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63화
왕국 - 웨이브 [2-3]
훨씬 버거운 두 번째 웨이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각지에서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적과 대면하는 하드스록의 전사들에게 전력을 집중한 후, 상대적으로 느려 터진 적을 맞이하는 아케인으로 바쁘게 이동한다.
그리고 가장 먼 곳에서 몰려드는 미친 요정들은 그걸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콜로서스]는 스펙의 상승 이외에는 점점 교활해지는 일이 없는 테마이며, [은하의 포식자] 역시 침공 방식을 고수하는 형태다.
[대혼돈의 요정]들은 이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을 발견해 냈다.
이 타락한 요정들은 이제 왕국으로 진입하자마자 흩어졌다.
두 웨이브의 정면충돌도 어떻게 방어해 내는 것을 보자 그냥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하고 소모전을 벌이려는 속셈이다.
아슬아슬함을 잘 찌른 전술이며 저놈들이 힘든 테마인 이유다.
본격적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전과를 거둔 전투에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상자가 아니다.
[TL 446,295 지점. 폭풍의 신 부대 종적 연락 두절.]
신은 무적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 스펙으로만 따진다면 지금 몰려드는 괴물들보다 낮을 수도 있다.
단지 마인드맵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불합리할 정도의 보정을 받으며 그걸 이겨낼 뿐이다.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사이 새로운 보고가 또다시 들어온다.
[폭풍의 신 부대. 전멸 확인. 신께서도 전사하셨습니다.]
짧은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신이라는 자리에 앉았던 유배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말을 짧게 하지 않았다.
가벼운 애도를 표하고 다음 전투를 진행했다.
후에 확인하기를, 미친 요정들이 매복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 보내기 위해 그 자리에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오래된 신이기에 루시도 아는 신이었다.
루시는 심심하게 애도를 표했다.
“그냥 신좌로 냅다 튀어버리지. 그러질 못했나 보네. 그런 녀석이었지.”
현재 10명 내려와 있는 신들 중 하나도 죽었다.
무수한 개개인과 단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어디선가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치열하고도 처절한 싸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랭커거나 그에 근접한 고레벨 유배자들이 아닌 이들은 이 상황과 동떨어져 있었다.
시간만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쉬운 수단도 없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현재 왕국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이라고 여기게 만들 그런 시간이 말이다.
하나 된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개개인에게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전력이 되지 못하는 자들은 전장을 모르며, 불안에 떨지만 자신들이 무언가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실감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일어난 세 번째 웨이브로부터는 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별수 없다.
누군가를 신격화해야 하고 우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루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루시는 신들의 신.
아주 고레벨들에게나 와닿을 수 있는 옛 전설이다.
그런 고대유산이 아닌 현재의 누군가가 아이콘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 파티원들은 이미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희우나 미아는 충분히 인기가 있을 만한 외모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드스록] 출신인 아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에길 역시 아서와 함께 전장에서 활약을 보이며 주로 전사들에게 대단한 신뢰를 얻어내고 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누가 보아도 영웅인 자들이다.
신상은 고의적으로 널리 퍼뜨렸다.
튜토리얼에서 올라오자마자 왕국을 제패한 파티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희우나 미아는 손닿지 않는 곳의 천재로 보인다.
아서는 원래부터 손닿지 않는 어딘가의 존재이며, 에길 역시 근거지 없이 떠돌았던 생활을 몇 년 보냈을 뿐이라 유명하지는 않았다.
블랑쉐는 당연히 공공연히 밝힐 만한 입장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 본인도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기를 원했다.
원래 그게 더 익숙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배후의 실력자 같은 포지션을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다.
어쨌건 우리는 왕국 입장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다.
제니다.
* * *
레미는 제니에 대한 소문을 의도적으로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지는 좀 오래되었다.
빌드업의 일종이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빌드업이다.
제니는 꽤 유명한 사람이다.
어떤 의미로 유명하냐고 하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은 평범한 유배자였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제니의 지인이나 그녀가 거쳐 간 길드들의 길드원들은 수없이 많고, 그녀가 코찔찔이 시절부터 나름대로 자리 잡은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목격담 역시 수없이 많다.
그 소문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지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대체로 질투의 발로였으며, 그렇기에 여론과는 무관한 정도에 그쳤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보다는 그저 제니라는 성공 신화에 주목했다.
파티 오르골의 다른 인원들과 다르게 제니의 신상은 너무 투명하다.
내가 그 요정과 아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흔했으며,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이도 있었다.
레미는 제니가 과거의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을 오히려 적극 권장했다.
제니의 편지가 어딘가에 당도하고 그 편지를 여는 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제니는 소탈한 인물이다.
쓰라고하니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 쓰던 편지에도 그것이 묻어난다.
사실 억지로 쓴 것도 아니다.
제니 역시 하드스록에서 일개 짐승사냥꾼으로 보낸 기간이 훨씬 길었다.
