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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46화 (34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46화

왕국 - 침공 직전(4)

상대의 응답이 없었기에 레베카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승이 앉아 있었던 신좌는 딱딱했고 차가웠다.

온기라곤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위화감이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신의 제자라는 것은 언젠가 신좌를 물려받을 운명인 것이다.

신은 죽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의 결말을 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었음에도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신좌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었던 스승이다. 갑자기 이렇게 그녀에게 물려줄 이유는 하등 없다.

게다가 신좌란 그렇게 명예롭고 행복하기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레베카는 어쩌면 스승이 자신에게 신좌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만큼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미궁에서 가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짜 가족은 바깥에 두고 왔고 이 안의 가족이란 그냥 그런 느낌일 뿐인 경우도 흔하니까.

마법의 신, 이제는 이플릭셔스 님이 된 스승님은 거짓 없이 베풀어주었다.

그쯤에서 레베카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무언가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어쩐지 빠진 것 같은 허전함.

무언가 생각나야 하는 게 더 있는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 소중히 간직해 온 어떤 것이 말이다.

검지와 엄지로 턱을 받치고 흐응, 하면서 생각해 본다.

모르겠다.

어쨌든 경애하는 스승님과 싸워 살해하는 형태로 물려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뻐하기로 했다.

이제 레베카는 마법과 지식의 여신이다.

그렇다면 아케인의 마법사 절대다수의 신앙을 받고 있는 여신으로서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 첫 번째는 왕국의 수호다.

모든 신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전 마법의 신인 스승님도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레베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그림과 뜻을 같이했다.

최소 한도로 잡더라도 하드스록이 아닌 아케인은 지켜내야 한다.

그러면 갑자기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전쟁의 신좌에 새 주인이 등장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어쩌면 예전에 헤어진 동료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의지도 있었고, 그럴 만한 능력도 있었다.

그래서 전쟁의 신좌를 노리고 기나긴 모험을 떠났다.

일그림은 그때 누군가 하나가 신이 된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보내주었다.

타산적인 척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파티 리더.

“지그라면 좋을 텐데.”

그러면 파티원들 모두가 살아 있는 셈이다.

제자의 학부모는 여전히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그 실력만은 진짜다.

경영자들도 모두 사라졌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공이라는 절대적 시련을 극복해 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행복한 왕국을 만들 수 있을 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의무감이 샘솟는다.

새로운 전쟁의 신은 여전히 응답이 없다.

“혹시 나처럼 신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신좌의 사용법을 모르나?”

레베카는 귀동냥으로 들어서 아는 것이 있다. 어쨌든 그녀는 마법의 대전사였으니까.

손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놀린다.

지금도 침공의 첫 번째 웨이브는 각지에서 리프트가 존재하는 거점들을 노리고 몰려들고 있다.

시간이 없는데.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레베카? 어떻게? 마법의 신께선 이미 떠나셨나?]

“지그잖아!”

레베카는 빠르게 답장을 보내었다.

혼돈의 신에게도 얼른 확인된 사실을 알린다.

* * *

몸을 루시에게 돌려주고 온전히 신좌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없이 메시지를 돌리는 한편 신언을 내린다.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목소리와 키보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큰 강점이다.

다른 신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멀티태스킹이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레베카의 메시지가 뾰롱 하고 떠오른다.

확인과 동시에 답장하고 전쟁과 죽음의 신에게도 다시 메시지를 보내었다.

윽박지르듯이 보낸 것은 너무 당황스러워서였지만 레베카의 파티원이었다는 게 확인된 이상 제일 먼저 보내야 할 말은 하나다.

[절대 맥에 대해 레베카에게 말하지 말도록. 레베카는 맥에 대한 기억을 잃었고, 맥은 악룡이었다.]

충격 좀 받겠지만 그것까진 내 알 바 아니다.

이플릭셔스 씨가 신좌를 내려놓고 영구적으로 활용 가능한 영웅 유닛이 되어준 이상 그와의 약조를 지켜야 할 뿐이다.

거기에 일단 저 초짜배기 신 둘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나중의 문제다.

정찰 나간 천사들의 소식들이 속속 도착한다.

아케인의 마법사들과 하드스록에 이미 파견 나가 있던 마법사들도 관측 범위가 닿는 한 정보를 보내어 온다.

마법적 관측은 몰려드는 적들의 웨이브 대부분의 구간에 먹통이다.

