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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85화 (38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85화

메인 던전 - Lv.10275 뒤엉킨 혼돈 [영락한 산달폰]

보스로서의 [영락한 산달폰] 1페이즈가 어떤 타입인가를 말해보자.

우선은 비행형이다.

그리고 동시에 포격형이다.

클래스로 치자면 사수형에 해당한다.

저런 거대 괴수들에게 클래스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할 수 있으나 미궁은 변덕스러울지언정 일관성이 있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녀석들은 상대적으로 공격 기회가 적으며 대신 그만큼 방어력이건 체력이건 낮다.

맞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을 생각을 하는 종류의 보스다.

산달폰은 눈을 크게 떴다.

충혈된 거대한 눈알은 날개를 떼고 그 크기만 보더라도 지름이 10미터에 가깝다.

그 눈동자는 잠깐 갈등하는 듯 했다.

자신을 공격한 날파리들 중에 어떤 녀석을 먼저 처리해야할까?

긴 세월을 살아온 유구한 괴물의 사고는 즉각적이면서도 빠르다.

내 견제가 얼마나 시간을 벌었을까?

음속에 준하는 공방에서는 소수점 초단위도 소중하다.

그것이라도 벌었다면 충분하다.

산달폰의 눈동자가, 그리고 눈알 전체가 빛을 내뿜었다.

가장 먼저 발사되는 포격.

빛의 기둥은 신성의 집합이자 타천사로서의 어둠이 스며있는 빛과 어둠 이중속성의 타격이다.

빛 단일 속성이라면 천사는 높은 저항력을 가지겠으나 듀얼 속성이 항상 문제다.

게다가 신성은 마법과는 다르다. 술식이 아닌 의지 그 자체로 힘을 움직이는 권능 속성이라고 봐야한다.

희우가 기천사로서 가지는 저항력이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애초부터 맞고 버틸 생각을 하면 안된다.

포격형의 화력은 탱커도 일부 스킬로만 간신히 감당할 수 있다.

편린급 보스가 포격형이라면 그것은 어떻게든 한 대도 맞지 않아야만 승리할 수 있는 상대라는 뜻이다.

희우는 비행했다.

광선은 빛이라는 그 이미지보다는 느렸다.

미궁에서 대체로 강한 것은 느리다.

정말로 빛의 속도로 뭔가를 쏘아낸다면 그건 사실 그리 강하지 않다.

강력한 신성 공격력을 지닌 산달폰의 광선은 발사와 동시에 탄착하는 히트스캔의 개념이 아니다.

그저 아주 빠른 투사체에 더 가깝다.

희우는 이미 공감각에 접어들었고 그 투사체의 궤적을 ‘보고’ 반응했다.

천사의 회피기동은 아름답다.

[용사]를 가진 하이랭커급 스펙이 아니라면 눈으로 쫓기도 힘들지만, 어쨌건 내게는 보였다.

눈부신 하얀 광선 사이를 종이 한 장보다는 더 안전하게 고양이 한 마리 정도의 간격을 두고 회피한다.

그리고 산달폰의 포격은 그다지 딜레이가 없다.

광선은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내가 대지에 착지하기까지 다섯 번의 포격이 더 있었고 뻗어나간 빛은 기계무덤의 저 먼 곳까지 밝혔다.

내가 다음 공격을 신호할 필요는 없다.

반대편에서 블랑쉐가 열어젖힌 공간이 보인다.

가상전함 누아르.

전함포가 불을 뿜는다.

당연히 저것은 치명적인 데미지가 될 수는 없다.

산달폰의 신성이 피어올라 그 한때 위대했던 것의 편인을 보여준다.

눈알을 정확하게 노린 포격이었으나 허공에 찬연한 빛의 막이 만들어져 거대한 물리적 힘을 막아섰다.

일그러진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좌우로 표출된다.

장약에 담긴 힘의 분출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아서가 나섰다.

이것은 단체전이 아니다.

포격형 보스를 상대로 진형은 큰 의미가 없다.

한 명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것은 막되, 각자 알아서 잘 피해야 한다.

따라서 아서는 이 경우 전방에서 전열과 후열을 잡아주는 딜러 겸 탱커로서 활약한다.

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서며 공간참을 날려댔다.

한 번에 쏟아 붓지는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희우와 어그로를 분산하는 것.

필요에 따라서는 그것을 내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유니크 스킬 [공간검]

공간을 격하고 소리도 형태도 소리도 없는 참격들이 전해진다.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공간만이 무언가가 산달폰에게 닿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명베기 시리즈가 산달폰의 방어막을 흔들기 시작하자 거대한 눈알이 드디어 시선을 지상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희우는 한숨을 돌리며 회복한다. 포션의 소모량은 이제 알아서 잘 조절할 것이다.

그렇게 지켜보는 동안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유니크 액티브 [용사 각성]

이 순간부터 나는 인간형의 드래곤이다.

