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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25화 (32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25화

왕국 - Lv.■660 하이■커 맥(3)

희우도 이번 일이 그리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이 셋이나 있는 전투에서 대체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변수가 있다면 차라리 ‘오르골’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것은 기대보다도 더 쉬웠다.

“오랜만이에요! 대거!”

“와우! 로잘린! 반가워요!”

은퇴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사다난한 매일을 보내고 있는 그루터기 요정 궁수가 손을 흔든다.

그 옆에는 에르메스도 피곤한 표정으로 서있다.

“죽겠군.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이 뒤에 무슨 일이 있을 예정이었는지도 들었죠?”

“왕국을 모두 쓸어버리는 침공이라고 했던가. 나는 직접 겪어본 적은 없어.”

로잘린이 씁쓸하게 웃었다.

“모르는 게 좋아요. 에르메스.”

“로잘린이 설득하지 않았다면 그게 뭔가 싶어서 별 생각 안했을지도 모르는데.”

에르메스야 그렇다쳐도 은퇴라이프를 즐기던 로잘린의 입장에선 날벼락이긴 했다.

로잘린은 전 랭커이며 충분히 고참이긴하지만 하이랭커의 근방에도 가본 적이 없다.

고로 왕국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적었다.

갑자기 옛 파티 동료 마이어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로잘린도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로잘린도 곧 마이어가 하드스록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떠올렸다.

그렇다면 사실이었다.

몰라도 되는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로잘린이지만, 이 경우는 모르는 게 더 위험했다.

왕국 경영, 그리고 리셋.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거기까지 알고 나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후, 이쪽의 연락책으로서 가장 맹활약한 것이 로잘린이다.

다른 랭커나 하이랭커들이 억류되고 감시받는 가운데 은퇴한 궁수는 자유로웠다.

“은혜는 갚아야죠. 제가 날로 먹은 게 얼마인데.”

“나도 그래서 일하고 있긴 하지. 저번 그걸로 선금 받은 셈을 쳐도 너무 남는 돈이었단 말이야.”

표정은 안 좋아도 입으로는 좋은 것처럼 말한다.

전장의 베테랑들이 그렇듯이 입은 언제나 긍정을 찾는다. 고생도 내뱉지 않으면 고생이 되지 않는다. 강한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희우는 비록 너무 빠르게 올라왔지만, 시티즌에서 미리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던 이들의 고생을 알 것 같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대피 작업은 많이 힘들었어요. [무기고]의 길드 마스터가 나서지 않았으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요.”

지금 그 베티에게로 이동 중이다.

베티는 랭커로서, 그리고 시티즌의 유력자로서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

탈출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냐고 말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돌아가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있는 편이었다.

시티즌의 뒤에 존재하는 어떤 통제와, 그것에 얽매여 제한적으로만 움직여야했던 상황에 불만을 잔뜩 가진 참이다.

이미 배경은 잔뜩 있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악룡은 한번 슬슬 치워버려야 할 때라고 느꼈으리라.

불만이 끓어오르는 냄비에 뚜껑만 덮어둔 셈이니.

거기서 희우는 그렇게 오래된 드래곤이 얼마나 강해질까 궁금했다.

오빠는 기존의 파티원으로 악룡을 상대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그야, 당연히 신들 보고 싸우라고 해야지. 왜, 상대의 스킬셋을 미리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미궁에 존재하는 유니크 스킬의 가짓수는 1000개가 넘는다. 구체적으로는 1400여개 정도.

저 중 300개 정도는 가진 걸로 대단한 보람을 느끼기 힘든 하위 유니크 스킬.

“풀린게 생각보다 적어. 특히 마법사들. [아케인]의 마법사들조차 마법적 능력과 패시브가 대단했던 거지  쓸 법도 한 유니크 스킬이 없었단 말이야.”

그것은 레베카도 동의한 바였다.

유니크 스킬을 가진 마법사가 적다.

혹여 가진다 하더라도 패시브 계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거기에 사실 유니크 스킬 개수에 비하면 신들과 하이랭커를 모조리 합쳐도 좀 적어. 더 있어야 해.”

신들의 호구조사는 신좌에서 해방되어 홀딱 넘어온 두 신이 수고해줬다. 마법의 신은 내려오진 않되 기꺼이 협력했다.