보스급 개체가 존재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침공의 더 정확한 이름은 [메인 던전의 침공]이다. 던전은 넷이지만 [심연]은 특수한 곳이기에 그곳의 병력이 쏟아져 들어오진 않았다.

그러니 나머지 세 곳의 군세가 공격해 오게 된다.

중앙에 최초의 거점이 되는 성직자의 나라, 그리고 각 클래스별 국가의 위치다.

하지만 시티즌은 이미 멸망했으니 그쪽의 방어는 기대할 수 없다.

성직자의 나라에서 맞아야 할 웨이브다.

군세의 종류를 재확인한다.

우선 하드스록이다.

오래 전부터 카베 영감과 친구들이 대비해 온 요새는 정확히 침공이 들어올 방향으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정령왕의 계약자 아젤리아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요새를 복구해 내었다.

좀 살살 부숴야 했는데 말이지.

일단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적을 맞이하는 곳은 하드스록이다.

카베 영감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혼돈의 신전 지부는 저곳에도 차려뒀다.

신전이라기보다는 간이로 신상만 좀 세워두고 한 게 다지만 아무튼 성역이긴 해서 소통이 가능했다.

하드스록 북부의 대설원을 너머 깎아지른 듯 솟은 산맥.

그리고 다시 펼쳐지는 얼어붙은 바다를 통해 진군해 오고 있는 군세는 [메인 던전]을 구성하는 36가지 테마 중 하나이자.

현재 열려 있는 던전 넷의 테마 중 하나.

[은하 포식자]다.

* * *

카베는 요새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따라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는다.

사실 몰아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멈춰선 것이다.

거대한 힘이 나타나자 기상마저도 활동을 정지했다.

가뜩이나 생명의 흔적을 찾기 힘든 척박하고 얼어붙은 바다다.

그 생명력이 더욱 빠르게 말라붙어 가는 것이 보인다.

마력이 흡수당하고 있다.

아니, 마력이라기보다도 마나 그 자체가 변질되어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이미 저 먼 곳에서부터 침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없고 날이 맑아지니 시야도 넓었다.

거인의 높은 시선이 아니더라도 저 멀리에 무엇이 나타났는지는 알 수 있다.

얼어붙은 바다는 얼음이고 그 위에 덮이는 것은 눈이다.

그러니 새하얗게 보여야 할 풍경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칙칙한 무채색의 함대가 보인다.

강철로 이루어진 함대는 아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날아들며 지상에 작고 사나운 괴물들을 흩뿌리고 있는 저것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함대다.

온 우주를 유영하며 집어삼키려는 이성 없는 허기와 갈증의 화신들.

이미 시야에 들어올 정도라면 코앞이나 다름없다.

개척되지 않은 왕국의 저 먼 곳에서부터 진군해 온 괴물들이 시시각각 가까워져 온다.

왕국을 먹어치우러 오는 데 가장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집단이기도 했다.

“다행이로군.”

“아케인 측에 나타났다면 큰일이었겠습니다.”

카베가 말하자 옆에 선 멜메르도 동의했다.

저 생물이라 부르기도 힘든 괴물들은 마력을 집어삼킨다.

마법 역시 삼켜 제 힘으로 삼는 것들이다.

마법사들에게 상대하라고 하면 아주 힘든 일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전사에게도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힘에 소모가 커진다. 그래 마치 저 아래의 지옥에서 겪은 날씨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르게는 [심연]의 깊은 곳.

카롤리가 우선 창을 만들어 치켜들었다.

저 아래에서 그 투창을 본 이후 어쩐지 창이 마음에 들어 주력하고 있다.

투창은 원래도 전사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범용성 높은 원거리 공격이다.

카베는 뒤를 보았다.

오랜 소망이었다.

이 왕국의 기이한 행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

거인으로서도 노인인 된 후에야 떠올릴 수 있었던 인간성.

그렇게 조금씩 진행해 왔다.

악룡의 계획에 반하며, 경영자들과 척을 지어 왕국의 일부나마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 몰랐다.

대장장이 카베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를 따라주는 유배자들이 있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한계였다.

달라진 것은 그 남자. 지금은 혼돈의 신좌에 앉아 있는 그의 덕분이다.

어쩌면 왕국 전체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모두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베는 드넓은 요새에 도열해 있는 병사들, 아니, 동료들을 보았다.

이 모두가 그와 뜻을 함께하며 지금까지 수십 년을 준비해 온 역전의 용사들이다.

