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95화
메인 던전 – Lv.7799 가라앉은 영광(4)
미아는 이 [가라앉은 영광]이라는 지역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재밌겠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유적의 기믹은 몽환의 숲과 유사하다.
지난 반년 간, 이론 마법사로서도 여러 발전을 이루어낸 미아지만 그래도 최초의 연구 과제는 각별한 법이다.
그 날 이후로는 워 메이지로서의 마법에 집중하느라 진척이 없었다.
하물며 몽환의 숲은 ‘홀수층’이며, 그렇기에 미궁의 보정을 통해 만들어진 현상이다.
오래 전에 멸망한 이 고대의 왕국은 그것을 순수하게 마도공학으로 구현했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나.
학자로서가 아니라 실전 워메이지로서도 흥미가 샘솟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으음. 제니, 여긴 유적 내부의 지하인 것 같아.”
“지하수로로 연결되어있다는 곳이죠?”
[가라앉은 영광]이라는 지역의 구조는 중심부의 도심지와 그 주변을 해자처럼 메운 물, 그리고 외곽의 폐허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광역 이동이 후에는 어디로 이동되었는가가 중요하다.
크게 세 포인트로 나눌 경우 가장 위험한 곳은 중심부인 유적 내부.
그 다음이 지하이며 외곽은 숙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
“어떡하지? 그냥 외곽으로 가는 편이 더 나을까?”
제니가 꼬리를 흔들었다.
미아는 그 모습을 보고 제니의 불안을 눈치 챘다. 디스도 제니도 그럴 경우엔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른다.
“좋아. 그럼 일단 외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보자.”
“으음. 미아. 미안해요.”
“뭐가?”
“제가 좀 더 강했다면…….”
“에이.”
미아가 제니에게 안긴 채 머리를 문질문질 쓰다듬는다.
확실히 제니는 그리 강하지 않다. 이 파티 기준으로 혹은 메인 던전 기준으로는 그렇다.
제니의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선에서 그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국 미아의 방패다.
애초에 제니는 단독으로 무엇을 할 것을 상정하고 마인드맵을 세팅하지 않았다.
미아가 이탈한 상황이더라도 위험한 아군을 구출하고 안전한 곳까지 빼돌리는 의무병의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그 정도 역할이다.
제니의 실질적인 전투력은 반년 전에 침공 방어전에서 탑재한 유니크 스킬이 거의 전부다.
미아는 제니를 위로할 말을, 그리고 담담한 사실을 말했다.
“아마 좀 더 넓은 곳이었다면 충분히 할 만했을 거야.”
그렇다면 기천사의 기동력을 살릴 수 있다.
초음속 마법 폭격기라면 충분히 단독 작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좁은 통로라면 결국 누군가 전선을 형성하고 버텨 줘야하며, 큰 마법도 제한된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이렇게 단둘만 떨어진 것은 전투력만 볼 경우 최악의 조합이다.
마법사도 제니도 단독으로 뭔가 하려고 하면 안 되는 포지션이니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싸워서 길을 뚫을 수 없는 것이지 그저 탐사라면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유능한 조합.
미아는 아주 단거리에만 마력 탐지를 걸었고 일정 구간을 진행한 마력 탐지의 파문이 곧바로 되돌아왔다.
“쥐다. 올거야. 인식 당했어. 뒤로 빠지자.”
“알겠어요. 전력으로 움직일게요.”
좁은 통로에서 핀 모양의 날개를 진동 시키며 얼른 후진한다.
끝자락에 언뜻 이곳의 주요 몬스터인 쥐들이 보인다.
성배의 짐승과 닮은 커다란 쥐들이다.
물론 쥐들이 먼저 있었고, 성배가 자아를 가지게 된 다음에 저 모습을 취한 것이다.
성배의 짐승의 본거지는 이곳에 있다.
미아는 문득 생각했다. 성배의 짐승이 만약 그대로 도망쳐서 이곳의 은신처에 있다면?
그걸 포획하는 시도 정도야 해볼 수 있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이곳의 일반적인 쥐떼는 제니가 전선을 유지하며 싸워볼만한 상대였다.
다만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싸우는 것은 제니다. 제니가 그걸 원하냐가 중요하다.
투명화 마법과 소리를 지우는 마법, 그 외에도 기척을 지우는 마법을 둘둘 감고 있다.
비교적 약한 적들은 쉬이 따돌려 진다.
쥐떼로부터 충분히 멀어지자 미아가 제안했다.
제니는 늘 그렇듯이 말끝을 흐렸다.
