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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76화 (37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76화

46서버 - Lv.5294 솔로 레벨링(4)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각자의 방식, 각자의 삶.

그리고 자신과 맞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희우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인격이란 결국 가정에서 형성된다.

어린 시절 배운 것은 평생의 길로서 남는다.

다만 희우는 그 길에 딱히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싸우는 걸 누가 좋아할까?

날 때부터 운명 지워진 전투에 어느 사람이 기쁨을 느낄까?

영웅의 가계에서 힘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모두에게 행복은 아니다.

희우는 그다지 그것을 좋아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었다.

타고난 체질에 가까운 문제기도 했다. 피를 잘 보지 못하고 생명체가 분해되어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걸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태어난 집안이니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세상이었으니까.

훈련이라고 부르는 가혹 행위는 보통 그렇게 이루어졌다.

희우는 그 시절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괴물들을 잡아놓고 죽이는 법을 연습시켰다.

영체에 가까운 유령들도 상대해야 했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유복한 환경, 강인한 신체, 모두의 존경, 사회적 지위.”

“네…….”

“그 모든 것이 이런 가업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다. 이것은 혈통에 새겨진 의무다.”

“네…….”

문득 플래시백 되는 기억.

희우는 인상을 와락 찡그러뜨렸다.

무언가 무너진 기분이다.

오빠와 언니를 보는 순간 현실감이 사라졌다.

아니, 반대로 현실감이 돌아왔다.

제 방에서 베개를 안고 고개를 숙였다.

방의 불은 꺼져 있다. 그럼에도 기천사의 시야는 생생하게 어둠을 꿰뚫어 본다.

방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마침내 피를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을 때.

얼굴에 피를 묻히고 그걸 묵묵히 닦고 있자 아버지가 했던 말.

“극복했구나. 그래. 우리 집안사람들은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다.”

희우는 바보가 아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천천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근엄하게 수염을 기르고 가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저 모습 또한 결코 아버지가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초인이라 함은 그리 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오빠가 온 세상과는 다른 역사를 가진 지구였다.

먼 옛날부터 괴물과 괴물 사냥꾼은 경원시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같은 인간으로 보이질 않으니까, 앞에서는 두려워 고개를 숙여도 뒤에서는 무슨 일이건 꾸민다.

그러니 꾸며야 했다.

무해하다.

너희들을 지키는 것이다.

양떼 사이에서 호랑이로 태어난 인간들은 그렇게 발톱을 숨기고 이빨을 숨긴다.

순한 양인 것처럼 조용히, 늑대로부터 지키는 역할만을 한다.

양들이 만들어낸 현대 사회에서 그렇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다.

법률조차 그렇게 구속하고 있다.

이게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이곳저곳 나타나는 재해의 괴물들은 총포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상대하는 초인들에게는 총이 통했다.

불합리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세상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신음이 새어 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무너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한 명의 몫은 하게 되었구나.”

한시름 놓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희우는 학교를 거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오빠나 언니처럼 어제 피를 묻힌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냥 가끔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매스컴의 노출도 최대한 피했다.

애당초 오빠와 언니는 스타성이 있었다.

희우는 그와 대비되게 작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 행위는 용인되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죽었다.

희우는 학교에 전혀 나가지 않게 되었다.

가끔 필요에 따른 자신의 몫을 처리할 뿐이다.

정부가, 세상이 등록된 초인의 존재를 쉬이 용인하게 만들 최소한의 일이었다.

그 후에는 그저 집에 돌아와서는 그저 취미에 몰두했다.

학교 친구 이야기 같은 것은 모두 거짓이다.

오빠에게, 아저씨에게 떠들던 것들도 모두 거짓이다.

미궁에 끌려온 것도 등교하던 와중이 아니라 특례로서 졸업이 인정되었기에 학교로 갈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게임이면 좋겠다.

만화면 좋겠다.

공상 속의 영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희우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히어로물을 좋아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뭐든지 해내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동경했다.

사실 동경이라고 말할만한 것은 아니다.

도피라고 이름 붙이는 게 더욱 옳았을지도.

그리고 미궁에서는 모든 게 좋았다.

어쩐지 할 수 있었다.

바깥에선 못 하던 걸 쉽게 해낼 수 있는 자신을 깨닫고, 그런 자신을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아저씨를 깨닫고.

이 사람이 진짜 영웅이구나를 깨닫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느끼고.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이미 그 순간 사랑에 빠졌다.

모든 것이 낭만적인 세계였다.

힘들어도 괜찮다. ‘히어로’의 곁에 있으니까.

아저씨는 세상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뭐든지 해낼 수 있고 희우는 그 말만 잘 들으면 된다.

그럼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

이 세상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희우는 히로인이었다.

캐릭터는 특별히 만들 필요가 없었다.

봤던 게 많으니까.

이미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모습은 많았으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상한 세상에서 희우는 이상한 소녀가 되기로 했다.

바깥에서 되지 못한 것 말이다.

거짓말을 스스로 믿어버린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바깥의 삶은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희우는 그렇게 아저씨의 연인이 되었고, 파티의 서브 리더가 되었으며, 왕국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쌓아 올린 거짓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 * *

“더 자세하게 물어봐도 될까요? 등교 거부라고요?”

“초등학교부터도 거의…….”

