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96화
왕국 - Lv.3805 [하르마게돈] 대장장이 카베(1)
거인은 거대하지만 그 거대함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메기도의 화염]을 온 몸에 감고 재앙의 현신이 되어 타오르는 카베에게도 그랬다.
에길은 비로소 왜 이 대장간이 이토록 거대했는지를 깨달았다.
30미터라 함은 10층 높이의 건물이다.
에길은 인간치고 큰 체격이다.
무기도 트롤이나 휘두를 도끼를 쥐고 있다.
하지만 10층 빌딩과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규격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카베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인다.
거인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에길은 카베가 쥐고 있는 망치 역시 거대해진 몸집에 걸맞게 부풀어 올랐음을 깨달았다.
무릎을 꿇었음에도 치켜든 망치의 위치는 아득하게 높다.
심지어 그 망치의 크기조차도 에길의 도끼보다 더욱 커졌다.
아직도 온몸에 화염을 휘감은 카베가 망치를 힘껏 내려치려고 했다.
에길은 그 단순한 동작에 담긴 힘을 짐작할 수 있었고, 바짝 긴장했다.
[광화]
[거인의 외침]
[폭발적인 혈류]
순간적으로 자기 버프 스킬들이 몸을 감돈다. 에길은 몸을 비틀며 힘을 짜냈다.
심장이 요동친다. 폭발적으로 근육으로 혈액을 보낸다.
과잉 공급된 혈액에서 과잉 공급된 산소가 기묘한 시너지를 내고 쥐어짜 내듯 근육을 수축시킨다.
타고난 힘에 더하여 미궁의 보정이 잔뜩 깃든 비현실적인 근력이 도낏자루에 가해진다.
에길은 그대로 몸을 틀며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날개의 도끼는 바닥을 긁는다.
이 동작은 그의 도끼, [타오르는 날개]의 특성이다.
날이 바닥을 긁어낸다. 지난 자리에는 불길이 일었다.
단순히 마찰에 의한 스파크뿐만 아니라 내장된 장치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에길은 그 원리를 정확히 모른다. 파티의 조그만 마법사가 감탄하며 조물딱거렸던 것만 안다.
틀림없이 대단한 것이리라.
에길이 아는 사실은 하나다.
이 도끼에 많은 마찰을 가해 더 큰 에너지를 축적할수록 다음 일격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명백하게 불 속성을 띤 이 거대한 도끼는 더 강한 물리력을 가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충전을 요구한다.
크게 한 바퀴 회전하자 날에 달린 추진체가 점화했다.
회전은 점점 더 빨라진다.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스운 동작이 아니다.
불꽃은 더더욱 강해지고 화염의 원을 그렸다.
도끼의 날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녹아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에 대응하는 카베의 동작은 하이랭커 급에서는 전혀 빠르지 않았다.
이 노거인은 대신 단 일격에 상대를 절명시킬 만한 힘을 망치에 담아 휘두를 뿐이다.
에길은 점차 닥쳐오는 저 망치가 마치 무너져 내리는 산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섯 바퀴의 회전이 한순간에 끝나고.
그대로 쳐올린다.
불길을 내뿜으며 폭발하듯 올려친다.
카베의 불타는 망치와 불타는 도끼가 맞부딪힌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눈부신 섬광이.
두 무기의 모든 충돌이 빛이라는 에너지가 되어 새어 나온다.
번쩍이는 물리적 충돌의 부산물이 가시고 에길은 버틸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팔은 뻐근하다. 몸도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능하다.
전사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언제나 험하게 굴리고 그러다가 결국 어느 전장에서 스러지는 것이 전사의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이 자리가 아니었다.
용을 베었을 때.
미궁에 오기 전의 마지막 전투를 떠올린다.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겨냈다.
다시 망치를 들어 올리고 내려칠 준비를 하는 거인을 보며 에길은 용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안다.
그 시절의 그와.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전사의 용맹은 항거하기 힘든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야말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에길은 다시 회전했다.
한 번의 일격 일격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를 담아.
적을 분쇄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깊이 새겨.
갈아 넣듯이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 내어.
바닥을 갈아버리며 축적하는 에너지가 도끼를 녹여 버릴만큼이 될 때까지.
