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11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10)
스킬과 함께 미궁이란 곳에 존재하는 시스템적 보정의 정수, 그것이 포션이다.
많은 일에서 그렇듯이 미아의 마법 스승이자 양아버지는 그것에 관해서도 메커니즘을 확인 해두었다.
도핑은 생물의 피를 포션에 섞음으로서 효력을 발휘한다.
치유기능은 잃으며, 스탯에 고정 수치만큼의 보정이 가해지는 식으로 작동하기에 고레벨일수록 효과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으로 마법에 특화되어있는 미아의 상태라면 마법적 도핑은 크게 의미가 없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으나 딜을 조금이라도더 끌어 모아야하는 딜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적인 스탯은 그만큼 바닥을 설설 기고 있다.
기천사는 민첩의 종족값이 높지만 힘도 충분히 높다.
제니의 피는 미아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어지러움이 가셨어.”
“다행이네요.”
생물의 몸은 언데드일 때와 다르다. 상처도 신경써야하고 체력적 컨디션도 신경 써야한다.
미아는 흡혈귀로 너무 오래 지냈다.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마법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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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맑아진 정신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탈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저 괴조들은 [투명화]나 [은신]같은 걸로 따돌릴 수 없어 보여.”
실제로 그래서 덜미를 잡혔다.
감지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비행 방지용 맵 기믹에 가까운 것들인데 몬스터로 돌변했어. 정해진 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거지. 그럼 우리도 그럴 이유가 없어.”
미아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게 더 좋다.
마법사로서 가장 중요한 소양은 발상의 전환.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안 된다.
아빠는 늘 그런 점을 강조했다.
왜 안 되는지 다 뜯어보고, 개선점을 찾아 결국 이루어내는 것이 마법사다.
이 경우는 공략에 대해서 그렇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맵 기믹은 망가졌고, 우린 날아서 도망칠 생각을 해야 할 거야.”
블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도핑의 효과가 남아있는 동안은 제니도 더 빨라진다.
연속된 단거리 공간이동으로 보조할 수 있다면 더 빠를 것이다.
“한 번에 다른 블록까지 공간이동 하는 건 무리겠죠?”
“그건 무리야.”
마력보다는 신성이 흐르는 땅이기도 하고, 거리가 너무 멀다.
낯선 곳에서 아무런 유도 없이 장거리 공간이동을 하는 것은 소극적 자살행위다.
“그럼 제가 더 잘 날아야겠네요.”
“피를 얼마나 탔어?”
“30분은 지속될 거예요.”
“격추되면 끝이니까 그 시간 내에 동료와 합류하거나 적어도 베이스 캠프를 만들 정도로 안전한 곳에 도달해야해.”
광탄도 문제긴 하다.
애초에 난관은 사방에 널려있다.
지금도 괴조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참이다.
광탄이 쏟아지며 저것들도 죽어나가겠으나, 그만큼 자극 당해 사방으로 날뛴다.
인식 당하기 훨씬 쉬운 상태다.
미아는 제니를 보았다.
아가씨를 모시는 충직한 집사처럼 미아가 결론을 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니는 너무 좋은 사람이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가 행동을 보이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을 누군가도 호응해줄 것이다.
비행을 생각보다 오래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블록이 움직여서 다가온다면 그곳에 착지하면 될 일.
괴조들을 대량으로 끌고 날게 되겠지만 마지막 순간의 스퍼트로 따돌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조합하여 짜낸 결론이다.
“탈출하자!”
제니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상이 마구 요동쳤다.
약 5초간의 난타 끝에 로스엘은 유적 도시의 벽이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것, 그리고 그 충격이 실내의 유배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멈췄다.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괴조들 상당수가 멀리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아예 추락한 녀석들도 있다.
적어도 땅이 아닌 공중으로 다시 날아오르게 만들었다.
효과가 있었다.
로스엘은 지도를 보며 다른 블록들을 서둘러 움직였다.
돌발 상황 자체는 하루 이틀 겪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일이 없다면 그걸 의아해하며 더 경계하게 되는 곳이 미궁이란 세계.
미아는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스럽게도 악마는 물리적 공격에 강했다.
그리고 방금 그 진동은 공격 수준의 위력이 있었다.
“제니, 괜찮아?”
반대로 이렇게 물어야했다.
제니는 첫 진동의 순간에 이미 미아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가능한 충격을 흡수하는 형태로 몸을 말았다.
“괜찮아요. 음, 팔이 좀 저리네요.”
저린 수준이 아니었다. 부러졌다.
