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74화
46서버 – Lv.5294 솔로 레벨링(2)
사실 미궁은 솔로잉을 권장하는 구조는 아니다.
여럿이서 하면 단순노동에 가까운 파밍도 솔로가 되면 일생일대의 승부가 되는 곳이다.
서로 마음이 맞고 포지션이 맞는 파티 플레이는 단순 더하기 이상의 결과를 내는 법.
그러나 그건 감당하기 힘든 영역에서 전투를 벌일 때다.
개인의 기량으로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라면 파티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파티원들은 훌륭하다.
경험이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면 숙련도도 높다.
지난 반년 간 단련된 파티 플레이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밀하다.
하나 그럼에도 역시 나 혼자 모든 역할을 수행하고 조율하는 것보다 편할 수는 없다.
선대 용왕의 레벨은 6000 정도로, 드래곤임을 생각하면 액면 이상으로 강할 것이다.
딱 좋은 정도다.
일단 자리를 넓혀야했다.
여긴 드래곤 레어고, 얻어갈 것이 있을 터였다.
용왕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간혹 있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지 모르는 미물들이 말이야. 최근에 어린 드래곤 하나를 쓰러트렸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뭐야? 난 모르는 일인데.
어쨌건 일반적인 서버들에서 드래곤이 가질 태도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서버에서 드래곤들은 유배자를 경계한다.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지만 개중에서는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보는 괴물도 있단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46서버는 그래서 편하다.
유배자 밀도가 타 서버에 비해 1%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많은 대륙의 주민들이 착각 할만도 하다.
46서버의 유배자는 알음알음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들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대부분은 왕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11층 이후에 스러진 이들이다.
유배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그러면 그건 활용하기 쉽다. 서버의 각 시대 최강권의 강자들은 유배자를 경시하고 있을테니.
드래곤의 해부학적 구조를 고려하며 걸어간다.
드래곤들은 이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무엄하다느니 화를 내며 조치를 취한다.
일부는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도달했는가를 의아해하기도 했다.
위기감지 능력이 발달해있을 종족은 아니다.
태연하게 걸어가는 척하다가, 갑작스럽게 발진한다.
스킬을 동원한 보정을 최대한 걸어 용왕의 몸을 쳤다.
저 하늘 위로.
마력 방벽이 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 정도 반응은 하도록 유도했다.
[폴리모프]따위를 상대할 생각은 없다.
곧바로 금빛의 드래곤, 거대한 드래곤이 하늘을 메운다.
골드 드래곤의 속성과 신체적 구조를 다시 떠올려 본다.
거체를 훑으며 골격 따위의 개체자를 다시 고려한다.
그리고 검을 들고 돌격했다.
용왕은 당황한 채로도 내가 자신을 이미 한번 봐줬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헛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이 순간 이 전투는 드래곤에게조차 생존 투쟁이 되었다.
* * *
“후, 이제 좀 개운하네. 신좌는 너무 재미가 없어.”
[어째서……?]
드래곤이란 과연 어떤 식으로건 신적인 존재다. 죽음을 앞둔 용왕의 눈에조차 공포는 없다.
완성된 성체 드래곤이라는 것의 자아는 그렇다.
태생적으로 생존에 대한 욕구를 가질 필요가 없는 괴물들이다.
죽음은 단지 순리일 뿐.
그것이 어떤 형태로 찾아오건 놀라운 일조차도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누군가 죽었다고 복수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폴리모프]라는 종족 스킬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힘 센 도마뱀이 아니라 각각이 하나의 세계와도 같은 존재들.
“그대로 두면 전장에 나섰을 거니까. 비대칭 전력이 많아지면 죽어나가는 사람만 늘어나.”
[전장? 무슨 개소리냐. 우리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나?]
“제국의 황제가 아무 말도 않았나?”
[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몰랐을 뿐.]
대화를 하며 내 쓰러진 골드 드래곤의 몸을 본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이루졌다.
상처의 위치까지 말이다.
미궁의 전투를 기술이라고 한다면, 방금의 전투로 새겨진 용왕의 상처들은 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기술적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대충은 알겠군. 유배자란 사실 그런 존재인가.]
탐구심이 강한 골드 드래곤답게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알아낸 사실을 되새긴다.
[너의 전법은 기묘했다. 그 마검은 강력한 무기지만 나뭇가지가 들려있어도 똑같았을 것 같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같았다.]
일리는 있다. [용사]로서의 스펙을 가진 지금 내 상태라면 나뭇가지로도 마법전을 수행하며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었겠지.
