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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31화 (33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31화

왕국 - Lv.2911 ‘오르골’(6)

훈련이 시작되기도 전의 어린 시절, 블랑쉐는 친부의 동작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세뇌나 교육의 결과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간결함의 기능미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인류가 태양계를 누비는 시대에 냉병기란 도태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플라즈마 커터부터 초진동 나이프에 단분자 커터까지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무기가 아닌 도구로서의 나이프는 여전히 쓸모가 있었다.

물론 비상시의 보조무기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물론 그래도 나이프를 쓸 바에야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블랑쉐의 친부는 그런 와중 나타난 천재였다.

그 재능을 좀 더 과거에서 가지고 태어났다면 영웅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백병전이란 개념이 희미한 미래 사회에서 검을 다루는 재능이란 건 대단한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그가 스포츠 선수로서의 길을 걸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친부의 타고난 성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그랬는가? 그것까지는 모른다.

블랑쉐가 아는 것은 그녀의 친부가 나이프에 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도구에 국한된 사랑은 아니었다.

냉병기가 사람을 찢는 감촉, 그리고 필요 없는 인물이 죽는 감촉.

세상을 청소한다는 개운함.

친부는 미치광이였다.

하지만 그래서 그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서의 나이프를 극한까지 연마해 내었으며, 끝내는 실용성 있는 영역까지 발전시켜 증명했다.

구시대의 로망이 돌아왔다.

사실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광활한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생각보다 좁은 곳에서 살아야 했다.

개활지는 인류의 생활권에선 아주 드물었다.

어딜 가나 골목이거나 통로다.

내로라하는 부자라고 한들 먼 옛날 인류가 지구에서만 살아가던 시절보다 작은 집에 살았다.

개척은 지난하고 인구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진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나날이 개개인에게 주어진 면적은 줄어든다.

그런 환경에서 냉병기와 소화기를 병용하는 첩보원, 혹은 암살자라는 존재가 활약할 여지가 생겼다.

어찌 보면 우주전 양상으로 진행되며 축소되고, 결국 사라진 특수전 병력의 연장선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일개인에게 초인적인 힘을 부여할 수 있다.

온갖 초고가의 장비의 보조를 받는 첩보원들이 곳곳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비슷한 역할의 병종은 모두 합병되거나 대체되었다.

유능한 첩보조직의 확보는 각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으며 자연스레 전쟁의 일부로 정착하게 된다.

그 시대를 이끌었으며 블랑쉐가 죽어 미궁으로 오는 순간까지 그 정점에서 군림하던 남자가 그녀의 친부였다.

미치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를 남자다.

* * *

블랑쉐는 여전히 그의 나이프가 그리는 궤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검 역시 마찬가지다.

곧은 직선을 그리며 최선의 효율을 그리더라도 찌르기라는 것은 약간은 휘어지기 마련이다.

인체가 완전한 직선이 아닌 탓에 그렇다.

근육이 골격에 붙은 방식과 팔다리 길이마저 고려하면 차라리 약간은 곡선을 그리는 편이 낫다.

그런 계산으로 성립된 최대효율의 찌르기가 날아든다.

익숙한 공격에 블랑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응하기 위해 휘두른다. 유려한 반월이 그려진다.

두 검격이 허공에서 충돌하고 부딪쳐 스러진다.

대련을 한다면 친부의 첫수는 언제나 저것이다.

암살자는 마라토너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기어가는 시간이 길 수는 있다. 그러나 제거를 마치고 빠져나가는 데까지는 10분도 길다.

전투는 언제나 한순간이어야 했다.

방심과 망설임은 죽음이다.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실천시켰다.

가끔 훈련 중 저 자비 없는 선공에 죽는 이도 있었다.

항상 뻔한 공격으로 시작하는데도 죽는다면 거기까지다.

단지 그뿐인 일.

잔뜩 힘이 실린 충돌이 부딪히자 서로 뒤로 밀려난다.

