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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26화 (32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26화

왕국 - Lv.2911 ‘오르골’(1)

위성은 특수하게 제작된 것이다. 약탈할 미래의 세계는 너무나도 많았고 유배자에게 그것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것도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마도공학의 정수가 깃든 위성은 수없이 저 상공에 발사되어 있다.

대부분은 이 세상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공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오르골’에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사방에서 짓쳐들어오고 있는 파괴가 늦어졌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블랑쉐.

그 그리운 이름의 딸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

멍청한 절망 대신 이 미궁이라는 사회에 걸맞은 도전을 보여준다.

그 계기가 무엇일까?

함께하는 동료겠지.

그렇다면 블랑쉐를 어떻게 손에 넣을까?

그 동료가 사라지면 된다. 저 아이는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능동적인 부분은 전투와 임무에만 국한된다.

다른 부분은 오로지 그에게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의 힘으로는 마냥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이제부터는 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케인]이 당했고, 하드스록도 과정이야 어쨌건 패했다.

이런 상대를 온전히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직무 유기다.

“귀찮고, 피곤하군.”

그의 유일한 상관은 그런 남자다.

부하여도 피곤했을 제멋대로의 용.

지금도 아마 이 근방 어딘가에 있으리라.

필요할 때만 나타나 지시를 한다.

다만, 그렇기에 신뢰는 한다.

“부하였다면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겠지만.”

결벽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과는 정반대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계획은 그가 짜겠지만 그 계획을 짜라고 지시하는 것은 그의 상관이다.

그 시기와 방향은 이성과 합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확하다.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오르골’은 그런 점에서만큼은 그의 상관을 신뢰했다.

그러니 지금 저 막대한 파괴를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 이 왕국에서 가장 악룡이라 불리는 어떤 유배자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오르골이다.

지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 존재.

그것을 상정하고 모든 계획을 짠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없다.”

그는 여기서 블랑쉐만을 취하면 된다.

알파와 베타가 화면에 비친다.

‘오르골’은 용의주도한 남자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순히 스펙에서 자신이 블랑쉐에게 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다.

알파는 그의 명령으로 저곳을 습격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의적으로 그가 더 뛰어나다고 판단한 경쟁자를 제거하러 갔다.

그럴 것을 뻔히 알지만 내버려 두었다.

블랑쉐가 이겨낼 수 있을까?

알파와 그 아래의 아이들은 비록 그의 유전자를 받지는 못한 반푼이들이지만, 그럼에도 미궁의 시스템에는 누구보다 잘 적응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오르골’은 그럼에도 바랐다.

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딸이 돌아왔기를.

모든 동료가 죽고 다시 의지할 곳을 잃어 그에게 돌아오기를.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오래간만에 손수 나서게 되리라.

이 또한 여흥.

바깥의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악룡도 여흥으로 여기겠지.

이 세계는 게임이다.

그리고 그들은 게임의 운영자였다.

* * *

문득 시선을 느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고도로 단련되고 달아오른 감각 덕분일까?

직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혹은 오랫동안 보아온 그의 아비가 어떤 성격인지 알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그렇게 문득 하늘을 보는, 어떤 시선을 느낀 블랑쉐가 불쾌했던 모양이다.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가 앙다문 입술에서 삐져나온다.

“어디를 보는 거죠?”

여유를 가장한 알파의 공격이 계속된다. 자존심을 세우는 인형 같다.

제 의지라고 믿고 있겠으나 그조차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블랑쉐는 말없이 검을 들이댔다.

기척 없이 솟구친 칼이 섬광을 그린다. 쇠끼리 부딪치면 있어야 할 소리조차 없다.

암살자는 그러하게 싸우니까.

그러나 이건 얼마나 우스운가.

다시 달빛이 춤춘다.

밤의 도시를 내달린다.

그림자가 드리운 거대한 콘크리트 묘비 사이를 박차고 달리고 또 달렸다.

끊임없이 교차하고 원을 그리고 나선을 그린다.

마지막에는 어떤 기호처럼 서로 회전하며 착지했다.

