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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36화 (33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36화

왕국 - Lv.15012 악룡 재버워크(3)

왕국 어딘가에서 랭커간의 싸움이 벌어진다면 소소하게 신문 어디 구석에 실리는 정도의 일이 된다.

랭커들이 진심으로 치고받으며 싸울 때 발생하는 충격은 국지적이고 순간적인 기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장마가 그치거나,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물론 그들이 그렇게 진심으로 싸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약 하이 랭커급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아예 신문에 대서특필이 된다.

일부 기업형 하이랭커들 이외에는 얼굴조차 잘 비추지 않는 은거기인들이다.

싸움의 여파도 큰 문제가 된다.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기후변화가 아니라 연단위로 지속되는 재해를 남길 수 있다.

지형과 식생의 변화도 일어난다. 지금의 왕국에 존재하는 몇몇 사막이나 계곡도 과거에는 울창한 숲이거나 평야였다.

산맥도 어떤 것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왕국이라는 공간에는 자연적인 지각변동이나 화산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과 바람의 풍화작용 정도만이 세상의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형이 제각각인 것은 어떤 초인들의 이 손수 만든 탓이다.

그래서 대체로 하이랭커간의 싸움은 다른 하이랭커들에 의해 말려진다.

그러지 않는다면 적어도 거주 공간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게 권장되며, 본인들도 화가 얼마나 났건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편이다.

만약 나라 한복판에서 싸운다면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러면 이미 둘의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각국의 근간인 시작의 파티가 등장해 위험한 하이랭커들을 직접 치워버리게 된다.

목숨이 아깝다면 어딘가 먼 공터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그렇게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하이랭커라면 그 자리에 도달할 수도 없었으리라.

운이 좋다고 도달할 레벨링이 아니다. 최소한의 지성과 침착함은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니까.

그래서 아케인의 학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티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관측 장비가 다 망가졌더군.”

옆에서 대답하는 것은 최근 마법계의 유명인사로 떠오르고 있는 트동트다.

트동트 본인으로서도 의외였지만 유배자들은 대부분 주술을 선택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제한적이며 수동적인 마법의 갈래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냥 엄청나게 어려워서다.

“신들끼리 싸운다고 하지 않나. 상대는 신화적인 악룡이고. 드래곤이라니 내 평생 본 적은 없지만 그 흔적만은 몇 번 보았지.”

학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마, 그 수준조차도 아닐 겁니다. 일반적인 드래곤은 아무렇지도 않게 찢겨져나갈 그런 전장일 테니.”

이미 아케인이라는 도시는 주변에서 일어난 전투의 여파에 충분히 시달리고 있었다.

비교적 근방에서 일어난 일그림 파티와 오르골 파티의 전투는 국지적인 이상기후를 불러와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 후에 일어난 대마탑 붕괴 사건은 더 큰 일을 만들어냈다.

상공에서 무너져 내린 물리적 현상보다는 방사능이 더 큰 문제다.

지속적인 방사능원은 없기에 마법적 차폐막은 며칠 안 가 내려갔지만 그 순간적인 노출이 향후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를 일이다.

갑자기 아케인의 수뇌가 된 학장의 입장에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트동트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관측장비는 없어도 주술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우리는 사실 이론보다는 감각과 영감에 더 큰 의존을 한다네.”

“자연과 하나 되어야 하니 뭐니 하는 다른 주술사들보다는 훨씬 납득 가는 설명이군요.”

“뭐, 가르칠 때는 그렇게 가르쳐야하긴 하지. 이론으로 설명해봐야 처음엔 모르니까. 애초에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를 하는 주술사도 나뿐이었지만.”

학장은 마찬가지로 저 먼 곳을 보기 시작했다.

정신을 아무리 집중해도 뭔가 느껴지는 것은 없다.

다만 마력이 요동친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주술사는 더 멀리 내다본다.

전투력의 고하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자세한건 알 수 없다네. 정말 고레벨의 주술사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학장은 경청했다. 주술에 있어서라면 이 왕국에서 가장 대가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미지의 영역은 언제나 마법사들을 설레게하며 존중을 이끌어낸다.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노오크하면 말할 것도 없다.

“대단한 위기인 것 같군.”

학장은 조금 김이 새는 것을 느꼈다.

“그것뿐입니까?”

“그럼 말을 좀 바꾸지. 개X된거 같네.”

확하고 와닿는다. 이제 좀 낫군.

“그래도 여기와 시티즌의 거리가 얼만데 그리 됩니까?”