“루시처럼 많지는 않아도 서너 개씩 가진 신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좀 하위 유니크도 섞으면 말이야.”

그렇지가 않았다는 모양이다.

하드스록과 아케인의 호구조사가 가능해지자 충분한 표본이 확보되었다.

시티즌은 베티나 러셀 등의 시티즌 출신들이 아는 대로 다 털어놓았다.

“이게 사실 [더 시티즌] 멤버들만 유난히 운이 좋아 쓸어갔다고 보긴 힘들지.”

“그런데 악룡은 전쟁의 신만큼이나 오래 이 왕국에 머물렀고……. 게이머란 말이죠?”

“선점당해 있는 거야. 이건 악질이지.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이 아니겠지.”

그 사람이 아니겠지라는 말에는 조금 다양한 의미가 있어보였다.

벌이는 일을 생각하면 인간성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 강력함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말에 오빠는 답했다.

“드래곤은 진짜로 사람이 아니야. 다른 플레이어블 종족들은 어찌되었긴 인간에 골격을 두고 있잖아?”

그건 사실이다. 천사도, 악마도, 거인도, 용인도.

반인반수 중에서도 켄타우로스는 하반신이 말이라는 점에서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상체의 인간 몸이 주라는 점에서는 같다.

“드래곤은 유일하게 그렇지가 않아.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는 있겠지만 본 모습의 전투력을 활용하지 않을 거면 의미가 없지.”

그야말로 괴수.

같은 레벨이라면 2층의 그리폰이 그랬듯이, 심연의 혐오체들이 그러하듯이.

괴수형이 더 강하다. 스펙만 따진다면 특별히 그렇다.

그건 보스 몬스터로서 만들어진 카테고리기 때문이다.

지성이 조금 부족하기에 틈을 노출하지만 대신 막대한 스펙으로 그것을 찍어 누른다.

희우도 거기서 깨달았다.

“마인드맵을 가진 보스몬스터?”

“정확히 그거야. 그래서 드래곤을 최강이라고 말하는 거지.”

[용사]가 드래곤급 신체 능력을 부여하는 유니크 스킬이라지만 실제로 드래곤과 팔씨름을 해서 이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저 체격과 질량의 문제다.

드래곤은 보스 몬스터의 종족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블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러니까 만나면 절대 상대하려고 하지 말고 신들을 향해 도망쳐. 본신으로 돌아다니고 있진 않을 테니까 수상한 유배자면 그렇게 하도록 해.”

아마 별일이 없으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금부터 암살을 할 거였으면 진작 우리를 치러 왔겠지. 그 녀석은 아마 별 생각 없을 거야. 신들이 셋이나 나타난 걸 알고부터 발 등에 불이 떨어지겠지.”

깔끔한 정리였다.

희우는 어쨌든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악룡은 광인일지도 모른다. 미친 자의 사고를 추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갑자기 나타나 지금 베티를 만나러 가는 그룹을 노릴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신을 셋이나 불러놓고도 낙관하지 않으시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상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늘 오싹해지거든.”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힘들지. 그래도 조심하는 거지.”

그리고 쾌활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 아무튼 잘 될 거야. 우리 파이팅! 이제 다와가.”

“메인 던전까지요?”

“그래.”

* * *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흠, 왜 그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나?”

“사실 제가 저 악룡 입장이라면 3대1도 가능할겁니다.”

“그렇겠지.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너라면 그럴 만도 하니.”

“그런데 그건 드래곤의 골격에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드래곤의 골격에 익숙하다고? 루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드래곤을 해본 적이 있나보지? 뭐, 그때 죽도록 노력했다면 날개달린 거대 도마뱀의 몸에 익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우리를 이기지 못할 리는 없다고 여기겠죠. 그러니 이제 움직일 때도 되었는데 계속해서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게 이상합니다.”

“혹시 이곳에 없나?”

“그럴 지도요.”

제 왕국을 건설하려던 정신병자.

그렇다면 왕궁을 만들고 그곳에 왕좌를 놓아 앉을 만도 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있기는 하였다.

시티즌의 도시 한 가운데에 황궁이라도 세우는 게 이상하진 않은 일 아닌가.

조용히 은거하듯이 계속 지낼 필요가 있었을까?