다시 한번 두 무기가 충돌한다.
충격이 번뜩이고 주변의 모든 물질을 일어낸다.
파동이 된 힘은 갑옷 너머 육신까지 진동시킨다.
에길은 자신이 사납게 웃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노거인을 보았다.
불길로 타오르는 미소가 그곳에 있다.
이것은 싸움이다.
늙은 전사가 젊은 전사에게 베푸는 전투다!
달아오른 흥이 [광화]로 인한 격앙마저 넘어선다.
이미 고레벨 광전사로서 그 감정의 격류에 흔들리지도 않게 된지 오래건만, 마치 튜토리얼에서 겪는 최초의 광화만큼이나 달콤하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열기와 고양.
“Graaaaaaaaaaaaaaa!”
그 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이미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해질 것이다. 전장의 함성이란 그 무엇보다 전사의 언어니까.
서로 약속한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합을 겨룬다.
회전은 점점 늘어간다.
원심력도 축적된 에너지도 점점 강해진다.
그렇지만 아직 닿지 않는다.
저 높은 곳에서 천벌처럼 찍어오는 망치는 단조롭지만 당연하게도 에길을 눌러온다.
그런가.
이것은 단조인가. 대장장이가 자신의 일을 할 뿐인 것인가.
그렇다면 더 단단하게 벼려지는 것이 젊은 전사의 역할일 것이다.
이미 주변은 너무 뜨겁다.
일종의 광기 혹은 트랜스 상태에서 에길은 쉬지 않고 몸에 익힌 기술을, 더 강한 힘을 가하는 요령을 펼쳤다.
마침내 도끼가 망치를 밀어냈다.
조금이지만 닿았다.
카베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모른다.
으지지직
그 순간 마주한 옆에서 갑작스럽게 얼음이 터져 나왔다.
차갑게 식은 한기의 폭풍이 저 멀리 다른 싸움에서 뻗어 나와 전장의 열기를 식힌다.
한순간 세상이 얼어붙었다.
에길은 이것이 리더의 검이 한 일임을 안다.
차가워진 수르트의 마검.
멸망의 거신이 내뿜던 불길은 그대로 뒤집혀 세상을 덮을 얼음이 되는 것이다.
카베 역시 한순간 서리에 덮였다.
그러나 서리거인이 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타오르는 열기가 수증기를 만들어내며 주변을 다시 녹였다.
불의 거인, 카베는 레바테인의 마력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서 입을 열었다.
“훌륭한 전사로다. 그러니 그에 맞게 대우해야겠구나.”
노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에길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메기도의 화염]을 휘감은 거인보다 더 빠르게 몸을 녹일 수는 없는 탓이다.
거인이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까마득히 높은 대장간의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치솟는다.
그 끝에서 태양과도 같은 열기가 피어났다.
“막지 말게나.”
에길은 그 말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유성과도 같은 속도로 내려쳐지고 있을 망치가 기어가듯 느려 보인다.
그 안에 담긴 힘이 너무나도 거대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길은 모루가 아니다.
이것만은 정면에서 받아내어서는 안 된다.
얼어붙은 발이 녹는 즉시 에길은 도끼를 휘두르고, 그 힘에 몸을 맡기며 전력으로 카베에게서 멀어졌다.
거대한 힘이 대장간의 바닥, 그리고 지옥의 천장에 도달했다.
유니크 액티브 [최후의 전쟁]
* * *
엑스칼리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의 검.
아발론에서 만들어져 왕을 기다리며 바위에 꽂혀 있던 검.
그 유명한 금빛의 성검이 휘둘러진다.
유배자에게 장비빨이란 몹시도 중요한 전력의 일각이다.
아서가 가장 강력한 유배자 NPC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상당 부분 저 아티팩트에 있다.
기본적으로 빛의 참격을 만들어낸다.
어둠의 존재라면 당연히 더 큰 타격을 입겠으나 그 자체로 오러 블레이드 이상의 참격 보정을 부여하는 고도로 가속된 빛의 원소 그 자체다.
머리를 숙이자 그 위로 참격이 지나간다.
머리카락이 베여 흩날리고 저 멀리 벽까지 날아가 검흔을 새긴다.
