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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75화 (37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75화

46서버 - Lv.5294 솔로 레벨링(3)

각 서버의 대륙에도 다양한 히든 던전들과 필드들이 있다.

판타지 세상답게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미답의 영역에는 강력한 괴물들과 비밀들이 숨어 있다.

유배자들도 대다수는 모를 만큼 꼭꼭 처박혀 있는 지역, 예를 들자면 북부 산맥의 깊은 곳 지하에 존재하는 광대한 필드, 불의 바다.

평균 레벨이 3천에 육박하는 서버 기준으로는 인외마경이다.

필요한 준비는 열기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단들이다.

숲을 돌아다니며 님프를 찾아 울려서 눈물을 받아내고, 세이렌의 성지로 가서 보옥을 하나 털어오는 등의 준비.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어딘가 타임 어택하는 마음가짐이 생긴다.

불의 바다는 말 그대로 용암이 아니라 끝없는 불길이 타오르는 곳으로, 그 강렬한 열기와 상승기류를 바탕으로 비행하는 몬스터들이 서식한다.

중간보스는 불길 그 자체다.

가만 보면 필드에서 불길이 좀 약한 곳들이 몇 군데 있다.

그런 곳으로 들어가면 불로 이루어진 미로로 진입한다.

그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이 불길에 의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자세한 사연은 생략하고 강행돌파했다.

레바테인의 냉기로 길을 열고 온갖 도핑으로 뻥튀기된 화염 원소 저항력을 믿는다.

포션을 몇 번 빨며 화염을 유지하는 핵들을 도핑이 끝나기 전에 타임어택으로 처리.

화염이 점차 잦아드는 것에는 일주일은 더 걸린다.

전리품들을 들고 리온을 찾았다.

마왕 아르바리온.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그냥 방치했다.

하지만 리온이 직접 내게 말하는 바에 따르면 그리 방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주 나타나진 않더라도 이따금 나타나서 뭔가 가르치고, 동시에 이것저것 전해주며 챙기긴 했다는 식이다.

그 이야기는 악룡의 사체를 마왕의 권능으로 언데드화시켰던 가장 미래의 리온이 전한 소식이다.

시간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앞뒤가 딱딱 맞아 들어가는 흐름이다.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결국 미래의 내가 그 과거로 돌아가 그걸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굳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어디 훌쩍 떠나서 보스전을 치르고, 그 소재를 들고 찾아간다.

리온이 잠깐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용사가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붙임성이 있는 아이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도 꽤나 즐기는 것 같긴 했다.

“머리 깎아줄까?”

“아, 감사합니다.”

금발을 사각사각 깎아낸다. 미용은 10년 차쯤에 익혀두었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는 데 좋은 기술이라면 모두 익히려던 시기다.

“좋아, 예쁘네. 그럼 수업 시작하자.”

“으…….”

진도는 내가 알아서 짜 맞춘다.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알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아니까.

나는 내가 편한 대로 들르기 때문에 용사의 나이는 볼 때마다 제각각이었다.

지금은 치기 어릴 나이다.

그럼에도 용사로서의 능력은 재능 그 자체이기에 가르치는 보람도 있다.

공부를 싫어하면서도 마력을 느끼는 건 곧잘 해낸다.

그러고 있자니 조금 더 젊은 리온이 나타났다. 물론 마왕은 늙지 않는다.

용사에게 쓰러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역할이기에.

“어라? 언제 오셨습니까.”

“애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애 아닌데.”

명상 중이던 용사가 중얼거렸다.

리온이 실소한다.

“집중하렴.”

“네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

리온을 데리고 연방으로 간다.

물론 지금은 마을일 뿐이다.

내가 시간의 신전에서 마을의 기반을 다지고 많은 시간이 흐르진 않았다. 그래도 마을이 제법 커져 있다는 게 보인다.

바르바로이가 기묘한 표정으로 내 옆의 리온을 보았다.

“마왕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나?”