다만 더 힘들긴 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니 이 대륙의 모두는 유배자에 대해 너무 아무것도 몰랐군.]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너희들이 아는 것이 그렇게 틀려먹은 것도 아니고.
합을 맞출 파티원들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최적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검을 휘둘러도 마법을 구사해도 동료들의 동작은 나에게 간섭한다.
에길이 타격을 가하면 충격이 전해질 것이며, 적의 무게 중심이 달라진다.
그럼 나는 그것까지 보정하여 최선의 공격 루트를 바꿔야 한다.
미아가 마법을 구사해도 마찬가지다.
모든 마법적 현상은 시전자 개인의 마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마법이 지금거리에서 동시에 발동한다면 시전 부담도 더 커진다.
이번 전투는 그 모든 것에 해방된 솔로잉의 정수이자, 오랜만에 정신을 놓고 몰입될 만큼의 개운한 전투였다.
억지를 쓰는 것도 아니고, 정적 스펙으로 적정 보스를 적정 수단으로 잡아낸 느낌.
꼼수가 아닌 정면 승부로서의 쾌감.
용왕이 공허한 눈동자를 나를 본다. 무언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넌 드래곤을 수없이 많이 잡아보았어. 그렇지?]
“그래.”
과연 오래 산 용왕.
[나조차도 모르던 내 몸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되었다. 비늘의 약한 부분, 관절의 가동 한계로 생기는 사각지대. 마법을 구사함에서 드래곤 하트가 가지는 결함.]
“세상에 완전한 것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네놈은 거기에 다가섰군. 흥미로웠다. 죽음이 아쉽지는 않군.]
용왕은 그렇게 말하더니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날던 다른 드래곤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멸종시킬 것이냐?]
“그럴 수는 없지.”
[사육이라도 하는 것인가?]
“그냥 이번 전쟁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용왕은 그 순간 깨달은 것 같았다.
[정말로 그뿐인 문제였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왕도 힘겹게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필요에 따른 일일 뿐이군. 유배자는 다르게는 관조자인가.]
“그래.”
[그렇다면 되었다. 그 또한 섭리일 테니. 단지 우리가 포식당할 차례였어. 하나 미래가 걱정이군.]
용왕은 마지막까지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남겨질 다른 어린 드래곤들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이게 용왕이다.
미래에서 보았던 용왕은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의 탓이겠지.
* * *
더스번 경과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군.”
“유배자란 시간을 넘나드니까요. 경께서 어찌 생각하건 간에 저는 꽤나 다른 시간대에서 왔습니다.”
“아군이어 고맙네.”
애초부터 협의된 사항이었다.
드래곤들이 참전하기 전에 제거하고, 황제 역시 앞장서서 전황을 바꾸기 전에 제거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했던 인간 측의 높으신 분들은 결국 이루어 오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사실은 역사에 묻어주시지요.”
더스번 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네. 그렇지 않았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군.”
시종일관 유쾌하던 소드 마스터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이랭커급 이상의 유배자가 이런 시대에 출몰하여 횡포를 부린다면 그것은 코스믹 호러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지는 않는다.
그러느니 더 크게 얻을게 많은 미래의 주도권에 손을 대는 게 낫기 때문이다.
유배자가 미궁에서의 삶에 절망하는 것처럼 대륙의 주민들을 절망시킬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그 서버는 그 순간 죽는다.
몰라도 되는 일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더스번 경은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다른 세계와 연락하는 연락자 입장이 되었음을 말이다.
“조만간 전쟁에 앞장설 영웅들이 나타날 겁니다.”
“대성녀 메이릴리스 같은 자들 말인가?”
“그들만으로 제국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겠죠. 용사라 불리는 소녀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어떤 마왕도.”
더스번 경은 웃었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소드 마스터는 이제 자신들의 세상이 어떤 유배자들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절망이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바보가 된 기분.
그러나 그는 모두를 위해 그것을 혼자 감내할 각오가 되어있기도 하다.
“그들은 아군인가?”
“예. 그리고 유배자도 아닙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군. 이제 난 유배자라는 단어를 듣고 도저히 웃질 못하겠으니.”
“앞으로도 가끔은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용사와 마왕이 알아서 하겠죠.”
이것은 그 둘을 지켜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적어도 더스번 경은 그 둘이 나와 연관되어있음을 안다.
그러니 이상한 일이 일어나진 못하리라.
더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유배자가 개입한다면 정상적인 미래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틀만 구축하는 편이 더 좋다.
그리고 연계 퀘스트 형식으로 더스번 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것이 보았다.
더스번 아펠타인.