유니크 스킬 [무형검]처럼 다중 쿨다운으로 제한적인 원거리 참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본사양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장비한 것으로 판정되는 순간부터, 그 검집에 달려 있는 패시브 효과 역시 작동한다.
상처가 낫지는 않되 결코 그 자체로 치명상에 도달하지 않는다.
숨통을 끊어 죽이거나 전투가 불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혀야 한다.
가슴팍에 길게 베어진 검상에서 흐르던 출혈이 멈춘다.
하지만 그것이 보인다는 것은 결국 갑옷 자리가 비었다는 뜻.
아서는 이제 거리를 좁힐 필요가 없다.
도리어 벌리는 편이 옳다.
밀도가 높아 촘촘한 탄막으로 보일 지경인 연속된 참격 속을 파고든다.
예리하지만 물리력은 없다.
레바테인에 마력을 담아 쳐내고 약간 어려울 것 같다면 갑옷의 두터운 부분, 경사면으로 빗겨낸다.
내가 달려들자 아서는 더욱 거리를 벌린다.
참격을 피해 자세를 낮추며 바닥에 손을 닿게 한다.
땅의 원소를 순간적으로 그러모아 캐스팅.
바닥을 타고 바위의 쐐기가 솟아나 달린다.
지금 아서에게는 공격마법보다 위협적이다.
갑옷이 없는 상태, 정말로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수 있다.
마력을 담아 발로 짓밟는다.
그러며 틈이 생긴다.
공간의 균열을 열고.
아서가 뒤돌며 나를 찔렀다.
엑스칼리버의 빛은 찌르기에도 적용된다.
검극으로 마주하며 함께 찌른다.
서로의 검 끝이 강렬하게 부딪혔다.
레바테인이 웅웅 대며 진동한다.
이것은 마검.
저것은 성검.
지닌바 속성에 따라 필연적인 반발이리라.
극도로 대비되는 두 속성은 폭발을 만들었다.
아서는 당황했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폭발의 틈새로 레바테인에서 힘을 빼고 단지 닿아서 마스터리의 보정만 유지한 채, 단숨에 파고든다.
기사는 레슬링의 달인이지만, 타격의 달인은 아니다.
동양의 신비를 맛보라.
이젠 버린 마투사의 요령으로 마력을 담는다.
장저의 형태를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통력.
일그림 파티의 에리나가 그랬듯. 격투가는 짧은 리치를 대가로 공격력만큼은 최상급인 존재다.
당황한 아서는 대응이 한발 늦었고, 마력이 파고든다.
갑옷도 사라진 너머로 상처 사이를 파고든 마력이 폭발을…….
억눌러졌다.
아서의 마력이 터져 나오며 클래스 보정이 없는 마투사 흉내가 무산된다.
레바테인을 회수하며 계속 접근, 대검인 엑스칼리버의 간격 안쪽으로.
아서가 팔꿈치를 굽혔다. 어떤 기사의 환영이 순간적으로 겹친다.
유니크 액티브 [퍼시벌 : 비무장]
맨손 전투의 스킬.
그 순간 전력으로 뒤구르기를 한다.
아서의 절도있는 연속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여파만으로 저 멀리 있는 다른 벽을 때려 흔들었다.
나는 충격에 휘말린 김에 몸을 맡기고 떠올라 마법을 구현한다.
전투 중에도 조금씩 메모라이즈한 무수한 마법의 탄막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공간의 균열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폭발적인 마력의 포화에 아서가 잠깐 지체된다.
나는 그 틈을 타, 전력으로 휘두르는 일격을 더 녹화에 새긴다.
마탄의 세례가 일섬에 갈라졌다.
길게 늘어난 광자의 칼날이 대지에 상흔을 새긴다.
몸을 숙이는 대신 받아서 쳐내고.
아서의 뒤편, 저 먼 곳에 카베가 치켜드는 망치가 보였다.
“오, 세상에.”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서 역시 이상을 감지하고 뒤로 돈다.
세상의 폭발하는 화염의 빛으로 뒤덮였다.
* * *
불타는 지옥.
무너져 내리는 바닥의 돌 위에서 중심을 잡고 흘깃 내려다보자 보인다.
