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392화 (39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92화

메인 던전 - Lv.7799 가라앉은 영광(1)

그간은 어떻게든 된다라는 마인드가 더 강했다.

정 안 된다면 루시가 내게 화신하면 된다.

그 막대한 스펙 보정을 챙기고, 내가 그간 쌓아온 기술이 있다면 전멸하는 일 따위는 없다.

애초부터 보험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들이박지도 않았을 것이다.

루시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호구를 잡았기 때문에 보험은 하나 더 있었다.

루시가 내게 주었던 3번의 기회.

제 영혼까지 깎아먹으며 나와 했던 거래다. 그중 마지막 한번은 결국 사용하지 않았다.

루시가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심연]에 갈 때는 신좌에 다시 앉힐 것이며 그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더 이상 그런 보험이 없다.

이제 일이 잘못된다면 누군가 죽을 수가 있다.

정말로.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 말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언데드화는 늘 염두에 두고 있으나, 천사와 악마는 언데드화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신중해질 수밖에.

내가 고민하자 희우가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에요?”

“흠, 그러게. 새삼 내 결정에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물론 나는 실패해도 아직 다음 회차가 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떤 상실감을 느낄까?

이번 회차의 1층에서 느끼던 그것과 같을까?

그럴 리가 있나.

희우가 말했다.

“신중해야 할 타이밍인가 봐요.”

“그렇지. 지금부터 저놈을 추격한다면 곧바로 [가라앉은 영광]으로 들어간단 말이야. 그 지역은 돌아 나오기 힘들어.”

“구조적 문제인가요?”

“아니, 다시 저놈을 수색해야 하거든.”

“개악질이네.”

악질이지. 그러니까 고민이다. 만약 들어간다면 한 번에 리프트까지 도달하는 편이 이상적이다.

그때 희우가 옆을 쿡쿡 찔렀다.

“이상적일 필요 있어요?”

“음?”

“그렇게 완벽할 필요는 없잖아요. 오빠는 지금까진 완벽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겠지만 여기쯤 오면 모를 수도 있다고 했으면서.”

“그렇긴 하지.”

“그럼 서브 리더로서 판단할게요. 그냥 해보죠.”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려던 참에 아서가 손을 들었다.

“흠, 내가 원인인데 이런 말 하긴 뭣하네만. 그냥 해보는 게 어떤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에길도 제니도, 그리고 블랑쉐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아는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니면 돌아 나오는 것이지. 리더 뭔가 강박이라도 있나?”

에길도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렇군요. 그냥 해보면 되는 거였지.”

블랑쉐가 피식 웃는다.

“뭐든 다 아는 것도 병이로군. 효율보다 중요한 건 결국 최후의 승리다. 이미 그걸 따져야 할 단계 아닌가?”

옳은 말이다. 그간의 효율 추구는 사실 진흙탕 싸움을 하면 이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는 반드시 이기기만 할 필요는 없다.

실패해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면 된 것이다. 로그라이크의 자유도란 그런 거니까.

“잠깐 어떻게 되었었나 봅니다. 좋아요. 그럼 가 볼까요?”

저 멀리 있는 로스엘이 왠지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 * *

로스엘은 끔찍하게 오랜만에 보는 유배자들이 사랑스러웠고, 또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이 이 꼴이 나고 나서도 유배자들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게이트는 닫혔다.

왕국의 문도 닫혔다.

그리고 완전히 잊혔다.

이 세상은 죽었다.

미궁이 그렇게 판단했다.

다른 천사들은 어려서 잘 모르겠으나, 로스엘은 알고 있다.

그렇게 된 세상이 어찌 되는지 말이다.

이곳은 이미…….

[메인 던전]이겠지.

베데스다 종파의 예언은 미궁이 부여한 것이다. 그들의 사도는 모두 이 세상을 끝내기 위해 도달한다.

그렇다면 로스엘 자신의 역할은 무엇일까?

로스엘은 스스로의 삶을 직접 규정했다.

그렇기에 단지 선주 문명이 남긴 일개 기천사에서 자율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로스엘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할 것이다.

“어이! 거기! 그쪽으로 간다! 몰아가고 있다아!”

진지한 생각은 곧바로 집어치웠다. 일단 눈앞의 신나는 일에 집중한다.

유배자들의 리더가 말하는 [성배의 짐승]이라는 녀석은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그게 뭔지는 몰랐다.

혹여 새 유배자가 온다면 대체로 로스엘이 뭔가를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그렇게 이뻐해 주고 뽀뽀도 해주고 하다 보면, 그 유배자는 어느 날 사라졌다.

아마 죽었겠지.

그런데 이 파티는 조금 다르다.

리더는 로스엘이 전혀 모르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으아아악! 여기로 번개 뿌린다!”

“침착하게 물러서 제니!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으니까!”