“아니, 뭐 지금 몰려오고 있는 것도 여파지 않겠나?”

그 말에 학장은 다시 집중했다.

하이랭커 중에서도 정점에 가까웠던 자가 자신의 육신으로 제조한 인형은 학장을 새로운 경지로 이끌어주었다.

비겁한 기분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지만 마법과 관련된 능력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것은 엄연한 사실.

그런 그의 감지범위에 무언가 느껴졌다.

그리고 학장을 펄쩍 뛰었다.

“차폐막을 다시 올려야겠군!”

열풍이 불어닥쳤다. 정확히는 조금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어마어마하게 온도가 높은 무언가가 저 멀리서 일어난 모양이다.

갑작스런 이상기온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저 먼곳에서 여기까지 닿는 다는 사실이 놀랍다.

왕국 전체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옆에서 트동트가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지진도 올 것 같은데. 내진설계는 되어있나?”

“다행스럽게도 되어있습니다.”

“그걸로 모자랄 것 같은데.”

학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도시의 중진이 된 트동트도 마찬가지로 바빠졌다.

따로 회의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마법의 나라는 사활을 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은 언제고 가능했다.

각 탑의 그랜드 마스터들이 모조리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거대한 도시에 모든 마법사들이 힘을 보탠다.

열풍이 지나가고 폭풍도 몰아쳤다.

지진도 다가왔다. 바닷가에 인접하지 않았기에 쓰나미 걱정은 없는 게 다행일까.

피해는 최소화되었다. 보고받은 가장 큰 피해가 가벼운 화상과 넘어져 접질린 것이니 최선의 대응이었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이제는 슬슬 인연이 생겨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는 대상이다.

파티 오르골의 리더였다.

[학장님 거기 괜찮습니까?]

[덕분에 문제는 없습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덕분이라기보단 ‘네놈 때문에’ 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건과 사고, 그리고 학장에게 부과되는 일을 사정없이 만들며 돌아다니는 남자다.

[대비할게 하나 더 필요합니다.]

목소리가 쓸데없이 심각했다.

항상 가볍고 쾌활한 태도를 견지하던 양반이 목소리를 깔기 시작하니 무시무시해진다.

학장은 팔에 돋은 소름을 문질렀다. 인형 주제에 생리적인 부분이 모조리 구현되어있는 몸이다.

[용이 날아올랐습니다. 우리가 놓쳤습니다.]

[아니, 그 혹시 그 악룡인가 하는 놈 말인가? 도망쳤어?]

사실 결과가 어떨지도 모르는 와중이었다. 학장은 이길 수 있다고 말한 것만 안다. 더 자세한 사실은 모른다.

그래서 갑작스레 마법의 신이 다급한 신언을 내렸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무언가 잘못되었나?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일단 신언이 정신건강에 나쁘다.

[아마 거기나 하드스록을 박살내러가겠죠. 세계멸망의 기도하는 상태입니다.]

[……내가 싸워야하나?]

[그건 아닙니다. 곧바로 원군이 갈 겁니다.]

그걸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학장은 일단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깨달았다.

하이랭커급이 아닌 마법사들을 다 대피시켜야 한다.

대마탑은 순조롭게 복구되고 있는 와중이다.

애초부터 그런 재앙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탑이니 괜찮으리라.

랭커급 정도 되는 이들이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면 잡음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학장은 대외적으로 [시티즌]의 리더인 위대한 마법사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혼란한 정신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원군? 원군이 뭔데? 그런 게 온다고?

누가 오는 거지? 애초에 이길 거라는 확신도 잘 없었다.

학장도 드래곤에 대해서는 안다.

숨만 쉬어도 매년 저절로 레벨이 올라가는 최강의 고위종족.

그리고 신들과 비슷한 시대부터 존재해온 그야말로 신화적인 드래곤.

그걸 이길 방법부터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괴물의 습격으로부터 이 도시를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더더욱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몸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학장은 이미 이 도시의 지도자였으며, 그 일에 익숙해져야했다.

그때 갑자기 공간의 균열이 열렸다.

레베카였다.

그러나 레베카가 아니었다.

“신도여? 도움이 필요하다.”

레베카의 목소리로 누군가 말한다. 주변에 번지는 푸른 신성만 보아도 지금 그에게 묻는이가 누군지 알 수 있다.

학장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말씀하소서.”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이라면 괜찮은 원군이군.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슬슬 따라가기가 버겁다.

