질기디질긴 내구도를 지닌다.

[패리]에 실패하더라도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트롤은 재생으로서 탱킹을 하는 전사.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그리고 카롤리는 정확한 타이밍을 보았다.

지금!

번뜩이는 패리와 함께 광선이 방패에 닿…… 지 않았다.

응축되어 빛을 낼 정도로 달아오른 공기의 기둥은 자연스럽게 휘어져 그의 뒤편으로 날아갔다.

용맹한 트롤 하이랭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 어디가!’

* * *

패링에 순순히 당해주는 게 바보다.

그리고 바보들은 마법적 공격이 언뜻 광선의 형태를 띤다면 무심코 빛의 성질을 떠올린다.

빛은 직진한다.

하지만 실피드의 브레스는 단지 고도로 응축되어 플라즈마화된 공기포일 뿐이며, 원소 그 자체인 정령왕은 그것을 자유자재로 퍼뜨릴 수 있다.

일점 집중의 파괴적인 공격으로 보였다면 착각이다.

수천수만 갈래로 갈라진 탄이 상대의 진영을 향해 날아간다.

다발탄두를 지닌 미사일과도 같은 광경이다.

못해도 랭커급인 적 병력을 상대로 충분한 살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란은 충분하다.

상대에게도 정령왕이 있었던 것은 의외지만, 대지의 정령이다.

바람과 함께 물리적인 원소이되 더 방어적이며, 결정적으로 바람보다 느리다.

단순히 폭풍을 막기 위해서만 펼쳐진 방벽이 추가로 보강되지는 못했다.

폭격이 사방을 때린다.

방벽을 무너뜨릴 힘은 없으나 그 사이 사이로 파고드는 무수한 열기와 압력과 마력적 폭발이 부상자를 만들고 순간적이나마 마비시킬 것이다.

거기에 모든 마력을 털어 넣었기에 실피드는 이전과 달리 상당히 오랫동안 전장에 존재할 수 있다.

내 의지에 호응하여 정령왕이 자신의 원소를 통제한다.

몰려드는 폭풍은 순식간에 우리를 따라잡는다.

그 후폭풍을 타고 가속한다. 바람을 지배하니 이동은 그 무엇보다 빠르다.

언젠가 고블린들의 전차로 했던 것처럼, 처음의 추진력에서 점점 더 가속한다.

정면 돌파?

게임에서 정면 돌파는 정문으로 들어갔다는 뜻일 뿐이다.

결코 모조리 때려 부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일점집중으로 뚫고 들어와 보스와 마주한다면 그것이 정면 돌파다.

그리고 그런 정면 돌파에는 상식을 초월한 발상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정령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규율의 신이 알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규율의 신이 아는 것은 그게 다였다.

그는 정보를 팔았겠지만, 왕국에 도달한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신은 바쁘다. 제 목숨이 달리지도 않은 일에 얼마나 열심이었을까?

그러니 알려지기를, 엄청나게 유능한 전직 하이랭커인 나.

상식을 초월한 기초 스탯의 전직 하이랭커인 희우.

미아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튜토리얼에서는 아직 전력 외였으니까.

언제나 한 발짝 이상 앞서는 것은 이래서 좋다.

실제 전력 이전에 상대가 생각 못한 대처와 스펙을 방심의 틈새로 찔러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패링에 실패한 트롤은 날아드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거리를 벌려 이탈하려고 드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잠깐 하늘을 보았다.

기천사의 날개는 그리 강인하지 않으나, 만들어내는 추력은 강인하다.

한순간의 진공에 자세 제어가 흐트러졌겠으나, 적들 사이에 발생한 혼란으로 견제가 사라졌다.

희우가 내리꽂힌다.

[슈퍼 히어로 랜딩]

트롤이 눈을 크게 뜨며 무기를 들어 대응하려고 한다.

하지만 공중에서 저런 일격을 받아내면 쉽지 않을 것이다.

내리꽂히는 희우를 향해 잘했다고 엄지를 들어주었다.

그 와중에도 슬쩍 나를 본 희우가 윙크로 화답한다. 아이구 귀여워라.

산맥의 뿌리를 파고 산중턱을 지붕 삼아 무수한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 요새의 아래를 실피드를 타고 이러지러 빠져나간다.

몰아치는 폭풍과 함께 올라탄 방패가 요란하게 적진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러셀이 봐두었던 지하로의 입구 중 하나다.

정령왕이 세운 방벽이 무너진다.