힘이 덜 집중되는 베기였던 블랑쉐가 훨씬 멀리 밀려났다.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틀며 검으로 방어한다.

왼손에선 숨 쉬듯 자연스레 투검이 난다.

서로에게 뿌린 작은 투척 나이프들이 우수수 튕겨 나갔다.

어딘가에 박히는 것은 없다.

튕겨 나간 나이프가 사방으로 뿌려진다.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심연의 생물 몇몇이 비명을 질렀다.

[은신]

검은 연막이 터져 나왔다.

블랑쉐는 그 괴성 속에 잠겨 들었다.

전장은 어둡고 탁한 마력으로 가득하다.

탐지는 멀리 가지 못하며 감각도 제한적이다.

숨기에는 더없이 좋다.

서로가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은신]은 언제나 요긴하다. 환경에 따라서는 쓸모가 없으나 이런 곳에서는 더없이 알맞다.

눈먼 공격에 화가 난 괴물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지 모르는 적을 향해 촉수나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암살자에게 걸맞은 혼돈이다.

그 불협화음의 리듬에 동작을 맞춘다.

모습은 몬스터의 그림자에 숨기고, 소리는 대지의 충돌음에 숨긴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한다.

괴물들은 두 암살자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대치는 계속되지 않는다.

블랑쉐는 계속해서 친부의 사고를 모사한다.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어떤 공격을 즐길까?

이곳은 바깥이 아닌 미궁이지만 예상할 수 있다.

자신의 미학에 고집을 가진 자들은 방식을 쉬이 바꾸지 않는다.

그저 마인드맵의 힘으로 더욱 강해졌을 뿐, 저 남자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친부다.

괴물들 사이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대치가 지속된다.

문득 괴물 하나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다섯 개의 눈이 어딘가에 무슨 흔적을 발견한 것처럼 흔들린다.

블랑쉐는 그대로 총을 빼 들고 갈겼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튕겨 나갔다.

몸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이고 대지를 강하게 박찬다.

몇 가지 스킬에 의하여 추진력은 순식간에 인간을 초월했다.

한순간 총탄이 튕겨 나간 위치로 도달했다.

페도라가 보인다. 그 아래의 입이 미소 짓는다.

강한 충돌, 검과 검.

연사로 뭉개져 하나처럼 들리는 각자 세 발의 총성.

적중한 것은 서로의 어깻죽지.

부상을 무시한 채 더욱 근접.

기술에 자신이 있다면 변수가 많은 총격전보다 근접전이 낫다.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둘은 서로에게 파고든다.

첫 번째 호흡이 시작된다.

조금 긴 호흡으로 힘을 실은 찌르기가 들어왔다.

블랑쉐는 팔을 앞으로 뻗으며 온전히 힘을 받기 전에 빠르게 쳐냈다.

그러며 왼손이 권총 형태의 레일건을 상대의 몸통으로 겨눈다.

그 순간 저쪽이 발포했다.

늦었음을 깨닫는 순간 손을 뺐다. 그 덕에 맞지 않았다.

탄은 처음 노려진 손목이 아니라 총신에 맞았다.

악력으로 놓치지 않게 버텨낸다.

그와 동시에 몸을 숙이고 블랑쉐의 찌르기.

구두를 들어 밑창으로 긁었다.

아다만타이드의 검은 불꽃 반응이 날카롭게 튀며 구두가 긁힌다. 그대로 내리밟기.

블랑쉐는 아예 몸을 뒤집으며 땅을 짚었다.

카포에라의 요령으로 다리를 휘두른다.

밟기가 무위로 돌아간 상대가 밀려나며 블랑쉐의 다리를 그었다.

살짝 거리가 벌어진다.

다리는 절뚝일 정도의 부상은 아니다.

한 호흡이 끝났다.

숨을 다시 들이쉰다.

바닥에 굴러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뛰어들어 쫓아간다.

다시 세 발씩 총성.

머리카락 몇 가닥이 끊어져 나갔다. 바닥이 펑 하고 패여 나간다.

