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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17화 (31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17화

왕국 - 여신님 휴가 복귀 4일 전(1)

지옥의 정리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잡음은 잔뜩 생기겠으나 그것은 벨제뷔트의 일이다.

그는 탐욕이 아닌 악마 벨제뷔트로서 지옥을 다스리고자 했다.

이제 의지할 권위와 권능은 없지만, 애당초 일곱 마왕은 지옥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 일곱이다.

벨제뷔트는 그 일각이었으며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마왕이었던 자였다.

탐욕 이후에 왕좌를 철거하는 일은 블랑쉐가 수고해 주었으나, 마지막은 희우가 한 번 더 나섰다.

“괜찮겠어?”

“이겨내고자 해요.”

“트라우마라는 건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희우는 입술로 내 입을 막았다.

“하지만 사랑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는 능청스럽게도 저렇게 말한다.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야, 실시간으로 달아오르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해놓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의 힘 따위를 입에 담는 모습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심연]의 공략에 대해서는 서브 리더인 희우도 알고 있다. 그곳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알고 있다.

제한적으로나마 참가하고 싶어 하는 의지의 표명이 너무나도 기특했다.

“한 번 더?”

새빨개진 토마토가 싫지는 않은지 대답한다.

“……좋아요.”

남의 침대에 파고드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이런 일은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

제 행동이나 제 몸짓이 가지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순수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이퍼 유교 탈레반인 정씨 집안을 생각하면 건드릴 수 있어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으니 좋은 현상이다.

다만, 희우의 두 번째 노력은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용기는 가상하다고 하리라.

트라우마라는 것은 저렇게 나서서 극복할 의지를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다. 보통은 그것을 하지 못하기에 진단명을 가진 병이 되는 법이니까.

장하니까 열심히 칭찬해 주었다. 본인은 조금 침울해 보였으나 어쩌겠나.

어쨌든 그렇게 모든 왕좌가 사라지고, 벨제뷔트는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을 필두로 새로운 왕좌를 만들었다.

이전처럼 권능을 가진 왕좌는 아니다.

하지만 지옥의 악마들 상당수는 놀라울 정도로 벨제뷔트에게 고분고분했다.

“이제 왕좌는 없으니 마력도 없지. 그러니 저들은 흩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저번에 말했듯이 그들의 삶의 방식은 이미 저것뿐일 겁니다. 의외로 흔한 일이죠.”

왕좌의 마력은 그 자체로 정신간섭이며 끔찍한 병증이다.

벨제뷔트가 그나마 증세가 나았던 것은 탐욕으로서의 욕구가 모조리 소진된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그가 외부의 악마였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왕좌를 갈망하게 길러진 악마들은 어떻게 해도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없지.”

노악마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걸 알게 하는 것이 지금부터의 내 일이겠군.”

“열심히 하십쇼. 필요하다면 저기 위로 도움도 요청하시고요.”

“혼돈께 여쭈면 되겠는가?”

그러자 뒤에서 은근슬쩍 귀 기울이고 있던 루시가 짜잔하며 나타나서 대답했다.

“물론이지! 내 충실한 신도인 고블린들이 그대들을 지원하리라. 애초에 연방에는 악마도 있다구?”

확률이 낮을 뿐, 혼돈을 종족신으로 섬기는 것이 악마들이다.

기나긴 세월 그런 신좌에 앉아 있었던 루시는 당연하게도 벨제뷔트를 받아들였다.

지옥은 뭐, 어떻게든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침공에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안정화되긴 힘들어 보인다.

지옥의 클리어는 신좌 부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다.

그러니 내가 더 이상 간섭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올라와서 다른 일행들을 쉬게 한 후, 레베카를 불렀다.

마법의 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신좌 부품을 거절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신좌는 마법을 연구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온전히 사색에 침잠할 수 있지요.」

“네에? 대체 왜죠?!”

레베카가 거의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존경하는 사부를 실제로 만나 뵐 수 있다고 소망하던 참이었다.

당연히 루시처럼 함께하며 여행할 수 있을 거라 여겼겠지.

사부의 부(父)는 아비 부 자다.

삭막한 미궁 월드에서도 가족 같은 정을 붙인다면, 파티 동료나 사승관계인 셈.

‘푸른 달의 따님’이라는 호칭도 아케인 내에서 자연스레 붙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하이 랭커인 레베카는 그걸 거부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래도 내심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용인했고, 그래서 정착한 것이지 않겠나.

「진정하렴. 네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마법의 신 자리는 쉬이 공석으로 만들 수 없으니…….」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이럴 것이라 알고 있었다.

“뭐, 사실 당장 세울 대타라고 해도…….”

그러면서 레베카를 보았다. 마법의 신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레베카가 움찔했다.

“어? 어어. 혹시…… 나?”

