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358화 (35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58화

왕국 - (1-1) 클리어

마지막 부대를 교대시켰다.

요정들이건 하이브 마인드의 잔재건 살아남은 잔당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 우리가 이렇게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돌려막기를 열심히 한 덕분이다.

결코 정면으로 쾅 붙어서 손실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적들이 아니다.

마인드맵이 없다고는 하나 최소 5천 레벨의 각 개체들은 랭커들에게도 재앙일 수 있다.

일반적인 왕국의 주민들에게는 코스믹 호러나 다름없는 레벨이다.

그러므로 주력부대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은 상대적으로 일을 덜 한 약한 친구들 위주로 수색대를 편성해 돌렸다.

그리고 각 교단들이 모두 나서서 난민을 인도하는 중이다.

상공에서 화신한 채 투창쇼를 좀 벌였던 생체 인공위성이 내게 말한다.

“과연, 이런 효과도 노린 게군.”

「그 말대로입니다. 협조하는 신들이 일정 수 확보되면 이렇게 되죠.」

“아무도 모르게 물밑에서 세력을 뻗어나간 후, 상황이 터지자 곧바로 일사천리라. 이건 뭐 반대 성명을 내기에도 늦어버렸고 외통수로군. 껄껄.”

루시가 오래간만에 노인네처럼 웃었다.

신좌에서 완전히 내려간 덕에 조바심도 사라지고, 침공 덕에 추억하던 시절의 왕국에 돌아온 것 같기도 할 것이다.

몹시 편안해보였다.

“규율의 신만 빼고 모두가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군. 어쩔 수 없을 거야. 분위기가 이렇게 잡혀버렸으니 이제 여기서 발을 빼면 성전을 반대하는 이단이자 악신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으니까.”

「교단의 중진들이 나서서 수작질을 많이 부리고 있죠. 혼돈의 교단이 빈민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 심증은 있겠지만.」

“우리가 했다는 물증은 없겠군.”

「맞아요. 교단이 망하는 꼴을 보기 싫다면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왕국은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기차는 출발했어요. 막아서기는커녕 잡아타지 않으면 끝장나는 기차죠.」

협력하는 신들만 10명이 넘으며 모두가 고대신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되고 강력한 자들이다.

현세에 나와 활동하고 있으니 신앙이 굳건하던 자들조차 마구 흔들린다.

신이 직접 나와 퍼포먼스를 하는 셈이니 소소하게 자리만 잡고 있던 옛신들의 교단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참 열심히 젓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좌불안석이 되는 것은 관망하던 신들이다.

그들의 교단은 뭔가 보여준게 없다.

신앙 수급이 실시간으로 감소하는 꼴을 보면 궁둥이가 아무리 무거워도 움직인다.

실제로 내게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미궁에 존재하는 모든 신좌가 나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 같다.

실제로 세어보니 사실이었다.

현재 왕국에 비어있는 신좌는 없는 모양이다.

개중에는 젠체하며 체면을 챙기려는 이도 있고, 울며불며 사정하는 이도 있다.

내 접미를 알아보는 낌새는 전혀 없다.

절망의 신은 끔찍하게 귀하니까 별 수 없지.

「이미 사람들의 포커스는 침공 방어 그 자체에요. 살아남으려고 도주하면 나쁜놈이 되죠. 그 이미지를 감수하기에는 이룩한 입지가 너무 높은 사람들이 흔합니다. 이미 절반은 성공이군요.」

“거 참. 더럽게 악랄하군. 결과가 좋을테니 되었나?”

「좋을지는 모르죠. 일단 루시도 계속 도와야합니다. 」

“음, 좀 쉰 다음에 수색대에 합류할까? 그러면 되나?”

물론 전장에서의 루시는 절대적인 위력을 지닌 영웅유닛이다.

화신이 없더라도 그렇다.

내 스펙이 다른 신들에 비해 압도적인게 아니기에 루시가 화신으로 얻는 스펙 상승은 변변치 않다.

그러니 그거 말고 다른 것이다.

「교단의 얼굴로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이전에 연습도 시키고.”

「저는 잠깐 지나가는 사람인거고 모두의 인식 속에서 혼돈의 신좌는 여신이 앉아있다고 되어있죠.」

잊힌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루시는 일종의 신화이며 전설이다.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 구전되어 미화되고 신격화된 끝에 정말 전설로 남았을 뿐인 무언가.

