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309화 (30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09화

왕국 - Lv.5162 [지옥] 2일차(3)

드넓은 지옥의 대지에 펼쳐진 일곱 영역.

그중 탐욕의 왕좌에 앉은 노왕은 당황했다.

유배자가 기어들어 오는 것이야 없었던 일은 아니다. 그가 이 왕좌에서 앉은 후, 이루 말할 수 없는 긴 세월이 흘렀다.

간혹 유배자가 들어와 환경의 변화를 만든다면 지옥의 모두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장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일으킨다.

지옥의 끝없는 전쟁이 간혹 그렇게 활기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달갑지 않았다.

탐욕의 마왕은 몰락해 가고 있었다. 그 끝이 다가온다.

이 지옥에서 태어나고 왕좌에 매료되어 그것을 추구한 끝에 마침내 목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이 왕좌에 앉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부하들은 호시탐탐 다음 왕이 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도 그렇게 왕이 되었다. 당연한 순리지만 왕좌를 갈망하는 마음은 이 자리를 내려놓고 싶지 않게 만든다.

왕이 몰락하는 순간이 다음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 싶다.

그래서 유배자가 들어왔을 때, 그는 일단 지켜보았다.

변방의 성 하나 정도는 괜찮다.

도리어 그것을 무너뜨린 힘에 감탄했고, 그렇다면 어떤 재물을 가지고 있을지를 주목했다.

왕으로서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긴 세월은 그에게 인내를 부여했다.

다시 돌아올 것이다. 돌아가는 것을 방해할 필요는 없다.

심연의 성물을 사용하여 귀환할 정도라면 분명히 목적이 있어 온 것일 테니.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 유배자 무리들은 무언가를 알고 왔다. 아마도 떨어뜨린 성에서 지도를 찾았으리라.

그리고 이정표 삼겠지.

틀림없이 그가 있는 이 왕좌가 목표다. 저렇게 용의주도하게 움직인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유배자들은 그들이 무너뜨린 성을 짓밟고 있는 재앙 중 하나를 목격했다.

그리고 짐승들을 쓰러뜨리며 전진했다.

하지만 탐욕의 마왕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협곡을 파고 자리 잡은 거대한 지네.

전대 오만의 마왕이자 오만의 재앙.

단일 개체로서 이 지옥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녀석들이 그 괴물을 건드렸다.

탐욕의 마왕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은 관찰한다.

왕좌에 앉은 그의 몸에는 저주의 가지들이 얽혀 있다.

몸이 조금씩 자신이 아니게 됨을 느낀다.

지금은 저것들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 * *

달리기 속도는 힘의 영향도 크겠으나 체격의 영향도 크다.

별다른 스킬 없이 뛴다면 거인인 멜메르보다 빠른 자가 없다.

에길은 멜메르의 팔에 탄 채로 도끼를 충전 중이다.

좋은 판단이다. 우리는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뒤쫓아 오는 지네가 가장 크고, 가장 빠르다.

그러면 저지력을 발휘할 수단을 이용해 저놈의 속력을 늦춰야 한다.

그런 건 원래 마법사가 하는 일이다. 전사는 싸우는 게 일이거든.

[용사]를 취득한 후에 나에게도 여유가 많이 생겼다.

레베카가 발한 마법의 권능은 아직 유효했기에 마법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문제는 없다.

일부러 신경 써서 다른 마법사들이 알아볼 수 있게 가시화했다.

마력을 보는 눈을 가진 미아는 재빨리 그 의도를 캐치했다.

허공에 수놓이는 술식과 그 술식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에 색이 입혀진다.

레베카도 그것을 느꼈고 볼 수 있었다.

입으로 대화할 틈은 없다.

마법이 그려진다.

블랑쉐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마력만을 제공했다.

악마인 그녀에게 이 지옥의 환경은 그다지 페널티가 아니다.

몸에 지옥 속성의 마력을 받아들여 마력을 회복하거나 사용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정령사에도 적성이 있는 종족인 꽃잎 요정, 레베카의 막대한 마력에 더해 페널티 없이 공급받는 블랑쉐의 마력이 뒤섞인다.

극단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닌 마력이지만 이걸 조율하는 것은 내 역할이다.

미아도 거들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내게 배운 미아는 오히려 정석보다는 이런 변칙에 더 익숙하다.

마력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마법을 완성해 간다.

[미티어 스웜] 같은 자갈들로는 저 지네에게 저지력을 발휘할 수 없다.

[미티어 폴]

[코멧 스트라이크]

[어스퀘이크]

[별의 소원]

[무너진 대지의 신음]

[하늘 붕괴]

[차원 참사]

어떤 식으로건 강대한 물리적 위력을 발휘하며 광대한 영역에 동시다발적인 영향을 끼치는 마법들이 중첩 캐스팅된다.

발사하는 순간 하늘이 열렸다.

무수한 운석과 우주를 떠돌던 천체들이 내리꽂힌다.

대지가 뒤틀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차원의 균열이 입을 벌려 그 안에 가득 들어찬 어떤 물질들을 쏟아낸다.