“그야 대신관이며 하이 랭커급 마법사인 너 말고 누가 있겠어.”

이런 방식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신좌에 도달하는 도전자들도 모두 어떤 자격을 만족한 상태다.

그 자격은 신좌마다 달라지는데 마법의 신좌라면 말할 것도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적 성취다.

그 일정 이상이라는 것은 보통 어딜 가나 하이랭커 정도는 기본일 수준을 말한다.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게다.

걸맞은 자가 [메인 던전]을 방랑하다보면 확률적으로 신좌의 입구가 등장한다.

외면할 수도 있으나, 만약 그 속에 발을 들인다면 당대의 신과 맞설 수 있다.

승자는 하나뿐이다.

발을 들인 순간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한다.

신이란 그렇게 단련되어 가는 자리다.

그리고 편법으로 신이 된다 하더라도 동등한 자격은 필요하다. 생략되는 것은 생사를 건 결투일 뿐.

레베카가 한심하게 눈을 굴린다.

나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생각해 봐, 마법의 신이 바뀌면 대신관인 너는 갑자기 다른 사람을 신으로 모시게 되는 거지?”

“앗, 그건 싫은데.”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신앙을 버릴 수도 없을 것 아냐?”

마법사에게 마법의 신보다 좋은 신앙이 있을까?

없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그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빌드한 경우에나 그렇다.

자유자재로 빌드를 짤 수 있는 이들이 흔했다면 내가 미궁에서 이렇게 썩지 않았다. 무수한 고인물들과 함께 미궁을 토벌했겠지.

내가 하나만 더 있었어도…….

어쨌건 일반적인 하이랭커 선에서도 가장 우선시되는 성능의 기준은 범용성이다.

소드 마스터나 마투사 같은 리스크가 높은 빌드는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게임이 아닌 목숨이 달린 현실이니까 말이다.

당연하게도 레베카는 범용성 높은 원소 마법사지 특화된 변태적인 무언가가 아니기에, 마법의 신앙 이외는 고려할 수 없다.

레베카는 시무룩하게 그 사실을 인정했다.

전력이 약화되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유배자는 없다.

“그럼 사부님은 계속 신좌에 계시나요?”

「아마도.」

“그럴 수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레베카의 머리 위에 펼쳐지고 있던 마법의 대모험이 사그라지는 게 보인다.

그래. 딱 그런 느낌이었다. 뭉게뭉게 하던 것이 푸쉬쉬하고 흩어지는 느낌.

마법의 신이 그런 레베카를 달랜다.

「진정하렴. 오래간만에 만신전으로 오지 않겠니? 술이나 한잔 하자꾸나.」

“네에……. 제 꿀술을 가져갈게요.”

“아니? 뭐야. 그거 나도 마실래.”

내가 끼어들자 레베카는 아무 말 없이 혀를 내밀어 보이곤 가버렸다.

마법의 신과 더 대화할 수도 없게 되었다.

“흠, 귀한 거긴 한데.”

아마 재료를 본인에게서 채취했겠지. 저 꿀이란 건 꽃잎 요정의 눈물이다. 끼어들긴 뭐한 자리니 내버려 두자.

어쩌면 자연의 신이 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다시 루시가 나타났다. 얼굴에 홍조가 피어 있는 것이 이미 좀 취한 모양이다.

“이거 봐라! 자연의 신한테 받아왔다! 이게 뭐게?”

“오……. 꽃잎 요정의 꿀술 아닙니까.”

“역시 보자마자 아네. 재미없는 녀석.”

역시 자연의 신! 믿고 있었다고!

루시는 헤죽헤죽 웃으며 나를 붙잡아 끌고 갔다.

“술! 술이다! 다른 술도 잔뜩 여기저기서 받아왔지! 신좌에서 혼자 홀짝이는 술만큼 쓴 게 또 없어! 지난 수천 년 동안 가장 달달한 술이겠구먼!”

제 아무리 공물로 이것저것 취한다 하더라도 결국 혼밥인 셈이다.

루시는 그 무엇보다도 이런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고 싶어 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술잔치는 또 전사다운 자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가 보니 이미 얼굴이 뻘게진 아서가 술잔 옆의 허공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런 식으로 제자를 데리고 있는 신이라는 건…….”

사실 마법의 신은 언제고 신좌를 팽개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키워낸 제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신좌 부품 같은 방법의 존재를 모른다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자자! 부어라! 마셔라! 히히히!”

루시는 그 생각을 못한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이것 봐라! 지금부터 이 오크통을 원샷 해보겠다!”

“오오오! 역시 신좌에 앉았던 여자!”

“와하하하! 나를 찬양해라! 이것이 왕국 최강의 창잽이다!”

……아니, 어쩌면 없었을지도.

* * *

레베카는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바깥에선 냄새만으로도 취할 정도라 못 마셨으며, 그러다 보니 술 마시는 습관 자체가 없다.

