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91화
메인 던전 - Lv.6211 기계무덤(4)
지금 루트는 게임 시절이라면 정석이라면 정석이다.
사실 제일 쉬운 루트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 자연스럽게 미카엘이나 바알의 편을 들어 평범한 세력전처럼 진행하게 되고, 힘든 엔딩을 보게 된다.
커뮤니티에 질문을 한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로스엘을 찾아라는 것이다.
물론 그건 어렵다. 하지만 게임은 공략이 있다.
그것대로 한다면 로스엘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으며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며 꿀을 빨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달리 말하면 꽁꽁 숨겨진 요소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로스엘은 특정 트리거에 반응하여 천상의 도시나 지옥의 성채 곳곳에 출현하는 NPC라서 클리어 할 때까지도 그 존재를 모를 수 있는 인물이다.
기계무덤 자체는 결국 진행하다보면 비교적 높은 확률로 발을 들이게 되지만, 역시 진행 자체에는 필요가 없다
정석대로 천상의 도시나 지옥의 성채부터 공략하면 더 힘겨워지는 구조의 테마다.
그런 꼼수를 다 안다면 비교적 쉽게 진행을 할 수 있는데, 게임 시절의 산달폰은 사실 그리 강한 보스는 아니었다.
기믹만 알면 턴마다 제때 피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회피라는 것이 이렇게 입체적이고 다이나믹하며 실시간적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단 말이다.
최소한의 스펙과 공략 영상을 한번 보고오는 정도의 성의만 있다면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그 정도 보스란 말이지.
거창하게 편린이라면서 이름값은 못하는 전형적인 종류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말했던가.
현실이 되며 모든 요소들이 더욱 끔찍해졌으며, 현실이라서 더 나아진 요소를 어찌 쥐어짜내지 않는다면 거의 헤쳐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NPC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설득할 수 있는 이 환경이 게임 시절보다 훨씬 어렵다.
그것은 성배 찾기 역시 그렇다.
“개노답 삼남매중 하나라고요?”
“그게 천사에 하나, 악마에 하나, 그리고 지금부터 찾아야할 그 성배야.”
“짐승이라더니 의지를 가지게 된 뭐 그런건가봐요.”
“성배란 거 자체가 신좌를 뜯어서 만든 거 거든. 솔직히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있는 걸 뜯어고쳐 사용하는 거지 새롭게 만들 능력은 없지.”
기계장치의 신 역시 신좌를 누더기처럼 기워서 만든 것이다.
그 신전은 신좌를 본따 만들어진 신앙 수집기였으며, 신좌를 구성하던 부품을 재활용하여 세상에 권능을 행사하던 기계다.
“개노답 삼남매라는게 뭐야?”
기천사는 귀가 밝은 편이다. 로스엘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완전 신나고 재밌는 친구들 셋을 말해요.”
“개노답이 뭔데 좋은 건가?”
“그럼요. 각자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는 따뜻한 이들이죠.”
“그래? 나도 개노답 삼남매할래!”
“그럼 오늘부터 사남매로 합시다.”
로스엘이 괜히 신이 나서 다시 포르르 날아올랐다.
희우가 으엑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잘 다루시네요.”
“자주 봤으니까.”
“흠, 그건 좀 부럽다.”
“엥?”
“아니에요.”
어쨌든 우리의 성배 수색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10년 정도 전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에 있을 확률은 낮다.
“그런데 이거 성배라는 거 그럼 히든 스테이지인 이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못 찾는 거 아니에요?”
“로스엘과 같은 이유로 이 테마 여기저기에 출현해.”
“아, 그 무너져가는 세계의 구멍을 감지하는 능력이랬나. 그런 게 있다고 했지. 오빠는 그거 못 해요?”
“글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1천년 쯤 되었으면 연습해봤을지도 모르는데.”
시간은 촉박하다. 멘탈의 문제로 날려버린 시간들이 참 아쉽단 말이지. 그랬다면 더 나은 숙련도를 구비할 수 있었을텐데.
“어쨌건 로스엘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야. 저 친구가 떠나면 기계무덤과 연결된 온갖 지역의 숏컷을 이용할 수 없단 말이야.”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영원한 분쟁]같은 전쟁터 맵을 지나쳐서 지옥의 성채로 가야한다.
그 길은 복잡하고, 더럽고, 위험하다.
고로 이것이 최선이다.