거대한 지네는 어쨌건 악마이며 물리 방어력이 높다.

그래서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부상다운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지 물리적인 충격으로 기세를 늦출 수는 있다.

이어서 계속 캐스팅 된다.

[데스 레이]

[일루젼 서커스]

[아스트로 헬라인]

[인페르노]

[이매진 나이트메어]

온갖 지옥스러운 마법들의 밑그림을 그린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미아가 그 살을 조금 더 채우고, 레베카가 눈이 핑핑 돌면서도 미아가 채워둔 자리의 부족한 디테일을 메꾼다.

블랑쉐는 술식 자체에 관여하지 않고 악마 특유의 마법적 감각으로 검산을 수행했다.

타게팅은 내가 설정하려고 했으나 미아가 이미 거기까지 그려두었다.

지네의 다리를 노린다.

다시 수없이 발사되는 마력의 세례. 일그림과 아서 같은 전사들도 각자 가진 견제기를 최대한 합을 맞춰 뒤편으로 뿌린다.

지네는 약간 비틀거리더니 개의치 않고 다시 속력을 낸다.

[마력이 먼저 마르겠는데요?]

육성이 닿을 속력이 아니기에 마법적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나는 레베카에게 요청했다.

마법신의 권능이 피어나며 마력의 소모를 줄인다.

레베카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능을 다 동원하고 있다.

[실피드를 불러서 타고 날아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건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할 거야.]

마력 잔량은 신경 써야 한다. 결국 실피드를 타고 탈출해야 하니까.

거침없이 달려가는 가운데 앞쪽에 강력한 짐승들 무리가 나타난다.

본래라면 피해갔을 것이다.

상성이 과히 좋은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짐승들도 느꼈다. 달려오는 우리를 어찌해 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들이 달리는 방향도 우리와 같다.

뒤처지는 녀석, 혹은 쓰러지는 녀석은 그대로 짓밟혔다.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된 녀석은 저 뒤쪽에서 입을 벌린 지네에게 빨려들어 간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우리 파티를 중심으로 스탬피드가 발생했다.

무수한 악마들과 유배자의 군집이 형성되어 재앙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가면 갈수록 필드의 짐승들은 더 강력해진다.

하지만 저 재앙을 상대할 만한 존재가 있을 리는 없다.

군집이 충분히 커졌을 때 쯤, 앞쪽에 성이 나타났다.

우리 파티가 함락시킨 것보다 3배는 큰 규모의 성이다.

성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달려서 넘었고 악마들은 성을 타고 넘어가는 유배자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스탬피드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지네가 일으키는 파괴가 워낙 거대하기에 옆으로 샌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겨우 우리가 저지하여 늦추는 지네의 속도와 비슷한 정도니까.

지네가 성과 충돌한다.

속력이 더욱 늦어졌다.

성은 한순간 그 충격을 버텨내는 듯했다.

그리고 기우뚱하며 기울기 시작한다.

성이 마치 장난감으로 만든 것을 누가 손으로 밀듯이 넘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좋아, 좀 아슬아슬하지만 이대로 달리면 될 것 같다!”

“이딴 일이 있을 거라고는 말 안 했잖아!”

그사이에 초췌해진 레베카가 악을 쓴다.

1일 차에 충분히 지옥을 맛본 다른 인원들은 쓰게 웃기만 했다.

갈수록 더욱 큰 성이 나타났다.

하드스록의 요새 못지않은 거대한 규모로 커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지네를 막아설 수 있는 성은 없었다.

잠깐 멈칫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그 시점에서도 탐욕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깨달았다.

“이 새끼 이거! 부하들 제거할 속셈인가 오히려?”

왕좌에서 내려올 날이 머지않은 군주가 가끔 생각하는 판단.

자신이 몰락할지라도 그전에 찬탈을 노리는 어리석은 부하들에게 내주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 이전에 찬탈 자체가 걱정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건 둘 중 하나다. 그만큼 탐욕이 쇠약하거나, 아니면 부하가 강력하거나.

후자여야 하는데. 전자라면 탐욕은 저 재앙을 막아 세울 수 없다. 그러면 별 소득 없이 개판만 치고 이탈하게 된다.

마법사들이 엄청나게 혹사당하고 있다. 이미 왕국으로 한 번 돌아가야 할 수준이다.

모두가 우리가 저지른 짓을 알게 될 테니 3일 차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거라면 이대로 왕좌를 향해 돌격하고 지네의 어그로가 풀리도록 이탈해야 한다.

그리고 빠르게 돌아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신좌 부품을 수색해야 하는데.

위험부담이 너무 끔찍한데?

“끼요오오오옷!”

카롤리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질 수 없다는 듯이 에리나도 괴성을 내뿜었다.

“끄이야아아아압!”

천사의 미성도 저렇게 목을 긁으니 그야말로 전사의 함성이로군.

어차피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니 성이나 요새가 나타날 때마다 벽을 쳐부수면서 통과한다.

고위 악마 한둘이 우리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전사들이 나서서 순간적으로 저지한다.