레미가 교단을 운영하며 느낀 바에 따르면 그렇다.

루시라는 실체를 인식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도 무언가 공통된 인식이 있다.

먼 옛날 이 땅에 최초로 도착하여 깃발을 들었던 어떤 소녀.

잔다르크도 아니고 이게 뭔가 했지만 꼼꼼하게 따져보면 대체로 루시라는 존재, 최초의 신인 혼돈의 여신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되며 변화된 것이다.

왕국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곳에서도 일어난다.

수천년 전에 있었던 실화는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후대를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신화가 된다.

루시는 신화였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재현할 때다.

“뭣이? 난 그런 이야기는 한번도……?!”

「제가 또 전투를 앞두고 심란해질만한 이야기는 안 하죠. 루시 스탯이면 체력적 문제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바로 일하러 갑시다.」

최강의 영웅 유닛은 동시에 최강의 내정 관리 유닛이기도 하다.

루시 만세. 만세만세 만만세.

* * *

루시는 빨려 들어가듯이 하드스록으로 날아갔다.

혼돈의 신전 본단에는 루시 모르게 모든 것이 착착 준비되어 있었다.

시녀 같아 보이는 여인들이 루시를 벗기고 여기저기 쓸고 닦으면 새단 장을 했다.

시중 받는 것 자체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변방 가난한 귀족이던 루시도 그런 경험은 있다.

바깥으로 돌아간 것 같음 품위와 체통 기타 등등 어쩌고를 속성으로 정리당하고 대본까지 달달 외우게 통조림당한 다음에야 옷을 차려 입혀져 대중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미 위치는 성직자의 나라다.

말하자면 이번 침공 방어전의 기지다.

루시 개인의 주관으로는 그저 앗 했더니 이미 그 앞에 서있는 것 같은 일이었다.

모여 있는 이들 대부분은 유배자들이지만 전투와 관련 없어 보이는 몇몇 있다.

루시는 그 가운데 기자라고 불러야할 직업 종사자들을 몇 명 목격했다.

교단의 얼굴이라더니 이런 일이었나.

이런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한때 거대 교단의 탑이었던 혼돈의 여신으로서 루시는 근엄하고 자애로워보이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생각보다는 서투르시군요 같은 말을 최근에 듣긴 했지만 어쨌건 경험 자체는 있다.

누군가를 이끈다.

그리고 그들의 우상이 된다.

희망이 된다.

개척 시대 최초의 신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루시는 대본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돌아왔다.”

그리고 열자마자 대본을 내다버렸다.

“나를 기억하는 자가 있는가?”

좌중에 모인 유배자들은 모두 고레벨이지만 카베만큼이나 오래 묵은 이는 없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안면은 없을 것이다.

웅성임조차 없다. 모두 조용히 성직자의 나라, 혼돈의 신전 앞에 나타난 자그마한 소녀를 보고 있다.

하얀 드레스는 옆에 든 검은 창에 대비된다.

연한 보랏빛 머리카락은 더욱 그렇다.

이제는 특별히 신성은 없으나, 아름다운 소녀가 무기를 들고 전사의 풍모를 발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성해진다.

루시가 누군지를 모르더라도 그 활약을 모르는 이는 없다.

급조되어 한번의 전투를 잘 치러낸 이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안다.

그리고 이 전장에 신이 함께한다는 사실도 안다.

누군가들이 외쳤다.

“혼돈의 여신!”

“혼돈의 여신님!”

루시는 그것이 레미 또는 그녀의 리더가 심어놓은 바람잡이임을 알고 있다.

그 사이에서 자연의 신이 걸어 나왔다.

다른 이들은 신을 알아보았다.

자연의 신은 가장 열심히 전장의 앞에서 날뛰었던 신이다.

마법사의 마법은 전사나 사수의 공격보다 더 강렬하고 눈에 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신격이시여. 이 땅에 돌아왔음을 경하 드리옵니다. 옛 대전사인 파라켈수스가 말입니다.”

“오랜만이다! 파라켈수스. 그간 잘 지냈나?”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자연의 신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꿇고 먼 엣날, 저 창잡이 소녀의 대전사를 하던 시절처럼 공경을 담았다.

