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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86화 (28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86화

왕국 - Lv.2908 [웨펀 마스터] 카롤리(3)

죽는다!

방심했다!

오빠한테 혼나겠다!

딱 세 가지 생각이 희우의 잿빛 뇌세포를 관통했다.

그리고 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킬셋을 숨겨야하는지, 동시에 [은빛 섬광]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무어라고 고민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이 쌓아올린 경험과 배움, 그리고 타고난 센스를 통해 본능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단검을 교차하고 충격에 대비한다.

몸에 존재하는 마력을 총동원하여 피해를 줄이기 위한 태세를 취한다.

다만 그 방향은 날아드는 [웨펀 마스터]의 무구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호흡을 조절할 틈도 없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아나는 순간 이미 희우는 행동하고 있었다.

간혹 찾아오곤 하는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

바깥에서도 겪어본 적은 있으나 미궁에서 유배자가 된 이후 유난히 구체화된 감각이다.

스탯과 스킬이 유배자에게 부여하는 초인적인 능력의 부산물일까?

그런 초인적인 시간 속에서 희우는 눈을 굴리지 않고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곳에도 [섬광 재생]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장했다기보다는 지금 그저 그게 가능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굳건한 가드의 앞에 최초의 [슈퍼 히어로 랜딩]을 설정한다.

피하기는 늦었다. 주변에 뿌리는 무기가 대체 무엇인가를 좀 더 생각해보아야 했다.

상대가 뭘 할지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할지만을 생각하면 이렇게 된다.

번뜩이는 뇌세포 사이를 스쳐가는 깨달음을 손가락까지 걸어가며 간신히 붙잡고.

랜딩 이후의 치고받는 남자다운 공방에서 녹화된 무수한 타격과 참격을 카롤리의 위치에 설정한다.

연습은 많이 했다. 재생 위치를 설정하는 행위에 딜레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기억과 감각에 의존하여.

그리고 트롤 전사가 완전히 사망하지 않도록.

왜냐하면 희우는 이미 이겼으니까.

이 공격 이후에는 더 이상 상대가 저항할 수단이 없을 것이다.

있다하더라도 충분한 피해를 입은 후일 것이며 달려들어 기절 시킬 것이다.

차후의 계획을 생각하면 하이랭커급 유배자는 많이 살려둘수록 좋다.

동시에 사랑하는 오빠의 칭찬을 획득한다.

이미 마음속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 박혀있다.

사실 그렇게 섬세하게 조정하지는 않았다.

트롤은 튼튼하다.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직접 때려서 확인해본 입장에서 굳건한 신뢰를 끌어올리며.

[섬광 재생]이 시작된다.

쾅하는 [슈퍼 히어로 랜딩]이 눈앞에 작렬했다.

폭발과 충격, 운석 낙하 이상의 크레이터를 만들어낼 파괴적인 힘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카롤리의 마지막 수단인 [무기의 광란]은 그 여파에 휘말려 힘을 잃었다.

충격의 심부에 있었던 희우는 휘말려 비행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사출되었다.

질량이 적다는 점은 이렇게 긴급회피를 수행할 때는 장점이 된다.

* * *

타고난 재능이 단순히 전투의 요령은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을 쌓아줄 수는 없다.

세월로 쌓아올리지 않고 재능이라는 지름길로 달리면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하여 놓치는 것이 생긴다.

거기에 카롤리의 두뇌는 트롤화되며 조금 멍청해진 탓도 있지만, 본래 사소한 걸 기억해두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카롤리는 지금 자신이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대응할 수가 없었다.

노련한 하이랭커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물론 이것은 카롤리의 잘못은 아니다.

[은빛 섬광]은 아주 얻기 까다로우면서도 드문 유니크 액티브.

고참이라 한들 모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장 처음에 폭발한 것은 최초의 [슈퍼 히어로 랜딩].

거의 영거리에서 폭발한 충격은 갑옷도 없는 트롤의 육신을 너덜너덜할 정도로 다져놓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바닥에 병을 깨트리는 것.

입까지 가져갈 시간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도 가드 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트롤 특유의 재생력과 결합한 기적의 샘물이 죽음의 위기에서 카롤리를 건져낸다.

직격이었다면 즉사했다. 카롤리가 간신히나마 생존한 것은 희우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랜딩을 직격으로 꽂아 넣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겨룬 합의 모든 공격이 재생되고 있다.

고레벨 트롤 전사의 묵직한 일격을 역으로 쳐내던 단검의 폭발적인 물리력이 몸을 강타한다.

단단하지 않은 신체부위가 북치듯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나간다.

오른 팔이 부러지고, 왼다리가 관절의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왼팔은 절단되었다가 다시 재생된다.

그리고 완전히 재생되기도 전에 다시 절단 되었다.

