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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19화 (31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19화

왕국 - Lv.4965 [더 시티즌](1)

어쩐지 그럴 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만신전에 가서 자연의 신을 찾자 그는 당연하게도 내게 반문했다.

“아니, 혼돈이 그 대가로 내 창고를 털어갔는데.”

“아……. 그럼 그렇지. 그 대량의 술들은 그럼…….”

어디 요정이 융성한 서버의 왕실에서 털어온 것이겠군.

꽃잎 요정은 요정의 왕족이니 자연스레 요정의 꿀술도 엄청나게 귀해진다.

왕족을 울려야 만들 수 있는 술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납득하려고 했으나.

“내 취미지. 다 내가 만들었다네.”

“……아, 하?”

오래 사는 종족은 오래 가질 취미가 필수적이다.

잠깐만, 그렇다면.

“숙성 연한이 어느 정도 되는 것들로 털리셨습니까?”

“1000년 이상인 걸로만 털어가더군.”

“저 지금 당장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아, 이거 받으시죠.”

“고맙군.”

자연의 신이 흐뭇하게 톱니를 받아들었다. 이미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는 설명을 들은 후다.

나는 정말로 부리나케 달렸다.

아서와 에길마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이유가 있었다. 왠지 그 둘은 술이 엄청 셀 것 같잖아.

아니, 그리고 이건 그걸 넘어서 이건 미아에게도 먹여야 한다.

어린이니까 술은 안 돼요 같은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저건 술이 아니다. 영약이지.

이걸 나한테 말 안 하고 그냥 해왔다고?

그래도 일단 지금은 놀게 놔두자.

* * *

다음 날이 되었다.

“으으으, 대전사여 왜 그렇게 화난 얼굴이느냐.”

“몇 통 마셨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통은 오크통이다. 현대식이라면 드럼통.

“으으음? 세 통에서 세는 걸 멈췄는데.”

“저도 다섯 통부터는 그만 셌는데 말이죠.”

“히끅. 숙취가……. 으으 숙취는 얼마나 오랜만인지.”

그야 뭐, 요정의 꿀술을 그따위로 들이킨다면 신좌에 앉은 채였어도 숙취는 왔을 것이다.

단순 도수가 아니라 어떠한 법칙으로서 취하게 만드는 종류의 술이니 별 수 없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 술들 왜 내놓으라고 한 겁니까?”

“자연의 신, 그 녀석 말이다. 나한테 묘하게 호의가 있어 보이지 않느냐. 그야말로 모범적인 유배자로서 삥 뜯어왔지.”

자랑스럽고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한다. 그 바람에 구토가 유발된 모양인지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혼돈의 신전은 그 주인을 맞아 열과 성을 다해 변기를 가동한다.

한번 토하고 초췌해진 얼굴로 돌아온 후시에게 말했다.

“저한테 말씀은 하셨어야죠. 자연의 신이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아십니까?”

월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일단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

루시가 만약 자기 마음대로 이 파티를 주무르고 든다면 그것만은 곤란하다.

비상시에도 대비는 해본다.

하지만 역시 루시가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급격하게 사색이 된 얼굴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명백하게도 숙취 때문은 아니다.

“어……. 내가…… 말을 안 했나?”

“자연의 신에게 신좌를 벗어날 용의가 있냐고 물으러 갔는데 이미 대가를 지불했다지 뭡니까.”

곧바로 루시가 제 작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대로 조각하면 ‘생각하는 혼돈’쯤 되려나. 그럴싸한 작품명이군.

그리고 펄쩍 뛰어 오르더니 내 앞에 엎드렸다.

“미안하다! 까먹었다!”

“아뇨, 뭐……. 다른 의도는 없었던 것 같으니 이해하겠습니다.”

“그래. 신좌에서 내려온 나는 혼돈으로서가 아닌 너의 파티원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 내가 심각한 월권을 저질렀군.”

“그렇다고 루시가 제 여신님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죠.”

사소한 곳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일단 전쟁의 신은 그다지 내 말을 열심히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신도 제 나름의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루시라도 확실하게 내 편이어야 한다.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

신들을 해방하는 것은 매번 이런 수고가 필요하다.

전쟁의 신이야 뭐, 루시가 원한다면 기꺼이 할 것 같으니 일단 풀어주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자연의 신에게도 무언가 제약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간을 볼 기회마저 통째로 날아갔다.

“음……. 무릎 꿇고 손 들고 서 있을까?”

“뭔 소립니까. 그거 힘들지도 않잖아요.”

“숙취 상태라면 충분한 벌이 될지도…….”

“전쟁의 신이 절 죽이려고 들 겁니다.”