하드스록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대표하며, 그곳의 가장 강력한 전력인 파티 [하드스록]의 리더로서 카베는 망치를 들었다.

긴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전사답지 못한 일이다.

싸움을 앞에 둔, 그것도 생존을 건 투쟁을 눈앞에 둔 전사가 해야 할 말은 단 하나뿐이다.

유니크 스킬이 발동하고 노거인의 홀쭉한 몸이 화염과 함께 부풀어 올랐다.

뒤에서 보는 길드원들에게 그것은 무채색으로 사그라들고 있는 배경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불길과도 같았다.

카베가 치켜든 망치는 거세게 타오르는 긍지의 봉화다.

전사들이 모두 함께 무기를 치켜들었다.

적의 함대가 점점 가까워 온다.

카베의 화염은 지지 않고 타오른다.

노거인은 온 세계에 울려 퍼지길 바라는 외침을 내뱉었다.

“승리를……!”

이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전사들의 함성이 설원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 *

[침공]이라는 이벤트는 어떤 입장에서 겪는지에 따라 전혀 성질이 달라진다.

일개 유배자로서 맞이한다면 아포칼립스의 생존물이 될 수 있다.

이름 있는 랭커로서 맞이한다면 끝없는 전쟁으로 느껴질 것이다.

거대한 길드를 이끄는 길드 마스터로서 맞이한다면 1인칭 시점의 소규모 전술게임으로 느껴질 것이다.

전지한 신의 입장에서는 탑뷰 RTS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런 판타지 RTS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웅의 운용이다.

영웅 유닛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을 최대한 생존시킨 것은 그래서다.

하이랭커는 개개인이 체스로 친다면 룩 정도는 되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내게는 이제 퀸들이 있다.

이 거대한 체스 판 어디건 투입될 수 있으며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줄 수 있는 기물들이.

레미와의 협의는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신좌 부품을 받아 지상에 강림한 신들은 혼돈의 여신 루시에 대한 존중을 고스란히 그 후임인 내게 이어가기로 했다.

루시가 인정한 대전사라는 이유에서였다.

내 전대 루시의 대전사였던 자연의 신도 기꺼이 그 사실에 동의했다.

도리어 그는 얼마건 마음대로 부리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려온 신들도 앞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간 최대의 효율로 굴려야 한다.

그러려면 힘을 집중하여 보스 킬을 노릴 필요가 있지.

기절하듯 자고 있는 대전사 루시를 대신하여 아서에게 화신하였다.

하드스록의 혼돈의 신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기사는 껄껄 웃으며 내 화신을 받아들였다.

“배워야 할 게 있다고 했지?”

「화신으로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스킬과 무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미궁에 들어와서도 많은 것을 배워야 했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더 배울 게 생길 줄은 몰랐군.”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메인 던전]을 공략할 수 없으니까요.」

아서에게 몸의 주도권을 넘겨받는다. 이 노기사의 싸움은 이미 많이 지켜보았다. 적으로서도 아군으로서도 말이다.

그러니 어찌 사용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다.

함께 움직일 다른 이들을 데리러 간다.

악룡으로부터 하드스록을 방위했던 신들이 레미와 함께 있었다.

꽃잎 요정이 된 레미는 얼굴에 생기가 넘친다. 빨리 종족을 바꾸는 것을 권하려고 했었는데 본인에게 거부감이 있어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고위 종족 카드라니. 자연의 신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사실은 뭐, 미아에게 사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테지만.

에길도 레미와 함께 있었다. 그는 혼돈의 화신이 된 아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차례는 그다음인 모양이군.”

한 번씩 화신을 통해 직접 체험하는 전투 방식 개선을 할 생각이다.

스펙은 충분히 쌓았으니 파티원 모두를 각각의 역할을 맡은 ‘나’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그 첫걸음이 시작되는 셈이다.

“[은하의 포식자]에서 보스 개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전부 날아다니는 함선들입니다. 살아 있는 거대한 우주 전함이죠. 공략은 실시간으로 전달하겠습니다만,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있나요?”

신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결투의 신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간과 블랑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돌아와 줘야 하는데.

유니크 액티브 [다차원 연속체]

방금 쿨다운이 돌아온 액티브를 혹사한다.

푸른 차원의 균열이 열렸다.

“속전속결입니다. [다차원 연속체]의 지속시간이 다해가면 바로 빠질 테니 그사이에 셋은 잡아야 해요.”

아직 첫 웨이브에 불과하다.

길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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