파티원들에게 기울이던 주의를 모두 접었다.

메인 던전에서의 첫 보스전이니만큼 약간 더 신경 썼을지도 모른다.

모두 잘 하고 있다.

* * *

그 다음 순간부터는 내게 남은 것은 솔로 플레이시절의 추억이다.

보이는 것은 산달폰. 그리고 나.

거대한 날개달린 눈알을 어떻게 공략하는 것이 좋을지만 확인한다.

파티에서 일반적으로 순간화력이 가장 강하게 세팅된 것은 에길과 희우다.

제니도 있으나 그녀는 보스전의 용도가 아니다.

하지만 지속 화력은 어떨까?

순위를 책정하는 딜링 기간을 조금 다르게 잡아서 1분 정도로 한다면 말이다.

내가 최강이다.

나는 레벨링으로 얻은 포인트 대부분을 버프기에 투자했다.

쉽게 말하면 버프가 켜져 있는 동안 가장 강력한 평타 캐릭터가 되는 셈이다.

마검 레바테인에 저장되어있던 화염이 응축되며 번져 나온다. 이것으로 무기에 거는 인챈트를 대신하고 마력을 아낀다.

몸을 맴도는 마력의 위치를 조절한다.

산달폰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수직낙하한 내 위치는 정확히 거대한 눈알의 아래다.

베어야 할 날개를 눈에 익힌다.

한번에 베어지지 않을 것은 안다.

순간적이고도 격렬한 공격과 회피를 연속적으로 해내야한다.

신체의 파열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마력을 움직일 준비가 끝났다.

버프를 일제히 활성화한다.

[영웅의 기상]

[빛이여 어둠이여 - 어둠]

[불꽃의 화신]

[설원의 사도]

한종류로 끝내지는 않는다. 레바테인을 영원히 쓰지는 않겠지만 그에 가장 걸맞은 속성배합을 끝마쳤다.

내 검의 끝에 모든 속성이 깃든다.

[잠력격발]

[역류하는 하늘]

[용의 문장]

[위대한 자]

단순 스펙 보정으로서는 최상위의 버프들이다.

그리고 올라가는 수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패널티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것들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3페이즈가 시작될 때까지는 행동불능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포션 병을 튕겼다.

악룡의 피는 오래도록 보존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일 드래곤을 얼마건 있다.

단 한 번의 부활마저 부여하는 드래곤의 피가 회복을 위해 존재하는 포션과 뒤섞이며 전혀 다른 성분으로 변해있다.

전체를 한 번에 삼킨다.

이로서 나는 한 번의 부활 이외에는 생존 수단이 없다.

그리고 그대로 위를 올려다보고, 검을 꼬나쥐고.

뛰어 올랐다.

* * *

1페이즈에서 희우가 맡은 역할은 엄밀히 따지면 기습과 교란에 불과하다.

산달폰 보스전은 천사로서의 특성이 큰 어드밴티지가 될 수 없다.

희우는 그저 3페이즈를 위해 [은빛 섬광]에 공격을 녹화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게 정타일 필요도 없다.

모아서 모두 재생할 때는 정타일테니까.

아서와 어그로를 나눠가지고 거대한 포격 천사의 눈알이 둘 사이만을 오가도록 유도한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산달폰이 미처 1페이즈에서 사용하는 다른 패턴을 꺼내들기도 전이었다.

실제로 희우가 아서와 주고받은 어그로는 그리 많지 않다.

둘 모두 약간은 다쳤으나 포션 소비는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타격이었다.

아서가 기동력을 발휘하기 힘든 공중전 대신 지상에서 원거리 견제로 산달폰의 시선을 가져가면, 다음 순간 희우가 암습에 가까운 기습을 박아 넣었다.

실제로 암습은 아니지만, 1페이즈 산달폰의 가장 큰 기믹은 방어막이다.

원거리 공격이 엄청나게 감소해서 들어간다.

실제로 근접하여 근접공격을 처박아야만 멀쩡한 대미지가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아서가 원거리에서 날리는 견제기들을 다 합친 것보다 희우가 날린 몇 번의 공격이 더 큰 대미지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도 산달폰은 아직 이 파티가 어떤 의도로 자신을 습격했는지 잘 모를 것이다.

그 때문에 눈알은 몇 번인가 희우와 아서 사이를 오가며 빛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희우는 어느 순간 눈알이 일그러졌다고 느꼈다.

사람이 불쾌해하듯이 감정이 드러났다고 어쩐지 느껴진다.

그냥 툭툭 치듯이 던지는 광선 대신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을 쏟아 부으려는 것이 보인다.

그 시점에서 희우는 산달폰의 1페이즈 공략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다.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희우가 제일먼저 그 사실을 깨닫았기에 아서에게 신호했다.

아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천사를 시야에 포착했고 그대로 거리를 벌려 물러났다.