같은 이에게 배운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마치 무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어우러진다.

서로 물러선 상태에서 알파의 표정을 본다. 관리가 잘되고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감정이 새어 나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블랑쉐가 오르골에게 배운 기술이다.

대놓고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관찰하고 왜 자신의 감정이 들키는가를 연구했다.

그녀의 포커페이스는 언제나 오르골에게 뚫렸으므로.

생각하면 두 오르골은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 왜 처음에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는가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나에게 집중하세요!”

“이런.”

블랑쉐는 야릇하게 웃었다.

이 아이는 강하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심지어 블랑쉐보다 스펙도 더 높다.

더 오래 왕국에서 단련한 탓일까?

고아를 수집한다곤 하지만 알파라는 이 녀석만큼은 유배자인 모양이다.

약간 더 감정이 실린 검이 휘둘러진다. 어둠 속에서 살의 없이 치솟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전사처럼, 명확한 전의를 담고.

블랑쉐 역시 다른 방식으로 무기를 휘두른다.

역수로 쥔 검은 정면 승부에선 아무 쓸모가 없다.

저쪽은 이미 일격필살의 암습이 아니라 검격을 겨루는 형태로 단검을 쥐고 있다.

지금까지 서로 겹치던 궤적이 처음으로 틀어졌다.

그대로 부딪혀주면 스펙에선 밀리니 별수 없다.

서로 다르게 쥔 단검이 다시 허공에 스치운다.

어둠이 살짝 갈라졌다.

블랑쉐가 오르골에게 놀란 점은 ‘오르골’보다도 단순한 무기술이 뛰어나단 점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젠 받아들였다.

그럼 배울 뿐이다.

새로 생긴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동작은 아니지만, 괴물을 찢어발기기 위한 단검술이었다.

블랑쉐는 그것도 배웠다. 그러기 위한 대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길.

그 전사는 그야말로 전사의 방식대로 힘을 싣는 법을 알려주었다.

암습 따위가 아니라 눈앞에서 적의 머리를 쪼개는 방법이다.

같은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되 더 많은 것을 품은 것은 블랑쉐였다.

그것을 점점 상대도 느끼고 있었다.

알파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존심도.

질 수 없다는 근성과 지기 싫다는 울분이.

블랑쉐는 자신이 남의 심리를 읽는 데 능숙하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임무’에 나선 이들을 보고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 읽어볼까.

‘오르골’의 딸로 살아가는 것은 무한한 경쟁이다.

거두어지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성과로만 모든 것이 굴러간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기를 강요하는 분위기.

강제하지 않는다. 분위기만을 그렇게 조성하는 점이 악질이다.

다른 세상을 알지 못한다.

알파가 아는 세상에서 ‘오르골’의 인정과 칭찬은 ‘모든 것’이다.

유배자가 아닌 아이들은 조금 더 낮은 계급으로 분류될 것이다.

계층을 갈라치고, 유배자는 우월하다는 인식을 심는다.

그래놓고 또 재능 있는 NPC들은 우대할 것이다.

그건 경각심을 심는 방식이다. 우월한 네가 마인드맵도 없는 것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다.

‘오르골’은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키운다. 철저하게 통제된 정보와 강제력 없이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세뇌.

블랑쉐도 미궁에서 십 년 이상을 보내고서야 그것에서 벗어났다.

그러고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블랑쉐가 다시 태어난 것은 지금이다.

그래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준다. 알파에게 달라붙어 내려친다.

에길의 동작처럼.

알파는 ‘오르골’의 세련되고 말끔한 동작에 비해 투박한 그 공격을 쉽게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

거대한 바이킹의 무시무시한 힘은 단지 근육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알파가 떨어진다.

이동기를 동원해 추격한다.

빛이 번뜩이고 역수를 쥐고 있을 때, 그녀의 새로운 여동생 천사가 흔히 구사하던 찌르기를 넣는다.

가드 사이를 파고들고 어떻게 잡아내더라도 귀신같이 찔러 들어온다.

알파는 결국 다른 쪽 팔로 그것을 막아야 했다.

