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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33화 (33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33화

왕국 - Lv.1■012 ■■ 맥(4)

[게이머]라는 녀석들은 왕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아주 이질적이며 기묘한 지식을 가지고 오는 이들.

건방지고 수작을 많이 부리는 녀석들.

착한 이더라도 세상에 거리감을 두고 보는 자들.

터부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원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들 게이머를 보면 생각한다. 저 녀석은 나를 뭘로 볼까?

유배자라서, 그래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면 그러게 된다.

NPC 취급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게이머]는 아웃사이더다.

그 와중에 순진한 이들은 그 사실을 숨기고 재주껏 평범한 유배자처럼 살아간다.

그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무언가 이루어내려고 하거나.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다.

[게이머]에게 미궁은 미지가 아니다.

잘 아는 무언가가 실체화된 세상이다.

그러니 그만큼 보이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미궁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평범하게 살아가?

그게 또 의외로 쉽지 않다.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매일매일 아는 것들이 튀어나온다.

남의 시행착오를 보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왕국에 도달한 실력의 [게이머]라면 이미 적응은 끝났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죽음은 끝이 아니다.

튜토리얼에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후다.

세상은 그야말로 게임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나 홀로 세상의 섭리를 꿰뚫고 있다면?

근질근질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장 바깥의 인터넷 세상만 해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아는 게 나온다면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제로 내뱉지 않고 속에 담아두며 점잔 빼는 이도 많을 것이다.

이렇듯 [게이머]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자부심을 내포하게 만든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들과는 다르다.

나는 더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상당수의 미궁에 적응한 게이머는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게이머]는 실제로 특별하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그 지식을 좋은 일에 사용할 수 있을까?

아, 물론이지.

처음에는 가능하다.

세상에 개선할 점은 얼마건 존재하며 알려야 할 지식도 너무나 많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게이머]임을 드러냈다.

이질적인 존재이며 중요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하지만 왕국에는 먼저 도착하여 더 큰 힘을 기른 랭커들이 존재한다.

지식이 있다 한들 세월의 간극을 가뿐히 넘어설 만큼 대단한 요령을 지닌 이는 거의 없다.

그러면 거기서 특별한 존재는 굴욕을 맞보게 된다.

먼저 파밍하고 먼저 레벨링해서 왕국을 선점한 자들은 게이머의 존재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선량하고 순진했던 [게이머]는 여기서 타락한다.

원래 호의는 보답 받지 못하는 게 흔한 일이니까.

그들이 당하는 일에 납치 감금은 기본이다. 정보만 짜낸다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인물들도 많다.

필요하다면 자백제 따위보다 더 강력한 정신 계열의 마법도 동원한다.

힘이 약한 [게이머]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미궁은 인간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벗겨내야 만족하는 곳이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순진하게 굴지 않았거나 그런 일을 겪고 다음 회차로 왔다는 설정의 [게이머]라면?

그런 이들은 지배자가 된다.

자신의 힘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은밀하게 힘을 기르고 필요한 것을 취한 후, 본색을 드러낸다.

이 미궁에 처음 발을 들이고, 최소한의 적응을 끝마친 맥은 후자를 선택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고는 간단했다.

가상현실 풀 다이브 게임.

그가 즐겨 하고 너무나도 잘 알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게임 속 도트였던 NPC들이 이제 살아 있는 인간이 되어 그를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바깥에서 하던 대로.

그것들을 가지고 놀면 그뿐인 일이었다.

고민이 끼어들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맥은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이 너무 즐거웠다.

물론 지금과 다른 선택지도 존재는 했다.

‘클리어’라거나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현실이 된 미궁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하다.

어차피 클리어할 수 있어도 그럴 생각은 없다.

맥에게 이 미궁이라는 세계는 낙원이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곳.

가장 완벽하게 완성된 게임.

영원히 끝나지도 않는 게임.

최고의 장난감 상자다.

“흐아앙! 맥! 다행이야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지금 품속에 안겨서 울고 있는 이 여마법사도 그렇다.

레베카는 귀엽다.

하지만 제 매력을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꽃잎 요정의 외모 보정 덕택이라 여기며 그 외모에 이끌려 오는 자들을 밀어낸다.

요정이 되기 전의 모습이 썩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보아서 안다.

그렇더라도 주변의 사람을 반하게 할 매력은 충분한 여자다.

그 마음이 조금씩 열려가는 과정이 좋았다.

이건 중대한 유희였다.

게임은 오래 하면 결국 질린다.

미궁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감정을 가진 NPC들은 온갖 갈등을 세상에 부딪친다.

그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아름답다.

감정과 갈등으로 스러져가는 이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소중하고도 즐거운 자극인지.

강렬한 감정일수록 더 각별하다.

사랑이 그렇다.

절망 역시 그렇다.

다만,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바라게 만든다. 제 기억을 일부 지우더라도 그 여운만은 영혼 어딘가에 새겨지나 싶다.