본격적으로 총기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장탄이 몇 발이 남았는가를 생각한다.

사수의 가장 큰 단점은 중 하나가 무한탄창 같은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에는 장전을 해야 한다.

파티 플레이로 진행하는 PVE라면 몰라도 초근접 PVP에서는 아주 중요한 빈틈이 된다.

상대 권총의 형태는 블랑쉐가 아는 것과 똑같았다. 복장도 태도도 바깥과 같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섯 발.

반면 이쪽의 장탄 수는 저쪽이 알지 못한다.

그것을 믿고 블랑쉐는 더욱 파고들었다. 추격을 따돌리려고 하는 대신 마주 선다.

베기를 숙여서 피하고.

찌르기를 팔목부터 쳐내고.

다시 서로가 사선에 들어오자마자 사격을 가하고.

탄이 더 소모되고,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다섯 번의 호흡이 더 끝나고 상대의 총에 새로운 탄이 들어가는 찰칵 소리가 나지 않았다.

블랑쉐는 그 순간 총기를 배제하고 빨려 들어가듯 [대시]한다.

친부가 총을 놓아 내던진다. 대신 맨손으로 뻗어왔다.

블랑쉐가 순간적으로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동안 뻗어온 손이 블랑쉐의 총기를 강탈하려고 했다.

사격이 연속되었으나 방향이 틀어진다. 접착제라도 발라둔 듯 떨어지지 않던 페도라가 총격에 날아간다.

친부가 검끼리 맞닿은 채로 자세 숙였다.

힘이 향하는 방향이 약간 틀어진 순간, 그대로 회전하며 팔꿈치로 강하게 밀쳐낸다.

블랑쉐가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대신 단검으로 상대의 등허리를 길게 그었다.

정장의 재질은 무엇인가? 다시 검은 불꽃 반응이 튄다.

하지만 이건 틀림없는 타격이었다.

피가 튄다.

모자가 날아가 얼굴이 드러난 친부가 활짝 미소 지었다.

상류층의 중년 신사처럼 단정한 얼굴, 약간의 주름이 관록을 더한다.

런던의 거리에서 안개를 들이마시며 산책을 할 것 같은 상류층의 귀족 같은 모습.

변장에 능하던 친부가 바깥에서도 가장 즐겨 취하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진심으로 기쁜 듯한 표정.

“훌륭하군. 내가 가르친 것 외에도 다른 것이 많이 섞였구나. 그럼에도 잘 녹여내었어. 이번의 너는 괜찮은 삶을 산 모양이군.”

대화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대로 사격을 가했다.

직선의 레이저 같은 소구경 레일건이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검에 의해 튕겨 나갔다.

연사된 다섯 발이 모두.

블랑쉐가 인상을 찡그렸다.

“봐주고 있었나?”

“그건 아니지. 매번 죽어 나자빠지던 못난 딸이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맛보기를 해야지. 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 겨우 그걸로 나를 이기겠다고 온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더니. 표정을 갑작스레 식힌다.

차갑고 서늘하게.

정색한 얼굴이 말한다.

자신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듯.

“설마……. 그렇지?”

블랑쉐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녀는 아직 유니크 스킬이 없다.

적절한 스킬이 이미 선점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쩐지 알 수 있었다.

파티 리더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가 바라던 유니크 스킬을 가진 것은 이 남자다.

유전적으로 동일인물인 둘이기에 비슷한 삶을 살아왔을 확률이 높다.

블랑쉐 역시, 고정 NPC라는 굴레가 없었다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마인드맵은 삶의 궤적이다.

그렇다면 유니크 스킬은 그 결정체다.

이 남자가 가진 유니크 스킬이 무엇일까? 파티 리더는 몇 가지로 범위를 좁혔다.

그중 하나였던, 그리고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것이 나타났다.

타오르는 검은 불꽃처럼 무언가가 일렁인다.

불꽃은 아니다. 그림자다.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실체를 가진 채 흘러나왔다.

“이제 바깥처럼 말고, 미궁의 방식대로 즐겨볼까?”