인간 왕국의 왕자이자 곧 히어로 유닛이 될 인물이다.
그는 왕이 되어 대대로 이 비밀을 왕가에 알려올 것이다.
그리고 13층에서 발견된 흔적과 미래의 상황을 본다면 그 왕가는 미래 시대가 열릴 때까지는 이어졌던 모양이다.
* * *
대성녀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게 맞다.
메이릴리스는 눈을 잔뜩 찡그리고 나를 본다.
어딘가 낯익은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레베카와 비슷하다.
뱀파이어라서 날 싫어했었지.
이젠 인간인데 왜 그럴까.
“옆에 뱀파이어를 데리고 왔군요.”
재야에서 남모르게 용사를 키우며 지내던 뱀파이어 로드이자 [마왕] 스킬 보유자, 리온이 눈을 껌뻑이고 있다.
그 옆에는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로 보이는 어린 용사가 보인다.
“같은 편이니까 오인사격 하지 말라고 소개하러 왔어. 어때? 인간 종교계 통일은 잘 되어가?”
“그건 문제없습니다. 쉽지는 않으나 대충 무력으로 복종시키는 중입니다.”
“오크의 방식이군.”
“스승님의 지혜죠.”
트동트의 그게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그때 그 발언이 규율의 신의 교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 미래에 그렇게 융성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던 거겠지.
“강자존의 교리를 새로 만들려고 합니다. 성직자에게도 힘이 필요하겠지요. 전란의 시대니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그 뭐, 천마신교 그런 거 아닌가?
세상에.
“어쨌든 그런 식이라면 아군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알겠군.”
“제국은 끔찍하게 강대하니까요.”
지금 내가 대성녀를 만나고 있는 시기는 개전 직후에 가깝다.
고블레타리아 연방이 아직도 작은 마을이던 시절에 불과하다.
인간과 요정들이 열심히 싸워줘야 제국이 연방으로 눈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
대성녀는 불편해하면서도 용사의 존재를 널리 공표하기로 약속했다. 마왕에 대한 것은 수뇌부만 아는 비밀이 될 것이다.
비밀이 정말 많군.
어쨌건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서.
완전한 승리도 안 된다. 그랬다간 연방이 시야에 들어오게 될 테니까.
딱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면 삼파전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좋다.
거기에 이 시기의 규율의 신은 내게 굴복하기 전이다.
그는 또 다른 미래의 정보를 얻고 싶어 했다.
나는 침공에 대한 이야기나 그런 것만 조금 해주었다.
아마 규율의 신은 내가 악룡이 계획 중인 침공에서 살아남은 후에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왜 규율의 신이 내게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알았다.
교세가 극단적으로 쪼그라들어서 다른 서버에서도 그 이후의 미래를 아는 유배자 신도는 적다.
여기까지는 단지 사람이 줄어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그의 교단이 어떤 미래를 맞이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리온에게 슬쩍 용사의 전력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부러 꽤나 앞 시대로 옮겨두긴 했지만 얼마나 컸을지 확인은 해야지.
“이미 오래 전에 어린 드래곤 하나 정도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굴렸기에 그게 벌써 그렇게 된 거야?”
“제가 당한 그대로였죠.”
리온이 그늘지게 웃는다. 그래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준 친구고, 앞으로도 되어줄 친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 혹시 드래곤 잡았다는 게 늪지대 근처에서?”
“어떻게 아셨죠? 성을 하나 지어놓고 제 레어 삼은 블랙 드래곤이었습니다. 언데드를 많이 부리더군요.”
음, 그래. 바르바로이 클랜이 자리 잡기 전의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사체는?”
“언데드 늪에 가라앉아서 회수는 못했습니다. 필요한 소재만 취했지.”
“다음부턴 사후처리도 잘 하도록 해.”
“예?”
“그런데다 방치하면 언데드화 된다고.”
* * *
사랑스러운 오빠가 홀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레벨링을 할 때, 희우는 한가했다.
[메인 던전] 진입 직전에 받은 휴가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재밌는 소식을 들었다.
레미가 알려온 소식이다.
“희우야. 46서버 출신자들 중 하나가 너를 꼭 봐야겠다던데?”
“왜요? 사인 받으려고?”
“아니……. 너 그거 스타병이야.”
“우후후.”
하지만 단순히 그렇기만 하다면 굳이 이렇게 연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희우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레미는 약간 이상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자기 본명까지 밝히면서 보고 싶다기에 말하는 건데……. 정성우라고하면 알아?”
희우가 들고 있던 음료를 떨어트렸다.
“……오라버니?”
레미도 이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