“미아가 원한다면야…….”
“제니, 난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여기 적들은 마법 저항력이 높아. 싸우는 건 제니야.”
제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서포터인 제니는 이럴 때 유능할 수 없다.
신중하게 적의 전력을 재며 자신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아까 잠깐 쥐떼와 싸우며 어땠더라?
개개가 강력한 개체는 아니다.
하지만 수가 많고 공격력이 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르게 보면 마법사인 미아의 보조를 받아가며 싸워볼만하다.
판단이 선 제니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짐승의 본거지를 찾아보자.”
이런 좁은 던전에서 대대적인 마력탐지를 할 수는 없다.
그 즉시 마력을 감지한 쥐떼들이 몰려올 것이다.
마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뭔가 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한 채로 말이다.
“미로 찾기의 기본, 한쪽 벽을 타고 돈다.”
대단한 노하우는 없다.
이 지하수로는 정말로 완전히 랜덤으로 생성된다.
성배의 짐승이 어느 곳에 둥지를 만들었을지도 랜덤이다.
제니가 저공비행을 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아는 그 비행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제니가 적응이 빠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적응하진 못했다.
한 마디로 이런 숙련도는 없다.
미궁의 의지가 개입하여 보정한 몽환의 숲과 구분되는 점이다.
몽환의 숲은 있는 그대로를 가져온다.
그것에 거짓은 없다. 완전히 똑같은 존재가 잠깐 동안 하나 더 생겨날 뿐이다.
그것을 가리켜 아빠나 이플릭셔스 아저씨는 미궁은 가짜도 진짜로 만들 힘이 있다고 했다.
이 유적은 순수한 마법의 산물로서 그 정도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신좌를 재료로 만들어진 기계장치의 신이 힘을 행사하여 만들어진 곳일 뿐이다.
그러더라도 대단한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기억과 성격을 가져오고.
종족과 스킬을 가져온다.
장비도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복사해서 가져온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더 작은 부분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가족 같은 동료들이면 알 수 있는 작은 것들은 가져올 수 없다.
지금 이 제니는 여전히 친절하고, 미아에게 충실하지만.
‘아마 이 제니가 진짜보다 더 잘 싸우겠네.’
유적 중심부의 공장은 제니를 실제보다 강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럴 수 있을 것 같긴 해.’
종족도 잎사귀 요정 베이스 기천사다.
유니크 스킬은 수위권에 드는 강력한 것들만 탑재하고 있다.
누가 봐도 슈퍼 울트라 베테랑 쌍검사다. 이 파티의 중핵이라고 여겨도 될지도 모른다.
제니는 필살기성 대량 학살에 특화된 스킬셋 덕분에 생각보다 레벨도 높다.
‘뭐, 눈치 챈 티만 안 낸다면 그냥 좀 더 센 제니니까.’
미아는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제니를 찾을 때까지는 쓰자.
미리 안다면 이렇게 이용할 수도 있는 곳이다.
튜닝 제니의 승차감은 나쁘지 않았다.
* * *
로스엘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다음 행보를 결정해야한다.
외곽지역은 안전한 곳이지만 내부는 조금 다르다.
지원이 필요한 파티원이 있을 수 있다.
희우는 누군가 복제되었을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최악은 역시 오빠나 자신, 그리고 아서다.
다른 이들은 약점이 명확하기에 제압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이렇게 셋이면 곤란해진다.
그리고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은 가짜가 아니다.
복제는 이런 기믹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만들어진다.
오빠가 과거에 여기 발을 들였을 때는 그렇게 심문하듯이 구분해야했다고 한다.
이미 균열이 가있던 파티는 그 와중에 조금씩 더 분열이 되었다고 하는 모양.
인원이 많을수록 그런 문제는 더 심화된다. 이번 회차에서 소수 정예, 그것도 가족 같은 환경까지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오빠는 그래서 희우에게 자주 감사했다.
그러나 그 감사를 받은 것은 과거의 희우다.
그 또한 자신이라곤 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얼굴이 빨갛군. 무슨 일이 있나? 귀까지 새빨간데.”
“아따땃따니에요.”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희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을 파닥이며 식혔다.
“수중으로 먼저 가볼까요? 진입하는 루트도 그 편이 더 안전하고.”
성배의 짐승이 얼른 말을 받았다.
[맡겨만 주십쇼! 누님! 저기서 통하는 지하수로로 갈 생각이시죠? 완전히 제 안마당이지 뭡니까. 안 그래도 저기로 가서 한잠 때리려다가 붙잡혀서…….]