양측 모두 대답이 없다.

흠, 둘 다 붙임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

바쁜 대장 고블린을 불러서 붙여두었다.

어차피 리온이 알아서 돌아갈 수 있겠지.

서로의 입장과 나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어떤 의미로건 이 세계에서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용사에게는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지 않도록 시켰다.

인간의 용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웅으로 남아야 한다.

고블린의 편을 드는 용사는 용사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용사 본인보다는 마왕이 된 리온을 여기에 가져다 둔 것이다.

그리고 일단 훌쩍 떠나서 왕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일을 처리하고 왕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정확히 1시간 26분.

“더 줄여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곳은 전투다. 확실히 감이 떨어져 있다.

솔로잉을 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다.

개인의 컨디션이란 것은 스스로 가다듬어야 하는 법.

실전만으로 세워지는 날도 있는 법이다.

[메인 던전]에 진입하기 전, 솔로로 레벨링을 하는 것은 신좌에서 녹슨 감각들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의미도 있다.

조금씩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방식이 말이다.

파티는 원래부터 나 없이도 돌아가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나는 따로 뭔가를 해야 할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동작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마력의 이동 경로를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신체의 일부를 희생하면서 어찌할지를 생각하고.

물론 죽으면 안 되겠지만 필요하다면 부활 스택을 까먹을 생각도 해도 좋다.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다.

그 덕에 어딘가 더 진실로 세상을 마주하고, 더 절실할 수 있게 된 것은 있으나.

또한 그 덕에 해이해진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최대한 지금 가다듬는다.

명경지수.

마음의 고요.

마음의 평화.

휴식은 잠깐 숨 돌릴 정도면 된다. 20분 정도 쉬고 다시 리프트로 진입할 생각으로 포션 병을 채웠다.

샘물은 그 전란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물을 내뿜고 있다.

보기 좋다.

내가 지켜낸 땅이다.

그런 뿌듯함이 참 좋다.

과거 어느 회차에도 없던 것이다.

이것이.

살아가는 보람이라고 부르는 그건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것.

여러 사람들의 감사를 받고 내가 지켜낸 것을 보는 기분이 이렇게 좋다.

다시 솔로잉으로 돌아갔지만 그렇기에 우리 파티의 소중함을 안다.

그리고 희우의 소중…….

「레미 양이 급하게 찾고 있습니다.」

신임 혼돈의 신의 목소리로 신언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달려가며 물어보았다.

「서브 리더의 가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 * *

미친 소리가 아니었다.

진짜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야, 유튜버로서의 나를 아는 이들도 있었으며 블랑쉐의 ‘오르골’도 있었다.

그렇다면 희우의 가족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얼떨떨하게 레미의 집무실로 갔다. 응접실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그 자체로 새로운 왕국에서 레미와 혼돈의 교단이 지니게 된 권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 생각보다 희우와 닮지는 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희우는 어쩐지 주눅 든 것 같은 태도로 그 앞에 있다.

레미는 희우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표정만 봐도 ‘아이고 피곤해’ 하고 생각하는 것이 보인다.

뭘 어떻게 하고 자시고 간에 인간관계가 얽힌 일들은 죄다 피곤한 법.

자, 그럼 나는 이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우선 영업용 스마일.

“반갑습니다.”

이미 내가 지닌 권위가 있기에 둘 모두 일어서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레미가 슬쩍 알려준다.

둘 모두 정씨 초인의 가계에 속하며, 각각 희우의 오라버니, 언니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이야기는 들은 적이 많다. 단편적인 정보는 이미 내 안에 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만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는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미궁에서일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희우의 언니는 사망자라고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블랑쉐의 마지막 기억도 사망이다.

총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미궁.

그렇다면 바깥에서 죽은 자들이 미궁으로 끌려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남자가 일어섰다.

“반갑습니다. 희우의 친오빠 됩니다. 그…… 왕국을 구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런 제기랄. 벌써 표정이 무너질 것 같다.

