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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96화 (39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96화

메인 던전 - Lv.7799 가라앉은 영광(5)

이게 참 골치 아픈 일이다.

개노답 삼남매의 위명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서로의 시너지도 발생하게끔 되어있다.

대표적으로 로스엘인데. 성배의 짐승과 로스엘의 서식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 악질적인 콤보는 의도되어있는 것이다.

“여기를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죠?”

“응, 맞아. 보스룸이거든.”

지금 있는 곳을 둘러본다.

여러모로 장엄하고 장대한 어떤 도가니다.

어째서 도가니라고 불리냐 하면 이곳이 고대 문명의 정수를 녹여낸 곳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좌들을 모아 만들어낸 기계장치의 신, 그것이 이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닫혀있어서 못 들어가. 보스전을 할 수도 없고. 로스엘 루트의 최종보스는 이 녀석이지.”

“루트마다 최종보스가 바뀌는 식인가보네요.”

“이게 제일 어려워. 히든 보스까지 모조리 다 잡는 루트거든. 대신 왕국이 그만큼 안전해지니까.”

다 같이 고른 선택지다.

솔직히 말하면 로스엘이 보여준 어마무시한 친화력이 영향을 끼치긴 했을 것 같다.

뭐, 나도 개인적으로 게임에서의 피곤한 행동AI만 빼면 좋아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로스엘은 관련된 함정이 너무 많다.

이 도가니와의 대환장의 시너지도 그렇고 말이야.

그래서 로딩이 끝나고 [가라앉은 영광 – 신의 도가니]라는 지역 메시지가 떴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로스엘의 존재였다.

그녀가 복제되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시간은 많이 없다. 누군가가 이 안에 떨어진다면 즉시 도가니의 차단문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부에 있는 인원을 복제하기 위해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제와는 약간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진짜’ 제니가 머리를 귀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가 그 기천사를 찍어내는 공장의 원본이군요.”

“맞아, 저기 위에 천상의 도시에서 이걸 열화카피 시킨걸 써먹고 있지.”

“악마들은 뭐 안 해요?”

“그쪽은 기계장치의 신의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어. [지옥] 기억나?”

“되다만 신좌들이군요.”

이 세계에서는 그것이 진작 다 완성이 되었었다.

그리고 악마들의 신은 그것들로 만들어졌다.

사실 그렇게 나눌 필요는 없긴 하다.

기계장치의 신은 본디 하나다.

둘로 나뉘어 져있는 것은 전쟁의 결과물.

“여기 있는 게 [아후라 마즈다], 지옥의 성채 쪽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앙그라 마이뉴].”

“너무 신화적인 이름인데. 우리 그런 거랑 싸워야 해요?”

제니도 인터넷의 바다가 존재하던 현대인이라 상식적인 수준의 신화는 알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주신과 악신이라 하면 그 종교에서 그 신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할 때 난이도를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법이지.

그치만, 그게 끝이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싸워야할 녀석은 둘이 합쳐진 완전한 신이야.”

“……이름은요?”

“[YHVH].”

“테트라그라마톤이잖아……. 유일신인데요? 이길 수 있는 거 맞죠?”

흠. 그러게.

“솔직히 말하지. 미궁에 들어오고 나서 그걸 잡아본 적은 없는데.”

36개나 되는 테마다.

그것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서사와 히든 보스를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걸 내가 다 체험해보기는 불가능하지.

“리더도 모르는게 있군요.”

“여기까지 오면 어쩔 수 없지.”

제니의 귀와 꼬리가 축 처졌다.

“이게 맞을까요?”

“루트 선택?”

“네.”

“아니면 어때.”

“에엑? 그렇게 쉽게요?”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상황이 나오면 전력을 다해 생존하고 돌아갈 뿐이다.

클리어는.

하지 말지 뭐.

“많이 내려놓으셨네. 알고는 있었지만.”

“이게 사랑의 힘이지. 요즘 아침마다 기분이 좋다고. 텐트가 돌아왔거든.”

“아하, 그리고 옆에 서브 리더도 끼고 있다?”

제니의 표정에 약간씩 경멸이 섞이고 있기에 그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제니는 여기가 싫어?”

“여긴 싫어요.”

“그거 말고 우리 왕국.”

“그건……. 좋죠. 싫을 이유가 없으니까.”

“낙원을 만들 수도 있을지도 몰라.”