그는 그저 한시바삐 이 도시에서 마법을 연구하고 새로운 발견에 박수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 *

카베는 고개를 들었다.

에길, 에리나 등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노거인은 말했다.

“서둘러 돌아오라는군.”

“뭔가 잘못 되었습니까?”

에리나가 인상을 썼다. 카베가 전해들은 이야기가 안 좋은 소식이라면 그걸 모두에게 전해야하는 것은 그녀였다.

딱히 강해서라거나 입지가 높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녀가 가장 오르골과 친해서였다.

‘안 친한데…….’

카베는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고 실질적인 전투력으로서 이 원정대에 합류했다.

그러다보니 사실상의 책임자는 에리나인 셈이다.

부담을 나눠가질 누군가라고 해봐야 에길 정도인데 그 바이킹은 하이랭커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무리를 통솔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충분히 강하지만, 에길을 아는 이가 너무 적다.

결국 에리나가 원정대의 리더 역할을 강제로 떠맡았다.

내심 일그림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리더를 보조하는 자리와 진짜 리더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신 삼의회의 일원이 되지만 않았다면 이 자리에는 일그림이 함께 있었을텐데.

카베가 느릿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저 울리는 목소리는 나름대로 빨리 말하는 것이리라.

“악룡의 목적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그저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인 모양이네. 그러니 도망쳤다는군.”

“도망?”

에리나는 그 사실을 납득할 수는 있었다.

잘 자다가 눈을 떠보니 신이 셋이나 나타나서 두들겨패려고 하고 있다.

악룡이 어떤 놈인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화들짝 놀라 도주할만은 하다.

그리고 확실히 그렇게 되면 공수가 역전된다.

공격하는 것은 악룡이며, 방어하는 것은 이쪽이다.

전술적으로도 옳은 판단임이 분명하다.

“목적이 그러하니 아마 지금 당장 [침공]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러니까 복귀하라는군.”

“그런 거라면 다들 불만 없이 받아들이겠군요.”

에리나는 날개를 펴고 날았다.

이미 소집을 걸어두었기에 공략이 끝난 우중충한 [언더 그라운드 유적]에 스물에 가까운 하이랭커들이 모여 있다.

모두 어떤 식으로건 일그림이 조직한 레지스탕스조직에 몸담고 있던 이들이다.

악룡의 존재를 알며 살아남기 위해 제각각 느슨한 협력을 하고 있던 이들.

그리고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협력하게 되었다.

친분이 없지는 않으나 희박하다.

하지만 일어날 일에 대해 듣고, 그것을 카베가 보증하자 모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온갖 종족, 온갖 장비가 모여 있는 이 원정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전원이 나선다면 어떤 서버건 밀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왕국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작은 소요가 있었다. 대부분은 기쁨이었다.

신좌부품은 더럽게 끔찍한 곳에 파편화되어 숨어있었고 그것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공략하고 획득하는 과정은 더 끔찍했다.

대부분의 하이랭커들이 차라리 랭킹을 올리기 위한 고층 공략이 더 편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휴식 없는 강행군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체력을 가진 전사라도, 한없이 강고한 정신을 가진 마법사라도, 결국은 인격체며 본디 사람이었던 자들이다.

피로는 엄청나게 누적되어있었다.

혼돈의 교단이 달콤한 보상도 함께 약속하지 않았다면 진작 이탈자가 나왔을 것이다.

작은 환호성 같은 게 지나간 후에 에리나는 계단 수색을 시작했다.

원정대는 복귀한다.

* * *

레미는 산처럼 쌓여가는 업무에 기겁했지만 그려면서도 그것을 잘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만신전에서 막 빠져나오면서 들려온 소식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확보된 신좌 부품은 서른 개다. 일단 열 명만 추려줘.]

레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미 추려둔 목록을 이야기했다.

“그림자의 신은 여신님을 잘 알고 있는 신이었어요. 그 외에도 활동을 중지해가고 있던 신들 상당수가 오래된 신이었죠. 혼돈의 이름 아래 협조적이며 신좌에 탈출하고 싶어 했습니다.”

거의 활동이 없던 신들이기에 대면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지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레미로서는 대체 여신님이 뭘 했던 건가 의아해질 정도였다.

몇몇 신은 그저 루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레미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그 시대를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리더가 목록을 듣더니 말했다.

[좋아. 지금 카베와 에리나가 돌아올 거니까 곧바로 받아서 강림시켜.]

신좌가 텅텅 비겠는걸.

레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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