다른 신들도 나타났다.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혼돈을 뵙나이다. 저는 한때 당신의 신도였습니다.”

“기억난다.”

이것만큼은 의외였던지 그림자의 신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십니까?”

“까만 거 좋아해서 맨날 까만 옷 입고 다니고. 무기에도 검은 칠하고 다니더니 그림자의 뭐시기 하는 유니크 스킬 얻고 좋아하던 코찔찔이 아니냐.”

“하하하. 정말이시군요.”

그림자의 신이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기억해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때 노력하여 살아남았다.

혼돈의 여신이라는 이름이 잊힐 때쯤에야 신좌에 올랐다.

같은 시대에 살았을 뿐, 신으로서의 세대는 까마득하게 다르다.

일개 신도가 기억될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감동인지 뭔지 모를 것이 문득 북받쳤다.

저 보랏빛의 소녀는 그때 그 시절, 모두가 동경하던 우상이었다.

그 인정 역시 그렇다.

자연의 신과 다르게 그림자의 신은 루시가 활동이 줄어들 때까지도 별다른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는 유배자였다.

그리고 그림자의 신이 보이는 그런 반응은 다른 이들에게도 어딘가 전달이 되었다.

잘 모르는 유배자들도, 왕국에서 지낸 시간이 백여년도 채 되지 않는 어린 유배자들도 모두 침묵하고 이 상황을 지켜본다.

그들에게는 이것 또한 신화였다.

오랜 옛 것의 재현.

그렇게만 보였다.

다른 신들이 더 나타났다.

이번 전투를 치렀던 모든 신들이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저마다의 신앙을 간증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역사마저 풍화되어 사라졌으나, 산 증인들이 이곳에 있다.

저마다 개척 시대의 배경 어딘가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이들이다.

그 끝에 살아남은 이들이다.

그리고 그 모두의 신앙이 한쪽으로 향하고 있다.

신들의 신.

루시는 흐뭇하게 웃었다.

“내가 많은 것을 버리고 떠난 것은,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어서였다.”

목청을 가다듬는다. 연설하듯 말할 생각은 아니다. 그저 털어놓듯이 말할 뿐이다.

레미가 만들어준 대본은 좀 더 장엄하고 고귀하며 그야말로 여신 같은 무언가였다.

하지만 전사답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신도 신도도 이제 더 이상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나는 그래서 도망쳤다. 어차피 이 왕국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 테니까.”

“말이나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미안, 파라켈수스.”

한참이나 지나고서야 들은 대답이다. 대전사로서 신이 갑자기 사라진 사태는 끔직한 혼란이었다.

당시의 대신관과 함께 수습하려고 노력했고 오랜 기간 유지했으나 끝내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왕국은 다시 여느 곳처럼 클래스간의 반목을 바탕으로 갈라졌다.

그 이후 다시는 하나가 된 적이 없었다.

아쉽고 슬프고 원망도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아니다.

단지 저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자연의 신은 혼돈의 신좌가 비고 새로운 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살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웅은 아닐거다. 그저 저 바깥 어딘가의 중세에서 가난한 기사의 딸로 태어나 무술을 좀 배우긴 했었지.”

루시가 창을 내려친다.

쿵하고 무대가 된 신전 앞이 울렸다.

“그러니 사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운이 좋아서다.”

다시 울린다.

쿵.

“하지만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많은 유배자들처럼 살았고, 노력하고, 거기에 운도 좋아 지금 무릎 꿇은 신들을 만나 함께한 덕이지.”

다시 쿵.

“그래도 돌아왔다.”

한 번 더. 쿵.

“처음 이 왕국이 시작된 이곳. 그리고 개척해나가야 했던 이곳. 너희들 모두와 함께 싸워왔던 이곳.”

누군가가 호응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무기를 땅에 내려치고 있다.

조금씩 화음이 되기 시작했다.

신이라는 무게가 주는 이름값이 그러했다.

모두가 지금이 신화의 한 장면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돌아왔다. 내가 지켰던 왕국, 우리가 지켰던 왕국. 이곳에서 다시 저 바깥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신좌마저 박차고 돌아왔느니라.”