약간 멀어지며 포션을 사용한다. 소리 없이 투검이 날아간다.

그것을 병으로 막는다.

알파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총격.

권총이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순간 놓칠 정도였다. 블랑쉐는 눈으로 보고 총구의 방향마다 단검을 들이댄다.

천사만큼 잘하지는 못하지만 자꾸 보고 자꾸 따라 하다 보니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총이다. 하지만 아티팩트급은 아니다. 튕겨 나간 총탄이 사방을 튀어다니며 불꽃을 일으켰다.

블랑쉐도 총을 꺼내 들었다.

“사격으로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레일건의 형태가 권총으로 변한다.

사실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단검을 사용하려면 이게 가장 편하다.

둘은 또다시 똑같은 무장이 되었다.

알파가 먼저 달렸다.

유리창이었던 것 사이를 밟으며 뛰어오른다.

콘크리트들이 뜯겨나간다.

서로 짓밟고 휘두르고 다닌 빌딩들의 외벽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블랑쉐도 뛰어올랐다.

서로가 뛰어오르자마자 총탄이 날았다.

알파는 방탄 장비를 동원해 막아낸다.

블랑쉐는 단검을 그 궤적에 가져다 대었다.

튕겨지는 총탄과 함께 다시 허공에서 격돌한다.

총신은 단검으로 쳐내고 손가락 하나라도 먼저 베려고 노력한다.

공중에서 한번 부딪힌 후에는 다시 서로 사격하며 거리가 벌어지고 또다시 벽을 차고 뛰어오른다.

몇 가지 미궁의 불가해한 이동기가 더해진다.

공중에서 궤도가 꺾이고 휘두르는 단검에 힘이 더해진다.

점점 고도가 상승했다.

한 호흡에 다섯 번의 사격 그리고 일곱 번의 검격.

다음 순간 벽으로 향하며 장전.

탄피가 흩뿌려진다.

블랑쉐는 탄피가 없는 총기기에 그런 일은 없다.

빌딩에 난 구멍이 점점 늘어난다.

튕겨 나간 총탄이 점점 멀리 날아간다.

지그재그의 섬광이 사방을 튀어다녔다.

서로 마천루들의 옥상에 도달하는 순간.

배경으로 세기말적인 광경이 보인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거대한 파괴의 먼지구름. 어딘가에서는 회오리가 덮쳐들고 반대편에서 괴수 영화라도 찍듯이 건물들이 밀려 넘어지고 있다.

실시간으로 좁혀오는 재해를 배경으로 빛을 잃은 향락의 도시.

알파가 권총을 내던지는 것을 보며 블랑쉐도 총신을 바꾼다.

단검은 집어넣는다.

이번에는 옥상을 달린다.

하늘 위에는 천사가 아직도 날고 있다.

그 그림자가 지나가고 블랑쉐가 방아쇠를 당겼다.

엄폐보다는 회피.

미궁의 총기는 그런 식이다.

서로의 어설트 라이플이 철근 콘크리트들을 통째로 갈아 마신다.

분쇄된 건축재는 연막이 되고, 그 충격은 추진력이 된다.

공중 기동을 하듯이 사격이 난발하며 서로의 위치를 흩뜨린다.

총탄이 날아드는 방향에서 위치를 특정하면 곧바로 대응사격을 한다.

그러나 저쪽의 위치도 이미 다르다.

그 사이에서 패턴을 서로 읽어간다.

눈먼 총탄에 맞을 정도면 이 자리에 없다.

직감으로, 시야로, 소리로, 촉감으로 모든 감각을 동원하고 스킬마저 동원하여 날아드는 쇳조각을 파악하고 사선에서 몸을 뺀다.

한순간의 소강상태. 저쪽도 이쪽도 장전.

구멍이 숭숭 난 빌딩들이 드디어 기울기 시작한다. 발판이 사라진다. 다른 빌딩으로 갈 수는 있겠으나 좁혀들고 있는 이곳에서.

그것이 두 번 더 반복되고 블랑쉐는 귓가에 울리는 소리가 조금 다름을 느꼈다.

