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16화
왕국 - Lv.5916 [지옥] 5일 차(2)
현재 우리 파티 그룹 최고의 전력은 단언컨대 루시다.
대인전의 결과가 단지 스펙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을 찢어발기고 대지를 갈아엎는 게 목적이라면 스펙이 다다.
원래 그런 일의 전문가는 마법사지만 악마들은 그런 공격에 과하게 익숙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익숙하냐다.
운석을 불러다 떨어트리는 것은 이 전장에서 너무 흔한 일이다.
자다가 깨서 하늘에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보아도 조건 반사적으로 대응할만한 흔한 일.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이 악마들의 전장에서는 이미 일어났다.
현실이 된 미궁의 NPC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수천 년간 쌓여왔을 데이터들을 무시하다간 스펙과 숫자의 차이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루시가 지원포대로 빠졌다.
지옥의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물리 공격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인원이다.
본래 같은 편이 아니던 것들이 하나 남은 왕좌 아래에 어떻게 모여 있다 보니 혼란하기 짝이 없다.
패잔병들로 정신없는 가운데 대군의 옆까지 적당히 진입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한참 먼저 잠입했던 블랑쉐가 약속된 시간에 돌아왔다.
누가 봐도 색욕의 패잔병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오만은 걱정이 많아보였다.”
“구체적으로는?”
물론 블랑쉐가 남의 심리 상태를 능수능란하게 읽어낼 리가 없다.
블랑쉐는 주로 어디에 어떤 그룹들이 모여 있으며 오만의 성에서 어느 위치에 머물고 있는지를 조사해왔다.
아예 간이지도처럼 그려왔는데 하트 마크가 눈에 띈다.
“이게 오만의 마왕?”
“그렇다. 회의 중인 듯했으니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칠흑의 마왕성에 기어들어갈 배기구 같은 것은 없다.
블랑쉐는 회의실까지도 들어가보고 온 모양이다.
“어떻게?”
“잠깐 빠져나가는 호위가 있을 때, 그의 모습을 하고 들어가서 둘러보고 나왔지.”
“간도 크네. 걸리면 죽잖아.”
“나는 들키지 않는다.”
너도 오르골이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의아한 표정. 좀 열받지만 그 능력을 보아 동료로 영입했으니 인정하겠다.
블랑쉐의 잠입을 막으려면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인싸들만 모아둬야 할 것이다. 블랑쉐는 그런 것을 연기할 수 없으니까.
“오만이 권능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 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다들 마음에 새겨두고요. 수틀리면 이탈합니다.”
미아는 그것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슬슬 실피드는 전면전용 보다는 긴급 이탈용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공격력 면에서 바람의 정령이 조금 손색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지금 운도 따라 준데다 꼼수와 계략으로 승리를 거둔 겁니다. 정정당당하게 한타 쾅 붙으면 바로 망해요. 다들 이미 알겠지만 한 번 더 명심하자고요.”
계속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다보면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보통 고레벨 유배자들이 그렇게 죽는다.
“뭐, 이번에는 아주 적진 한가운데 뛰어드는 셈이니 다들 그러긴 하겠지.”
아서가 신뢰를 담아 주변의 다른 동료들을 본다.
멜메르와 카롤리가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약함이 아쉽다는 태도다.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하이랭커가 될 수 없는 법.
지금은 정정당당할 때가 아니다.
그 외에도 제니를 걱정하는 시선이 몇 가지 보인다.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지.
루시가 워낙 규격 외여서 편해지긴 했으나, 그 루시가 전투하는 동안 바깥에서 최대한 대치하며 시간을 끈 것은 이들이다.
고로 다들 함께 사선을 넘나든 사이지.
그 덕에 최소한의 친밀감이 형성되었음이 보인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매 순간이 사선을 오가는 지옥 같은 강행군을 함께한 며칠간.
그 며칠이 그냥 흘러간 시간이었을 수는 없다.