“제가 죽은 후에는 진짜로 나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머리가 아파졌다.

내가 희우에게 들은 것은 조금 다르다. 학교는 꼬박꼬박 나가지만,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조금 무서워하는 그런 정도의 일이었다.

친구들의 연애가 항상 부러웠단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아버지도 걱정을 많이 했죠.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니까.”

“그런데 또 재능은 누구보다 진짜였습니다. 체격도 작고, 훈련도 싫어하면서 저희만큼 싸우긴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가 보기엔 더 위험했죠.”

내가 들은 것과 또 다르다.

희우에게 훈련이란 힘들지만 보람찬 것이었다.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걸로 사람들을 지키는 일 자체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착한 아이였다.

“게임할 때 말고는 거의 안 웃었어요.”

“애초에 방에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고.”

“대신 뭔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은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희우의 가족인 두 명은 그저 많은 일이 있은 끝에 밝아졌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희우는 내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과 똑같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보자마자 미궁산 정상인이라고 판단했지 않은가.

그러나 미궁산 정상인은 사실 그렇게 훌륭한 게 아니다.

현실에 있을 리가 없는 이상한 존재다.

랜덤 NPC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갔으니 나 또한 그리 믿었을 뿐이다.

만약 단순히 설정 지어진 게 아니라면.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진실된 존재라면.

어떻게 인간 사회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겠는가?

희우는 처음부터 파탄 나 있지는 않았다.

예의는 발랐고 상식도 있었다.

조금 어긋나 있는 부분은 그냥 설정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게 아니었다.

희우는 평범한 소녀였고, 무한한 힘을 어디서 끌어와 자신을 긍정하는 만화 속의 존재도 아니다.

바깥에서의 자신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적인 자신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그 가면을 쓰고 뒤편에 있는 진짜 자기를 무시하고 지내온 것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도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인다.

내가 이 세상을 게임으로 대하듯, 희우도 현실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공상 속의 ‘희우’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해 온 것이다.

눈치채야 했다.

그런 희망 같은 아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단 것을.

희우는 모두의 희망을 대리해 주는 밝고 귀엽고 편리한 존재가 아니다.

그 모든 것 뒤에서 힘겨워할 줄 아는 평범한 소녀였다.

다만 모두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모두 제각각의 힘듦이 있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편리하게 밝고 희망에 가득 찬 소녀의 존재를 쉬이 납득해 버린 것이다.

마법을 쓰진 않았다.

내 두 발로 걸어서 희우의 방문 앞으로 갔다.

문을 열었다.

어둡고 찡그린 얼굴.

빛을 처음 본 것처럼 눈부셔 하는 표정.

어딘가 자신감 없어 소극적인 몸짓.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희우가 그곳에 있었다.

“아저씨……?”

그 호칭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희우에게 이제 이 세상은 무너진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현실의 존재가 나타남으로써.

오빠와 언니가 갑자기 나타남으로써 허상이 되어버렸다.

천사로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곱게 유지되는 피부와 머릿결은 여전하다.

언제 봐도 녹아내릴 듯 달콤한 귀염상의 자그마한 얼굴도 여전하다.

다만 그것이 울상이 되어.

그렇게 바뀌기 이전의 작고 자기부정에 빠진 꼬마가 되어 있다.

거기까지 돌아가 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지금 처음 알게 된 진짜 희우에게는 그럴 만한 일이었나 보다.

자세한 건 이제부터 알아 가면 된다.

이 바보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언젠가 내가 배운 대로 다시 알려줄 필요가 있을 뿐이다.

“아저씨는 뭔 아저씨야. 오빠라고 불러라.”

“하지만…….”

앉아있는 것을 그대로 밀어서 넘어뜨렸다.

침대 위에서 누운 채 움츠러든 천사가 놀란 사슴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살짝 눈물이 고인 눈이 맑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예쁘다.

그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그러자 희우가 몸을 비튼다.

“하지만, 저 거짓말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그런 것 같더라.”

“진짜는 별로 없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럼 내가 널 싫어할 거 같았어?”

“그럴지도…….”

“파티원들이 널 나쁘게 생각할까?”

“모르겠어요…….”

그럴 리가 없다.

빤히 바라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런 물음을 시선에 담아서.

나는 그게 통했다고 생각한다.

희우가 머뭇거리며 말한다.

확인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아직도?”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갑자기 루시를 볼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드라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나는 드라간처럼 심장을 부여잡는 대신 오랜 지병 하나가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오빠라고 한번 불러볼래?”

희우가 어리둥절하게 불안해했다.

지금 어떤 위기에 놓여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널 아직도 좋아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건 네가 어떤 모습이어서 어떤 성격이어서 그런 게 아냐. 그냥 너여서야. 언젠가부터 이미 그랬어.”

희우가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부르듯이 입을 오물거린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말이 되어 새어 나온다.

“오…… 빠……?”

와, 이젠 못 참겠다. 만들고 있던 명경지수의 마음이 박살 났다.

이래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희우가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확인받는 법이 이것 아닐까?

다른 모든 정신적 충격을 떨쳐내고 상상의 자신과 진짜 자신 사이를 이어줄 만한 충격적이고도 기쁜 사건 말이다.

일단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주변에 마법 장벽을 둘러친다.

신조차도 엿볼 수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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