2페이즈군.

블랑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파티 리더는 점점 이 세상을 게임처럼 생각하지 않게 되어갔다.

하지만 우습게도 블랑쉐는 좀 더 세상을 게임처럼 보게 되었다.

미궁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물론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여유다.

손에 쥔 땀을 닦아내었다. 이마도 훔쳤다.

몸에서 흐르던 식은땀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스킬을 특별히 동원하지 않은 채로 싸운 방금까지는, 호각 혹은 우세였다.

블랑쉐는 바깥에서 단 한 번도 친부와의 대련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씻겨나가는 기분.

길고 긴 어린 시절의 주박이 조금씩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막혀오던 숨이 편안해졌다.

창백했을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 느껴진다.

긴장이 풀리며 블랑쉐는 깨달았다.

친부는 더 이상 과거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일개 유배자일 뿐이다.

이곳은 미궁이다.

머리로는 알던 사실이 가슴으로도 파고든다.

블랑쉐는 이길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딸의 성장이라고 했나?”

실체를 가진 그림자들이 모습을 바꾼다.

정장을 입은 중년 신사의 모습을 한 채로 사방에 수없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처음의 그 자리에 있는 본체를 보며 말했다.

“나는 몇 번째지?”

“아홉 번째다.”

무수한 블랑쉐들을 지켜봐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을 내밀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저 지켜보며 죽도록 내버려 두었겠지.

왕국에 도달한 블랑쉐는 가혹한 진실을 마주하고 망가졌을 터이며, 쓸 만한 도구라기에는 너무 흔들리고 있었을 테니까.

그건 애정이 아니다.

블랑쉐는 전투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는 ‘친부’가 아니다.

“나는 네 딸이 아니다. ‘오르골’.”

블랑쉐가 히죽 미소 짓는다. 그녀의 여동생, 언제나 밝게 웃고 활기찬 천사의 웃음을 떠올리면서.

이블로서의 변신을 풀었다.

변신 능력이 해소되며 불편한 껍질을 뒤집어쓴 것 같았던 위장이 사라진다.

분홍빛을 띤 악마의 피부가 나타났다.

산양처럼 말린 뿔이 드러난다.

마음이 한 꺼풀 벗듯이 몸도 그렇게 한다.

악마의 유전자는 인간과 동일할까?

아니.

이미 미궁의 블랑쉐는 유전적으로도 오르골과 동일인이 아니다.

그녀는.

‘오르골’의 딸 블랑쉐가 아니다.

단지 파티 오르골의 사수이자 암살자인 ‘블랑쉐’다.

“나는 너를 죽이라는 임무를 받고 왔을 뿐이다.”

“건방지구나.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뒷부분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오르골’이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으며 모습을 감춘다.

사방에서 똑같은 모습을 한 그림자들이 블랑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분노가 살짝 서려 있음이 기쁘다.

블랑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아비였던 것을 부정했다.

‘오르골’이 그 사실에 분노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블랑쉐는 비로소, 이 순간을 위해 붙였던 이름을 말한다.

“나와라. 가상전함 누아르.”

개조된 병기창이 공간을 열고 그 속의 포신을 바깥으로 내민다.

사방에서 덮쳐드는 그림자들을 향해 겨누어진 포신을 보며 블랑쉐는 웃었다.

누아르는 가장 친했던 언니의 코드네임이다.

그녀는 같은 유전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여동생들이 죽지 않도록.

임무에 한 번이라도 덜 투입되도록.

부상을 입어도 쉬지 못하고, 돌아오면 잠 대신 기절하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혹사당하며 여동생들을 지키려고 하다가.

결국은 죽어버린 요원이었다.

제 딸이라 말하면서도 ‘오르골’이 단 한 번을 추모했던 적이 없는.

바깥 역사의 어디에도 남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니 이것은 블랑쉐가 그녀의 이름으로 하는 사소한 복수요 추모다.

“전탄 발사.”

심연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과 섬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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