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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73화 (37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73화

46서버 - Lv.5294 솔로 레벨링(1)

기가 막히게 어려울 것이 예상되는 테마 [클리어에 가장 가까웠던 자들]는 일단 빼자.

그리고 고정으로 존재하는 [심연]을 빼면 테마 둘이 더 남는다.

이번의 둘은 아주 어렵냐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귀찮냐면 그것은 틀림없다.

[빛과 어둠의 경계]

[달그림자의 도시]

이게 참 우스운 게, 유니크 스킬들이 뜬구름 잡을수록 더 강력한 스킬이듯 테마 역시 헛소리를 하고 있으면 더 귀찮은 테마다.

[빛과 어둠의 경계]는 천사와 악마가 영원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서사시적인 동네다.

[달그림자의 도시]는 불길한 달이 떠있는 쇠락한 문명의 땅이다.

둘 모두 준비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다.

[메인 던전]은 그야말로 하나의 던전으로서, 복잡도를 따진다면 왕국 제패보다는 단순하다.

왕국이 전략 시뮬레이션 요소를 가진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던전.

그것도 이전의 서버를 비롯한 오픈 월드식의 구성과 다르다.

그보다는 제약된 선형적 구조를 가진 ‘던전’인 것이다.

그래서 난이도가 올라가긴 한다. 자유도가 낮다면 그만큼 꼼수도 제한된다는 뜻이니까.

[다차원 연속체]도 [메인 던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메인 던전]이 고난인 가장 큰 이유는 정공만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보스 자체를 스킵하거나 제끼고, 혹은 다른 우군을 끌어들여 제압하고 하는 일은 이제 끝이다.

온전히 정면에서 힘과 기술로 뚫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스펙을 다시금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반년은 긴 시간이다.

새삼스럽게 파티원들의 레벨을 확인한다.

[유시우 Lv. 2553]

[정희우 Lv. 3321]

[미아 Lv. 2718]

[블랑쉐 Lv. 2908]

[에길 Lv. 3021]

[제니 Lv. 2631]

[아서 Lv. 3750]

내 지시에 따라 정직하게 강력한 것들을 사냥하고 다녀서 올린 레벨이다.

따라서 초반의 그 폭발적인 레벨링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

그럼에도 보통의 하이랭커들은 아득히 초월한 레벨링 속도기도 하다.

어느 정도 이상의 고레벨이 된다면 무엇을 상대로 싸울지도 문제가 된다.

2천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제 서버에 흔해빠진 잡몹들을 학살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온다.

제법 신화적인 괴물들을 찾아다니며 싸울 필요가 있는데 당연히 그런 괴물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할 리는 없다.

이건 결국 레벨링 루트를 아냐 모르냐의 차이고, 나는 잘 알고 있다.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이겨낼 만한 전력을 쌓았다 판단되면 다음으로 진행, 더 강한 적들을 찾아 떠나고.

그리고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갈고닦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유의미하다.

생사고락을 함께한다면 며칠만으로도 평생의 친구가 되는 법이다.

그 기간이 어느덧 1년에 달해가고 있다면 제 아무리 서먹한 사이여도 달라진다.

모두의 연결 고리인 내가 빠졌으니 이전처럼 나에게만 말하는 식으로 대화가 오갈 수도 없다.

희우가 서브 리더로서 노력하고, 다른 이들은 제각각의 인간관계를 구축했다.

세월의 힘은 무엇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잠깐의 동료는 평생의 동료가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가족이 된다.

이전 회차의 나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나부터가 진정한 동료로 대했는가하면 의문이다.

그때 내 동료는 블랑쉐 뿐이었다.

이젠 없는 그 시절의 블랑쉐.

“이 집이 아주 맛있어요! 멕시코 요리던데!”

희우가 신이 나서 내 손을 잡고 달린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고, 신이 아니게 된 나는 배가 고팠다.

엔젤은 이제 굳이 우리 식사를 전담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많은 가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고블린들이 만들어낸 도시는 여러 이들에게 현대의 향수를 주기 충분했다.

고의였다.

시티즌은 굳이 따지자면 사치와 향락의 도시를 본뜬 곳이다.

그것이 자극하는 향수는 과거의 삶 그 자체보다는 TV 너머로나 보던 어떤 그림자였다.

하지만 새로운 성직자의 나라는 전혀 달랐다.

아파트와 빌라가 있었으며 구획별로 정리되어 여러 가지 삶의 터전이 마련되어있다.

음식가도 있다.

유배자들 중 일부는 오랜 기간 손에 들었던 무기를 내려놓고, 잊고 있던 생업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에는 서툴렀으나 바깥에서 반평생 이상을 일해온 요식업계 사람들은 금방 적응했다.