병기창에서 탄창을 꺼내는 대신 다시 단검을 꺼냈다.

무언가가 발동하는 기척이다.

총기에는 공격 스킬이 없다.

폭발처럼 저쪽에서 무언가 굉음이 울렸다.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인지조차 힘든 속도로 새파란 유성이 빨려 들어왔다.

앞부분에는 몸을 보호하는 불길이, 뒷부분에는 추진을 위한 불길인가?

새파란 화염을 몸에 두르고 달려드는 소녀는 불사조처럼 아름답다.

블랑쉐는 그것이 유니크 스킬임을, 그리고 유니크 액티브임을 직감했다.

어떤 형태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돌진했다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오르골은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대응법을 제시했고 블랑쉐는 그것을 파티원들과 함께 공부했다.

돌진하는 타입은 언제나 물리공격이 주력이다.

[길을 찾는 날개]를 쓸 필요도 없다.

블랑쉐는 눈을 살짝 감으며 시각이 아닌 감각에 집중했다.

저런 형식의 돌격이라면 그녀의 여동생이 누구보다 많이 하며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것에 대응하는 연습은 우연찮게도 많이 했다.

빠르지만 결국 직선이다.

자세를 낮추고 단검을 앞으로 내민다.

흐름을 느낀다. 소리보다도 먼저 닿는 예리하게 피부에 와닿는 감각을.

이런 잡기술은 ‘오르골’이 아니라 오르골에게 배운 것이다.

저런 속도는 정밀하게 타격 위치를 제어할 수 없다.

날 때부터 완전한 초인이었던 파티의 천사나 간신히 눈이 따라가고, 상대를 보며 타점을 옮기겠지.

알파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느렸다.

치솟는 불길에 의한 화상을 감수하고 푸른 화염이 응축된 단검에 자신의 검을 가져다 댄다.

친다가 아니라 댄다는 느낌으로.

마치 총탄을 상대하듯이.

하지만 온힘을 다해.

알파는 보았다.

블랑쉐가 그리는 검의 궤적은 하늘에 걸린 달처럼 매끄러웠다.

그녀가 ‘오르골’에게는 배운 적이 없는 이상한 동작이었다.

빠르고 날카롭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파의 방향이 변했다.

강렬한 찌르기는 목표를 잃고 블랑쉐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 이끌렸다.

흘리기?

그런 차원의 기술이 아니었다.

이건 기예라고 불러야 했다.

그리고 낯설었다. 그의 아버지가 사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

성향부터 원리부터 비슷한 부분조차 없는 무언가였다.

알파는 그 기세 그대로 회전 당하여 바닥으로 처박혔다.

이미 기울어가던 빌딩은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알파를 지하까지 떨어뜨렸다.

추락한 요원은 임무의 실패를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의 쓸모가 사라짐도.

맹렬한 기세였기에 충격을 흡수할 수단도 없다.

전신을 내달리는 충격이 허파에서 공기를 짜낸다. 의식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은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 때문.

그러나 한순간 보인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포션을 마실 틈은 없었다.

블랑쉐가 움직이지 못하는 알파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알파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자신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몰랐다.

그냥 뭔가 말하고 싶었다.

여기서 끝일까?

이대로 죽는 걸까?

이번 회차의 나는 왜 살아온 것이지?

다음 회차……. 다시 튜토리얼…….

나는 그럼 이제 무엇을……?

하지만 아직도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바닥에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처럼 괴롭다.

눈물이 흘렀다.

블랑쉐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총을 맞은 것이기에 저렇게 여유롭게 눈물을 흘릴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르골’의 딸로 살다가 죽는 아이들은 언제나 마지막에 저렇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는 살아서 추구하던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진다.

그게 남이 주입한 목표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번 죽어보지 못한다면 벗어날 수 없는 주박이다.

블랑쉐는 눈빛이 흐려져 가는 알파에게 말한다.

“느리구나…….”

알파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들었다.

“깨닫는 것조차도.”

그리고 어렴풋하게 들린 것 같은 따뜻한 목소리.

“일단 자고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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