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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81화 (38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81화

메인 던전 - Lv.9981 천상의 도시(3)

구도심, 그것도 하층.

그렇다면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유배자가 사라지고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내부에서 재생산된 천사들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신을 섬기고 경건한 존재들인가?

날 때부터 천사였을 뿐, 그들이 보고 자란 것은 결국 인간이다.

사실 요정과는 다르게 천사들은 본래 인간과 그리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도 아니었다.

그렇게 아득한 세월 간 인간으로서의 재생산을 반복한 천사들의 삶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지금 받기 시작한 눈빛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치천사가 지나간다. 기천사로 보이는 여성을 데리고 말이다.

욕망이나 탐욕 같은 게 깃들어 있다.

하지만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너무 뻔하다.

기천사 하인이 있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위에 있는 누군가.

제 목숨은 누구나 소중한 법이었다.

벌집을 건드는 것도 꿀을 딸 가망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적어도 한동안은 안전하다. 그러므로 천천히 하층을 돌면서 지리를 외웠다.

이 천상의 도시를 구성하는 구조물들은 쉽게 파괴해서 길을 틀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내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지리를 알아야 위치를 설정할 수 있다.

도주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영원한 전장의 전황도 어렴풋이 짐작가능하다.

이런 부랑자에 가까운 천사들이 징집당하지 않은 것을 보면 팽팽한 모양이다.

한쪽으로 힘이 쏠린다면 끝을 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지.

우리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상층으로 올라가는 곳 같은 계단이 있었으나 굳이 그 위로 향하지도 않았다.

하층의 구석구석을 지금까지 탐색해 왔듯이 훑는다.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임을 서서히 다들 깨달아간다.

하층을 총괄하는 경비대가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흘러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침내 입질이 왔다.

“잠깐 거기 멈춰라. 너희들 수상하군. 소속을 대라.”

고개를 돌리자 화려하게 치장한 그야말로 천상의 군대 같은 이들이 있었다.

위병 둘과 그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

예상한 수준 내의 적이다. 장비 수준으로 보아 레벨은 5천 정도로 보인다.

완전한 기습이라면 순식간에 제압할 만한 적들이다.

나는 무언가 항의하려는 것처럼 걸었다. 그야말로 천사답게 당당하게.

그리고 희우는 의지가 없는 기천사처럼 천천히 소리 없이 움직이며 천상의 군대를 향해 다가간다.

당연하지만 강적이다.

액면 레벨도 우리보다 높다.

그러나 그래서 희우가 힘살자 루트를 탄 것이다.

내가 입을 염과 동시에 희우가 움직였다.

소리 없는 번뜩임만으로 지휘관이 쓰러졌다.

뒤에 있는 둘이 움직이기 전에 내가 하나를 들이박았다. 자연스럽게 둘이 엉키고 다른 위병의 눈길도 나를 향했다.

기천사는 명령을 듣는다. 그 당연한 인식을 기반으로 명령자인 나를 본 행동이었다.

희우의 검날이 번뜩이고 다시 목이 떨어진다.

나와 엉켜 있던 천사는 완력으로 날 밀어내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2대1이다.

더 이상 암습 보정은 없지만 약 15초 정도만으로 천사를 쓰러뜨렸다.

이미 시체는 없었다.

빛이 되어 흩어지는 위병들의 시체를 보며 우리는 몸을 숨겼다.

하층에서 기천사 종족으로 전투를 벌여 위병 살해.

그에 대한 트리거가 작동할 것이다.

잠깐의 시간 동안 새로운 위병을 상대할 필요는 없으니 얼른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이미 구석구석 탐색하고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 *

순교자의 은신처에 남겨진 파티원들은 각자의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 역할은 친목도모였다.

NPC라는 것은 원래 그냥 정해진 행동을 하면 그에 반응을 할 뿐인 존재다.

하지만 미궁이 그렇게만 돌아가는 곳은 아니다.

원한을 산다면 그것대로 정해진 길을 이탈한다.

너무 기행을 보여 신뢰를 잃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상식선 내에서 가지고 있는 이벤트를 내놓을 만큼의 친분은 필요했다.

천사가 아닌 이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며, 지금도 실피드를 유지하기 위해 마력을 짜내고 있는 미아가 다른 이를 천사로 위장할 여력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냥 놀 수는 없으니까 순교자의 은신처에 있는 주요 NPC들과 친해 둘 필요가 있다.

블랑쉐는 그 사실이 꽤나 우습다고 생각했다.

미궁은 이미 게임과 유사한 환경이며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무수히 많은 블랑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도 께름칙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이곳의 인물들에게 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과 같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제법 메타적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NPC임을 자각하고, 다른 NPC를 대하는 NPC.