그리고 벽을 파괴하고 지나가면 이제는 재앙이 모든 어그로를 한 몸에 모을 차례다.

순간순간 집무실 같은 곳을 지나치며 지도를 확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한다.

스탬피드에는 이제 일부 플레이어블 악마들조차 합류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칠흑의 검은 성이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규모는 성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어떠한 자연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정도로 거대했다.

생각해 보면 왕국이 아주 오래된 곳이다.

지옥도 그만큼 오래된 것이리라.

실피드를 부를 준비를 한다.

어찌 되었건 빠져는 나가야 하는 법.

그리고 마침내 탐욕이 나타났다.

* * *

재앙은 이미 수천 ㎞ 이상을 돌파하며 날뛰었다.

탐욕의 마왕은 그것을 방치했다.

이젠 중요하지 않은 부하들이며, 마침 딱 좋은 경로로 돌진해 왔기 때문이다.

제 영역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는 마왕이지만 저주의 가시는 힘의 행사를 점점 제한한다.

반기를 든다면 지금쯤이 좋다.

그가 자연스레 몰락하여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선수를 치는 수단이니까.

귀찮고 피곤한 변경백 하나가 무너졌다.

짜증 나던 후작 하나도 영지가 찢겨 버렸다.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던 공작 하나는 재앙에 맞서 영지를 지키려고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실로 유쾌하기 짝이 없다.

이미 변경백을 무너뜨린 시점에서 탐욕을 저 유배자 무리를 구해줄 생각이었다.

그 이후에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고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할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공적은 끝없이 이어진다.

구해줄 필요도 없었다.

내버려 두면 그의 귀찮은 부하들을 갈아버리며 눈앞까지 당도할 것이니.

마침내 단단히 화가 난 재앙이 그가 머무는 성 직전까지 도달했을 때, 그는 팔을 뻗었다.

* * *

번개가 휘몰아친다. 검은 악마의 번개가 온 사방을 들쑤시며 뭉쳤다.

번개가 뭉친다는 개념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마법이란 원래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검은 구멍으로 보일 정도로 뭉치고 일그러진 번개가 이윽고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마치 이 지옥의 뒤틀린 마력과도 같은 빛이었다.

번개의 구체가 날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네는 번개에 맞서 날뛰었다.

입에서 검은 화염을 내뿜고 쏟아내는 마력의 격류만으로도 충격을 만들어낸다.

검붉은 불길과 번개가 팽팽하게 맞서며 대지를 갈아엎었다.

다행스럽게도 탐욕의 마왕은 아직 힘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번개는 힘을 미쳤다.

쇠창살처럼 내리꽂힌 번개의 감옥들이 포위한다. 더 이상 어디로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실피드의 소환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당장 공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무언가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팔 더 거들면 더 좋은 인상을 주겠군.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기에 말렸다.

“아끼십쇼.”

“그래도 되는가?”

“저 도끼도 엄청 좋은 거라서요.

멜메르는 어제 이후로 우리 파티원들에게 제법 마음을 연 것 같았다.

그래서 에길은 계속해서 멜메르의 손을 타고 도끼를 바닥에 마찰하며 달려왔다.

일렁이는 힘의 규모는 이미 엑스칼리버에 준하거나 그 이상이다.

레베카가 멜메르에게 뭔가 지시를 받고 마법을 수행한다. 에길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진다.

적극적인 태도 좋아. 뭘 하려는지 알겠다.

나도 같이 끼어든다.

“던질거지?”

“음? 너도 같이 가려는 건가?”

“희우야!”

“저도 부탁합니다!”

재밌어 보인다며 카롤리도 뛰어든다.

에리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탑승한다. 아서가 아연하게 우리를 바라본다.

“그거 괜찮은 것 맞나?”

희우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처음이 아니니 괜찮아요!”

“하하! 너희들 방식 정말 마음에 드는데?”

아서는 뭔가 더 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카롤리가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포기했다.

멜메르가 몇 가지 스킬을 동원한다.

거인답게 힘의 증폭에 엄청나게 투자한 힘이다.

나는 레바테인을 들었다.

멜메르는 카롤리에게 몇 가지 요령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취했다.

이거 야구 같은데? 체인지업?

다음 순간, 원심분리기가 부럽지 않은 힘이 몸에 가해진다.

무시무시한 중력과 함께 거인이 나를 포함한 전사들을 집어던졌음이 느껴진다.

레일건 이상의 가속이 가해지는 기분.

희우가 날개를 펴며 더 가속해 나간다.

그 뒤에서 각자 급조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을 장전한다.

[슈퍼 히어로 랜딩]

유니크 액티브 [최후의 전쟁]

유니크 액티브 [무명신풍류 – 일섬(一閃)]

[무기의 광란]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에길의 이름 없는 일격이 작렬했다.

단련된 전사들답게 모두 오차 없이 순서대로 지네의 미간을 노렸다.

탐욕의 번개가 붙잡고 있었던 덕분에 재앙은 그 연격을 피할 수 없었다.

세상이 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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