“자, 그럼. 잘 부탁해. 급발진하면 반드시 부여잡고. 저 친구 좀 고장나있는 거 알잖아.”
“어쩌면 과자로 길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린 천사들에게 선물로 줬는데 로스엘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좋네. 위장을 붙잡아.”
희우도 손을 흔들며 로스엘을 따라 포르르 날아갔다.
이제 막 기천사가 된 제니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그 뒤를 날아 올라간다.
산달폰과 타천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은 기계무덤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정리되어서 안전해진 구역도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구역 내에서 성배의 짐승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 타천사들이 사라졌을 뿐, 어둠의 원소가 뭉쳐 만들어진 정령들은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솟구치고 있다.
기천사 셋이 날아다니며 수색을 하고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나쁜 다른 멤버들은 아래에서 기천사들을 호위한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될만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목표는 이 드넓은 기계무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기동력을 활용해 훑고 다닐 겁니다. 발견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죠.”
게임 시절 스크립트 상으로는 그냥 출현 트리거가 랜덤인 그런 피곤한 녀석이다.
나타나는 곳은 정해져있지만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는 그런 거 말이다.
게임이라면 스폰 되지 않았을 때는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 끔찍한 짐승 놈의 성향 상 기계무덤에서 머물며 여기저기를 쏘다닐 확률이 높다.
언젠가는 발견이 될 텐데. 일단 이게 이 짐승 녀석이 개노답 삼남매인 이유다.
언제 발견될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편린급 보스는 더 이상 이 기계무덤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충분히 적응이 될겁니다.”
에길도 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아는 여전히 뿔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저 뚱한 표정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혹시 우리 딸도 슬슬 사춘기인가.
자아가 희박하던 시절도 지났고 이전 희우의 영향을 받아 꼭 닮은 성격의 마법사가 되었으니 질풍노도가 시작되어도 이상하진 않다.
외모에 전혀 신경 안 쓰고, 도리어 그 안에 흐르는 마력 흐름에나 관심을 가지던 아이였는데.
장하다. 우리 딸.
“자, 그럼 출발하시죠.”
천사들이 날았다. 각자 방위를 맡아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훑는다.
기계무덤은 심연마냥 난잡한 구조물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지만, 망가져가는 기계장치의 신전들의 잔해는 아주 멀리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그게 이정표다.
“저기 기둥까지 달립니다!”
* * *
세 번째 기둥에 도달했을 때, 미아가 탈진했다.
눈이 핑핑 돌며 헛소리를 하고 있다.
“하늘에 별이 다섯…….”
뱀파이어는 의외로 체력이 좋다.
죽어있어서 그렇다.
언데드 최고의 장점이지.
반면 악마는 인간에 비하면 어마무시한 체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일단은 생물이다.
가뜩이나 미아는 평생 뱀파이어로 살아온 것이나 다름 없는데다가, 육체적인 능력을 기르는데는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단검을 쓰는 능력이 좀 파멸적이었던 탓도 있지만, 그래도 단련 정도는 해야 했던가 싶기도 하고.
아이를 너무 언데드로 오래 방치해뒀군.
“그 탓이……. 아닌 것 같은데.”
아서 역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니, 아서는 괜찮아야죠.”
“간단한 마법을 종족 보정을 통해 구사해보는데 굉장히 피곤하군. 몸이 아니라 정신이 말일세.”
결국 멀쩡한 건 에길 뿐……도 아니었다.
“날갯짓을 충분히 연습한 것과, 날개가 있는 생물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군.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 수준을 넘어서, 없던 근육이 생긴 기분이다.”
“음……. 확실히, 날개죽지 근육을 단련할 일이 인간에게는 없긴 하죠.”
이런 제기랄. 내가 좀 모두를 과대평가한 것인가?
이 정도는 바로 뚝딱하고 적응할 줄 알았는데.
기사 외길 33+40년 아서 선생님에게 마법은 상상 이상으로 낯선 것이었던 모양이다.
“멀린에게 미안하군. 내 가끔 마법 그 까이거 같은 소리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며 무식한 기사 놈들 운운 했었지.”
“음, 일단 아서가 블랑쉐 보다 마법 활용 능력이 나쁘단 건 좀 충격이군요.”
“그건 아니네.”
정색하고 블랑쉐보다는 낫다고 주장하는 아서 뒤로 에길이 날개 주변의 근육을 만지며 위화감을 호소한다.