꼭 의도대로 잘 되었다기보다는 주로 희우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그리고 아서가 무게를 잡으며 잘 조율한 덕분이다.
의외로 내가한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제니는 기묘하게 다수의 신뢰를 모으고 있다.
노골적으로 제일 약한 존재가 어떻게든 제 몫을 해내는 것은 여러 가지로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일단 마왕성을 폭파하고 시작합니다. 약한 것들은 죽겠지만 측근들은 살아남을 테니 단숨에 끝장내죠.”
성을 폭파하고 들어가 혼비백산한 가운데 수장의 목을 벤다.
이것 또한 암살이다.
* * *
그것은 대책회의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자하는 발악이었다.
온갖 곳에서 여러 정보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상대의 화력이 대단하지는 않단 것이었다.
전투의 흔적은 대체로 절제되어 있었다. 분노의 성도 장시간에 걸친 전투로 인해 천천히 무너져갔음이 보인다.
이것은 전사의 흔적이다.
“거기에 다른 마왕들이 너무 깨끗하게 당했다. 전사와 암살자 무리라고 봐야겠군.”
아마도 고도로 단련된 전사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다수의 암살자들이 마왕을 표적삼아 제거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일어난 사실이니 믿어야하지 않겠소.”
색욕은 본래 이블 암살자를 많이 보내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악마들의 대다수는 결국 마법사거나 마검사다.
평생에 걸친 전쟁에서 그들이 배운 전훈도 다 그런 것들이다.
이런 식의 기묘한 전술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것이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지금 깨달은 참이다.
“그러니 내 호위를 포기하지 마라. 저들은 왕좌를 없애버리고 있다. 내가 살아있어야 너희들이 목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
측근들 정도 된다면 왕좌의 목적도 안다.
신으로서의 우화.
이루어진다면 마신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좌는 대물림 될 것이다.
언젠가는 저 두터운 지반을 뚫고 올라가 유배자들의 왕국을 영지로 삼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보고 들은 것이 전쟁뿐인 자들의 사고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순수한 야망이다.
모두 일시적 합의에 도달했다.
언제고 저 왕좌를 놓고 왕에게 칼을 겨눌지언정 지금은 지켜야할 때다.
오만의 마왕은 감격했다. 지금이야말로 그가 이 지옥의 유일한 왕으로서 거듭나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악마들이란 서로 이해에 따라 모이고 흩어질 뿐인 것들이다. 필요하다고 한들 이렇게 큰 규모로 제대로 뭉치는 경우가 드물다.
왕좌라는 동기부여가 아니었다면, 그 마력에 이끌리지 않았다면 형식상이나마 일곱 개의 영역이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곳이!
오만의 영역이다!
모든 곳에 그의 권능이 미친다!
그는 권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오만의 마왕이 그 덕목을 따를 순간이 아닌가.
다른 꿍꿍이를 가진 부하들도 이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결국 그에게 굴복하리…….
그리고 모두 고개를 돌렸다.
저 상공에 응집되고 있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힘의 편린을 무의식중에 감지한 덕분이다.
끝없는 투쟁으로 단련된 오만의 측근들은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대응을 짜내었다.
마력이 술식이 되고, 술식이 마법이 된다.
고레벨 악마들이 짜내는 방어막은 그 어떤 힘이 들이닥쳐도 받아낼 수 있다.
“하하하! 얕은 수작이로군! 이 지옥에 대규모 광역 마법 따위는 수없이 많이……!”
다음 순간, 오만은 오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 *
모두 숙인 자세로 거대한 충격에 대비했다.
지옥의 단단하기 짝이 없는 지반이 통째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대지가 파도치며 하늘이 일렁인다.
지옥의 마력이 걷히고 하늘이 개이자 저 위의 왕국 아랫부분이 보인다.
그곳까지 여파가 미쳐 흔들리고 있다.
멜메르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
가장 질량이 큰 그는 마법을 통해 위장한 채 마왕성 근방까지 접근했다.