상견례야?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네.

친오빠 쪽은 호색한이라고 들은 대로 가벼운 인상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리석거나 멍청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도 긴장은 없지만 가벼움도 없다.

일단 가족으로서 찾아왔다는 점은 알겠다.

반면 옆의 언니 쪽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한 인상이었다.

자라고 나서도 귀염상인 희우와는 다르게 어릴 적에 보았더라도 성숙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 차분한 이미지다.

차라리 실피드의 희우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잠깐 보는 와중 희우가 일어섰다.

“저저저저, 저는 잠깐 나가 있을게요.”

레미가 슬쩍 나를 보고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레미가 따라 나가고 셋이서 남게 되었다.

그럼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해 볼까.

“아니, 계셨으면 진작 찾아오시지. 반년이나 지나서.”

친오빠 쪽이 껄껄 웃었다.

“아니, 그야 저렇게 예뻐졌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키가 작은 게 항상 고민인 아이였는데 많이 컸네요.”

그것도 그렇군. 천사 종족 보정도 들어가서 환골탈태 수준으로 다른 외모니까 말이다.

잡담을 이어가며 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익숙하다.

알게 된 것은 무려 46서버 출신이라는 것과 둘 모두 초회차라는 사실이었다.

역시 초인의 가계.

레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침공 당시에도 전선에서 활약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한 모양으로, 오빠가 하드스록의 삼의회에 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46서버 출신이 가지는 이점에 대해 상당히 늦게 알게 된 탓이었다.

따라서 이 왕국에서만 8년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초회차답게 유배자로서의 마음가짐이나 룰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한 편이었다.

잡담으로 거기까지 끌어내고 내 이야기도 적당히 풀었다.

이 양반들도 너무 강했기 때문에 유배자가 되지 않은 채로 왕국까지 도달했는지도 모르겠군.

각자도 굉장히 놀랐던 모양이다.

이곳이 사후세계인가 의심도 했다고 하고.

그건 실존하는 설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곳이 미궁이니까.

그리고 기다리던 질문이 왔다.

“어, 그럼. 지금 교제 중이시라고?”

너무 조심스럽게 물으니 내가 다 부끄러워졌다.

“진도는 어디까지……?”

옆에서 언니가 오빠의 입을 때렸다.

오빠는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아시다시피 친오빠로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언니 쪽이 오빠를 좀 세게 때렸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성교육은 역시 다 이 사람 탓인가.

그래도 결코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다. 희우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미궁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기분이다.

그것도 어디 뻣뻣한 곳의 도련님과 아가씨를 상대하는 기분.

희우에게 들은 가풍대로라면 상당히 그럴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정씨 종가는 당연히 그런 곳일 수밖에 없다.

고리타분하다 못해 토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이었다.

거기에 왠지 모를 그늘도 있었고.

언니가 오빠를 확 밀어버리더니 대화에 나섰다.

“어쨌든 좋은 분이신거 같아 다행입니다. 저렇게 내성적인 아이가 여기 들어와 있다면 아마 적응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적응하지 못했다면 아마…… 죽었을 테니까요.”

“내성적이요?”

“네?”

내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

옆에서 오빠가 다시 고개를 끄덕한다.

“학교도 거의 안 나가고 집에서 혼자 게임이나 만화만 보던 아이라서…….”

이건 뭔가 내가 아는 희우랑 다른데.

“그 애는 세상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이런 힘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그에 따라 주어지는 의무도, 모두 힘들어했죠. 밝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언니 쪽이 정말로 감사하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몰라본 것도 큰 것 같습니다. 왕국의 영웅, 천사대의 대장. 그런 수식이 붙을 수 있을 동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뭔가 그래서 동생 덕을 보려고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단지, 문득 동생이 맞다면 확인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거든요.”

갑자기 뭔가 머릿속에 짜 맞추어진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은 아이기는 했다.

그럼 그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희우는 처음부터 여기를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리 희우를 따라가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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