그래서 맥은 점점 더 강렬한 무언가를 바라게 되었다.

지금의 레베카처럼 모든 것을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랑.

믿기 싫어 외면하면서 걱정의 말을 늘어놓으며 울먹이는 모습.

최고다.

레베카는 똑똑한 마법사다. 자신의 수상함을 깨닫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 모순이 좋다.

감정의 격류가 뒤틀리고 뒤틀려 갈 곳을 잃고 마침내 바깥으로 쥐어짜 내지고 마는 이러한 분출이 좋다.

그리고 그 격류가 자신을 향해 솟구치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

맥은 이런 레베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고도 그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어쩌면 이번엔 마법의 신이 총애하는 여자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어디 가지 마……. 나랑 같이 있어 줘……. 훌쩍.”

거기에 솔직하지 못하던 아가씨의 사랑 고백이 이제 와서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터져 나오고 있지 않나.

제 감정에 몸을 맡겨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 또 어찌나 귀여운지.

그 기운을 받아들이듯 스읍 하고 숨을 들이쉬며 맥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향긋한 꽃잎 요정의 향기.

그리고 잘 숙성된 레베카의 연심.

기나긴 세월의 권태는 머릿속을, 그리고 기억 속을, 어쩌면 영혼에 뿌연 때가 끼게 만들지만 이런 세정제가 그를 그답게 만든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 순간이 너무 좋다.

곧 시작될 클라이맥스는 더더욱 좋다.

다가오는 이들이 느껴진다.

마법의 신이 다급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레베카와 작별할 시간이.

지금의 이 짧은 시간, 문득 생각나 모습을 드러내고 즐기는 이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도 아득한가.

지복을 즐기며 마지막을 기다린다.

훌쩍이는 마법사가 소품을 건넨다.

발견할 수 있게 슬쩍 흘렸던 물건.

뜻깊기에 마무리로 적절하다.

“이런 거 흘리고 다니지 마! 내 선물이잖아!”

그러며 돌려주는 총.

선물이지. 그럼.

소재를 모아 온 것은 레베카.

가련하고도 어여쁜 애정이리라.

좋아요. 너무 좋아요.

관통력을 극도로 강화한 리볼버 피스톨.

어찌나 진심이었는지 그의 비늘을 관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티의 역작이자 레베카가 보낸 마음의 선물이다.

이걸 써야 더 그림이 아름답겠지.

말없이 총을 받아들고 조금 더 기다렸다.

품에 달려든 채 그대로.

눈물로 가슴이 젖으려고 하지만 어쨌건 가만히.

레베카의 훌쩍임이 조금씩 잦아든다.

노골적으로 이상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그 이상함을 알 것이다.

빙긋 웃으며 레베카를 살짝 밀어낸다.

레베카는 비틀비틀 밀려났다.

“맥……?”

“음. 그래. 지금은 그 이름이지.”

“……맥?”

아직도 의심이라기보다는 불안의 눈초리.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듯한 그런 떨리는 눈동자.

귀여워.

그리고 가여워.

총을 받아 든다. 그리고 장전한다. 탄은 미리 준비해 뒀다.

이 순간을 위해.

찰칵거리는 소리가 겹쳐져 하나처럼 들린다. 그 화음을 들으며 레베카의 눈이 멍해진다.

“뭐라고 말을 좀 해봐. 왜 갑자기 장전을 해?”

“음. 쏴야 하니까.”

조금씩 마법사의 이성이 되돌아오고 있다.

사랑의 열병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능 스탯을 끔찍할 정도로 높게 찍은 초고레벨 마법사의 이성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일시적인 일.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레베카는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말해. 제발.”

“음음.”

“제발…….”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의 냉철한 이성은 이 사태가 어떤 것인지 파악했다.

굳이 마법사일 필요도 없다.

머리가 있다면 맥이 누군지 깨달았을 테니까.

이상하기 짝이 없긴 하다.

이렇게 멀쩡하면서 왜 연락을 안 했을까?

초췌한 얼굴도, 너덜너덜한 복장도 자세히 보면 급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품속에서 울면서도 그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아아, 레베카 가여운 아이.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간단했다.

맥은 총격을 퍼부었다.

연속된 다섯 발의 사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레베카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위만을 꿰뚫었다.

당연히 레베카는 저항했다. 순간적으로 피어난 마력방벽의 규모와 정교함은 과연 푸른 달의 따님이라 부를 만했다.

그러나 이 총은 애석하게도 그런 것을 관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레베카 본인의 손으로 말이다.

“으윽, 끅, 끄억. 대체…… 왜……?”

맥은 웃었다.

“이성과 합리. 마법사는 항상 그런 것으로 세상을 판단하려고 하지. 안 그래?”

레베카의 눈에 절망이 깃든다. 이 당찬 아가씨는 어지간해서는 꺾이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제 속에 존재하는 약간의 콤플렉스와 소심함에 담아둘 뿐.