신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더라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들쑤시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면 베티와 다른 이들이 빠져나오는 대로 싹 밀어버리도록 하지. 여기가 시티즌의 도시였던 것이 되어버리면 문제없지 않겠어?”

“맞습니다. 좀 찝찝하긴 하지만요.”

그러고도 루시의 대전사는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다음에 포위망을 좁혀갔다.

다른 신들도 각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전령을 데리고 조여오고 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즉시 대응이 가능하다.

하이랭커 수준의 스케일에서 도시 하나 정도는 그리 큰 것도 아니다.

지금 천천히 땅 자체를 완전히 갈아엎으며 전진하는 것은 무슨 수작을 부려뒀을지 모르니 깔끔하게 밀어버리기 위함이다.

신이 셋이나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대전사는 돌다리를 충분히 두드리며 건너고 있다.

“하지만 악룡이란 놈이 빠르게 꼬리를 말고 게릴라라도 시작한다면 그건 좀 무섭겠군.”

“초인의 게릴라만큼 두려운 게 없죠. 색출할 수단도 별로 없는 마당에 말입니다.”

일단 랭킹에는 한 번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파밍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드래곤은 숨만 쉬어도 레벨이 올라가니까요 뭐.”

“사기긴 해.”

“사기죠.”

* * *

“어서와…….”

베티는 초췌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공방이었던 곳은 이제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사용하지 않은지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그랬다.

“사람들은 거의 다 빠져나갔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하이랭커들도 조금 전에 모두 떠났어. ‘오르골’에 대해서는 알아낸 바가 없네. 미안해.”

블랑쉐가 조금 실망했다.

베티는 짧게 마지막까지 알아낸 것들을 이야기 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인물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다지 터치를 하지 않고 있었어. 어쩌면 처음부터 여길 버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사람이 점점 줄어가자 [더 시티즌]에 소속된 이들이 섞여들어 숨을 수가 없었다.

베티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한 다리 정도 건너면 누군가는 [더 시티즌]의 하수인이었다.

영업하던 카페 직원부터해서 이웃집 요리사, 아침의 청소부.

누구하나 손길이 닿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나를 죽이려는 시도도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었네. 그래도 살아남았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제 하드스록으로 가신다고 했죠?”

“설비를 마련 중이라니 그곳에서 다시 [무기고]를 만들어야지. 같이 떠나면 이곳의 일도 끝인가?”

“그거면 충분해요.”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 사라지는군.”

“이해해요. 저는 아직도 바깥이 고향 같거든요.”

“젊은 유배자라고 그랬지. 놀라워. 나도 그런 재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베티는 그렇게 말하며 망치를 내려놓았다.

“사실 다른 장비가 있으니 잘 안 쓰지만 역시 대장장이는 망치지.”

“애도인가요?”

“그래. 난 여기서 100년 가까이를 살았거든. 정든 공방에 내 망치를 묻어주는 셈이야.”

“오우.”

“새로운 공방에선 새로운 망치를 들어야겠지.”

레베카가 끼어들었다.

“맥의 소식도 아직도 몰라요?”

“음.”

베티가 침음을 흘린다. 레베카의 표정이 너무나도 불안해 보인 탓이다.

“그 친구 사실 몇 번 흔적 같은 게 발견되기는 했어.”

“왜! 왜! 말 안했어! 무슨 짓이야?!”

레베카가 순간 폭발했다. 난쟁이인 베티의 멱살이 잡혀 들린다.

베티는 화를 내지 않았다.

“네가 들으면 슬퍼할 이야기여서.”

“……죽었어?”

“너희 파티는 요주의 인물들이어서 ‘오르골’이 빨리 손을 쓴 모양이야.”

베티가 힘없이 총을 한 자루 꺼냈다.

레베카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맥의 총이었다.

관통력에만 집중한 소구경 화기가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맥이 투덜거리기에 레베카가 의뢰해준 것이었다.

만든 것은 베티였다.

“네가 맥에게 주는 선물이었잖아? 그렇지?”

“……이걸 두고 다닐 녀석은 아닌데. 병기창도 있으면서.”

레베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 자그마한 교수가 밤마다 훌쩍이며 혼자 잠든다는 것을 미아는 알고 있었다.

미아가 레베카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레베카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분위기상 아무도 말리지는 못했다.