그 다음의 쿵은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울림이었다.

루시는 이제 무슨 말을 하나 하고 고민했다. 대본은 스스로 내다버렸으니 할 말이 없다.

그때 신언이 들려온다.

「대충 오만한 말 하십쇼. 분위기 잘 잡힌 거 같으니까.」

‘그러냐?’

“신들이여! 너희들의 신이 돌아왔다! 왕국을 지키고 메인 던전을 끝장낼 것이다!”

자연의 신이 선창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때 이 자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인간이 발 디디고 살아갈 터전을 지킬 것이다!”

다른 신들이 따른다.

하루하루가 이런 식의 사기 고취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다음 회차로 사출되는 게 더 편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은 실제로 실행했다.

남은 것은 애초부터 삶에 가치를 많이 부여하는 이들과 죽음으로 물러설 곳이 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쩌면 이런 날을 기다리기 위해 신좌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잘은 몰라도 신이란 이름 아래 신좌에서 뛰쳐나와 그들의 대단함을 증명한 자들이 환호하자 모두가 따른다.

그 가운데는 진실이 아니라 휩쓸릴 뿐인 감정도 있었으나 점차 진실이 되어갈 것이다.

왕국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다.

그것에 이제 이유는 필요 없었다.

랭커이상의 유배자 중 이 땅에서 적은 시간을 보낸 이는 없다.

그런 환호 속에서 루시는 슬쩍 드라간이 어디 없나를 살폈다.

정말 돌아오지 않았나? 거대한 트롤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아쉬운데.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모두가 잠깐 다른 행동을 멈추고 올려다본다.

공간이 비틀리고 손상되고 있었다.

찢어지는 공간의 틈새 속으로 커다란 무언가의 실루엣이 문득 드러났다.

쾅 하고 망치를 내려치는 듯한 그림자다.

두어번 더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산산조각났다.

평범한 트롤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더 큰 괴물같은 전사 하나가 피로 칠갑을 한 채 그 사이에서 걸어나온다.

어찌보면 이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

화끈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행보로 인기와 안티를 많이 거느린 최강의 전사 중 하나.

아이신기오로 드라간이 어리둥절한 것 같은, 그렇지만 자긍심으로 충만한 사나운 표정으로 말한다.

“뭐냐. 이 떨거지들은.”

자연의 신이 피식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대에서 미친놈 보듯이, 하지만 어딘가 반갑게 드라간을 보는 루시를 가리켰다.

전쟁의 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을 돌리고.

“크으으윽.”

쓰러졌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대충 선전포고 했다. 이거 맞지?’

「흠. 별로 세련되진 않았지만 나쁘지 않군요. 제가 하려던 건 좀 더 프로듀싱이었는데.」

‘여신 같은 이미지 만들기 말이냐?’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예쁜 사람을 선호하거든요. 루시 정도면 잘 써먹을 어드밴티지죠.」

‘내가 뭐 망치진 않았겠지?’

「좀 많이 와일드한 이미지가 되긴 할 거 같은데, 뭐 어떻습니까. 친근한 이미지면 피곤해지는 건 루시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신비롭고 성스러운 이미지로 만들어서 어디 짱박혀도 아무 일 없는 구도를 잡으려고 했는데, 뭐 전장의 아이돌도 좋죠.」

루시는 눈썹을 팔자로 모았다.

조금 실수했나?

「그래도 전사답고 좋았습니다. 하드스록 쪽은 다 넘어오겠군요.」

‘끄응.’

루시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제 뒤로 나오자는 사인이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 다시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쉴래. 싸우는 게 더 쉬웠어…….’

「잘하셨으면서.」

‘신좌에서 내려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본 건 처음이란 말이야. 게다가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세워두고. 넌 히키코모리 감수성이 부족해.’

그러자 건방진 그녀의 전 대전사가 속삭였다.

「당분 보충하셔야지. 엔젤이 직접 만든 디저트 뷔페가 있으니 즐기시죠. 사실 처음부터 성직자의 나라의 신전은 루시의 집처럼 꾸며둔 곳이거든요. 그냥 여기 머물며 할거 하고 지내면 됩니다.」

‘오호?’

과연 진수성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과자들이 늘어서있다.

루시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악마는 이가 안 썩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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