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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04화 (40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04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3)

많은 일이 어그러졌지만 아서는 그래도 리더를 믿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예지일 뿐이다.

경험과 지식, 그리고 감각이 모두 쓸모없어지진 않았을 터.

그렇기에 아서는 갑작스럽게 [아후라 마즈다] 공략이 시작되었을 뿐인 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어차피 쓰러트릴 보스다. 정보는 가지고 있고 대처법도 안다.

광탄은 끊임없이 날아들 것이다.

그 한발 한발은 충분히 치명적이지만 정밀하게 쏟아지지는 않는다.

대충 초토화시키면 죽을 것이다 같은 식의 융단폭격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침착하기만 한다면 살길은 있다.

최우선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한 자리에 머무르면 안 되는 것.

아서의 그룹이 있는 방면에 다른 블록이 와서 부딪혀 연결되었다.

“빨리 건너갑세!”

가장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어딘가로 이어줄 것이다.

블록 하나하나의 크기는 그리 작지 않다.

효과적인 이동을 위해서는 미리 자리를 잡아야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통제실에서 블록을 이어줬다.

제니가 말한다.

“공략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게 맞겠죠?”

아서가 이미 일러주었기에 제니 역시 상황을 숙지했다.

애석하게도 이 제니는 원본 제니보다 기억력도 더 좋은 것 같다.

진짜 제니는 미아를 위해 합을 맞출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곤 했다.

에길이 함성처럼 대답한다.

“물론이지! 이런 돌발 상황 대비는 늘 해왔으니까!”

아서 역시 그리 생각했다.

뿔뿔이 흩어질 일은 생각보다 많다.

리더의 말에 따르면 그래야만 공략이 성립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단순 인해전술로 공략을 시도했을 때 굉장히 고생했던 이유라 한다.

블록들은 본래 네모반듯한 정육면체여야겠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깎여나가 있다.

그냥 점프로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이젠 비행도 가능하다.

아서는 자유비행이 가능한 종족의 이점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인간으로 남은 것은 그가 브리튼의 왕임을 증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을 버리게 된 것도 리더 덕분이다.

누구보다 이 세상을 잘 알기에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에 괴로워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가고 있다.

아서는 사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가 있고, 그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아서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리더의 고민 또한 리더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고 나아가는 일은 또 다른 영역이다.

아서는 비로소 자신이 미궁을 제대로 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NPC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겪지는 않은 것 같아 보였으나 사실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집착하는 것은 의외로 많은 유배자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아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붙들려 있었다.

물론 지금도 돌아가는 것은 목표다.

하지만 돌아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이유는 없다.

아서는 힘이 있기에 고집을 부렸다.

메인 던전은 그래도 되는 곳이 아니다.

건너간 블록은 숲이었다.

제니가 어쩐지 반갑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잎사귀 요정이니까 종족 혜택을 본 적은 많았는데. 숲에 있는 요정들을 만나면 대접 받거나 좋은 장비를 얻기도 했거든요.”

“그루터기 요정들 말인가?”

“네, 맞아요. 여기도 그루터기 요정이 살 것 같은 숲이네요.”

실로 그러하긴 했다.

아서도 에길도 리프트 경험은 많다.

요정의 숲이라고 부르기 적절한 울창하고도 아름다운 숲이다.

적당한 지형의 고저차도 있어 더 그랬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경 같은 모습이리라.

모서리가 많이도 갈려나간 탓에 제법 날아서야 반대편에 도착했다.

“숲이라. 숲이면 그거지.”

“힐링 포션?”

“가끔 미래 시기에서 만들곤 하는 가짜지만 이 정도 문명에서 만들어낸 것은 한없이 진품에 가깝지.”

회복의 샘의 성분은 그냥 물에 마력과 신성.

고로 신좌가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신성의 총체인 기계신은 굉장히 흡사한 것을 만들었으리라.

“제니, 색적을 부탁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서 역시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제니는 스킬로 색적을 한다면 아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한다.

마인드맵을 띄울 필요도 없이 숙련된 공감각 상태에 진입한다.

세상의 바람 한 올까지 읽어 들여지기 시작한다.

아서는 이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랜슬롯이 상대라도 주먹질로 두들겨 팰 수 있겠지.

돌아간 뒤에도 할 수 있을까?

제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서는 숲 사이를 질주하며 끄덕인다.

에길은 체격의 문제로 나무 사이를 쉽게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부수게.”