마그마조차도 아닌 붉은 타오르는 뒤틀린 마력의 공간.
[메인 던전]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위험을 지닌 번외 같은 숨겨진 공간.
애초에 무너뜨릴 대장간이기는 했다.
지옥의 아가리로 침공의 군세를 마지막 순간 처박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 그것을 해야 할 정도인가?
아서는 긍정했다.
지금 그가 상대하는 사내는 부족한 스펙마저 메꾸는 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갤러해드가 떠오를 정도의 완전한 기사.
원탁 최강의 기사이자, 왕인 그조차도 승부에서는 난색을 표해야 했던 기사.
그렇다면 그 힘으로 마지막을 보자꾸나.
지옥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몸을 침식하는 열기와 뒤틀린 마력을 느끼며 아서는 몸을 날렸다.
무수한 악마들, 플레이어블이 아닌 몬스터로서의 악마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끝에서 번뜩이고 있는 냉기의 마검도.
아서는 그의 오랜 친구,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바깥의 추억을 치켜든다.
“왕을 선택한 검이여! 마지막까지 함께다!”
내구도가 얼마나 남았을까? 이 일격 이후에도 살아 있을까? 어찌 되었건 끝이 머지않은 친우다.
아이템 액티브 [선택받은 왕]
바깥에서는 한 번도 이 검이 이런 기능을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들어온 것은 미궁의 [아티팩트]였다.
그럼에도 노왕은 굴하지 않는다.
NPC이면 어떠랴.
그가 찾아야 할 연인이 있으며,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데.
금빛의 휘광이 아서의 몸을 감싼다.
마인드맵에 새겨진 삶과 전사가 사용하는 무구에 새겨진 기술은 대개, 그 힘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일격필살은 암살자의 것.
전사는 끊임없이 치고받으며 싸우는 자.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모르면 당해야 하는 일격필살의 무언가는 전장의 소양이니까.
유니크 액티브 [갤러해드 : 띠의 검]
유니크 스킬 [나이트 오브 카멜롯]은 아서에게 기쁘지 않은 무언가다.
바깥에서의 삶을 되새길 수 있는 동료들의 힘이지만.
동시에 미궁의 유니크 스킬.
그가 NPC라는 증거.
바깥에서 함께했던 그 모든 삶마저 거짓이란 증거.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 낙하하는 조각난 지반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중력 따위는 없다.
아서는 발을 박차고 움직인다.
몸을 감싼 휘광은 점점 무기로 모인다.
[엑스칼리버]에서 뻗어 나온 빛이 점점 길어진다.
왕의 운명이랑 모든 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물러섬 없이 적을 베는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눈부시게 빛남은 그런 것이리라.
날이 점점 뻗어간다. 빛으로 이루어지고, 가장 완벽한 기사의 환영이 깃들어 막을 수 없는 보정이 깃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니크 액티브 [팬드래건 : 엑스칼리버]
그의 이름. 그가 지닌 검.
그 자체인 원탁의 기사의 환영이 다시 새겨지고.
아득히 가속된 원초의 마력.
파동이자 입자인 빛이 물리적 압력이 존재할 정도로 압축된다.
압도적인 크기로 뻗어나갔던 검이 다시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미 대검인 [엑스칼리버]에 덧씌워진 빛의 원소 결정이라 불러도 좋을 무언가.
한없이 결정의 직전에 도달한 그 에너지는 아직 결정이 아니기에 결코 안정화된 것이 아니다.
질량이 되기 직전의 에너지가 왕의 검을 감싸고 있다.
성검이여, 나여.
멸하라. 내 적을!
[무형검]의 쿨다운도 돌아왔다.
애초부터 길지 않은 스킬이다.
[무명 : 횡베기]
* * *
가장 큰 문제는 아서가 미쳐 날뛰며 저걸 꺼내 들었을 때 어떻게 대응하냐였다.
솔직히 말해보자.
저건 대응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엑스칼리버]는 마력을 해방하여 전쟁에 어울리는 빛의 검을 만들고.
갤러해드는 100%의 방어력 관통을 부여한다.
그리고 아서 본인의 이름을 가진 팬드래건의 환영은 그 모든 힘을 일점에 모아낸다.
