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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60화 (36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60화

왕국 - 웨이브 [2-1](2)

하나가 된 왕국은 많은 통념을 떨쳐내고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에 제니는 현재 하드스록에 있었다.

마법사인 미아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은하의 포식자] 방면에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령사 아젤리아와 미아는 지금 하드스록의 수호신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좀 더 내려가면 다음 대 마법의 신 후보다.

현 마법의 신의 제자니까 그렇다.

레베카는 소심하게 미아가 일단은 자신의 제자임을 밝혔고 미아는 그 사실을 당당하게 긍정했다.

신씩이나 되어서 굉장히 쭈뼛대는 그 느낌은 우스웠지만 지금 제니가 남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제니 파이팅!”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제 호위를 응원하는 하드스록의 수호신을 보면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속으로만 파이팅이고 나발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쨌든 오늘 미아는 비번이었다. 마법사는 교대근무가 기본이다. 마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호위인 제니만 단독 출전한다.

[하드스록]의 정령사, 정령왕의 계약자인 아젤리아가 못 미더운 얼굴로 제니를 본다.

“넌, 그 뭐. 랭킹에도 없던 친구 아니야?”

“예예, 그렇습니다.”

“괜찮을까…….”

“저도 좀…….”

걱정이네요 라고 말하다가 말고 제니는 스스로의 입을 때렸다.

찰싹찰싹 힘 안 빼고 세 번쯤 때리니 입술이 얼얼하다.

“걱정 마시죠. 저는 이제 슈퍼 제니로 다시 태어났으니.”

“뭔 소리야.”

아젤리아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제니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본 스킬이 [허수차원 붕괴]다.

거기에 리더가 가장 중시하는 서브 리더의 핵심 유니크 스킬의 후보로 고려되었던 [무오의 광휘]가 있다.

이 둘만 해도 제니는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환경이다.

슬슬 익숙해져서 뭔가 할 수 있다고 가슴을 펴려고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제니는 제발 가만히 자신의 위치에서 안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반년 전의 제니는 레벨 200따리의 짐승사냥꾼이었으면, 넉 달 전의 제니는 랭커가 되고 싶어 선배를 따라나선 꿈 많은 유배자였다.

그리고 두 달 전의 제니는 1600레벨의 명백한 랭커급 스펙을 가졌으나 기량은 그에 따라주지 못하는 반푼이였다.

이 악물고 노력해서 드디어 아서나 에길과 합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을 향상시켰나 했더니.

리더는 그녀를 불러다가 고대하던 유니크 스킬을 탑재시켰다.

거기까진 좋다.

단독 출전이다.

그것도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는 시점에서의 단독 출전이다.

이게 맞나?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세상도 리더도, 그리고 그녀 자신도 너무 지나치게 빨리 변하고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없다.

앗 하면 뭔가 뚝딱뚝딱 개조 고양이가 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전장이다.

잎사귀 요정이라기보다는 무슨 건담이라도 된 것 같다.

어쨌건 제니는 출발했다.

[하드스록]이, 사실 대부분은 아젤리아가 다시 재건한 요새는 첫 번째 웨이브의 3파를 잘도 막아내었다.

여전히 요새는 그곳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었고, 거기서 흘린 것들은 후방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이 처리했다.

사상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나 안정적인 전황이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2파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리더의 방침도 바뀌었다.

지금처럼은 못 막는다. 카베가 애초에 계획했던 방식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제니가 그 핵심이었다.

유니크 스킬이 어떤 것인지 남에게 함부로 공개하는 유배자는 없다.

아니, 애초에 두세 개를 가진 유배자도 적다.

그래서 일단 말하지 않았다. 주변 누구도 제니가 하룻밤 만에 어떤 것을 탑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본인 역시 지금 마인드맵에 금빛 테두리가 둘러진 유니크 스킬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연습할 시간이라도 좀 줘야지…….”

지식으로는 많은 것을 전수받았다.

