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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10화 (41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10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9)

마법의 보조를 받는다면 기천사는 훨씬 더 자유롭게 날 수 있다.

미아가 걸어둔 온갖 보조마법은 천사의 마법 저항력을 솜씨 좋게 우회하여 효력을 발휘했다.

제니는 관성과 중력, 그리고 질량 따위의 물리력이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될 예정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다. 미아도 제니도 보조적인 포지션을 맡고 있다.

애초에 전투원이 아니니 직접 전투는 좋은 판단이 아니다.

그러니 미아가 알고 있는 공략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단순하다.

[리프트]나 [왕국의 문]의 확보.

찾아만 낸다면 그것들은 이 맵의 전술적 오브젝트로서 기능할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일이 어그러졌다.

뒤편에서 강력한 마력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진다.

제대로 가공된 공격이 날아드는 것은 아니다.

뒤틀린 기천사들이 솜씨 좋은 마법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저것은 그저 가진 에너지를 원소로 가공하여 내뿜는 공격이다.

* * *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도 같다.

쥐 죽은 듯이 품속에 안겨있던 미아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그리고 제니를 노리고 날아오던 광선 앞에 마법 방벽이 펼쳐졌다.

비스금한 각도로 형성된 그 방벽은 경사장갑처럼 작용했다.

광선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지만 그 궤도를 틀어놓는 데는 성공한다.

제니는 옆을 스쳐 저 앞까지 내달리는 광선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안 되겠다. 미아양. 다시 지하로 내려갈게요.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아요.”

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체력이 너무 저하되어 휴식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공중으로 필드가 떠올랐다.

이 새로운 필드에서도 전투 없이 몰래 진행하는 것은 가능했다.

미아는 왕국에서도 대체할 수 없을 수준의 마법사이며, 작정하고 숨어 다니기만 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소리는 사일런스가 지울 것이며 모습은 투명화가 지운다.

스킬로 발동하는 것 이상의 정밀한 마법은 결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은밀함을 제공한다.

“어째서 저것들이 여기까지 내려오는 거지?”

제니가 처음 보자마자 기겁했던 괴조들이다.

하나하나가 필드 보스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식으로 깔린 맵 기믹들은 이미 많이 보아왔다.

정면 돌파가 아니라 정해진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을 유도하는 장치들.

어떤 식으로건 블록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괴조들이 막아설 것이다.

저 대량의 보스급 몬스터들과 동시에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더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것들은 사실 이 맵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으아아아악!”

날개가 진동한다.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했다.

품속의 미아가 신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보조마법이 걸려있다고는 해도 뒤따르는 괴조들 역시 기천사다.

뒤틀려있고 질량도 크니 비교적 굼뜨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일 뿐.

최대 속력을 내지 않고 곡예비행만으로 따돌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서브 리더라면 모를까 제니는 그렇게까지 잘 날지 못했다.

블록은 크지만 초음속으로 난다면 금세 가장자리까지 도달한다.

뒤로 비둘기 떼만큼이나 많은 천사들이 따라오고 있다.

거대한 괴조들도, 비교적 작고 톡토기처럼 땅 위를 튀어 오르는 괴물들도.

광선이 몇 발 더 날아들었다.

자기들끼리 상쇄되면서도 뒤엉켜 제니의 등을 노린다.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또 마법진이 대량으로 나타나며 흘려낸다.

가슴을 쓸어내린 다음 순간, 눈앞의 건물에서 무언가가 뛰어 올랐다.

미아를 단단히 안고 있는 왼팔 대신 오른손만으로 검을 휘두른다.

충돌과 동시에 서로 튕겨나갔다.

그 말은 추격해오는 것들의 눈앞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다.

제니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푸른 섬광이 번뜩이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미아가 우웩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마법을 구사하는 것도 체력을 소모하기는 한다.

그 많은 술식들을 뇌 내에서 정리하고 암산으로 구축하는 일인데 어찌 정신만의 일일까.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참아요.”

그렇게 속삭이고 다시 날개로 가속한다.

제로백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다.

몸에 걸린 보조마법의 지속시간이 다해감도 느껴진다.

이 감각도 익히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눈앞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적들이 나타났다.

이 거대한 도시에는 그 이상으로 밀도 높게 괴물들이 깔려있다.

대체 기계신은 얼마나 몬스터를 찍어낸 걸까.

갑자기 눈앞에 괴조가 한 마리 나타난다.

제니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방향을 틀었다.

아직 남은 보조마법이 관성을 거의 지워주었다.

그럼에도 괴조는 너무 크다.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직각을 그리며 방향을 틀었지만 급강하해온 괴조가 휘두르는 발톱이 눈앞까지 날아들었다.

제니는 거의 본능에 가깝게 왼쪽으로 틀었다.

안겨있는 마법사 대신 제니의 오른쪽 어깨가 발톱을 받아낸다.

“컥!”

비행 속도가 더해져 그대로 물리적 충격이 되었다. 검을 놓친다. 마스터리 보정이 빠져나간다.

벽에 처박히고 튕겨나가 다시 반대편으로 처박혔다.

우연찮게도 그곳에 창문이 있었다.

강화되었음에도 창은 창이다. 유리인지 뭔지도 모를 것이 부서지고 안쪽을 구른다.

벽을 구르다가 바닥에 긁혔다. 피가 쏟아진다.

왼팔도 넝마가 되었다.