제 몸 만한 대방패를 세우고 무시무시한 폭발의 여파를 최대한 받아내었다.
그 뒤에 숙인 작은이들은 모두 몸을 멜메르의 뒤에 붙인 채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잠시간 땅과 하늘과, 위와 아래의 구분이 사라졌다.
솟구치는 무수한 지반이었던 것들 사이에서 무중력 같은 기묘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은 파괴에 의해 솟구쳤던 것들의 추락이다.
이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여전히 파도처럼 저 멀리 대지의 파문이 번져나간다.
리히터 진도로 친다면 10이상을 가뿐히 달성할 정도의 파괴력.
이곳이 지구였다면 대륙의 형태가 변하고 자전축이 틀어져 종래에는 서서히 속에서부터 파괴되었으리라.
[플래닛 버스터]는 원래부터 지반 자체를 목표로 하는 유니크 액티브다.
거기에 여러 가지 것들이 조합되었으니 그 무엇보다 대지를 잘 박살내는 힘이 되었다.
본디 마법사의 영역인 환경 변화다.
생성될 크레이터의 규모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대파괴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지옥의 마력마저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애초에 왕좌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뒤틀리고 있던 대지다.
당연히 지옥에 존재해야할 시스템으로서의 ‘환경’도 날아간다.
모든 감각이 왕국에서만큼이나 선명하게 제자리를 찾는다.
답답하던 전사들도 눈을 빛내고 있다.
착지점을 정한다.
굉음으로 귀가 저릿저릿하지만 고레벨 유배자의 귀는 이런 환경에서도 육안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자, 이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지. 저 악마 놈들이 이런 맑은 공기에서 싸워봤을까?”
벨제뷔트가 껄껄댄다.
“나조차도 낯설군. 지옥에서 너무 오래 지냈어. 여기서 나고 자란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지.”
미아가 커다란 파문을 만들어낸다.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것이 아닌 지향성 마력 탐지다.
빛과 같은 속도로 아래로 뻗어나간 마력이 금방 되돌아와 정보를 전한다.
성이 통째로 날아간 상황에서도 마왕의 좌는 무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은 마왕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려고 든다.
“위치 특정되었습니다.”
“시각화해줘.”
아득한 상공이지만 미아가 전사들의 시야에 띄워주는 표기가 오만의 마왕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뽑아든다.
나는 [레바테인]을 뽑아들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한방씩 먹입니다!”
다른 전사들이 각자 자신들의 일격을 준비한다.
지상으로!
* * *
오만의 마왕은 자신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음을 알았다.
마법적 대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순수한 물리적 공격력이다.
악마는 물리에 강하기에 물리력을 단련하는 것은 이 지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변태같은 인색 정도나 물리적 공격을 파면서 경외받았을 뿐.
그러나 그 자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마지막 순간에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투창이다.
어떤 힘이 실려있었건 그저 창을 저 높은 곳에서 냅다 집어던졌을 뿐인 별것 아닌 공격인 것이다.
그 사실에 전율하면 오만은 권능을 발휘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그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겁에 질려있었다.
측근들을 찾는다.
이미 재가 되어버린 이도 있지만 살아남아 비틀 거리는 악마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약한 것들은 모조리 증발해버렸다.
재앙이었다.
이곳에 기존에 존재하던 재앙으로도 비하기 힘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파괴다.
이미 성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성은커녕 성 주변이었던 대지조차 저 하늘 위로 솟구쳐있다.
직격을 받고 간신히 살아남은 그와 측근들만이 하늘로 치솟지 못하고 땅 속에 처박혀있을 뿐이다.
지반 아래에 포함되어있던 지옥석들이 끊임없이 폭발을 일으킨다.
지옥에서 다시 한 번 지옥 같은 광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일단 모두 힘을 모아 위를 향해 이동했다.
여러 가지가 증발하여 기체가 되고 기체와 액체 사이의 무언가가 되고 있다.
용암이 끓어오르고 사방으로 튀어 다닌다.