“앗? 그 녀석 결국 풀어주는 거냐?”

“예.”

루시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 그놈이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랬지?”

“거의 백 퍼센트죠.”

“세상에. 어떡하지?”

“그건 제 알 바 아니죠?”

“이 이이이이! 못된 녀석! 그럼 쌤쌤이다! 서로 잘못한 것은 없는 걸로 한다!”

나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시든가요.”

루시가 번뇌에 휩싸이는 것을 내버려 두고 다른 인원을 수습하러 간다.

술판을 벌이는 게 일상인 전사들이야 알아서 제 몸 잘 가누고 있는 모양으로, 네 남정네가 아주 절도 있게 널브러져 있다.

블랑쉐는 주사가 잠인지 진작부터 뻗어 있긴 했다.

그래서 제니를 시켜 입에 깔때기를 꽂은 후 술을 부어 넣었다. 아마 한동안 더 의식이 없겠지.

희우도 어쨌건 그 후에 얌전하게……?

얌전하지는 않았나? 아무튼 나에게 부비작거리다가 침대로 들어갔다. 헤롱거리기는 해도 필름이 나간 것 같지도 않고 용케 건전한 음주 문화를 배운 것인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미아다.

레베카도 만신전에서 마법의 신과 함께 충분히 과음한 모양인지 옆에 뻗어 있다.

내가 온 것을 보고 미아가 꿈틀거린다.

“괜찮니?”

“죽을 것 같아요……. 언데드니까 이미 죽었지만요…….”

미아의 뱀파이어로서 베이스인 인간의 피라면 영양소로서 기능한다.

그 이외의 피라면 독소로서 기능한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평범한 음식도 정상적으로 섭취할 수 있으며, 영양적으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지만 딸려오는 효과도 제대로 받는다.

요정의 꿀술을 통해 마력 용량이 증진되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숙취도 그만큼 있다는 뜻이다.

“자자, 물 마셔 물. 물 많이 마셔. 내 피 마실래?”

“헤에, 아빠 피 좋아요.”

내 몸에 상처를 내주니 바르바로이의 망토를 계승한 권능을 활용하여 쪽쪽 빨아먹는다.

그러다가 우욱, 하더니 토했다.

“조금 더 누워 있어.”

“으으윽. 어른들은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예요?”

“나왔군, 어린아이가 처음 술 맛을 보았을 때 하는 말.”

“후이잉.”

항상 의젓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미아가 완전히 풀어져 있다. 별로 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다.

제일 많이 먹였으니 별 수 없긴 하지.

열 통이나 부어 넣었다.

의식이 없어도 밀어 넣었다.

꿀술이라는 거 사실 별로 달지는 않다. 당은 다 분해돼서 알코올이 된다고?

물론 요정의 꿀술이 진짜로 꿀인 것은 아니지만 걔들 눈물은 달아서 꿀이라는 별명이 붙은 거다.

꽃잎 요정의 체액은 달다. 다르게는 그래서 꽃잎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그 당분은 마력적인 것이며, 그렇기에 영약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낸다.

긴 숙성을 거친다면 점점 자연계의 마력을 흡수하여 고농축화 되어간다.

취기도 더 빡세게 올라오고, 마력도 더 빡세게 증가하고.

하물며 신좌에서 숙성된 술이라니.

도전자와 신간의 전투를 상정한 곳이기에 엄청나게 넉넉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신좌 자체가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게임 시절에도 랜덤 인카운터로 신이 취미로 만들던 것이나 가꾸던 것을 얻을 수는 있었는데 말이지.

이 미궁에서 마나 포션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죄다 귀하디귀한 재료를 생으로 섭취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이보다 귀중한 스탯 상승 아이템도 없을 것이다.

루시가 조금 섣부를 수는 있어도 대가는 정말 제대로 뜯어온 셈이다.

규율의 신좌에 앉았어도 잘하지 않았을까?

“마력은 어때?”

“으으응. 좋아요.”

“아니. 그래 좋은 건 알겠는데.”

미아는 대답 대신 체내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무래도 연식 문제로 마력 총량이 부족했던 미아는 단숨에 1천 년 이상 묵은 뱀파이어로 보일 정도의 마력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건 기초 스탯에 적용되는 것이기에 회차가 넘어가지 않는다면 계속 남는다.

미아는 다음 회차가 없는 NPC긴 하지만 말이다.

미아가 비척비척 일어난다.

“화장실 갈래? 토할 것 같아?”

“네에에.”

오늘은 계속 고생할 모양이다.

그래도 제니와 레미가 완전히 멀쩡했다. 제니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술에 강하고, 레미는 많이 마시지 않았다.