점원이 반겨준다.

“어머? 오셨어요?”

희우는 유명인이다.

처음에는 레미의 뒷공작으로 의도된 영웅이었다.

하지만 혼돈의 교단이 자리를 잡고, 고블린들이 이미지를 새기고, 그런 끝에 만들어진 전쟁 영웅들은 전후에도 기려지고 있다.

요리는 좋았다. 나에게도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다. 이런 요리를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있었다.

중간에 점원이 희우에게 물어보는 말이 들렸다.

“오빠라고 그러면 저분이 혼돈의 신……?”

희우가 배시시 웃으며 그것을 긍정한다.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서비스가 더 듬뿍 나왔다.

“당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방에서도 나와서 경의를 표한다. 주변의 다른 손님도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되자 내게 와서 경례를 올리거나 인사를 했다.

명예훈장 수여자라도 된 기분이군.

희우는 짧은 데이트로 만족했다.

“더 같이 안 있어도 되는 거야?”

“오빠는 이제부터 다시 바쁠 테니까. 지금까지도 항상 그랬지만……? 그리고 앞으로는 항상 함께예요!”

길드 하우스로 돌아갔다.

레미는 아직도 [천사의 눈물] 길드 마스터다.

하지만 명목상의 권위로 인해 그런 것이며 실제로는 엔젤이 길드 마스터로서의 일을 대리해주고 있다.

별 것 아니다. 세금을 낸다거나 그런 업무상의 문제.

특혜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파티가 받아야할 것은 단지 영웅으로서의 예우일 따름이다.

길드 하우스에 들어가자 미아가 아서의 앞에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서는 고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 그림을 보고 있다.

“전위적이군. 내 짧은 식견으로 판단하건대 이건 혹시 이런 의도를…….”

에길이 옆에서 고개를 흔든다. 트동트도 마찬가지였다.

“어허,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지. 어차피 우린 전문가도 아닌데.”

“그래그래. 어디 우리 손녀딸을 말이야.”

아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내 말은. 그래도 정당한 피드백이 존재해야 더 큰 발전을…….”

“아이들은 흥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네.”

트동트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들 우리 인기척을 느꼈다.

“음, 왔는가.”

난처해진 아서가 잽싸게 빠져나온다.

미아가 킥킥대었다.

“요즘 그림 그린다며? 어때? 나도 보여줄래?”

미아는 자랑스럽게 스케치북을 들었다.

그림은.

흠.

쉽지 않은데.

크레파스로 그려진 점은 아주 어린아이답지만, 어째 내용이 심상치 않다.

분명히 크레파스로 그렸을 텐데 질감이 전혀 그렇지가 않아.

크레파스로 이렇게 무슨 포토샵을 쓴 것처럼 그릴 수 있는 거였나?

그리고 뭔가, 피카소 뺨다구를 후려갈길 수준으로 뭘 그린지 모르겠다.

“평가 보류.”

미아가 피식 웃었다.

“다들 제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군요.”

“말투가 너무 희우 같아졌어.”

“딸은 원래 엄마를 닮는 법이에요. 그쵸 엄마?”

“고러어어엄. 우리 미아 말 잘한다!”

뒤에서 어르신들이 껄껄대며 박수를 쳤다.

반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분위기다.

미아가 할아버지! 하면서 달려가서 스케치북 다음장을 보여준다.

아서는 미아에게 할아버지가 되었다.

에길은 삼촌이다.

그 이전에 존재하던 것이 동료로서의 유대감이라면, 지금은 정말로 편한 관계로 보인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니 희우가 옆에 꼭 붙어서 앉는다.

블랑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에기이이이일!”

에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내 한정판 슈크림 롤 어디갔어!”

“크흠.”

에길이 도망쳤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저 진중한 바이킹은 단 것을 아주 좋아한다.

루시가 몇 번 권한 후에 맛이 들린 모양이다.

의외의 면모다.

중요한 것은 그 의외의 면모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안다.

블랑쉐가 눈을 부릅뜨고 쫓아가려고 했다.

알파와 베타가 나타났다.

“언니, 이 사안에 대한 검토를.”

“제…… 제기랄.”

저들이 나타나면 블랑쉐가 갑자기 무게를 잡는 경향이 있다.

그때의 모습은 이전 회차의 블랑쉐를 보는 것 같다.

쿨(풉)뷰티라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이전 회차에선 마지막까지도 내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던 걸까?

“다른 여자 생각하죠?!”

“응? 어?”

“생각 못하게 해야지!”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하는데 희우가 날 덮쳤다.

혀부터 들어왔다.

안쪽부터 맛보듯이 훑는다. 능숙하진 않더라도 간절한 애정이 담겨 있는 느낌.