제 아무리 밀도가 높은 파티 오르골 생활을 보냈다고 한들, 세월을 넘을 수 없는 무언가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로건에게만큼은,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만은 당도하지 않았다.
로건은 그 사실이 슬프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어딘가 께름칙했다.
제니가 무슨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지는 알 것 같다.
어색했겠지.
가장 친했지만 그래서 가장 멀어진 것이 지금이다.
로건은 착잡해졌다.
그것은 같이 있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신혼이 한창인 그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동시에 제니의 활약에 기뻐했고, 소식이 자신들에게만 오지 않는 것에 시무룩해졌다.
“너무 멀리 가버렸어. 혹시 우리가 부담스러운 걸까?”
“제니는 착하니까 우리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했을지도?”
로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은 곰 길드에서는 이제 완전히 빠져나왔고, 로건은 소속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로건, 면도는 좀 더 제대로 하지 그래.”
“으음.”
로건은 거울을 보았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이끼 난쟁이가 있다.
면도야 원래 하지 않지만, 관리마저 내팽개쳐 굉장히 멋대로 뻗어 나가 있다. 머리카락도 산발에 눈빛은 퀭하다.
동료들이 걱정할 만도 하다.
폐인 같은 모양새였으니까.
실제로 로건은 바깥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오지.”
웬일이냐는 동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건은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갑옷도 무기인 사슬낫도 챙겼다.
지금은 침공의 와중이다. 게이트는 닫혀 있다.
그러나 밖은 혼란하다.
치안이란 게 애초부터 미비한 미궁, 침공 같은 재앙이 닥치고 있는 중에서는 더할 수밖에.
그럼에도 길거리가 혼란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혼돈의 신을 비롯하여 영웅으로 받들어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언론이라고 해도 신문 정도지만 전선의 많은 이야기들이 다루어지는 중이다.
거대한 드래곤 피어가 전 왕국에 울려 퍼진 순간부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희망을 찾았다.
그 희망은 여러 가지 소식들이 만들어주고 있다.
로건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저레벨도 아니다. 베테랑이라도 자처하던 것은 거짓도 허세도 아닌 온전한 진실이었다.
그러니 그 소식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어느 정도는 통제된 것일 터.
전황은 실제로 저렇게까지 좋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드래곤 피어가 아니었다면, 대단한 변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직 제대로 퍼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다 같이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어떤 재앙이 왕국을 휩쓸고 있는 게 사실이기는 하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자도 있었다.
그런 의견은 두 번째 웨이브라는 것이 시작되고 끔찍하게 강력한 요정 NPC들이 시가지에서도 사상자를 만들기 시작한 후에 쏙 들어갔다.
보스 몬스터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봐온 것과는 전혀 다른 요정이기도 했고.
그러나 요정이긴 했다. 개중에는 잎사귀 요정이었던 것도, 그루터기 요정이었던 것도 있었다.
불과 어제 미쳐 날뛰는 고양이귀 요정을 하나 멀리서 목격하고 로건은 제니를 떠올려야 했다.
저런 것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그냥 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활약을 벌이고 있다.
반년쯤 전까지만 해도 함께 만만한 짐승들이나 때려잡던 제니가 말이다.
로건은 어쩐지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때 제니의 말을 듣고 따라나섰다면?
하지만 괜찮다. 그는 그의 분수에 맞게 살고 있다.
무엇보다 죽는 건 싫다.
대신 싸워주는 용맹한 이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
그래서 거리는 쓸쓸한 분위기였다.
대부분은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 틀어박혀있고 싶어 했다.
드래곤 피어가 남긴 상처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다.
그런 와중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있다.
최소한의 치안을 위해 자원해온 랭커급 유배자들이다.
나름대로 강자라 할 수 있는 무수한 이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로건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느꼈다.
순찰을 돌던 자원자 중 하나였다.
“오오, 로건. 오랜만이네. 요샌 어떻게 지내?”
누가 보더라도 마법사입네 하는 복장이다.
이전 같으면 이렇게 당당하게 돌아다닐 복장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드스록에 존재하는 마법사는 수가 많지 않다.
전선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아……. 오랜만입니다.”
하드스록의 국가 마법사로서 게이트 관리를 하던 인물이었다.
게이트가 작동을 하지 않게 되니 집에서 노는가 했더니 그러지는 않은 모양이다.
“게이트는 이제 툭하면 열렸다 닫혔다 그러니 할 일이 없더라고. 그래서 자원했지. 마법사는 귀한 인력이니.”
실제로 그렇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로건은 문득 자원하여 나서고 있는 이들을 보게 되었다.
특별히 로건보다 강하지 않아 보이는 이들도 많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안목이 있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다.
로건은 후자였다.
나서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임에도 말이다.
‘뭐, 내가 제니도 아니고.’
그런 용맹함은 그에게 없다.
모험심도 없다.
그저 이 사태가 빨리 진정되기를 기도하는 이끼 난쟁이일 뿐이다.