“튜토리얼에서 흔히 도는 소문요? 왕국은 낙원이다. 거기만 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걸 진짜로 만드는 것도 난 좋다고 생각해.”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런 곳이라면 미궁이 침공을 보내거나 무슨 억까를 하더라도 그대로 살기 좋은 낙원으로 남겨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클리어 하고 싶으시죠?”

“기왕이면 그렇지.”

기왕이면.

최근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말이었다.

“찾았다.”

그리고 도가니 내에서 찾고 있던 문을 발견했다.

이 세계의 건축 양식은 어찌나 장엄한지, 도가니 내부도 순백의 눈부신 벽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사이의 문도 아름다운 금빛 테가 둘러진 조각이다.

문이라기보다는 장식으로 보일만큼 아름답지.

“이런 문이 3개 있단 말이야. 이 검은 3번 쓸 수 있고. 이렇게 샛길로 오는 법을 모르면 나중에 [아후라 마즈다]를 잡고나서 있는 줄 알거야.”

“아, 다른 문은 그럼 다른 도가니에 있겠네요.”

“기계신 계열의 보스가 3개지?”

제니가 깨닫고 눈을 크게 껌뻑였다.

“와, 그럼. [산달폰]을 그렇게 때려잡고. 그 노인에게 그 검을 받고, 숨겨진 보스를 때려잡아야 다 털 수 있는 곳이네.”

“원래 똥겜은 다 그렇게 만들어.”

제니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래도 리더, 미궁의 원본이 된 이 게임 엄청 좋아하죠? 왜 똥겜이라고 말해요?”

흠, 뭔가 제니의 눈빛이 생각난 김에 묻는다기보단 오랜 의문 같은 그런 것이다.

“그거야 뭐. 원래 갓겜하는 사람들은 다 남한텐 똥겜이라고 그래.”

“변태들이구나.”

“그런 거지.”

제니가 다시 귀를 벅벅 긁는다. 고양이라 그런지 털이 날린다.

링 때문에 귀 긁는 게 귀찮아 보인다.

“다른 분들은 다 잘하고 있겠죠?”

“기믹은 다들 숙지하고 있으니까.”

“리더의 복제는 괜찮을까요?”

“으으음. 나라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기억도 그대로 복제한다.

그리고 사실 복제라기보다는 기계장치의 신이 만들어낸 인공물? 안드로이드? 그런 것에 더 가깝긴 하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었다.

도가니 자체는 천사와 악마 인구를 더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니까.

전쟁이 시작되고, 신마저 전쟁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다 보니 만들어진 장치다.

원래 전쟁하다보면 인력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면 복제를 찾게 되는 법.

[몽환의 숲]과 비슷하지만 의도부터 메커니즘까지 전혀 다르다.

* * *

아서는 벽에 부딪혔다.

밖으로 통하는 숏컷은 유적 중심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요약하면 제일 위험한 곳을 통과해야 숏컷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비교적 전력이 괜찮게 구성되어 떨어진 멤버들이라면 아마 같은 쪽으로 향하고 있을 터.

“이 쯤에서 더 나아가지 말고 기다리는 게 옳겠군.”

에길과 제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묘하게 뒤틀린 기천사들은 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강해지고 있다.

점점 인간의 형태조차도 벗어나고 있다.

포션의 소모가 너무 격해지고 있었다.

제니의 보조는 그렇게 고성능이 아니다.

애초부터 의무병이자 마법사의 탈것이 제니의 메인 포지션이니까 말이다.

“차라리 더 약한 녀석들이 있는 주변을 정리하며 합류를 기다리죠.”

“우리가 이렇게 전사끼리만 모인 것을 보면 다른 쪽은 리더나 서브 리더가 섞여 있을 거고.”

그렇다면 유틸리티를 보유한 멤버들도 그쪽에 있을 확률이 높다.

전사 셋이서 여길 더 진행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자살방식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무기도 아직 손에 익지 않은 게 큽니다.”

“크흠, 크흠.”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 마법을 내가 좀 더 잘 쓸 수 있어야 했던 것 같군.”

실제로 아서는 전투 중에 마법을 조금 활용해보려고 노력했다.

돌아온 것은 강력한 마법울렁증과 그 때문에 생긴 빈틈이었다.