곧바로 도끼가 길을 낸다.

진짜로 요정이 있을 리도 없다.

분노를 살 일도 없다면 마음껏 훼손한다.

그러다가 아서가 손짓했다.

“잠시만. 앞에 무언가 있다.”

제니가 다시 스킬을 가동했다.

그리고 귀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원래 귀가 밝은 잎사귀 요정에 가뜩이나 민첩직인 제니가 그 기반 그대로 기천사가 되었다.

민첩하고 다시 한 번 민첩한 직종이다.

복제 제니가 책정 받은 기술의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제니는 충분히 고스펙이다.

아서가 조금 더 멀리서 느낀 것을 스킬의 보정에 의해 제니가 더 정확하게 알아낸다.

마력탐지보다 범위는 좁지만 정밀도는 더 높다.

그것이 스킬이니까.

“단순 짐승은 아니고, 적이 맞는 것 같은데요? 심지어 숫자가 그리 적지도 않네요. 열댓 정도 돼요.”

“형태는?”

“인간형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이런 구조물에서 인간형의 적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보통은 안전지대며 소수의 적이 있더라도 그것은 짐승을 흉내 낸 어둠이다.

에길 역시 그 사실을 안다. 그가 말했다.

“이미 [아후라 마즈다]가 지금 스폰 된것부터 크게 어긋난 것 아닙니까. 보이는 것을 믿어야죠.”

리더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미궁은 로그라이크다.

일어난 일만이 사실이다.

“적인지 확인부터 하고 강행돌파한다. 그래도 뭔가 있다면 그 주변이 바로 샘이겠군.”

포션 병은 텅텅 빈 참이다. 전사만 덩그러니 셋인 그룹에서 부상 없이 전투를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사는 치고받는 클래스이며, 소모되는 클래스니까.

“적대행동이 보이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습한다. 어차피 샘이 있다면 전투는 우리에게 유리하겠지.”

다수의 약자와 소수의 강자가 서로 무한히 회복한다면 소수의 강자가 승리하는 법.

그 소수의 강자라는 말에서 아서는 리더가 왜 그렇게 소수 정예를 소리 높여 외쳐댔는지 알 수 있었다.

다수는 변수가 너무 많아지며 소수는 스펙에 짓눌리기 십상이다.

이렇게 고정 NPC 파티를 꾸리는 것이 그가 도달한 정답이리라.

평균 레벨 4천이 넘지 않음에도 5천 레벨의 몬스터를 약자로 취급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기준 하에 단련했다.

뿔뿔이 흩어져? 그룹에 전사밖에 없어?

싸워야 한다면 당연히 이길 수 있다.

“혹시 모르니 내가 엑스칼리버를 들고 있겠네.”

“상정외의 사태니 그게 옳겠습니다.”

비장의 무기라면 모두 하나씩 들고 있다.

아서가 가장 강력하다.

쌍대검의 상태로 전진한다.

에길은 도끼를 크게 펼쳤다.

제니가 알아보고 곧바로 앞장선다.

아까 했던 것과 같다. 제니가 특유의 민첩함으로 잠깐이라도 시선을 먼저 끈다면 에길의 일격필살이 들이닥친다.

완전한 기습으로 그런다면 어지간한 적은 일격에 제거하고 시작할 수 있다.

보인 것은.

“요정과 샘이군.”

그러나 상태가 이상하다. 그루터기 요정은 보자마자 그 이상을 알 수 있는 종족이다. 온화하고 또 온화하여 도무지 적대감이 들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그 주변만 갑작스레 동화가 되어버리는 감각이 있다.

그보다는 음침하고 어두웠다.

거기에 이곳에 그루터기 요정이 있을 리가.

“요정 친구들?”

일단은 잎사귀 요정의 모습인 제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요정들이 뒤돌아본다.

미친 요정조차도 아니다.

“벤다.”

아서는 엑스칼리버를 들고 휘두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에 먼저 제니가 파고든다.

유니크 액티브 [파편의 무기]

길게 늘어난 쌍검이 화려하게 교차했다.

다만 제니의 공격력으로 일격에 베어내진 못했다.

벌써 요정이 아니라는 증거다.

어둠이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요정을 흉내 낸 어둠 정령이다.

에길은 중얼거렸다.

“신성한 분노여…….”

서브 리더의 아담한 단검에서 타오르는 화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빛속성 불길이 타오른다.