언제나 냉엄한 이성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본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 불합리한 존재는 어디에나 있어.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재미란 건 원래 합리적이지 않거든.”

레베카의 감정을 살살 자극하며 녹이는 작업은 즐거웠다.

맥은 그 속에 참 깊이도 침투해 있었으리라.

그랬기에 이렇게 무너뜨리고 절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색채가 변한다.

레베카의 밝고 찬란하게 타오르던 영혼이 절망의 잿빛으로 변해간다.

이런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진정으로 믿었기에 진정으로 절망한다.

물통에 살며시 떨어뜨린 검은 물감.

순식간에 변해가는 색.

레베카의 강고한 이성조차도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

눈에서 빛이 꺼진다.

죽어가서는 아니다. 이 정도로는 죽을 리가 없으니까. 하이 랭커는 아주 튼튼하다. 그게 마법사일지라도.

그렇게 하나의 빛이, 하나의 사랑이 사그라지는 장면을 목도한다.

기쁨이다. 정말로 큰 기쁨.

내 삶의 이유.

매번 신들의 눈을 피해 이런 가짜 신분을 만드는 이유.

그때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법의 신이 귀에다 소리를 지르자 부리나케 달려온 일단의 무리들이 말이다.

아, 사랑스러운 레베카.

이제 이별의 때가 왔구나.

너는 저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죽어야 하거든.

그게 제일 재밌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안녕, 레베카. 그동안 즐거웠어.”

탕 하고 총성이 울린다.

이마를 노렸다.

* * *

마법의 신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현장에 레베카 외의 신도는 없었다.

그녀가 연결이 끊어졌기에 이렇게 당황하고 있다.

마법의 신이 다시 현장의 시야를 되찾았을 때는 늦어 있었다.

그가 공유하는 레베카의 시야가 꺼진다.

그녀의 밝게 타오르던 영혼이 사그라졌다.

칙칙한 잿빛으로 물들어 우울감을 넘어선 깊은 절망의 색채가 드러난다.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레베카는 한 번 죽었지만 부활했다.

단 하나의 소모성 부활은 마법의 신이 노파심에 찍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마법의 신은 일단 화신했다.

시야가 꺼진다는 것은 본인이 의식을 잃었다는 뜻이다. 동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레베카는 분노보다는 절망에 몸을 맡겼다.

대부분의 유배자는 정신적으로 취약하다.

긍정적으로 살기엔 고난으로 가득한 삶을 지내왔고 그것은 제각각 어딘가의 상처로 남아 있다.

미궁에 유배당한다는 것은 인생 전반에 어떤 PTSD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과도 같다.

레베카가 아주 여린 정신의 소유자였냐면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친 짝사랑이었다면.

그 결과가 이런 식이라면.

맥이라는 레베카의 상대는 사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마법의 신은 분노했다.

이런 수작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분노했고 그 행위의 주체에 대해 분노했다.

맥이라는 이름을 쓰던 남자는 빙글빙글 웃으며 이쪽을 보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화신시켜 대면할 생각이었나.

“오랜만이야. 이플릭셔스.”

마법의 신이 왕국에서 쓰던 이름이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즐겁다는 듯 웃는 그 얼굴에 무언가 꽂아주고 싶었지만 마법의 신은 일단 공간을 열고, 사라졌다.

맥은 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언제나 온 세상을 향한 분노를 품은 트롤이 덮쳐들었다.

“네놈이었나! 죽어라아아아아!”

전쟁의 신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던 거대한 트롤이 있는 힘껏 일격을 날린다.

어떤 사수가 있던 자리는 그대로 으스러지고 가라앉고 일그러졌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모든 것이 소멸하는 듯한 끔찍한 위력이다.

대지는 솟아오르지조차 못했다.

고도로 집중된 충격은 문자 그대로 땅을 가라앉혔다.

한순간에 무저갱으로 보일 정도의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사이에 피는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물론 혈액 정도는 그 순간 증발했겠지만, 드라간은 자신의 무기에 무엇도 적중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라앉은 대지 저 깊은 곳에서 인간이 아닌 것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오랜만이다……. 아이신기오로 드라간.]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에 담겨 있는 것은 [드래곤 피어].

다음 순간, 6미터가 넘는 커다란 트롤보다도 거대한 발톱이 무저갱에서 솟구친다.

질량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기에 드라간은 그것에 그대로 부딪혔음에도 저 하늘 위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아득히 날아가는 트롤의 모습을 보며 무저갱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시티즌이었던 곳의 정글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바닥에 존재하던 거대한 공동으로 가라앉듯이 무너진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검은 앞발이 대지를 헤집어놓았다.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수천만 명이 살아가던 도시의 일부가 주저앉는다.

바닥으로 바닥으로.

온 세상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서든데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압도적인 파괴였다.

이제 겨우 반신이 드러났으나 그럼에도 그 크기는 ㎞ 단위의 드래곤이 머리를 치켜든다.

[오랜만이다. 파라켈수스!]

그리고.

[루시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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