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38화
왕국 - Lv.15012 악룡 재버워크(5)
강한 자들은 바삐 살아간다.
그들에게 왕국은 강해지기 위해 정비하는 곳에 불과하다.
중요한 곳은 [리프트] 속의 각 서버에 대한 영향력, 그리고 드물게 나타나는 귀한 홀수층에 대한 단서다.
그러니 그런 강자들은 왕국을 소홀히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왕국은 단순 RPG의 마을에 불과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살아가는 수천만 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유배자이며, 대다수는 유배자가 아니거나, 아니게 된 이들이다.
격한 파워 인플레가 거듭되는 미궁에서 자의건 타의건 한발 물러난 이들에게 왕국은 삶의 터전이요 유일한 세계였다.
온 하늘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선언한 악룡의 말은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재앙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이들은 뒤늦게 밤하늘이 사라졌음을 보았으며, 그것이 돌아오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세상을 뒤덮는 그림자와 흉포하게 밀어닥치는 마력을 느꼈다.
물리적인 충격마저 동반할 정도로 응축된 마력이 목소리를 싣고 멀리도 날았다.
약소하게나마 마법을 익힌 이들은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거나 심하면 헛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다.
전사에 가까웠던 이들도 사방에 일어나는 파괴의 전조에 불길함을 느끼며 몸서리쳤다.
재해에는 익숙한 자들이다.
어찌 되었건 미궁의 왕국은 비교적 낙원 같은 곳이지 정말로 낙원은 아니다.
길 가던 고레벨이 기분이 나쁘다면 불운하게 사망할 수도 있으며, 시비가 붙어 싸우는 고레벨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사실 고레벨까지 갈 것도 없다.
크고 작고의 차이지 모두 어떤 식으로건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마인드맵을 가진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사회가 생기면 지배자가 생기고 그건 사회의 크기와는 무관했다.
그런 험난한 삶에 단련되어 왔기에 지금이 있기 전까지는 비교적 덤덤할 수 있었다.
“드래곤…….”
하드스록의 구석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신음을 흘렸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약자들에게 한껏 제 몸을 부풀려 하늘을 덮은 용 그림자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다.
악마니 천사니 하는 것들은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으나 드래곤은 처음이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가장 잘 안다.
그대로 실성하는 이도 있었고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이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건 안정을 찾고자 하는 헤매는 일들이 잔뜩 일어났다.
마이어와 일그림, 그리고 러셀은 인상은 잔뜩 찡그렸다.
특히 러셀의 반응이 격했다.
“올 것이 왔군…….”
늘 둘러쓰고 있는 후드 속의 얼굴에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이어 역시 고개를 저었다.
“침공이 시작되는 게 느껴지는군. 저 드래곤의 마력만 퍼져 나간 게 아냐. 왕국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무언가 열렸다.”
“그래, 좋지 않군.”
일그림은 이 자리에서 가장 고레벨이다. 그는 하이랭커면 한 파티의 리더이자 게이머였다.
[침공]이라는 인게임 이벤트가 어떤 것인지 정도는 기억한다.
이제 이 왕국의 인구 상당수는 죽는다.
구할 방법은 없다.
애초부터 이런 일을 오랫동안 대비해 온 왕국이 아니었다.
이게 게임이었더라도 미리 장악하고 오랜 시간 준비해야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다.
그런 플레이는 아예 장르 자체가 좀 달라지는 하드한 플레이였다.
일그림 본인은 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이 왕국에는 사람도 너무 많다.
어찌 되었건 악룡은 자신의 장난감 상자를 아꼈다.
제대로 가꾸었고, 발전시켰다.
스스로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나 그런 욕구와 능력을 가진 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협상하고, 달래고, 때로는 양보하는 식으로 왕국을 만들어 갔으리라.
그런 노하우조차도 무수한 왕국을 만들고 다시 파괴하며 익혔을 게 분명하다.