제니도 이제 슬슬 마인드맵이라는 미궁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물어물어 따라 하는 것이긴 하겠지만 리더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가 따라갈 정도는 된다.

그건 이미 그 자체로 굉장한 일이었다.

이 비밀을 알고 싶어 무수한 목숨이 내던져지고, 선배라 불리며 존경을 바치고 따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니는 진정으로 강함을 손에 넣고 있다.

정신이 그걸 도무지 따라가기가 힘들 뿐이지.

아젤리아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제니를 못 미덥게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아젤리아가 기억하는 제니의 마지막 모습은 미아 곁에 서 있던 쩌리다.

필사의 공격에서 무승부에 가까운 좋지 않은 결과가 날 뻔했음에도, 그것을 몸을 던져 막아낸 고기방패인 셈이다.

사실상 미아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던 고양이가 포지션 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되면 의아할 수밖에.

이 미궁의 상식으로는 아직 그렇게 빠르게 누군가가 성장한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젤리아 역시 현존하는 둘뿐인 정령왕의 계약자로서 수호신이라 불리는 마당에는 별수 없는 일이었다.

* * *

본래 디펜스는 잘 막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디 한 곳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다.

그러면 거기서 새어 나온 것들이 다른 전선으로 흘러들고, 후방이 붕괴하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난다.

그러므로 억지로 전선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악수다.

카베가 생각하고 만들어낸 요새는 전진 방어기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두 번째 웨이브부터는 그것을 견딜 수 없다.

“흠. 지금까지만 해도 나는 기대 이상이라고 생각하네. 한 번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쯤 모두 쓰러질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지.”

시시각각 불온한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카베는 밝아 보였다.

노쇠한 거인은 이제 정말 마지막 힘을 쏟아내는 것처럼 싸웠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선에 나서 독려했다.

거인이라는 체격과 [하드스록]의 리더라는 상징성을 가진 그가 앞장서자 전장의 사기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제 좀 쉬시죠. 사실 그 [최후의 전쟁]이 센 거긴 하지만, 지반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다 보니.」

쿨다운이 도는 즉시 다시 터져 나오기를 반복했다.

요새 앞부분은 이제 대지의 정령왕이 나서도 정리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엉망이었다.

일당백이 가능하기에 유배자, 그렇기에 미궁이다.

카베는 포식자 무리의 지상병력 대다수를 상대하는 전과를 올리고 있다.

나는 신좌에서 침공 인터페이스를 띄워 올렸다.

「킬수가 1만 가까이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이제 전선을 물리고, 너무 광범위하게 파괴를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지켜야 할 땅이니까?”

「그렇죠. 카베 영감님이 지키고자 하던 땅이니까요.」

“고맙네.”

「별말씀을.」

전투를 준비하는 카베와 제니를 잠깐 보다가 눈을 돌렸다.

내 눈과 귀가 되어줄 정찰대는 그간 많이도 확대되었다.

천사를 위시하여 상대적으로 비행 속도가 느린 악마들 합류했다.

대신 악마들은 마법을 구사하여 필요에 따라선 더 좋은 기동력을 보여준다.

악마들의 우두머리는 어제 합류한, 전 마법의 신 이플릭셔스다.

「좋아요. 마음의 정리는 다 하셨습니까?」

“빨리도 물어보시는군요.”

「제가 좀 바빠서. 하하하.」

“레베카의 일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도 헛소리 못 하게 입을 맞췄죠. 레베카는 현명한 친구니 결국 극복해 낼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진짜 그럴 확률은 낮았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바뀌더라도 다정다감한 것이 장점인 레베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겠지.

이플릭셔스도 그걸 알아 그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조금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미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들 어딘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바깥이라고 별다를 것도 아니다.

정상이기가 얼마나 힘든 게 삶인가.

“추적하여 끝까지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그동안 왕국을 지키는 데 협력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군요.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겠습니다.”

「그 상처는 그럼 그때?」

“어쨌든 동문이었던 이들이니까요.”

의외의 사실이긴 했다.