미아가 부딪히는 것만은 간신히 막아내었다.

그리고 작은 천사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먹잇감을 보고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았다.

입에 머금고 있던 포션을 삼킨다.

놓친 검 대신 새로운 검을 하나 꺼내들어 그것의 발톱을 막아내었다.

마법의 술식이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다시 공간이 일그러지고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왔다.

또 다른 실내였다.

옆 건물일까?

미아가 토했다.

이제 게워낼 것도 없어서 하얀 점액만이 조금 흐른다.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안함만이 차오른다.

“……차라리 집 안쪽에 숨어들자.”

미아가 느릿느릿 말했다.

어차피 이미 건물의 안이었다.

괴조가 내는 괴성이 근처에서 들린다.

작은 것이 내는 기기긱 하는 소리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광탄이 온 사방을 파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들어온 구조물도 흔들린다.

제니는 감각을 곤두세우는 대신 곧바로 행동했다.

유적은 쓸데없이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사람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가지런한 곳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곳, 창도 없고 문도 하나 뿐인 작은 방으로 숨어든다.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미아를 침대에 눕혔다.

얼굴이 창백했다.

체력의 고갈은 포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걱정스레 들여다보는데 피가 뚝뚝 떨어졌다.

무엇인가 했더니 자신의 머리에서 나는 것이다.

“제니, 덜 나았어.”

“하지만 포션을 더 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시야를 가리진 않을 테니 그냥 이대로 있을게요. 아니다 불로 살짝 지져줄래요?”

계속해서 운신에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만 회복하며 도망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미아가 내려달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딱딱한 바닥을 짚고 다시 구역질을 한다.

뱀파이어에서 생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데몬이 축 늘어졌다.

그 상태에서도 조심조심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포션 얼마나 남았어?”

잔량은 체크하고 있다. 절반가량 남았다.

“도핑하자.”

제니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아는 이제 언데드가 아니다. 포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도핑 역시 마찬가지다.

“체력이 필요해…….”

제니는 제 피를 얼른 남은 포션의 절반에 섞었다.

회복 수단이 사라지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아는 이대로 가면 어차피 마법을 쓸 체력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거기까지다.

로스엘은 일단 저 알 수 없는 추진력의 블록을 무시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리더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가장 위급한 것은 그게 아니라 마법사 쪽이다.

다른 그룹들이 지하로 들어가 버리니 그쪽에만 어그로가 모조리 쏠려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기적으로 쏟아지는 광탄이 그 주변을 같이 청소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바람 앞의 등불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로스엘은 저들을 탈출시켜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일단 가까이 있는 몬스터가 없거나 적은 블록을 모조리 찾아냈다.

그리고 그걸 전부 동시에 옮기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있는 블록 자체도 계속 움직이고 있다.

괴조들이 더 모여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수염쟁이들이 있는 샘의 블록임을 깨달았다.

“앗! 앗! 붙이면 되겠다. 수염쟁이들이 구해줄 거야!”

아닌가?

다시 블록 위를 화면으로 살핀다.

뭔가가 엄청나게 많다.

정말로 많다.

“아닌가?”

하지만 수염 쟁이들이 로스엘보다는 똑똑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로스엘은 어찌되었건 열심히 블록을 옮겼다.

“빨리 가라! 빨리 가!”

블록을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속도로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오버클록도 끝났다. 이제 머리도 잘 굴러가지 않는다.

로스엘은 시무룩해졌다.

“어떡하지?”

안 눌러본 버튼을 눌러보기로 했다.

통제실에는 버튼이 많았다. 직관적인 방향키 이외에도 뭔가 잘 모르겠는 잡다한 시설들.

로스엘은 그 중 위험해 보이는 빨간 버튼을 하나 눌러보았다.

지도에 반응이 있었다.

불그스름한 아이콘이 생겼다.

뭔가 뒤에서 내뿜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다.

로스엘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도중 한 칸을 다 움직인 마법사의 블록이 멈췄다.

로스엘은 그 블록을 눌렀다.

빨간 아이콘이 그 위로 옮겨지더니 테두리가 되어 새겨졌다.

“뭐지?”

뭔가 잘못했나?

모르겠다.

이제 지도상의 수백 블록 중에 단 하나만 빨간 테두리가 둘러져있다.

붉은 색은 보통 경고의 표시다.

혹시 폭파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일단 조심스럽게 방향키를 눌러 다시 움직이게 한다.

모든 블록들은 한 번에 한 칸을 움직인다. 일일이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게 된다.

어서 빨리 합류 시켜야한다.

그리고 마법사의 블록이 급발진했다.

“어?”

통상의 열 배 정도 되는 속도로 쏘아진 블록이 엄한 다른 블록과 충돌했다.

쾅!

정말로 쾅이었다.

그 소리와 진동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어라?”

로스엘은 생각했다.

이거다!

다른 버튼도 눌러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형형색색 빛나는 버튼들을 보며 로스엘이 눈을 반짝였다.

그때 화면에 표시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급발진한 블록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블록 위의 괴조들과 몬스터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오 세상에.”

잘은 모르겠지만 블록은 흔들어서 몬스터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로스엘의 손가락이 기천사다운 어마어마한 속도로 방향키를 연타했다.

마침 마법사는 집 안에 들어가 있다. 휩쓸려 날아가진 않을 것 같다.

블록이 거의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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