거대한 양손 도끼가 그대로 들어 올려진다.

에길은 높이 뛰어올랐다.

[낙하 가속]

[스트라이킹]

[초강격]

에길의 스킬셋은 대부분 버프와 한방 액티브로 이루어져있다.

그렇게되면 극딜의 순간 버프의 배분도 중요해진다.

적의 내구도를 파악하는 눈썰미도 중요하다.

에길이 그간 해온 훈련은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다.

제니가 날개를 펴고 가속해 벗어난다.

그 위를 그대로 빛으로 타오르는 도끼가 강타했다.

펑하고 토사가 튀어오르고 주변 나무가 쓰러진다.

아서는 엑스칼리버를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잠깐 바닥에 꽂아버리고 양손으로 아다만타이드 대검을 쥔다.

악마가 된 후의 신체능력 향상은 확실히 체감된다.

아직도 유지되는 공감각 속에서 스킬연계대신 강력한 일격을 위해 몸을 낮춘다.

암습 판정은 아니되, 물리적으로는 암습에 가까웠다.

남은 요정 몇이 베어진다.

그러나 허리가 절단되더라도 애초에 생물이 아닌 어둠들은 스멀스멀 움직였다.

“에길, 제니. 자네들이 마무리해야겠군.”

아서는 그 순간부터 무력화에 집중했다.

제니도 신성한 불길을 켜고 정리에 집중했다.

열댓 정도의 가짜 요정은 거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샘이 그들을 치유하는 일은 없다. 생물이 아닌 것은 치유 받을 수도 없다.

아서는 담담히 평했다.

“실제 요정을 많이도 흉내 내었군. 덕분에 내구도도 그 정도야. 이런 식으로 맞춰 가면 되겠군.”

에길이 끄덕인다.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리더에게 들은 적은 없다.

그래도 임기응변으로 해낼 정도는 충분했다.

그리고 아서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더 오는데.”

“이번엔 요정 사이즈는 아닌데요.”

괴성이 울려 퍼졌다.

물리적인 괴성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짙은 어둠이 온 사방으로 번져가는 듯한 힘이었다.

만약 이곳에 튜토리얼을 함께 했던 파티원이 있었다면 알아보았을 것이다.

어둠의 정령왕과 아주 흡사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13층을 경험한 자는 이 자리에 없다.

지식으로는 안다.

“필드 보스급이군. 다들 도핑 준비.”

종족을 바꾼다는 것은 다른 효능도 낸다.

진짜 샘은 아니지만 한없이 그에 가까운 성능을 내는 이 샘물은 당연히 도핑효과도 있다.

제니는 포션 병을 채우고 자신의 피를 내어 도핑했다.

기천사의 피는 당연히 속도 관련의 효능을 낸다.

아서는 에길에게 병을 던졌다.

에길은 병 두 개에 자신의 피를 섞으며 물었다.

“얼마나?”

“단기결전일 수밖에 없지 않나.”

에길은 피를 더 강하게 내었다. 동맥이 베이고 콸콸 쏟아져나온다.

도핑의 효과는 피의 성질을 따르나, 그 강도는 피의 농도에 따른다.

샘물이 10%, 피가 90%.

효과는 5분에 불과할 정도로 짧아도 강도는 최대다.

병을 다시 던지고 샘에 채운다.

“샘으로 끌어들이면 안 되네. 이건 부서지거든.”

“다음 광탄이 곧 날아오겠군요.”

“어둠의 대정령 정도 되는 존재니까 광탄에 큰 피해를 입겠지.”

제니가 검을 단단히 그러쥐며 대답했다.

“유인해볼게요.”

“부탁하지.”

착착 맞춰 돌아간다.

리더가 없어도.

그리고 알고 있는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그들은 최고의 유배자이며, 도전자들이다.

셋의 머릿속에서 사소한 것이 모두 날아갔다.

온전한 집중.

이미 상처를 입어 어둠을 줄줄 흘리고 있는 괴수가 나타났다.

실체화된 어둠, 결정화된 어둠.

어찌 불러도 좋다.

에길이 드라간을 떠올렸다.

“실체가 없어도 두들겨패는 것이 전사. 하지만 실체가 있다면 더 잘 두들겨 패는 것이 전사지.”

드라간에게는 많은 것을 배웠다.

거센 불길이 타오른다.

[신성한 분노]가 끝나기 전에 찢어발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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