기묘하군.

어쨌든 블랑쉐는 디스트로이어를 풀어놓았다.

전투마다 고양이 케이지를 들고 다니는 것은 마찬가지로 기묘한 일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디스트로이어는 나름대로 그 여행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았다.

더해서 통통한 고양이는 원대한 식탐으로 자신의 몸매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살이 쪄도 귀여운 생물이다.

“동물이다!”

“우와.”

먹히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턱을 긁어주고 있자니 천사 아이들이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가왔다.

이 세상에 고양이를 포함한 털 달린 짐승은 씨가 말랐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천상의 도시는 아름다웠으나 그만큼 다른 곳의 위화감도 한눈에 들어왔다.

녹색이 없었다.

어떤 식으로건 보여야 할 숲이나 풀떼기가 보이지 않는다.

둥근 대신 평평한 이 대지에서 블랑쉐가 얼마나 넓은 시야를 자랑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눈에 비친 것은 가장자리부터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검은 어둠이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멸망해 가는 땅이다.

생태계는 붕괴하고 시스템을 어그러뜨린 대가로 가라앉아 가는 세상.

그리고 그마저도 던전으로 박제당한 곳.

천사와 악마는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단지 그 때문에 이들이 전쟁을 벌일 수라도 있는 것이다.

블랑쉐는 조용히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꼬마 천사에게 말했다.

“만져보겠니?”

디스트로이어가 기꺼이 그러라는 듯 갸르릉 거렸다.

아이들이 노인 천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블랑쉐는 악마다.

다행스럽게도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오래 산 이들이다.

악마와 천사들이 영원한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말이다.

그때라고 사이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적인 적이라 여기는 것 또한 아니다.

천사는 거의 늙지 않는다. 하지만 아득한 세월을 지내왔다면 결국 늙기는 한다.

문득 블랑쉐는 어떻게 아이들이 이 지하에 존재하는가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노인들의 자식일 리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리더가 이 테마에 대한 모든 사실을 설명하진 않았다.

공략에 필요한 부분만 해도 외우다보면 벅찰 지경이었다.

돌아오면 물어봐야겠군.

제니가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고민하다가 자신이 고양이인 점을 어필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디스트로이어가 자신을 쓰다듬기 시작한 천사 아이들에게 고롱대다가 제니를 발견했다.

하악!

제니가 귀를 늘어뜨리고 물러났다.

고양이끼리의 영역 싸움에서 패한 셈이다.

그러나 그런 동작이 다른 아이의 관심을 끌 수는 있었다.

“아줌마! 요정이에요?”

제니는 아줌마라는 말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에길은 장기판을 펼쳤다.

동방에서 유래된 이 보드게임은 중년을 향해 다가가는 바이킹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전투는 그의 삶이며 장기는 전투의 형상화다.

반대편에서 아서는 바둑판을 펼치기 시작했다. 옆에는 체스판도 있었다.

“규칙을 아는 분 있으시오?”

파티의 두 남자는 아직 인간이며, 인간이란 것은 적어도 이들에게 께름칙한 대상은 되지 않는다.

베데스다 종파는 처음부터 유배자와 연관이 깊은 종파였다.

리더에게 듣기로는 진행하다보면 알게 되는 사실로, 이 노인들은 모두 유배자 2세거나 3세라고 했다.

본디 인간이었던 이들에게서 비롯된 천사들이다.

대강 이 세계의 역사가 짐작이 가는 비밀이었다.

노인 중 하나가 말없이 에길의 앞에 앉았다.

노파라고 불러야 할 여성이었으며, 왼팔이 없었다.

그녀가 오른팔을 내밀어 장기판에 말을 놓기 시작했다.

에길은 미소 지으며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을 배열했다.

“한 수 배우겠소.”

“장기는 정말 오랜만이군.”

* * *

위병들의 추적이 생각보다 거셌다.

“좋지 않은데.”

“그 이벤트 트리거 발동하지 않을 때도 있나요?”

“아니, 무조건 있는 이벤트야.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불발될 때도 있지. 그래서 파티원들 친목 다지라고 했잖아.”

현실의 골치 아픈 점이다.

코드로 이루어진 이들은 정말로 정해진 결과만 딱딱 뱉지만, 미궁에서는 사소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그때그때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이게 진짜 재수가 없으면 말이야. 우리를 맞이할 인물이 그날따라 컨디션이 나빠서 집에만 있을 수도 있어.”

“그거 너무 억까 아니에요?”

“맞지. 그러니까 최대한 변수를 줄이고 싶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위병 하나가 날아간다.