고래고래 호통을 치고 고양이 천사가 얼른 뒤로 물러나며 번개를 피한다. 품속에는 작고 귀여운 악마 마법사를 안고 있다.

마법사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법을 발동한다.

천사는 마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적의 공격 마법도 그렇지만 같은 편의 지원도 말이다.

그럼에도 능숙하게 차원문이 열리며 번개를 피해 동료를 옮긴다.

“앗! 빠져나간다! 사격 개시!”

“예에이이! 사격 개시!”

로스엘도 그 목소리를 듣고 신나게 복창했다.

곧바로 어떤 고양이가 기묘한 자세로 겨누어진 채 울기 시작했다.

애오오오옹.

로스엘이 보기에 그것은 아주 유효한 행위였다.

일반적인 총탄조차도 음속의 3배에 달하는 속도를 낸다.

성배의 짐승은 기천사로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지만, 제로백에는 한계가 있다.

사수의 사격은 그보다 빠를 수 있다.

그런데 저 고양이는 총이었고, 훨씬 더 빠른 속도의 뭔가 알 수 없는 것을 쏘아대었다.

기천사보다 훨씬 빠르더라도, 아니, 어쩌면 마법사라도 당할지 모른다.

성배의 짐승이 탈출하려다가 눈앞에 쏟아지는 탄에 기겁하여 방향을 바꾸었다.

결국 처음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다.

“기둥 쪽으로 처넣어!”

성배의 짐승이 다시 번개를 뿜어내었다.

노랗고 빠르지만 동시에 전기를 뿜어내는 그 생물의 형태는 신기하게도 쥐였다.

로스엘도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이렇게 NPC로서, 정말로 완전한 NPC로서 유배자의 조력자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마법사를 안고 있는 고양이 천사를 제외한 기천사는 로스엘까지 둘이다.

포위망의 핵심도 둘이다.

좌우에서 빠르게 접근하자 짐승이 서둘러 위를 향해 솟구쳤다.

그곳에 치천사가 있었다.

“으라야아아아압!”

치천사는 기천사보다 느릴 뿐, 충분히 빠르다.

짐승이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찌이이익!

“탈출 시도한다! 미아야!”

마법사가 손을 바쁘게 놀렸다.

그 옆에서 사수가 고양이를 능숙하게 한 손으로 안은 채 보조한다.

마법이 그려졌다.

리더가 마법의 그물망을 디테일하게 수정한다.

번쩍이며 번개가 치고 짐승이 그물에 덮이기 직전에 사라졌다.

번개 줄기가 번뜩이며 저 멀리 있는 어느 기둥까지 날아갔다.

“놓쳤네…….”

허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내려왔다.

“좋아요. 벌써 세 번째니까 저 녀석도 힘이 좀 빠지긴 할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조졌네요.”

“큰일이군.”

로스엘도 모르는 정보를 어디서 자꾸 꺼내놓는 유배자 리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저 전기쥐는 궁지에 몰릴 경우 짧은 캐스팅 후, 가까운 기둥에 전송되는 식으로 탈출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기둥에 붙어 충전을 한다.

대충 산달폰처럼 기둥의 신성력을 빨아먹고 사는 빈대 같은 놈이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기둥 방향이 정리가 안 된 쪽인데.”

“타천사들이 더 있을 겁니다.”

“내가 그래서 저 쥐새끼가 싫어. 진짜 끔찍하게 싫어. 이제 눈치챘을 거야. 아마 저쪽으로 계속 도망치겠지.”

리더가 순순히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니까. 일단 오늘은 쉽니다.”

로스엘은 뭔가 그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단 혼자였다면 절대 무리였겠지만, 이 파티는 입체적인 포위망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방법이 있지 않을까?

흠.

누군가가 훨씬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될 텐데.

그러다가 로스엘은 자신의 스킬을 하나 기억해 냈다.

“어라? 어라라라라?”

로스엘 담당인 희우가 재빨리 반응했다.

“무슨 일이에요? 로스엘? 뭐 문제 있어요?”

고장 난 기천사는 위험하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데리고 다녀야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 기계 무덤보다 더 끔찍할 것은 분명한 지상 필드를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로스엘이 제 머리의 고리를 탁 하고 쳤다.

“난! 정말 바보야!”

“예?”

“저기저기 있잖아. 나 그 스킬 있거든?”

모두가 의문을 띄우는 가운데, 로스엘은 리더에게 가서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 * *

나는 당황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로스엘에게 그런 스킬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느낀 바이긴 하다.

작은 부분 부분에서 내가 아는 것과 달라진 점이 있다.

그 작은 부분들은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우 같은 아이가 존재하고.

내 닉네임을 아는 프로방스 같은 친구가 있으며.

아예 구독자인 일그림이 존재하는 데다가.

함께 랭킹에 이름을 올리던 악룡, 빅맥 친구도 있다.