규율과 금전의 신처럼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더라도, 묵인하는 신의 세력도 만들었을 것이다.
반대하는 신들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신좌에 묶인 몸이니까.
이제 그 신들이 풀려났고, 악룡을 묵인하지 못하고 있다.
일그림은 이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신좌부품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는 있었다. 제대로 알지는 못했고 그런 방법이, 그리고 장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신들을 구슬릴 능력도, 해방할 능력도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에 감사한다. 그가 만들려고 했고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느슨한 레지스탕스 조직만으로는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리라.
카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며, [하드스록]의 인정을 받고 동료가 되는 것은 더더욱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리라.
“얼마나 살아남을까…….”
“글쎄…….”
일그림은 옆을 보았다. 신 삼의회니 뭐니 하지만 인간적으로 싫은 녀석들은 아니다.
마이어는 성실하고 신실하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이 왕국을 좋아하고 있다.
러셀은 왕국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간은 좋아한다.
광기마저 느껴지지만, 어쨌건 유배자는 모두 인간이었던 이들이다.
그 자손들, 종족을 바꾼 후 태어난 유배자의 자손들은 어찌 생각하나 물어본 적이 있었다.
러셀은 단호하게 인간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도 싸워야겠지.”
혼돈의 교단과 다른 여러 신들의 교단들이 나서서 혼란을 수습하려고 하고 있다.
바빠질 것이다.
일그림은 창을 불러들였다.
러셀과 마이어가 부러운 듯 쳐다본다.
‘이거 혼돈의 여신에게 안 빼앗겨서 다행이다…….’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다.
* * *
거대 길드들은 왕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리프트] 주변에 형성된다.
그래서 대다수 인구들은 그 주변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1차 산업의 종사자의 일종인 [유배자]가 되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
왕국의 땅덩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이 땅에는 해도 뜨고 비도 오며 바람도 분다.
어느 옛날 작물의 종자를 [리프트]에서 누가 구해왔을 것이고, 그것이 여기에 파종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논밭이 생겨나고 과수원이 생겨난다.
그것을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사업이 생겨나고, 운송 과정에서 무법자들로부터 호위하는 직업도 만들어진다.
기술을 가진 이들이 흘러들며 산업이 발달하고 공장도 생겨난다. 다종다양한 공산품들이 만들어진다면 그걸 판매하는 소매점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미 인류사의 한 구석에서 이곳에 도달한 이들은 초인적인 미궁의 보정을 바탕으로 다시 문명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그 초인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은 언제고 다시 힘으로 무너질 수 있다.
언제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고 살아간다.
확률 낮고 항거할 수 없는 재앙보다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아케인 외곽에서 작은 과수원을 생업으로 삼던 요정 모녀가 그런 상황이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아케인]의 수장이 나타나 모두를 도시로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오랫동안 경영해 온 작은 과수원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재앙이 찾아온다고 한들 눈앞의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은 많다.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남아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가꾸었다.
애초에, 도시로 가서 지낼 만큼의 돈이 없다.
유배자 출신이었던 가족의 아버지가 혼자 도시로 무슨 일을 하겠다며 떠났을 뿐이었다.
딸만큼은 마법을 가르쳐 마법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종종 보내오던 소식도 끊어졌다. 남편은 처음부터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것을 아는 것이 그루터기 요정으로 태어나 그루터기 요정으로 자란 모녀에게는 가혹한 일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 가혹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정의 시간감각은 인간보다 길게 늘어져 있다. 조금 걱정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 수는 있는 일 아닌가.
일상이 박살난 것이 오늘 밤.
유성이 떨어졌다. 그것이 저 높은 곳에 있는 바벨의 파편이란 것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파괴적이었던 것은 확실히 안다.
집은 가까스로 무사했으나 작은 과수원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요정 여인은 그루터기 요정답게 느긋하고 선량했으나 바보는 아니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보며 집으로 들어갔고 어린 자식에게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챙기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피난에 나서야 했다.