전사 로건은 이미 죽고 없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돌아가는 길에 식료품을 배급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료들의 몫까지 받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돈의 교단이란 것은 대체 얼마나 많은 물자를 비축해 둔 것인지 마르지 않는 화수분과도 같았다.
전쟁이라기엔 짧은 침공의 시기동안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오래도록 준비한 것 같다.
거기 줄을 서서 기다리자니 어디선가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웅성인다.
최근에는 무슨 일이건 일어난다.
국가가 자리하고 있는 거점이 가장 안전할 뿐이지 목숨의 위기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뭔가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정이 하나 날아올랐다.
다들 긴장했다.
미친 요정은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었다.
너무 강하고 저항할 수 없는 괴물이다.
뭔가에 맞아서 날아온 듯한 요정을 보며 다들 서둘러 물러났다.
저 괴물이 여기서 날뛰면 한순간에 무수한 생명이 사라진다.
배급중이던 혼돈의 신도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밝은 녹색의 고양이귀 요정이 바닥에 처박혀 구르는 모습까지 보고 다들 멈칫했다.
로건은 눈을 크게 떴다.
제니였다.
“으아아악! 아프다!”
실제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로건은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제니는 딜러였고 로건은 탱커였다.
너무 오랜 기간 그 사실이 뇌리 속에 새겨져있었다.
다음 순간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미친 요정이었다.
뭔가 마법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으나 제니가 일어서자마자 사라졌다.
다시 뭔가 쾅 하고 터져 나가며 어디 먼 곳까지 날아갔다가 되돌아왔다.
이번에 처박힌 곳에 그대로 다시 처박힌 것은 제니 혼자가 아니었다.
미친 요정 하나가 이를 악물고 제니를 밀어내고 있었다.
제니는 베어버리기 위해 검을 누르고 있었고 요정은 그걸 밀어내는 중이다.
로건은 침을 삼켰다.
이거 아슬아슬한 상황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제니인 것은 알아본 것 같다. 그렇지만 다들 도망가기 바쁘다.
제니가 땀을 흘리며 밀려났다. 요정이 튕기듯이 솟아올랐다.
로건은 그만 반사적으로 사슬낫을 던졌다.
딜러에게 어그로가 튀면 안 돼! 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사실 아무런 효과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끼어들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한 요정이 반응을 해버렸다.
짧은 반응이었다. 곧바로 대응하려던 몸을 회수하여 제니를 보았다.
하지만 그 틈이면 충분했다.
제니는 요정을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 사슬낫이 반으로 갈라진 시신에 닿아서 휘감겼다.
로건은 엉겁결에 그것을 끌어당겼다.
한바탕 구른 후 제니가 다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핀다.
눈이 마주쳤다.
로건은 얼어붙었다.
제니는 입을 열다가. 다시 닫았다.
습관적으로 부르려다가 말았던 것 같은 입모양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입을 열었다.
“로건이잖아! 고마워! 나중에 밥이나 한끼 살게!”
그리고 그대로 요정의 시체를 챙겨 들더니 점프 한 번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로건은 입을 벌렸다.
* * *
“갑자기 자원한다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차피 여기서 기다린다고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올라가진 않잖아.”
“하지만 전선은 더 위험할 건데……?”
로건은 의아하게 자신을 보는 동료들을 보았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제니를 봤어. 강하더라.”
소리 죽인 탄성.
“내가 도와줬어. 위험하지 않았을까 싶은 상황이어서.”
로건은 극히 오랜만에 미궁의 오랜 법칙을 떠올렸다.
제 아무리 강하더라도 다굴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다.
적이 많으면 아군도 많아야한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더라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
이렇게 처박혀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아니었다.
“유배자는 원래 죽음을 벗하여 살아가는 게 당연했지. 너무 오래 잊고 있었나봐.”
로건의 그 말에 부부인 동료 둘이 웃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챙겨볼까?”
“너희들은 왜?”
“사실 생각은 이전부터 했어. 너 때문에 그냥 여기서 기다렸지.”
“아니, 하지만 임신했다고…….”
사실이다 곧 태어나진 않겠지만 산모다.
아무리 궁수라서 후방에만 있다고 해도 그건…….
“왕국이 망하면 끝인걸.”
로건은 비로소 밝게 미소 지었다.
* * *
레미가 붙여둔 기자 하나가 그 장면을 찍었다.
제니가 그곳에 있었던 곳도 그걸 위해서였다.
미친 요정은 고의가 아니었으나, 제니의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기 때문이다.
레미는 곧바로 그 사실을 대서특필하도록 지시했다.
말을 멋있게 지어낼 사람들은 많다. 레미는 그들을 부리기만 하면 된다.
로건을 포함한 제니의 옛 동료들이 영웅이 될 차례였다.
그렇게 숨죽이고 틀어박힌 많은 사람들을.
전장으로 내몰 때다.
자발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