사실 이전 같았으면 좀 더 고민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눈 돌릴 필요 없이 현실은 그저 현실이다.

잘 모르겠으면 그게 게임의 즐거움이다.

든든한 동료들 최고야!

그러므로 로스엘은 자신이 보유했다는 사실도 있고 있던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타천사들이 날아든다.

“으라차차차!”

새 도끼인 [푸른 닻]을 들고 회전한다.

접이식이라 내구도가 아쉽고, 위력도 아쉽다.

하지만 저 도끼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손과 양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변형 기믹이다.

그 덕에 양손 도끼일 때는 상당히 크다.

보조무기로는 최적이다.

이제 모두 온몸에 상위 아티팩트를 둘둘 감아가야 할 시기니까.

죽음을 불사하고 [훨윈드]를 발동해 타천사 무리로 뛰어든다. 아서가 에길이 치명상만은 입지 않도록 막아선다.

제니도 어쨌건 전사.

액티브 스킬까지 동원해가며 타천사들의 시선을 모두 한곳에 모았다.

그 틈에 비행에 익숙한 희우와 블랑쉐, 그리고 내가 나선다.

미아의 보조를 받아 급조된 포위망이 기둥에 붙어 있던 성배의 짐승을 덮쳤다.

짐승은 유유히 가속하여 우리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야, 뭐 저놈은 일단 뒤지게 빠른 게 문제다.

거기에 사방으로 신성한 번개를 지져대는데, 이게 약하지가 않다.

마력 속성이 아니라 천사의 마법 저항력도 소용없다.

맞으면 골로 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중상이다.

그런 녀석이 이 드넓은 곳을 몇 가지 규칙성만 가지고 뛰어다닌다.

기계무덤 전체를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니, 고레벨 몬스터들 사이로 쏙쏙 도망 다니기까지 한다.

몇 번 반복되면 학습까지 해서 도주 패턴이 필드보스 근방으로 설정되는데 악질도 이런 악질이 따로 없지.

그럼에도 저걸 쫓는 이유는 저 녀석이 이미 기둥에 있을 때, 다시 도주로를 막으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배의 짐승만이 기둥을 통해 이어진 세상의 구멍을 열고, 도달할 수 있는 분리된 공간.

[가라앉은 영광] 지역이다.

그러니 죽여 버릴 수도 없다.

[왕관의 검]은 그곳 내에서 사용하는 열쇠다. 죽여서 성배로 되돌려 버리면 그곳으로 가는 길이 영영 막힌다.

“로스엘!”

“쭈와! 맡겨만 두라고!”

로스엘의 눈이 피이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원래라면 인간과 다를 것 없는 기천사의 동공은 종족 유니크 스킬을 사용할 때는 여러 개의 기계적 띠가 생겨난다.

[오버클럭 익스텐션]

로스엘의 몸이 거의 팟 하고 사라졌다.

번뜩이는 소리와 함께 천둥이 친다.

타천사들이 다 위를 올려다볼 정도였다.

발악을 하잖아? 로스엘이 맞았나?

언더그라운드 유적의 저레벨 기천사들도 저걸 쓰고서는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로스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음 순간 드러났다.

“잡았다!”

시꺼멓게 그슬리고 머리카락도 홀라당 타버린 로스엘이 버둥거리는 쥐새끼를 품에 안고 팔짝팔짝 뛴다.

저걸 맞고 살아 있단 말이지?

역시……. 세피로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만은 해.

“좋아요! 미아야 포획!”

마법의 그물이 짐승을 꼼짝하지 못하게 묶기만 하면 안전하게 저 녀석을 통해 진입 가능하다.

다만, 문제가 생겼다.

“어라?”

쥐새끼의 움직임이 너무 거셌다. 로스엘은 충분히 전격으로 대미지를 입은 상태였고, 전격은 어찌 되었건 근육의 마비를 일으킨다.

팔 힘이 약해지는 순간 쥐새끼가 빠져나갔다.

“와아앗! 잡아야 해요!”

“놓치지 않는다!”

희우와 블랑쉐도 뛰어들고 쥐새끼가 발악하듯 빛을 내뿜었다.

다른 기둥으로 가나?

아닌데. 애초에 기둥에 붙어 있던 놈을 노렸다.

그렇다면…….

번쩍하면서 폭발 같은 빛에 세상이 휩쓸렸다.

그리고 세상이 암전되었다.

“조졌네.”

자주 보는 로딩의 암전,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메시지.

[메인 던전의 비경에 발을 들였습니다!]

“모두 휘말렸으려나? 이래서 붙잡은 다음에 소규모로 열어서 한 번에 이동해야 하는데. 하.”

이렇게 되면 휘말린 파티원들은 무작위로 [가라앉은 영광] 내부에 흩뿌려진다.

게임에서조차 각개격파 당하면 눈물이 줄줄 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