도시로 가면 받아준다고 말은 했다. 일단 남편도 그곳에서 무언가 일은 하고 있다.
더 일찍 떠나가야 했을까?
“신이시여…….”
모녀는 실존하는 그녀들의 신에게 기도했다.
왕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서버의 요정들처럼 무작정 자연의 신을 신앙하지는 않는다.
모자는 그림자의 신도였다.
남편이 유배자로서 짧은 활동을 할 때 암살자였기에 그랬다.
유배자인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신앙조차 없었던 탓이다.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나 울부짖었다.
막대한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요정이었기에 더 큰일이었다.
딸이 잠깐 기절했다.
요정 여인은 괜찮았지만 제대로 걸을 수는 없었다.
딸을 들쳐 업고 비틀비틀 움직인다.
[드래곤 피어]가 그 포효에 담겨 있었단 것은 알지 못한다.
단지 공포심에 가득 차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다른 이들이 보인다.
요정인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이다.
모두 이 주변에 마을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던 이들이다.
달리고 또 달렸다. 무슨 재앙이 닥쳐올지는 모르지만 힘없고 마법도 배우지 못한 농민들은 그저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그리고 푸른빛과 함께 핏 하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세상이 어두워졌다.
밝았던 달이 사라지고 눈앞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 사방에 드리운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기절한 딸을 업고 있는 어머니는 아직 멀리 있던 거대한 용이 바로 위까지 도달했음을 본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렸다.
공포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존재만으로도 은은하게 발산되고 있는 [드래곤 피어] 덕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가운데 검은 블랙 드래곤의 동체를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선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딸을 볼 때는 언제나 그렇게 하기 때문에.
업었던 딸을 부랴부랴 숨겼다. 소중하게 품에 안아 들고 자세를 낮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와중에도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은 없지 않나요.
실존하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는 더욱 진실되었을 지도 모른다.
왕국에서의 신은 서버에서 체감하는 신보다 훨씬 더 가깝다.
도시에 가면 만신전이 있으며, 유배자들은 모두 신을 아주 강력한 선배요 협력자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그저 기도했다.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구원을 바랐다.
눈앞에 검은 신성이 터져 나올 때까지.
아직 남은 희미한 빛에 피어난 그림자들이 저마다 웅성거렸다.
검은 신성이 몸을 감싼다.
그 빛은 어딘가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시끄럽구나. 신도여. 기도가 너무 격렬하지 않느냐.”
요정 여인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뒤로 이제 닫히고 있는 검은 신성으로 휘감긴 공간의 균열이 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는 투박한 석좌가 신좌임을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뛰어라. 신도여. 두 발로 저기까지 가라. 저 곳은 안전할 것이다.”
가리키는 곳은 저 멀리 보이는 대마탑과 무수한 마탑들.
갑자기 공포가 사라졌다.
요정 여인은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림자의 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악룡이 입을 벌리고 있다.
브레스다.
저것을 막는 것은 그의 역할은 아니다.
쩌적 하고 무의 공간이 입을 벌린다.
조금 전 하늘이 잠깐 사라졌던 것이 저 빈 공간으로 뒤덮어서였지.
[외계]의 상당수가 뒤덮여 저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저 속에는 살아 있는 괴물들이 정말 많을 터.
악룡이 [허수차원 붕괴]를 가졌음을 생각하면 이제 뱉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정말로…….”
그런 외침이 들렸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달려가는 수없이 되뇌며 요정 모녀가 보인다.
“신이라. 그런 노릇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애초에 아케인에 왜 그의 신도가 있는가?
그것도 이런 변방의 농장에 말이다.
“가끔은 할 수도 있지.”
균열이 열리며 하늘이 뭉개진다.
그 사이로 괴물들이 영문을 모르고 떨어져 내린다.
그림자의 신은 오른팔을 들었다.
빛을 모두 흡수하는 것 같은 검은 단검이 소리 없이 나타난다.