제니가 구원하지 않았다면 아서의 모험은 여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에길이 눈을 부릅뜨고 술식을 구축하는 척도 하지 말라고 그랬다.

아서는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내심 슬퍼진다.

그, 왜.

막내딸 같은 블랑쉐보다 못하는 게 있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데빌이 아니라 데몬이 되어야 했을까?

“우선은 베이스 캠프를 구축하도록 하지.”

게이트를 드나들 때도 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 지역에서 안전한 곳, 그나마 안전한 곳을 만든다는 개념.

이런 던전 내부에서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간이 필요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게 아니라 어딘가 적절한 건물 내부를 청소하고 방어 준비를 갖춘 다음, 표시를 남겨 동료들을 부른다.

제니가 말했다.

“저공비행으로 좀 찾아보고 올게요.”

“부탁하네.”

비행이 셋 중 가장 익숙하다.

제니 역시 손녀 같기는 마찬가진데. 크흠.

아서는 다시 헛기침을 했다.

에길이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딱딱한 영감님이었던 노기사를 서브 리더나 마법사가 잘도 녹여냈다.

최근에는 눈매마저 바뀐 기분이 든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에길도 깔끔하고 단정한 수염을 가지게 되었음은 다를 것 없지만.

제니가 자리를 비우자 아서가 물었다.

“복제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이 도심지 중심부에 있는 도가니에서 유사 기천사들을 찍어내던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우리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고.”

“저 안에 원본인 우리 파티원 중 몇 명이 갇혀있겠지.”

여기까지 알고 있다면 서로는 진짜다.

“역시 제니겠군.”

“너무 잘 싸웁니다.”

제니의 실력은 안다. 눈물 나게 노력하고 있는 것도 안다.

한 명의 전사로서 이런 곳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당당한 1인분으로 거듭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청했던가.

그럼에도 유배자가 되기 전부터 생사를 건 전장에서 돌아다니던 이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의 제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이기기는 하겠지요.”

“쉽지 않겠지.”

그 정도였다.

스펙에 맞춰 설정된 노련함이란 게 그런 것이다.

제니는 아직도 실력이 스펙을 따라가고 있지는 못하니까.

“그 덕에 도움은 받았지만.”

“이곳의 기믹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이곳의 복제가 가지는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몽환의 숲처럼 마음이 아프건 말건 어차피 사라질 환영이 아니다.

본체와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흡사한 능력을 가진 또 하나의 객체다.

이미 저 제니는 제니A라고 불러야할 존재다.

제니가 돌아오고 적당한 건물이 발견되었다.

천상의 도시처럼 이상할 정도로 장엄함을 강조한 비현실적인 양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은 모습이기에 구조도 대강 알 것 같다.

내부에는 뒤틀린 천사들이 많았다.

정리를 시작하면서 깃발을 올렸다.

이지가 없는 몬스터들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이런 식의 신호가 잘 통한다.

깃발은 서브 리더가 디자인하여 깜찍한 민트색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물론 정리라고 해도 그게 쉬운 것은 아니다.

포션의 소모가 점점 더 격해진다.

“사실 여기까지 진행한 것도 이미 판단 미스일 수 있겠어.”

에길은 조용히 입을 가물었다.

실로 바이킹답게 전진을 주장했던 것이 그다.

아서 혼자만 판단했다면 조금 더 일찍 멈춰 섰을 것이다.

“그러면 제가 앞에 설까요?”

제니는 물론 그럴 수 있는 스펙이다.

스펙은 말이다.

아서가 대답했다.

“그거 고맙군.”

“뭘요.”

* * *

왕관의 검이 꽂히고 문이 열린다.

지이이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한때 찬란했던 문명의 유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라이아이스 같은 연기가 주변으로 흘러내린다.

“물러서서 보고 있자고. 저거 보존을 위해서 굉장히 뭔가 안 좋은 게 많이 함유된 연기거든.”

이 창고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수 만년?

제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면 로스엘은 뭐죠?”

“응? 로스엘?”

“그, 조심하라고만 말했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진 말하질 않았어요. 로스엘도 [위대함의 편린]인가요?”

아, 그 말이었군.

“맞아. 로스엘도 산달폰과 동급인 세피로트의 천사지. 그래도 이 루트면 보스로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개노답 삼남매에는 이유가 있는 법.

자기 편들어주는 루트 빼고는 전부 보스로서 등장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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