일단은 에길이 장비한 판정인 방패가 내구도를 다하고 산산조각난다.

아다만타이드도 아닌 저 철판때기가 감당해야했을 충격이 너무 거대했으리라.

“좋아, 우리는 돌입하지만, 뒤에서 처들어오는 건 곤란해. 그러니 여기서 장판파 할 사람?”

“저요!”

미아가 손을 들었다.

적절하다. 미아가 아니라면 에길이 적당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대화하는 사이에도 실피드의 유지시간은 소모된다.

1분 정도 더 남았을까. 엄청난 속도로 소모되고 있다.

[용사]는 마력량에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능 쪽에 그다지 투자하지 않아 나의 보유 마력량은 썩 높지 않다.

바람 결정을 모두 소비해 일시적으로 튀겼을 뿐, 단독으로 정령왕을 운용하는 것은 힘들다.

1000레벨이면 운용가능하다는 것은 1000레벨동안 마력량에만 포인트를 다 때려 박은 정령사의 이야기일 뿐.

그리고 애초에 정령왕은 소환수라기보다는 강력한 지속 장판기에 더 가까운 존재다.

불러낸 동안 뽕을 뽑고 돌려보내야 한다.

빠르게 판단한다.

어차피 지하로 들어가면 바람의 원소는 상대적으로 희박해진다.

대지와 불이 가득한 지옥도겠지. 정말로 지옥까지 뚫어뒀을지도 모른다.

침공의 군세를 지옥의 괴물들과 싸움 붙이는 것은 또 좋은 꼼수다.

준비 시간이 너무 필요해서 그렇지.

카베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날을 대비해 온 것일까?

어쨌건 시간도 얼마 없는데 실피드를 아래로 데려가는 것은 낭비다.

미아에게 묻는다.

“저기도 정령왕 있으니까. 실피드 빌려줄게. 괜찮지? 실피드?”

[물론이죠.]

“좋아요! 실피드! 귀여워!”

실피드가 얼른 드래곤의 몸에 미아와, 그 호위인 제니를 물어 올려 태웠다.

맡겨둔 후, 이제 안쪽을 보니 후퇴중인 병력들이 보인다.

우리가 그 사이의 맥을 끊어버린 모양이다.

아니, 가만 보면 이미 상당수가 요새 안쪽으로 진입해 있다.

불안한 기둥으로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것부터 해서 모두 의도겠지.

깊고 깊게 파진 던전과도 같은 그들의 요새로 침공의 군세를 최대한 끌어들이며 후퇴한 끝에 생매장.

어쩌면 지금 [하드스록]은 우리 파티의 공격을 일종의 훈련으로서 활용 중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왕국을 위하고 있군.

그러다보니 약간은 친선전 느낌도 나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패하더라도 [하드스록]은 우릴 죽일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역시 그렇다.

결국 같은 생각을 하되 의견이 다를 뿐이다.

저쪽은 클리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메인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왕국을 방어할 병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견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퍼포먼스를 보이는 무대인 셈이다.

이런 침착하고 온건한 태도 또한 늙을 대로 늙은 유배자 특유의 것.

카베 같은 케이스뿐만 아니라 오래 묵은 신에게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지.

우리 여신님처럼 말이다.

세월은 하이랭커로서 살아온 자의 도전 정신도 꺼뜨린다.

이렇게 불타는 곳에 근거지를 마련하고도 식어가는 잔불이라.

카베의 생각을 좀 돌려보자.

압도적인 힘으로!

* * *

희우는 [아케인]의 경우보다 [하드스록]이 더 쉬울 거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전사는 정직하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정직하게 병장기를 부딪쳐 올 수 밖에 없는 클래스다.

마법사처럼 함정을 깔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대가 아니다.

강력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물론, 기천사로서 마법사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스펙의 문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리꽂은 충격파가 거대한 크레이터를 새로 만들고 기둥 하나를 무너뜨렸다.

트롤은 살아 있었다. 방패를 들고 있었던 탓이다.

물론 방패가 산산조각 나고, 트롤도 약간 다치긴 했으나 포션조차 필요 없다.

종족적 특성이 즉시 상처를 재생해 낸다.

희우는 그대로 연격.

트롤은 어디선가 검을 꺼내 방어한다.

상대의 무기와 부딪히면서 느낀다.

근력이 강하다. 흘리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흘리도록 두지 않는다.

불꽃이 번뜩이고 날개가 진동한다.