그 이후 발해지는 참격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두부로 취급하는 부조리한 일격이다.
길게 늘어진 빛의 띠가 다가올 것이 느껴진다.
용사로서 각성한 감각이 아서의 몸에, 그리고 검에 모여드는 힘을 감지하고 있다.
깊은 심호흡.
지옥의 유황 대기를 빨아들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정신적인 문제기에 효능은 있다.
세상의 속도가 클럭 다운된다.
무너지는 바닥, 지옥으로 끊임없이 추락 중인 광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시야에 새겨진다.
[시간 정지] 같은 잡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최면같은 집중 상태.
13층에서 안 되는 스펙으로 노심을 짜올리기 위해 만들었던 인위적인 트랜스.
그렇게 간혹 찾아오곤 하는 느려진 시간 속이다.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고 밀도 높은 빛의 참격에 대응하기 위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다시 한번, 정신적인 심호흡.
미궁은 게임. 그렇다면 대응 불가능한 것은 없다.
막을 수 없다면, 그리고 피하기에도 너무 광범위하다면.
동등한 힘으로 맞상대하면 된다. 방어력 관통은 같은 공격력으로 상쇄하면 의미가 사라진다.
모든 힘을 끌어낸다.
이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좋다. 걸을 힘조차 없어도 좋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레바테인의 남은 마력도 모조리 끌어들이고, 몸을 채운 마력, 각성한 [용사]로서 깃든 무수한 보정도 끌어 모아.
마력이 아니라 미궁의 보정 그 자체를 내 검으로 모은다는 느낌으로.
내가 가진 모든 자잘한 기본기와 연계 가능한 스킬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조금 전에 목격한 딱 좋은 스킬에도 슬롯을 할애하며.
순차적으로, 힘을 한 점에 중첩할 수 있는 정확하고도 정밀한 순서로.
기본기부터 정해진 순서로 시작한다.
어거지로 틀어 스킬이기에 깃드는 공격력 보정을 중첩할 수 있는 형태로.
[강격]
[회전난무]
[연속 베기]
[은신]
보정을 연계하기엔 후딜이 너무 긴 것은 비전투 스킬을 발동하여 모션 캔슬.
[성광 베기]
[대지 가르기]
[천령난무]
[대시]
그렇게 끊임없이 검 끝에 깃든 보정을 모아.
방금 전에 [용사]의 슬롯을 하나 더 할애한 스킬을 마지막에 밀어 넣는다.
유니크 액티브 [최후의 전쟁]
종말을 불러오는 태양까지 검 끝의 보정에 깃들이고.
저 멀리 아서의 참격에 맞추어 같은 동작 같은 속도로.
약속한 것처럼 서로의 전력을 부딪친다.
그 순간 귀가 먹먹하던 소리가 멈춘다.
무너지는 잔해들도 이 순간은 어떠한 소리도 만들지 못했다.
소리도 멈추고 빛도 멈춘 것 같은 적막함 속에서.
[엑스칼리버]가 만든 빛의 띠가 피어났다.
[레바테인] 끝에서는 멸망의 불길을 품고서 수없이 중첩된 ‘공격력 보정’이 흘러나온다.
결국 서로 단순히 검에 깃든 미궁의 보정을 쏘아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이대로는 내가 질 것이다.
최강의 고정 NPC.
전용 유니크 스킬마저 보유한 고정 NPC란 그런 존재다.
미래가 보인다.
빛의 띠에 부딪힌 멸망의 불은 찰나의 시간동안 길항한 후 소멸한다.
그 후에는 조금 쇠하였으되 여전히 이어지는 빛의 띠가 이 [지옥]을 양단할 것이 틀림없다.
그 위력을 이미 알기에.
나는 이 전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다렸다.
한 번으로 되지 않는다면 두 번을 하면 될 것이다.
유니크 스킬 [은빛 섬광] - 녹화 중단
유니크 액티브 [섬광 재생]
좋은 건 같이 쓰는 거다. 희우야.
* * *
금빛과 붉은 빛이 지옥의 상공에서 충돌했다.
눈부신 왕의 빛이 한 번은 이겨내었다.
그러나 두 번은 이겨내지 못했다.
금빛 광채가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