“그리고 날 지져댔고?”
[으아아아앗. 꼬집지 마십쇼! 하지만 갑자기 쫓아오면 누구나 그렇게 도망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야.”
손아귀에서 힘을 뺀다. 가만 보고 있으니 은근히 귀엽다. 가만히 손만 모으고 있어도 얌전하고 억울해 보이는 상이다.
그리고 실제로 억울해하고 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수로로 들어가죠. 이 녀석이 있으니까 근처 몬스터를 피해 진입할 수 있을 거예요. 로스엘이, 음. 아무리 그래도 수중 어딘가에 처박혀있진 않겠죠.”
그랬다면 진작 날아올라서 그 특유의 막대한 스크립트를 쏟아내며 요란을 떨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지금 희우는 복제에 대해서 사고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은 복제 후보에서 제외해도 된다.
일단 블랑쉐는 진짜가 확실하다. 디스트로이어가 같이 있다.
저건……. 좀 버그성이라서 장비로 판정이 될지 어떨지도 모르지만, 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만은 확실하지.
제니는 어떤지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중심부 근처로 들어서기 직전이라면 원래의 동료를 최대한 모방한다고 하는 모양이니 또 괜찮다.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할 뿐이다.
“잠시만 기다려줘.”
블랑쉐가 물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디스트로이어에게 마법을 건다. 고양이 주변에 물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기포가 생성된다.
악마의 종족적 재능에 힘입어 블랑쉐는 제법 유능한 마법사가 되었다.
실제로 포지션도 서브 마법사 정도는 된다.
“그러고 보면 디스는 수중사격이 불가능했죠?”
“큰 문제지.”
제니가 디스에게 다가갔다. 디스가 하악질을 했다.
귀가 축 쳐져서 물러난다.
‘흐음.’
약간 수상하다. 평소의 제니는 디스의 근처로 잘 가려고하지 않는다.
이미 디스가 제니를 자기보다 아래 서열로 인식하고 있기에 귀찮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탓이다.
적어도 저렇게 부주의하게 다가가서 만지려고 들진 않을 것이다.
‘후보에 올려두자.’
적어도 블랑쉐는 진짜니까.
“일단 그럼. 흠. 지하 수로를 통해서 유적 내부로 진입할게요. 어차피 숏컷을 이정표 삼으면 다 같이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지난 반년, 여러 파티플레이를 겪으며 여러 가지를 느꼈다.
적어도 리더나 서브리더 정도의 위치에서는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궁과의 싸움은 끝이 없으며 기약도 없다.
그 막막함을 헤쳐 나가는 도전자에게 희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항상 즐겁게.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최면이라도 걸 수 있게.
이렇게 말이라도 경쾌하게 한다면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 와중에 오빠가 보고 싶다.
잠깐 안 봤는데 생각이 난다.
경쾌하게 말해본다.
“예이! 출발!”
전투력 면에서는 지금 이곳의 세명은 아주 훌륭한 조합이다. 대체로 무슨 적이 나타나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다.
어딘가의 동료가 위기에 처했다면 구원하기에도 가장 좋다.
* * *
조금 과거로 돌아가서.
로스엘은 간신히 날아서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고 뒤편에서 웅얼거리듯 유배자 파티의 리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스엘, 탈출 시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실 당신이 복제되는 게 가장 위험하거든요.”
로스엘은 그 발언에 미간을 찌푸렸다.
유배자들은 대체로 미리 알 수 없는 지식을 가지고 온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박식한 유배자는 처음 본 것이 사실이다.
그럼 아는 것일까 로스엘이…….
아니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걸 다른 파티원들에게 알리면 될까?”
“저랑 제니 앞에서는 말하지 마세요. 밖에서 보이면 죄다 복제일거니까요.”
밖이란 것은 이 도가니 같은 것 이야기일 것이었다.
유적의 중심부, 꼼짝없이 갇힐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탈출은 리더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이루어졌다.
당연히 전원탈출은 불가능했다.
사실 로스엘 한 명이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해보였다.
즉각적으로 대응한 리더의 기지 덕분이다.
리더는 탈출할 수 있을 마지막 순간에 자신 대신 로스엘을 내보내는 선택을 했다.
안쪽의 차단문이 더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로스엘은 망연자실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기계무덤과는 달리 세상의 구멍 같은 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평범하게 움직여야할 모양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전기에 지져져 타는 바람에 아주 푸석거린다.
“일단 아무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