작은 마법사는 훌쩍이면서도 제자가 이끄는대로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희우가 쓴웃음 짓더니 앞장서서 호위하듯 빠져나간다.

베티도 힘없이 웃어보이고는 따라나섰다.

로잘린과 에르메스는 그저 조용히 침묵했다.

그 둘에게는 이제 이 자리의 누구건 까마득히 높은 랭킹의 선배나 다름없었으니까.

먼저 앞장서서 나갔던 희우가 주변을 살피고 돌아왔다.

희우는 훌쩍이는 레베카를 슬쩍 보고는 블랑쉐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오르골’은 놓친 셈이겠죠?”

“그럴지도 모르겠다. 각오하고 있었는데 막상 마주할 일이 없다고 하니 안심 되는 내가 싫군.”

“뭐, 어때요. 갑자기 툭 튀어나와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블랑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에게 더 큰 발전이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래부터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다.

간혹 직접 일을 처리하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복제들을 이용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누구보다 두려워할 인물이다.

여기서 안주했을 것이다.

블랑쉐는 아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익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그때 그 ‘오르골’의 딸이 아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다른 것 때문은 아니다.

다시 일단의 무리가 주변에 나타났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으나 대략적으로 짐작은 갔다.

많지는 않은 느낌. 열명이 채 되지 않는다.

블랑쉐는 눈치 챘음을 티내지 않고 사격했다.

저쪽이 회피기동을 한다. 스펙이 높다.

레베카도 눈물을 닦으며 마법을 짜기 시작한다.

용변을 보는 와중에도 자유자재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면 하이 랭커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동료의 죽음에도 마찬가지다.

마법과 사격이 몇 번 교차했다.

지금까지의 몇 번은 그렇게 끝났을 습격이었다.

희우가가 스쳐지나 옆으로 온다. 가볍게 적의 위치로 파고들었다가 돌아온 참이었다. 성과는 없었다. 적은 막아내고 회피하여 빌딩의 그림자 사이로 스며들었다.

블랑쉐가 소감을 말했다.

“이번엔 강하군.”

픽하는 사격이 들어온다.

미아가 자동대응하게 만들어 걸어둔 마력방벽이 생겨난다.

힘없이 뚫리지만 희우가 대응하기엔 충분했다.

각도를 맞춘 단검으로 사격을 튕겨내며 희우도 대답했다.

“저쪽도 하이랭커급? [더 시티즌]의 본체겠군요.”

“‘오르골’이 바깥과 똑같은 체제로 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저건 나와 같은 급의 요원들이다.”

“……‘딸’이군요.”

“이상하게 아들을 좋아하진 않더군.”

“변태인 게 아닐까요?”

블랑쉐는 조금 전의 안심하는 마음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러나 대신 차오르는 것은 긴장이 아니었다.

문득, 든 생각이다.

그녀는 과연 오르골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저 딸들보다 못한 존재일까?

“가능하면 구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이기긴 해야 한다.

베티가 에르메스와 로잘린을 데리고 물러났다.

적들도 그쪽을 노리진 않았다.

몇몇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달려든다. 희우가 반응했다.

제니쪽으로도 하나가 파고 들었다.

몇 가지 마법의 보조를 받아 제니는 그것을 막아내었다.

금속이 서로 튕기는 소리. 몇 번의 마법이 작렬하는 소리.

그러나 그 사이에 살을 가르는 소리는 없었다.

정신없는 공방이 이어진다.

단순한 [은신]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이곳 저곳에 몸을 숨기고 사각을 노린다.

블랑쉐는 그 기술이 너무나도 익숙함을 느꼈다.

합이 몇 번 더 교차한다. 검극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고 피가 살짝 뿌려진다.

그런 와중 특출나게 강하다고 생각했던 그림자 하나가 은신하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블랑쉐는 주변을 살폈다.

희우가 가장 많은 적을 감당하고 있다.

건물과 그 잔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와중에 거리가 조금 벌어졌다.

유도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찾아온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여자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한다.

“알파라고 합니다. 언니.”

“코드네임 짓는 센스는 여전히 별로군.”

“실패작이 할 말은 아니군요.”

“그러냐.”

블랑쉐는 단검을 역수로 바꾸어 들었다.

“와라.”

“기꺼이.”

도시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끊임없는 섬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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