막대한 힘이 거대한 눈알에게 모여드는 것이 보인다.

위대함의 편린은 처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저런 급의 존재가 무언가 힘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전조를 낳는다.

불길한 경고, 본능이 사정없이 경종을 울린다.

희우는 날개를 펴고 전력을 다해 날아서 산달폰에게서 멀어졌다.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저건 가까이서 맞으면 죽는다. 살아남을 방법은 범위에서 벗어날 정도로 멀어진 후, 방어를 굳혀 피해를 줄이거나.

산달폰의 방어막 내부까지 들어가는 것 뿐이다.

너무 가까운 곳은 사각지대인 광역기.

보통 게임에 흔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후, 희우는 몸을 돌렸다.

충격이 휩쓸고 지나간다.

신성의 격류인 저것은 마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괴이한 권능에 가깝다.

몸을 스쳐 지나가는 타격에 순간 몸이 먹먹해지고, 그 다음 순간에는 깨끗해진 산달폰의 주변이 보였다.

기계장치의 신이 남긴 기둥은 그 정도 충격에 끄떡하지 않았으나, 다른 것들은 아니었다.

지형이라고 불러야했던 것이 원형으로 깨끗하게 도려내어져있다.

희우는 비로소 산달폰의 주변 지형이 난잡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몇 번이고 저렇게 일소된 후에, 다시 한  번 무언가가 퇴적되고, 그것을 반복한 것이다.

어쩌면 이 기계무덤이라는 넓고 광대한 지형 전체가 산달폰이 행사한 힘에 의해 형성된 모양일지도 모른다.

멀리서도 거대하게 보이는 눈알은 그렇게 막대한 힘을 행사한 직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행사한 거대한 힘과는 다른 무언가가 산달폰의 날개 주변에 휘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멀어서 잘 알 수 없으나 눈가에 힘을 집중하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소름끼치도록 정밀하고 예리하게 다져진 검격이었다.

기천사의 동체시력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로 연속된 공격은 딜레이도 없었고 멈춤도 없다.

한 명이 검 하나로 이루어내는 연격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참격 이펙트를 CG로 합성하여 붙여 넣었다고 보는 편이 더 옳다.

산달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다급하게 회전한다.

그것은 회피하려는 동작 같기도 했으나 동시에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동작 같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그것이 추락임이 드러났다.

날개가 베여나가기 시작한다.

한 장, 두 장, 세 장.

총 서른여섯 장의 날개다.

깃털이 날린다.

장엄하면서도 괴이한 감상을 주던 날개 달린 눈알에서 날개가 점점 사라진다.

그렇게 눈알만 남아 볼품없어지는 순간 산달폰은 분노했다.

적어도 희우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었다.

희우는 미아에게 신호했다.

미아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신호를 보지 못했지만 옆의 제니가 그것을 받고 미아에게 알렸다.

미아가 송환을 실시했다.

마력의 실이 저 멀리 산달폰의 위치까지 뻗어나가는 것이 언뜻 보였다.

저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이 뻗어 나온다.

술식을 구사하지는 못하더라도 마법의 원리 자체는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유도하는 상황이다.

둘이 맞닿는 순간 미아의 옆에 공간의 균열이 열렸다.

그리고 굉장히 지친 표정의 오빠가 나타나서 털썩 엎어졌다.

제니가 얼른 부축하고 미아와 함께 달아나기 시작했다.

희우도 그것을 확인하고 어딘가에 숨어있을 블랑쉐가 볼 수 있도록 수신호를 주었다.

다같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희우는 그리고 마지막에 보았다.

눈알만 남았던 거대한 천사의 몸에서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원래의 고고한 순백의 깃털날개와는 다르게, 칙칙한 잿빛의 날개다.

그리고 그 날개 하나하나에는 본체보다는 작으나, 충분히 많은 눈들이 달려있다.

잠깐 돌아본 동안 돋아난 날개에서 눈이 하나 둘 떠지기 시작했다.

희우는 그것이 이쪽을 노려본다고 생각했다.

몸이 저릿함이 느껴진다.

눈이 마주치면 즉시 발생하는 마비효과다.

희우는 마법 저항력이 높은 천사이기에, 마법적 효과인 마비에 저항력이 있다.

다른 파티원들은 없다.

“머니까 괜찮아. 좋아 괜찮아.”

저런 종류의 끔찍한 것에는 내성이 없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까지는 어떻게 가능하다.

미아가 마력의 선을 이어간다.

희우의 귓가에도 닿았다.

딜레이 없이 서로간의 통신이 가능하게 만드는 네트워크다.

지금부터 희우가 사령탑이 되어 저 분노한 잿빛 타천사가 쏟아내는 탄막을 중계해야한다.

밤새 준비된 함정까지.

페이즈가 넘어갔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대함의 편린]

[뒤엉킨 혼돈, 영락한 산달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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