이 둘이라면 나머지 상황 정리를 충분히 맡길 수 있다.

어쨌건 다들 강해졌다.

그래 뭐, 마력 용량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오는 길에 오산을 발견했다.

“제니? 왜 그러고 있어.”

“그, 뭐지 자고 일어나서 갑자기 몸이 잘 제어가 안 된다고 할까…….”

“그래서 네발로 걷고 있어?”

“어쩐지 벽지도 긁고 싶어지고…….”

“외설스럽네.”

“냐앗!”

마력이 폭주해서 다시 야성이 깨어났나? 잎사귀 요정의 메커니즘은 가끔 잘 모르겠다.

결국 늘 그렇듯이 레미가 고생해 주었다.

* * *

반면, 적절한 음주와 그 원기로 인해 거뜬히 업무를 해낼 수 있었던 삼의회 팀은 아주 쌩쌩했다.

“그 술 그거 정말 좋더라.”

“오우, 아직 좀 더 남았으니 필요하면 말해.”

마이어씨가 황망하게 눈을 껌뻑인다.

“선배님, 요정의 꿀술이 남았다고요? 그 귀한 게?”

“자연의 신께서 직점 담근 비장의 컬렉션을 혼돈의 여신께서 싸그리 털어오신지라.”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군요.”

술 마시겠다고 폭주하는 일그림을 때려서 진정시켰다.

반면, 러셀은 덤덤하게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용병은 대가를 늘 챙기지.”

“어휴 러셀 씨. 얼마건 말만 하시죠. 당신처럼 다용도에 유능한 용병도 드물어요. 우리 그 용사 둘도 챙겨줘야 하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언젠가는 네놈을 죽이고 말 것이다.”

거 용사가 마왕 좀 될 수도 있지. 쪼잔하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군.

아, 그래서 애프터케어까지 맡기는 것 아닙니까.

일단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잡혀 있다는 시티즌의 첩자를 보러갔다.

이미 고문 깨나 당한 모양인지 영혼이 외출해 있다.

이거, 언데드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포션으로 지졌군. 악랄하지만 이것보다 좋은 수단도 없다.

종족이 바뀌면 마인드맵도 부분적으로 초기화되니 전력도 약화되고 일석이조다.

“제가 더 심문할 필요는 없겠네요. 뭣 좀 알아냈습니까?”

“그냥 불쌍한 녀석이던데. 아는 건 많지 않았다.”

나이트 크로우는 당연하게도 고문에 능하다. 애초부터 순수를 증명하라며 흡혈귀를 쥐어짜는 조직이다.

알게 된 사실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긴한 것이었다.

“그분이라고 흔히 불리는 악룡은 방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밑에 놈들이 난리 치는 모양이다?”

“그래. 서부의 왕도 찾아갔지. 그 녀석이 용병 쪽 커넥션을 꽉 쥐고 있으니 시티즌 소식을 잘 알지 않나 해서 말이야.”

“전운이 감돈다라.”

중간보스부터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재 [더 시티즌]의 리더인 악룡은 거의 관여를 안 하고 있다는 모양이고, 실질적으로 전두 지휘하는 것은 비교적 나중에 합류한 인물이라 들었다.

전해준 것은 카베다.

개중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섞여 있었는데, 바로 그 실질적인 리더가 ‘오르골’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가명은 대충 어디서 주워다 붙이는 경우가 흔하다.

‘일그림’ 정도라면 드물겠으나 ‘제니’나 ‘레베카’는 몇 트럭은 있을 거다.

꼬우면 우리 레베카처럼 그 무수한 레베카들 중에 가장 유명해지거나, 처음부터 드문 이름을 쓰면 된다.

그 와중 오르골 정도면 흔하진 않겠으나 절대 없을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또 의미심장하단 말이지.”

애초에 오르골은 인명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사나 마법사가 자기 가명으로 채용할 만큼 의미 있는 단어도 아니다.

오르골이라는 건 미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치다.

녹음되어 노래를 흘려 보내는 기계.

그로 인해 떠오르는 가설은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미 있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났다.

본디 [게이머] 태그 달린 놈들끼리 서로 알아보는 경우는 없다.

설정 상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게임으로 접한 식으로 처리된다.

그게 이미 일어났다.

프로방스부터해서 일그림까지.

그럼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랑 같은 곳에서 온 게이머가 아니라.

지금까지 고정 NPC라고 믿어왔던 이들의 세계에서도 또 다른 누군가가 오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 하는가?

이번 회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는.

무엇이지?

하지만 이전과 달리 불안감은 차오르지 않았다.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어쩌면 거울처럼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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