마력의 흐름마저 이상했다.
억지로 마법을 구현하여 본디 지면이었던 높이까지 도달한다.
참상에 감탄할 상황도 없다. 추가적인 공격에 대비한다.
왕좌가 그를 부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파괴 속에서도 신좌의 부산물은 건재했다.
허공에 떠있는 좌로 시선이 빨려들어간다.
저것을 지켜야한다.
그것이 오만의 삶의 의미.
도달하기까지 위한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고.
측근들 몇몇이 위를 본다.
무언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오만은 검을 들었다.
검에 마법을 휘감는다.
마력을 끌어모은다.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흐아아아아앗!”
도리어 마지막까지 몰리자 확실해진다. 지금 저 위의 미지의 공격. 아마도 이 상황을 획책한 녀석들.
이런 수준의 공격이 연속될 수 있다면 저렇게 나설 이유가 없다.
불가하다.
이런 대파괴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왕의 힘을 보여줄 뿐이다!
측근들 역시 전의를 되새긴다. 물러나도 삶은 없다.
* * *
첫 번째는 에리나.
공간을 열거나 비틀려는 시도는 나와 미아가 막아내었다.
더 이상 지옥의 마력이 흐르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압도적인 마법사로서의 스펙 격차도 일시적으로 완화된다.
결국 물리적 힘을 지닌 좀 더 간단한 마법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그러나 천사는, 마법저항력에 있어서는 최고에 가까운 종족이다.
치천사의 두터운 날개가 깃털을 흩뿌리며 마법을 마력으로 흩어 비산시킨다.
그 사이에 뒤섞인 신성한 불꽃 계열의 스킬들이 악마들의 대응을 힘들게 만든다.
에리나는 날개를 방패삼아 오만의 앞을 막아선 측근과 충돌했다.
검과 주먹이 부딪힌다.
무명신풍류의 강력한 연격이 작렬하고 측근이 떠밀려 오만에게 부딪혔다.
황망하나 아직 전의가 살아있는 이글거리는 눈.
하지만 과신은 없다. 오만의 권능을 활용하지는 못하겠지.
다만, 저 왕은 마지막의 순간에서야 칠죄종의 타락으로부터 벗어난 듯하다. 쌓아 올린 자신의 힘 그 자체로 버티고 선 모습이다.
지금부터 저것을 꺾어야 한다.
에리나가 스쳐 지나가고 카롤리가 거대한 창을 내지른다. 루시를 보고 반하여 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둥 같은 창이 측근 하나와 다시 부딪혔다.
오만은 마법을 짜내어 창을 밀어내려고 했다.
폭염이 터져 나오고 카롤리는 몸이 그슬린 채로 스쳐지나간다.
멜메르는 [대지의 대리자]를 발동하고 있었다. 주변의 마법이 빨려 들어간다.
이제 앞을 막을 측근이 없어진 상태에서 오만이 직접 마법을 짜낸다.
검에 휘감긴 무수한 마법들이 터져나오며 멜메르의 미스틸테인을 받아내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오만의 검이 부러졌다. 에리나가 먼저 무기를 노리고 주먹을 휘두른 탓이다.
그것을 카롤리가 일점으로 찍어 눌렀다.
격투가는 본디 무기 파괴에 유리하다.
그러나 데몬인 오만은 검이 없더라도 마법사로서 강력할 터.
벨제뷔트가 검은 벼락을 떨어트린다.
“너는……! 탐욕이 어째서? 그렇구나! 네녀석이!”
무언가 착각을 하는 오만을 보며 벨제뷔트가 번개를 휘감아 후려쳤다.
오만 역시 검은 화염을 피워 올리며 지옥의 마법으로 맞선다.
불길과 번개가 스쳐지나가고 오만이 잔뜩 그을리고 피를 흘리는 상태로 다시 고개를 쳐든다.
동등한 마왕끼리 겨루는 찰나에 엄청난 마력의 소모가 있었음이 보인다.
희우가 내리꽂혔다.