하지만 오래하진 않았다.

희우가 살짝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이제 잘하죠?”

“어……. 그래. 뭐야. 이거 어디서 연습했어?”

“어머, 질투?”

시간의 신도인 희우는 내가 완벽하게 추적할 수 없다.

문득 든 생각에 기분이 많이 나빠질 것 같았다.

희우가 허리를 짚고 가슴을 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전 천재거든요.”

그런 걸로 해두자.

조금 지나자 에길이 한정판 슈크림 롤을 어디서 구해왔다.

“채워 놓을 생각이었다.”

“말은 잘하네.”

블랑쉐가 새침하게 받아들더니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림을 보완하고 있던 미아가 한입만 달라며 졸래졸래 따라갔다.

에길이 지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후……. 정말이다.”

“믿습니다.”

“진짜야. 어제 한정 수량을 구매를 못하는 바람에 그랬다. 지금 막 문을 열어서 줄서서 사오는 길이다.”

바이킹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이제 에길은 외모로 바이킹스러운 모습이 그리 보이지는 않는다.

블랑쉐가 깔끔한 편이 더 보기 좋다고 한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

수염은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짧게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서도 현대적 관점을 가진 여성진들에 의해 공격 받았으나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수염을 지켜내었다.

다만 깔끔하게 다듬게 되기는 했다.

일상적이다.

그리고 아마 전투에 나서서 전장의 한가운데라도 이렇게 일상적일 것이다.

그렇게 되어 왔다.

구심점인 내가 빠지면 결국 다들 각자 교류하게 된다.

모두를 모은 것이 나니 나를 통해서만 이야기가 전해졌던 것은 분명한 문제다.

이게 옳게된 파티다.

그리고 곧 트동트 영감님은 몇몇 마탑의 연락을 받고 투덜거리며 주술강의를 위해 나섰다.

다들 나름대로 바쁘게 지낸다.

멀쩡한 사회가 존재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회차보다도 안정적인 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 * *

파티원들은 할 것을 잘 하고 있다.

그럼 이제 내가 제일 쪼렙이 되어버린 게 문제다.

후후후후.

좋아. 레벨링의 시간이다.

나는 아직 46 서버의 유배자다.

46서버는 꼭 파티 플레이 하지 않더라도 레벨링을 위해 쓸어 담을 것들이 많다.

일단 보러가자.

이 시기의 전쟁의 신도 봐야할뿐더러 여러모로 사소한 문제가 많다.

하물며 루시는 생각보다 일을 더 안 했다.

내 반년간은 고블레타리아 연반을 루시인 척하고 돌보는 일의 연속이다.

저 보라색 머리카락의 꼬마가 희희낙락하며 영웅대접 받고 있을 때, 나는 신좌에서 루시의 명성을 드높여주고 있었다.

스트레스라는 건 신좌에 앉아서 봐야하는 무수한 창들이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다.

가장 먼저 46서버의 근미래로 향한다.

용왕이 어디있는지는 알고 있다.

“경험치 혼자 먹을 거니까 손대지 마.”

“주변 다른 드래곤들을 좀 사냥하면 되겠죠?”

“다 귀중한 소재니까. 챙겨둬. 소모품처럼 써야할 일이 많을 거야.”

충분히 강한 파티원들이 경험치를 더 먹을 필요는 없다.

그들은 파밍을 하는 것이고, 나는 용왕과 일대일로 레벨링을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드는 레바테인의 묵직하고도 서늘한 감각.

이제 혼돈의 신(임시)에서 유배자 오르골로 돌아갈 시간이다.

드래곤 레어를 발로 까고 들어갔다.

입구의 마법이 산산조각난다.

단순해보이지만 무수한 마력 조작이 곁들어진 마검사적 테크닉!

몸이 녹슨 기분을 참을 수가 없다.

레벨링이지만 동시에 화풀이기도 하다.

신좌가 괜히 감옥이 아니지!

헨리 미안해!

“용왕 나와!”

다른 용들을 모아두고 무언가 회의 중이던 용왕, 달리 말하면 드래곤 로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냐. 인간? 그렇군. 거만한 유배자가 있다고 들었지.]

물론, 단순히 레벨링만은 아니다.

이렇게 고블레타리아 연방의 적들을 미리 제거했기에 연방이 그렇게 자라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전쟁의 신은 루시에게 뿅가서 우호적이게 되기 전의 녀석이다.

그러므로 과거 황제도 잡아야 한다.

다 내 경험치다.

미래를 바꾸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눈길로 슥 훑으며 블루 드래곤을 찾는다. 미래의 드래곤 로드가 될 녀석 또한 살려둬야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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