“날개가 있으니 무기를 휘두르는 게 몹시 낯설군. 리더가 대단한 것이었어.”
하기야. 생각해보면 근육 형태 자체가 좀 다르긴 하다.
희우는 되게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브 리더는 젊지 않나.”
“그게 또 그렇게 됩니까?”
“늙으면 머리가 굳어.”
돌겠군.
하지만 의외로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는 것이, 돌고 돌아서 가장 적응을 잘한 것은 의외로 제니였다.
그래 나는 알아보았다고. 제니의 유배자로서의 재능을 말이다.
진지하게 말해도 제니가 좀 더 야망에 불타는 고양이었다면 나와 엮이지 않고도 충분히 랭커, 나아가 하이랭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 천사는 아직 불안정하지만, 겨우 하루가 된 것 치고는 능숙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
약간 불안한 자세로 착지한 후에 묻는다.
“좀 휴식해야할까요?”
그러면서 제니가 스윽하고 종족 변환의 후유증에 고통스러워하는 파티원들을 본다.
그리고 작게 흥 하고 웃었다.
주변을 빠르게 정찰하고 돌아온 블랑쉐가 그 모습을 보더니 훗 하고 미소 지었다.
아서가 조금 기분 나빠했다.
“그래도 전투 자체는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군. 스킬 세팅이 휙휙 변하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은 것 같네. 애초부터 그렇게 세팅할 수 있다는 게 놀랍군.”
공용기 위주로 추가적인 스킬을 많이 세팅했다.
앞으로 종족을 휙휙 바꾸며 진행하더라도 대부분의 스킬은 온전히 유지가 될 것이다.
세이렌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강제되는 [물의 행성] 테마가 아닌 게 다행이지.
“스펙의 상승은 유효한 것 같네. 단순히 근력이나 순발력, 동체시력 등은 비할 바가 아니군. 왜 인간을 그렇게 다들 버리려하는지 이해는 되고 있어.”
아서나 에길이나 다른 종족의 경험은 없는 전사들이었다.
둘은 끝까지 인간으로 남기를 원했다.
아서는 다시 왕으로서 카멜롯에 돌아가기 위하여.
에길은 발할라에 받아주는 것은 인간뿐이라며.
하지만 신념은 변한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유대의 증표 같아서 좋다.
“그럼 조금 더 천천히 진행하겠습니다. 애초부터 며칠은 잡고 하는 수색이에요. 길면 한달 정도는 머무를 수도 있겠죠.”
“미안하군.”
“미안하네.”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두 전사는 그렇게 했다.
미아는 색색대며 숨을 몰아쉬다가 내게 물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져요. 폐가 산소를 공급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악마들도 숨은 쉬어야 하는 것이었군요.”
그게 아니라 우리 딸이 어마어마하게 저질 체력이라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악마는 체력 단련이 가능하다.
그래도 제니를 불러야했다.
“자자, 어부바 하세요.”
“으응, 제니 등이 제일 편해.”
“이제는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탈것이랍니다.”
“제니 최고야!”
“후후후후.”
제기랄. 메인 던전까지 와서 이런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전원 나로 이루어진 파티라는 건 쉽지가 않구나.
희우도 슬쩍 내려와서 내게 속삭였다.
“와, 전 제가 처음에 끔찍하게 못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면 되게 잘하는 거였네요.”
“너를 기준으로 삼은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천재 맞구나. 너.”
그때 로스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아아아아!”
나는 잠깐 멈칫했다.
“저기 있어! 금색으로 반짝반짝! 완전 이쁜데? 아직 멀어서 눈치는 못 챘을 거야!”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 찾은 게 좋은 일일까? 마법 멀미하는 아서와 근육통 호소인 에길, 디스트로이어보다 체력이 안 좋아 보이는 미아.
이 셋과 지금 저걸 쫓는 게 맞을까?
성배의 짐승이 개노답 삼남매의 일원인 이유가 단지 찾기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그랬으면 욕은 안 먹었지.
“좋아……. 일단 조금만 제가 생각을 하게 해주시죠.”
그래도 다들 스펙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스펙으로 밀며 진입까지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곳에는 리프트가 하나 가라앉아있다.
귀환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쉽지 않네.”
메인 던전, 그것도 현실이 된 메인 던전은 내게도 아직 많은 부분이 미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