미궁에서도 그것은 이어졌다.

그러니 가끔 마시는 것도 꽃잎 요정인 자신의 특성을 살려 만든 술 정도다.

제 몸에서 나온 것이라 부담이 없다.

꽃잎 요정이란 종족은 강력한 고위종족이라는 점 이외에도 진미로 여겨지는 여러 가지 음식들의 재료다.

피는 대단한 향신료로 쓰이며 눈물은 귀한 술의 재료요, 머리카락조차도 맛을 낸다면 귀중하고도 훌륭한 스프가 된다.

그러니 그린 스킨들은 꽃잎 요정을 산 채로 맛보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다.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던 바깥이라면 까무러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그런 감성은 무뎌진 지 오래.

만신전의 토끼 관리인을 지나 이미 기다리고 있던 마법의 신을 본다. 본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나마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얼치기 마법사였던 레베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니까.

그야말로 아버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말없이 일단 한 잔 기울였다.

“어딘가 화난, 그리고 슬픈 맛이 나는구나.”

“그래서 울었거든요.”

“최근에 담은 것 같으니 혼돈의 대전사님 때문이냐?”

“네…….”

레베카는 힘껏 투덜거렸다. 마음에 담아둔 불편함을 쏟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 녀석에 대한 불평이다.

그리고 마법의 신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렸다.

“정했어요! 그 녀석보다 더 굉장한 마법사가 될 거예요. 그러면 마법의 신님의 명예도 실추되지 않겠죠?”

“뭐, 동기가 부여된다면 좋은 일이지.”

“아이 씨! 그렇게 단순화하지 마세요. 일생일대의 결심이라고요.”

마법의 신은 피식 웃었다. 제 입으로 일생일대 운운하는 것 보니 힘듦은 아는 모양이다.

그 뒤로는 진성 마법사들답게 마법에 대한 잡담이 오고 갔다.

레베카는 지옥에서 몇 번인가 사용하고 익힌 지옥 속성의 원소를 직접 봐주기를 원했다.

악마인 마법의 신은 당연히 지옥 속성에도 정통하다.

레베카가 푸념했다.

“제자에게 배운 마법이라니.”

“그 아이라면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지.”

“말도 안 돼요. 곧 따라잡힐 것 같아요.”

전투능력에서라면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 머리가 굳기도 전에 찬란하게 꽃피운 재능은 하나를 말하면 둘이 아니라 열을 하는 정도다.

연구 이론 쪽으로는 아직 꽤나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이라면 아케인에서도 볼 수 없다.

이론을 수립하는 것보다는 현상을 실현하는 곳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마법의 신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경쟁자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지.”

“제 제자거든요! 제자를 상대로 질투를 할 수는 없으니까 노력해야죠!”

마법의 신은 레베카의 재능도 못지않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이미 어딘가 도전자의 입장에서 자극받고 있는데 김이 새게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재능은 분명 사실이다. 하이랭커란 보통 지난 회차에서도 하이랭커거나 최상위권 랭커기는 했던 이다.

레베카는 이번 회차에서 처음으로 마법을 익혔다.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재능.

그렇기에…… 언제고 떠나고 싶어진다면 그를 대신하여 이 좌에 앉히고 싶었다.

충분히 강하게 길러내어 자신을 쓰러뜨리고 다음 대의 마법의 신으로서. 그렇게 길러냈다.

이제는 꼭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 아이도 자유롭게 살면 되겠지.

혼돈의 대전사님께는 그야말로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혹여 레베카가 이 자리에 앉게 된다 하더라도 더 자유로울 테니까.

“그러고 보니 맥의 소식은 없느냐?”

“아……. 그러게요. 아무리 그래도 이젠 슬슬 뭔가 연락이 있어야 하는데…….”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던 총잡이의 이야기가 없어 의아하던 참이다.

시티즌에도 마법의 신을 섬기는 마법사들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용병인 그들의 눈에도 맥이라는 이름의 하이랭커 사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 도시에도 불온한 기운은 점점 고조되는 중이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어떤 집단이 자주 목격되고, 일반인들조차 눈치챌 만큼 어떠한 전운이 감돌고 있다.

그 악룡은 아니더라도 그 아래에서는 이제 [아케인]과 [하드스록]을 정복한 파티를 충분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겠지.

맥과 친하게 지내던 베티도 칩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베티의 친구인 러셀은 아예 시티즌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레베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죽었으면 어떡하죠?”

“음…….”

“히잉……. 맥대가리 녀석…….”

“그러게 진작 고백하라 그러지 않았느냐.”

“그치만…….”

무엇이 그치만일까.

마법의 신이 보기에는 이미 서로 마음이 있었던 지는 오래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과적 감성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말을 아끼고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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