통상적으로는 비행이 금지되어 있는 천상의 도시다.

날아오르는 즉시 거동수상자가 되고 위병들이 찾아온다.

날고 있는 모든 천사들은 위병이다.

이미 파악해 둔 구간은 모두 지났다.

이제 아직 지리를 모르는 블록으로 진입한다.

쇠락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천상의 도시는 숨을 곳이 썩 많지 않다.

“위병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건 차라리 빠져서 돌아가는 게 낫겠다.”

희우는 대답하지도 못하고 날아드는 투사체를 쳐냈다.

점점 늘어나는 위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도 한계다.

희우라면 몰라도 나는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포위망이 촘촘해지고 있다.

이벤트를 날려 버릴 수도 있지만, 일단 마법을 구사하여 탈출하려고 술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뛰어들어 깃털 폭격을 피한다.

안쪽에 있던 사서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검을 들어 쳐내고 희우가 길을 뚫는다.

서가도 단단한 흰색 재질이다.

성배 하나를 탈취하기 전까진 그 힘으로 보호받고 있어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물들이다.

그러나 밀 수는 있다.

책장을 밀자 그것이 쓰러지며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혼란 속에서 창문 하나를 노리고 달리려고 했다.

창문에 날개가 나타났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몸을 튼다.

부술 수 없는 것은 흰색 재질들뿐이다.

와장창하고 위병들이 창문을 깨고 뛰어들기 시작한다.

사서들을 제치고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창문이 있으면 좋겠는데.

창은 없었다.

대신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이것도 나쁘진 않은데.”

“다른 지역 입구?”

“맞아. 정확히는 출구.”

그러나 지금 따질 게 아니다.

일단 돌아 나왔다. 여긴 지금 들어가면 막다른 곳이다.

몰려드는 위병들 사이로 그대로 달렸다.

몇 가지 공격은 얻어맞는다.

미아가 걸어둔 위장이 흐릿하게 사라질 듯 깜빡였다.

창문을 부수고 뛰쳐나가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벽을 부술 수 없다는 게 너무 큰 문제인데요.”

“탈출한다.”

성배를 철거하기 전까진 마법사용에도 제약이 따른다.

겨우 공간이동 술식 하나 구성하는 데도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마법을 구현하려고 하는 직전.

“어이, 거기 이쪽이야. 이쪽.”

순간 화를 낼 뻔했다. 엄청나게 늦었다고.

그 대신 자연스러운 반응을 취했다.

대충 놀라는 표정.

“너 치천사 아니지?”

이 도시에 있으니 천사겠지만 날개다운 날개는 보이지 않는 여성 천사가 하나 있다.

깃털 대신 등에 핀 형태의 날개가 있을 것이다.

“넌 누구지? 기천사?”

“맞아. 그쪽 아가씨도 의지가 없는 노예는 아닌 것 같은데.”

희우가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탈출한 참이지.”

“상층에서?”

“그래.”

여성 천사는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빨리 들어와. 위병들이 쫓고 있을 테니까.”

나를 붙잡고 당기려 해서 몸을 뺐다. 자연스럽게 희우가 다가가 당겨졌다.

내가 천사에게 닿으면 환영이 깨진다. 인간으로 보여서 좋을 것은 없다.

당겨진 희우와 여성 천사가 함께 벽을 뚫고 사라졌다.

9와 4분의 3 승강장 같다.

나도 따라서 들어가자 전혀 다른 공간이 있었다.

[천상의 도시 – 기계 무덤]

뻔히 알지만 놀라는 척.

“이게 뭐지?”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이 잘난 도시도 결국 이런 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라.”

“위병들이 따라 들어오지 않나?”

“저 구멍 이제 사라질걸?”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흐릿하게 뒤틀리며 들어온 출구가 닫히고 있다.

누군가의 화난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이 쥐새끼들이……!”

“헹, 기천사는 천사로 보지도 않는 것들이 말이야.”

그리고 나는 확인받기 전에 모습을 바꾸었다. 깃털 날개 한 쌍이 사라지고 내 등 뒤에도 핀이 생겨난다.

“마법이잖아? 어떻게?”

“난 원래 마법사였어.”

“오, 그럼 엄청 오래 살았겠네.”

더 묻지는 않았다.

기동하지 않고 있던 기천사가 뒤늦게 발견 된 후에 붙잡혀 노예가 되는 일은 흔하다.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일단 이곳은 안전해. 저 녀석들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도 모를 거니까.”

“그래 보이는군.”

여성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소개를 안 했네. 나는 로스엘이야.”

제대로 이벤트가 발동했다.

기계무덤의 개노답 삼남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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