[섬광 재생]까지 2회분의 슈퍼 히어로 랜딩이 오만의 머리위로 내리 찍힌다.
순간적으로 펼쳐진 검은 화염을 두른 마력 방벽은 충격을 약간 완화하는 선에서 그쳤다.
[신성한 진노]의 새하얀 불꽃이 오만의 검은 불꽃에 대응하여 마력을 좀먹어간다.
강하게 반발하며 서로 눈부시게 타오른다. 희우는 날개를 펴고 이탈하여 한 번 더 찌를 것 같은 페이크 모션을 취한다.
오만은 그 모션에 정신이 팔렸다.
다른 측근이 희우를 맡아 몸으로 밀어내는 순간까지.
그리고 하늘에서.
나와 아서가.
아이템 액티브 [선택받은 왕]
유니크 액티브 [팬드래건 : 엑스칼리버]
[무명 : 횡베기]
유니크 스킬 [은빛 섬광] - 녹화 중단
유니크 액티브 [섬광 재생]
바로 며칠 전에 지옥의 상공을 갈랐던 두 가지 색 검기가 교차하여 오만을 덮쳤다.
충돌의 순간은 시야가 가려진다.
터져나와 밀도를 가지게 된 무수한 마력의 파편들이 온 사방을 뒤엎는다.
타오르는 불길도 끓어오르는 증기도 그 순간만큼은 빛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내리꽂힌 후, 크레이터 깊은 곳의 웅덩이에서 마법을 통하여 반전한다.
위를 보자 각자 측근들 하나씩을 상대로 공격을 퍼붓는 파티원들과,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미아를 보는 오만이 보였다.
은빛의 용이 피어난다.
환영처럼 피어난 용과 마법적 술식의 조화가 아름답다.
마법의 신도 이제 본다면 감탄하리라.
대열량은 사방을 증발시켜 기체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응집되고 오만을 향하여 모여든다.
파티원들이 흩어진다.
악마는 물리에 강하고, 마법 저항력은 그만하지 못하다.
모여든 원소는 빛이 되고 창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실피드를 통하여 만들어낸 것은 성스러운 빛속성의 마법.
신성력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악마에게는 상극인 것이다.
빛의 창이 내리찍힌다.
오만은 그 창에서 최초의 투창에서 느낀 그림자를 보았을까.
마왕이 몸을 비튼다. 도망치려고 한다. 대적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그 순간 승리를 확신했다.
빛의 창이 악마를 꿰뚫는다.
실피드가 돌아가고 미아가 떨어져 내렸다.
제니가 미아를 받아드는 것을 확인한 후, 치명상을 입은 오만을 향해 재돌입했다.
마법으로 만든 발판에 마력을 아끼지 않는다. 공중에서도 지반을 만들 수단은 전사 계열에게는 필수 스킬이다.
딛고 치솟아, 뒤늦게 나를 돌아보는 오만의 마왕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와 같은 속성의 마검, 레바테인이 냉기를 두르고 빛의 원호를 그린다.
피가 튀었다.
내 피는 아니었다.
마왕은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의를 잃지 않았다면 그는 더 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지를 꺾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깔끔하게 계획대로 된 셈이다.
에길은 혹시 몰라 마지막까지 저 먼 곳에서 도끼를 충전 중이었다.
그의 차례까진 오지 않았다.
최고군.
측근들이 발악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마왕의 좌가 공석이라면, 여기서 살아남는 자가 마왕일 테니.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블랑쉐가 그 모습을 시야에 넣었다.
곧이어 레베카에게 송신된 좌표로 검은 창이 날아들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드는 전사들을 감당하는 것으로도 벅찼던 측근들은 하나 둘 격추되어 떨어졌다.
내 곁에 다가와서 주변에 지원사격을 하던 블랑쉐가 전투가 끝났음을 알고 총기를 거두었다.
블랑쉐가 홀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문득 귀에 들어온다.
“MISSION COMPLETE…….”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