초음속까지 가속할 수 있는 몸체로 3미터 신장을 가진 트롤의 온 사방을 교란한다.

그때 상대의 뒤편에 무언가 펼쳐졌다.

사수들이 활용하는 병기창과도 같은, 하지만 더 눈부시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진열대.

한순간 펼쳐졌고 환상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트롤의 무기가 바뀌었다.

[웨펀 마스터]?

주요 유니크 스킬들은 공부해서 외우고 있다.

희우는 오싹함을 느꼈다.

허벅지의 홀스터에서 단검을 뽑아 왼손에도 든다.

방어의 순간은 쌍검이 유리한 법이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의 찌르기가 들어왔다.

자세가 좋지 않았다. 압도적인 기세의 차이로 밀려난다.

날개의 제어가 잠깐 빈다.

트롤이 추격한다.

또 뒤편에 무언가 번뜩인다.

거대한 망치.

쌍으로.

쾅하고 내리찍는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왔다.

단검이 날아왔다.

얼른 몸을 틀어 겨드랑이 사이로 흘린다.

후두둑하고 지나가는 연속된 황금빛 단검.

모두 철저하게 쳐내고 일단 상공으로 날아올라 거리를 벌린다.

재빨리 [웨펀 마스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되새긴다.

마법사만 아니라면 모든 클래스에 유용한 유니크 스킬.

금빛으로 빛나는 저 모든 무기는 본인의 레벨이 비례하여 강해지며, 스킬에 의해 생성된 장비들이다.

마스터리가 빠지는 일도 없고, 투척하는 소모형 무기가 떨어지는 일도 없다.

심지어 활과 총기도 대비해야 한다.

다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충격이 바로 옆을 훑었다.

세차게 날아든 화살이었다.

저 위에 요새의 천장인 산중턱의 아랫부분에 꽂히고 쿠르릉 하는 진동을 낸다.

경장의 가죽 갑옷이 조금 손상되었다.

아래에선 트롤이 다시 활을 겨눈다.

3미터의 트롤이 사용하는 5미터에 가까운 대궁. 시위는 그냥 금빛 쇠사슬이다.

순수 전사 주제에 나보다 원거리 견제가 더 좋네?

그렇다면 붙어 있는 편이 더 낫다.

병을 따고 입에 머금는다. 시위가 놓아졌다.

날아드는 화살을 두 눈으로 직시하며 몸을 한 바퀴 회전.

아래를 보고 쌍검을 교차한 채로.

다시 한번.

물론 히어로 랜딩은 쿨다운이다.

같은 모션에 상대가 미간을 찌푸린다.

거대한 화살을 옆으로 흘리며 최단거리로 돌격.

상대의 무기가 다시 바뀜을 보고도 그대로 내리찍는다.

이젠 방패는 아니잖아?

돌진에 대응하는 무기는 창.

이대로면 그대로 꿰뚫릴 수도 있으나.

최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가속 또 가속한 끝에 내지르는 상대의 창끝에 교차한 쌍검을 걸고 첨예한 마찰의 결과로 눈부신 스파크를 튀기며.

그 자체를 하나의 레일로 이용해 트롤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마지막 순간 단검 하나는 놓아버리고.

무기를 사용할 자세는 나오지 않으나 전력을 다해 갑옷 플레이트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었다.

동작은 격투이나 담긴 힘은 이미 자연재해다.

희우의 팔도 으스러졌으나 트롤의 갑옷도 으스러졌다.

몸도 뒤로 밀려난다.

거대한 체격의 격차가 무색하게 비틀거린 트롤이 그대로 회전.

희우는 재생하며 뒤편으로 거리를 벌렸다.

어느 새 손에 들린 도끼창이 방금 전에 있었던 위치를 거칠게 휩쓴다.

바위가 갈려 나가고 긴 자국이 남았다.

재생한 팔의 정상 동작을 확인한다.

좋아, 잘하고 있다. 괜찮은 교환이었다.

아주 순간의 소강상태였다. 서로 숨을 고르는 와중 트롤이 아작 난 갑옷을 잡아 뜯어 벗었다.

상대는 이제 맨몸이다.

“이게 한 방에 작살이 난다고? 아가씨, 격투가야?”

“단검 전사에요!”

“미친……. 왜 그딴 걸 해?”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천사와 트롤이 격돌했다.

여파로 천장을 지탱하던 기둥이 하나 더 기울어졌다.

천장이 불온하게 진동한다.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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