홀몸으로 [아케인]의 리더도 아닌 전 멤버 둘을 추적하고 후환을 깨끗이 제거하는 정도의 일이다.

이플릭셔스는 내가 보아온 마법의 신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다.

본인도 그 점에는 자신이 있기에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악마의 몸임에도 새겨진 긴 상흔이 보인다.

돌아왔을 때는 더 처참했다.

포션이 어느 정도 작용했으나 시간이 며칠 지난 후라 완전히 낫지 않았다.

오른쪽 눈은 실명이다.

“제가 방심한 탓입니다. 이제 그럴 일도 없겠죠.”

무슨 악연인지는 나로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오래된 왕국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

하나하나 파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새 출발을 빌어주면 될 뿐이다.

「신좌 바깥은 좀 즐길 만합니까?」

“좋군요. 제 안에 이렇게 무언가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이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걸 향할 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도요.”

사람 좋은 양반이 노하면 더 큰일이 난다. 꼭 그런 상황으로 보였다.

이플릭셔스는 변하는 레베카를 보는 대신 자신이 변하는 것을 선택했다.

「든든하군요. 아젤리아가 벽을 세우면 그 안쪽을 싹 밀어주시죠.」

“마력 배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그리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공세를 방어한 후에는 전선을 물릴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성직자의 나라로 모이며 전선을 줄이고 세 번째 웨이브의 마지막에는 왕국을 버리고 탈출한다.

게이트는 작동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 도주할 곳이 있다.

전 마왕, 벨제뷔트가 머무는 [지옥]이라는 곳이.

* * *

전사들이 무언가를 하기 전에 그 전사들이 날뛸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은 주로 마법사다.

그렇기에 아젤리아는 그녀의 정령왕인 오르트를 불러내었다.

여전히 극심한 마력의 소모도 소모지만, 침공을 방어하고 게이트가 다시 열리면 곧장 달려가야 하는 것이 더 골치다.

계약한 정령왕을 왕국으로 담아오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마력을 한계까지 짜내고 기절하고 다시 눈을 뜨면 그러는 일의 반복이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 죽을 거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지워질 생각을 않는다.

그래도 아젤리아는 일을 제대로 해냈다.

사방에서 산맥이 치솟는다.

자연의 권화인 대지의 정령왕은 마력을 집어삼키는 것들이 나타나기 전에 물리적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력이 삼켜지는 상황에도 남아 있다.

포식자들이 마력을 무효화하는 범위는 넓지만, 이런 식이라면 먹힌다.

저쪽이 공격해 오는 상황이니 가능한 꼼수다.

대지가 일어서서 작은 산맥을 만들어낸다.

적어도 지상병력은 이걸 함부로 뛰어넘을 수 없다.

천혜의 방벽이라 부를 만한 것이 요새 앞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이플릭셔스는 마법을 준비했다.

아낄 필요가 없다고 하니 거의 만전에 가깝게 회복된 마력을 모두 단숨에 소모할 생각이었다.

저 하늘 위, 조각난 외계의 파편까지, 나아가 더 높은 곳에 존재할 바벨의 탑 아래까지도 우주 마법의 영향이 미친다.

운석 낙하로 통칭되는 다양한 마법들은 대체로 우주 마법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저 하늘에서 끌어다 오는 것이니까.

공격력이라면 운석 낙하보다 더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마력 자체를 먹어치우는 것들에게 약화되지 않고 통하는 것은 마법(물리)다.

마력이 무효화되더라도 그 현상 자체는 남으며 시전부터 탄착까지 지연시간이 긴 마법.

운석 낙하가 막상 공격력이 그리 압도적이지 않음에도 자주 채용되는 것은 그 탓이다.

미아가 멀리 하드스록의 신전에서도 보이는 마법적 현상에 감탄했다.

저 높은 곳에서부터 유성이라고 불러야 할 것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모든 별들이 하나같이 비가 되어 내리는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이미 스킬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의 마법이다.

그리고 제니는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하게 자신이 나설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 전장의 주인공은 제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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