대지가 멀어진다. 부유감을 느낄 틈도 없으나 몸이 떠올랐음을 깨달았다.

트롤의 질량조차도 공중에 쳐올릴 정도의 막대한 타격과 참격과 찌르기가 고스란히 다시 되풀이된다.

무슨 공격인지 모른다. 어디서 들어올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머리와 심장 같은 중요 부위를 방어하려고 했으나 애초부터 공격을 급소를 노리지 않았다.

카롤리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난자당했다.

강한 재생력과 의식의 유지는 큰 연관이 없다.

몸은 죽지 않았으나 의식이 날아가기에는 충분했다.

한순간 의식이 날아간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번쩍하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천사가 있었다.

갑옷은 너덜너덜하고 몸에 상처도 많지만 전투력을 상실한 것 같지는 않다.

팔을 움직이려고 했다.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재생을 지나치게 반복한 탓인 모양이다.

카롤리는 지금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왼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그걸 눈 앞으로 가져다 대더니 피임을 깨닫고, 인상을 쓰며 킁킁 냄새를 맡고 있는 천사다.

하지만 오른손에 들린 뾰족한 단검은 흔들림 없이 목숨을 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자그마하다. 트롤의 거대한 손이라면 한 손으로 쥘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카롤리는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카베 영감. 미안해. 여기까진가 본데?

포기의 순간에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만, 무너지는 요새 지붕의 암석들이 드디어 쏟아지고 있었다.

* * *

희우와 카롤리가 아직 서로 견제만을 하고 있을 무렵.

미아는 실피드의 등에서 생각했다.

원소는 모든 마법사들의 공통화두이다.

이후 어떤 계열의 어떤 특성을 파게 되더라도 결국 그 근본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에 기반을 두게 된다.

미아는 잠깐의 학창시절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좀 더 막연하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

뜻깊고도 유익하며, 워 메이지로서도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미아는 선선히 자신에게 실피드라는 ‘정령왕’을 아빠가 맡기는 의미를 이해했다.

그 배움을 녹여 상대를 이겨보아라.

이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지는 말라.

배움의 초기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실피드를 본 적은 많았으나 함께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었다.

우선 은빛 드래곤의 목을 붙잡고 속삭였다.

“나와 이어져 줄래?”

[그 발언은 함부로 하고 다니면 안 될 것 같네요.]

“그래?”

미아가 의아해하는 동안 실피드는 한 서버의 마지막을 보고 있었던 정령왕답게 노련하게 마력의 실을 뻗어냈다.

여전히 계약자와는 이어져있으나 동시에 그 딸과도 교감을 하기 위한 연결이다.

그 순간 미아는 정령왕과의 연결이란 게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원소를 보는 미아의 눈은 본래도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을 관조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또다시 한 차원 위의 것이었다.

미아는 가장 먼저 바로 앞의 공기를 움직여 보았다.

실피드는 미아의 의지에 반응하여 그렇게 하였다.

마법사로서 의지에 원소를 호응시켜 통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력 제어에 해당하는 능력치다.

그러나 정령왕과 이어져 움직이는 원소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비로소 왜 정령이 원소 그자체이며 권화인지를 확실히 체감한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바람, 공기, 기체는 실피드가 허하는 한 미아의 손과 발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상대 또한 그러할 것이다.

“제니, 꽉 잡아요.”

주변의 바람을 모두 터뜨린다.

여파가 요새 입구로 몰려들고 있던 적 병력을 밀어낸다.

아빠와 다른 동료들이 더 깊은 곳까지 무사히 진입할 수 있도록.

여기서 대지의 정령왕을 막아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요새는 지하에 있고 지하는 대지의 정령이 통제하는 영역이었다.

그러니 실피드와 제니와 함께 이곳에서 저 정령왕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다.

주어진 시간은 1분이었다.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미리 생각해본 적은 있다.

정령왕을 다루게 된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뒤편에 공기를 압축하여 단숨에 비행한다. 솟구쳐 오름과 동시에 실피드에게 의지를 전달한다.

처음이라 미흡한 부분은 실피드가 알아서 보정했다.

아직 폭풍의 여파는 흐르고 있다.

최초의 1파가 지나갔을 뿐이다.

계속해서 흐르는 바람을 광범위하게 가속한다.

마법과는 다르다.

정령은 물질계에 현신하는 것에만 마력을 소모한다.

그 코스트는 이미 지불되었고 소모중이다.

현신한 정령이 제 원소를 다루는 것은 전혀 코스트를 가지지 않는다.

바람은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요새 내부로 진입하여 아빠와 일행을 추격하려던 무수한 랭커들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적이 분산된다 이쪽을 향하여 요격을 시도한다.