오랜만에 쥐는 무기의 촉감에 만족하고, 몸에 차오르는 마스터리의 보정에 전율하며.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야.”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떨어져 내리던 괴물들은 모두 생명을 잃었다.
* * *
악룡은 당황했다.
신이 더 있다.
어째서?
그러나 브레스는 이미 장전되었다.
드라간이나 루시가 함께 있을 때는 호흡을 길게 모으지 못했다.
브레스는 곧 숨결.
숨결이라함은 더 깊이 들이쉬고 내쉴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이렇게 모은 그의 브레스를 견뎌낼 만한 힘은 저 아케인이라 불리는 도시에 없다.
침공은 시작되었다.
방비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대부분은 죽으리라.
그 이후의 승리?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상대의 의도에 훼방을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승리다.
게임은 원래 상대방 X같으라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 웃으며 악룡은 세상을 파괴하기 위한 숨결을 내뱉었다.
* * *
“막을 수 있겠군. 이제 거기서 안 통하면 하드스록으로 가야 할 거야. 그것도 안 된다면 또 다른 곳으로 가며 최대한 많이 죽이고 어지럽히려고 하겠지.”
“자기 자신을 침공의 선봉장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그럴걸? 딱 그렇게 생각하고 설치는 것 같은데.”
“아니, 왜 그런 짓을?”
“음, 모든 일에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지. 그냥 저 녀석은 원래 저런 놈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안타깝게도 기동성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하이랭커쯤 되면 어마어마하게 빠르지만 말 그대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차원의 유랑자]는 어쩔 수가 없다.
저건 최고의 유틸 유니크 스킬이다. 마음먹고 게릴라를 한다면 막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목적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침공을 일으키고 그걸 막으려는 모든 시도를 무위로 돌린다.
신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침공에서 생존하란 법은 없다.
그 무시무시한 공세가 휩쓸고 지나가는 난전이 일어난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큰 것은 악룡이다.
스펙이 가장 높을 테니까.
긴 전쟁이 된다면 결국 그런 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몰고 가버렸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동성에서 따라잡은 수단은 있다.
신좌부품을 통해 생긴 기능이 신들을 탈옥시킬 수 있는 위치는 신도가 있는 모든 곳이다.
“마법사인 신들이 브레스를 막아줘야겠군. 이 두 명이면 되겠지요?”
이것은 그 신들을 잘 아는 자에게 물어야 한다. 열 개의 [매스 텔레포트]를 동시 캐스팅 중이던 자연의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못지않은 마법사들이지. 문제없을 거다.”
그 이야기는 즉시 전달되었다. 마법사 두 명이 더 신좌에서 일어섰다.
* * *
드라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붕괴에 휘말렸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소용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더 물리적으로 두들겨 패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지만, 그것이 상대의 스킬과 같은 종류였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기에 드라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심연보다도 질이 나쁘다. 우주보다도 아무것도 없다.
빨리 가서 다른 녀석이 사냥하기 전에 그 용의 뱃가죽을 찢어 발겨야 하거늘.
그리고 드라간은 문득 깨달았다.
“그렇군. 그냥 신좌로 돌아가면 되겠군. 그리고 신앙을 소모해 강림하면 그 용을 두들겨 팰 시간은 충분하지.”
정답이었다.
돌아가는 방법은 그저 그렇게 원하기만 하면 된다.
드라간은 사납게 미소지으며 신좌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다.
잠깐의 휴가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이제 매달 이런 식으로 지상을 거닐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신좌와 모든 연결이 끊어졌음을 깨달았다.
“뭣이?!”
그는 더 이상 전쟁의 신이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되었다.
* * *
사납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신앙이 피어오른다.
데스 나이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그것은 이윽고 타오르는 듯한 질감이 줄어들고, 붉은빛에 조금 검고 칙칙한 것이 뒤섞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텅 빈 신좌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천천히 걸어가서 앉았다.
신좌는 데스 나이트를 받아들였다.
전쟁과 죽음의 신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