바람은 그것을 허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인식될 만큼 압축된 바람의 막이 날아든다.

투창, 투척 도끼, 스킬로 생성된 빛나는 다른 무기들까지 모두 튕겨나가며 벗어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실피드만으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 섞였다.

뾰족하게 가공된 붉은 암석이었다.

“지옥석!”

난데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바람에 겁에 질린 제니가 그 와중에도 눈치 채고 미아의 귓가에 소리를 지른다.

회피기동을 하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미아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공간의 균열이 열리며 그것을 다시 삼켰다.

미아는 상공에서 다시 공간을 해방했다.

미아의 정신 속에서 처음의 지옥석 투석기와 무수한 탄막들은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만든 아공간을 한없이 비행하고 비행한 끝에 마다시 열린 균열 속으로 그 모든 것을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고체였다.

쏟아지던 고체들이 적의 제어에 들어간다.

방향을 틀어 이쪽을 노린다.

미아는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실피드가 명령 받지 않고도 전력으로 가속했다.

다행스럽게도 대지의 정령은 바람보다는 느리다.

그때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정확히는 지붕이다. 거대한 암반이 지탱하던 것을 잃고, 누적되고 있는 충격에 흔들리고 있다.

뒤편을 흘깃 보니 엄마가 어떤 트롤과 싸우며 천장에 날아가 박히는 듯한 장면이 보인다.

미아는 생각했다.

수km 단위로 뻗어있는 기둥들과 그것이 지탱하고 있는 산맥의 일부.

그리고 파내어진 아래의 거대한 요새.

그 사이에 공기가 가득 들어차있음은 사실이나, 결국 땅속에 가까운 이 지형.

불리하다. 한없이 불리하다.

원소의 총량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사방에 폭발이 일어났다. 일단 한번 폭발안 지옥석은 엄청난 폭풍을 만들어내었고, 제 스스로의 열기에 주변의 다른 고체들을 녹여냈다.

그리고 제어를 잃고 떨어졌다.

열기에 녹아버린 순간부터 그것은 고체가 아니다.

액체다.

피어오르는 가스가 미아의 시야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체가 되었다.

변한 것이다. 암석이어서 고체이던 것이 녹아내리고 증발하여 바람이 되었다.

미아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부딪혀서는 이길 수 없다.

아빠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법사인 미아에게 실피드를 맡긴 이유가 뭘까?

마법사는 환경을 제어하는 포지션이다.

고체가 많다면…… 전부 기체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남은 시간은 이제 50초가량.

* * *

정령왕끼리의 싸움?

그것이 처음인 것은 [하드스록]에 은밀하게 소속되어 있던 정령사, 아젤리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령끼리의 싸움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주변의 환경, 그리고 물질의 상태.

마법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은 있으나 아젤리아는 포인트의 대부분을 정령왕을 유지하기 위한 마력량에 투자했다.

튜토리얼에서나 대마법사 행세를 하지 이런 수준의 전투에서는 마력만 많은 깡통이다.

그래서 그녀는 잔뜩 인상을 썼다.

용의 등에 타고 있는 저 마법사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카베 영감에게 들어서 안다.

경이로운 재능, 그리고 저 멀리 아케인에서 두 마법사를 담궈 버린 실력.

마법으로서 이길 수는 없다.

공간의 균열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스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끔찍할 정도로 고단수의 워 메이지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환경의 변화.

정령끼리의 싸움은 결국 더 많은 원소를 다루는 쪽이 승리하는 싸움.

이 요새를 파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그녀다.

생매장을 담당하는 것도 대지의 정령왕과 계약한 그녀다.

구조라면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미 기둥이 많이 부서졌다.

카롤리와 어떤 천사가 박 터지게 싸운 덕분이다.

‘오르트, 무너뜨려. 그리고 저 용을 찌그러뜨려.’

[…….]

오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정령왕이 반응한다.

지붕을 통째로 무너뜨린다.

요새의 입구가 무너진다.

침공을 대비하여 생매장을 위한 카드였던 것을 지금 사용한다.

뼈아프지만, 저쪽도 정령왕이 있다.

아젤리아는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겨야했다.

카롤리는……. 알아서 살아남겠지.

돌의 해일이 하늘에서 땅에서, 사방에서 은빛 드래곤을 조여간다.

빠르지는 않았다.

운동에너지는 마찰에 의해 열로 변한다.

녹아내려 액체가 되어도 문제지만 기체로 승화한다면 더욱 큰 문제다.

열관리는 몹시 중요하다.

단지 빈틈없이, 바람은 뚫어낼 수 없는 견고하고도 압도적인 포위망을 구축하고 조여간다.

그러는 동시에 아젤리아는 다른 마법사들에게 협조를 구하려고 움직였다.

상대가 열을 가한다면, 냉각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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