“이건 좀 좋은 일이 아닌데.”
마법으로 응급처치를 하려고해도 마법 저항력이 높은 천사의 신체를 그렇게 하긴 힘들다.
“오른팔만 부러졌으니 미아를 안고 나는 것은 문제없어요.”
미아는 마력 탐지를 터뜨렸다.
제니가 소스라친다.
“그러면 바로 위치가 들키는게?”
“제니가 한순간에 그렇게 다칠 정도였으면 바깥은 더하겠지.”
사실이었다.
깨끗하게 일소되었다곤 못하지만 날뛰던 것들 상당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그 격렬한 흔들림에 대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 나갔겠지.
“지금이야. 지금.”
바로 지금이다.
술식을 짜 올린다.
맑은 정신으로 캐스팅을 시작하자 한결 편안하다.
체내에 보존해둔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니가 얼른 미아를 안아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지기 직전의 보조마법들이 리셋된다.
미아가 손가락을 튀겼다.
발동을 위한 동작은 술식을 가동 시키는 시동어다.
캐스팅의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쪽의 중요도가 올라간다.
미아는 많은 마법사들이 택하는 방식을 골랐다.
“필요하다면 시간의 성물이 박힌 지팡이를 쓸게.”
단순한 시간 정지는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신성한 존재들인 이곳의 괴물들은 금새 파악하고 따라올 것이다.
[아케인]의 번개술사가 사용하던 지팡이의 성물도 어차피 수명을 다해가는 참이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참상이 보이고 있다.
널브러진 괴조들과 그에 휘말려 무너진 건물들.
제니가 인상을 썼다.
대체 얼마나 격렬하게 흔들렸으면 이 단단한 구조물들이 부분적으로 허물어지지?
“로스엘이겠죠?”
“틀림없이.”
리더가 이렇게 섬세하지 않은 컨트롤을 할 리가 없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막나갈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오히려 미아다.
“가속 관문을 설치할게. 그곳을 통과해서 가속해도 될 것 같아.”
일시적으로 사방의 몬스터들이 그로기에 빠졌다.
그렇다면 더 빠르고 멀리 도망칠 수 있게 사전 작업을 잠깐이나마 할 수 있다.
제니가 겁에 질렸다.
“그거 죽는 거 아니겠죠?”
종종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투사체를 가속하여 위력을 올리는 것에나 쓰는 마법이다.
더 정확하게는 미아가 만들어낸 마법.
“괜찮아. 방향만 잘 설치하면 문제없어. 변수라면 내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접근하는 괴조인데, 그건 맡길게.”
“전 정말 이런 일이 싫어요.”
“하지만 나는 좋지?”
“어쩔 수 없네요.”
미아가 캐스팅을 시작하는 동안 제니가 날았다.
너무 빠르게 날지는 않았다.
고도를 유지해서 미아가 충분히 멀리 내다볼 수 있게, 그리고 지금 그들을 관찰하고 있을 통제실의 로스엘이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말이다.
“어라, 그냥 날아갈 생각인가?”
다행스럽게도 로스엘은 그 의도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아닌데!”
마법사는 과연 바보가 아니었기에 광탄이 날아가던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파티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잡는다.
문제라면 이동을 이미 많이 했다는 것.
로스엘은 수염쟁이들의 블록을 열심히 옮기고 있었다.
그래서 방향이 다르다.
“저 저저 저 방향으로 빨리 다시 옮겨야해.”
빨간 버튼을 다시 눌러보았다.
방금 흔들었던 마법사의 블록에 둘러진 테두리가 사라진다.
또다시 누르니까 아이콘이 반짝인다.
로스엘은 깨달았다.
“이런 기능이구나! 다른 기능도 알아둬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실험을 할 때가 아니다.
무언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미 방향은 정해졌고 저들은 출발할 것 같다.
지금 저 블록을 흔들 수는 없다.
일단 수염쟁이들의 블록에 테두리를 둘렀다.
부스터가 적용된 블록을 움직이자 쏜살처럼 날아가기 시작한다.
저쪽도 마찬가지로 블록 내부에 들어가 있으니 날아가 버리진 않으리라.
그리고 로스엘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걸로 가속 시켜줄 수 있겠는데?”
바로 테두리를 다시 바꾼다.
“하지만, 땅을 딛고 있지 않으면 못해주잖아.”
로스엘은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또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방향키를 아주 살살.
정말로 살살 눌러보았다.
부스터가 발렸음에도 마법사의 블록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빠르게.”
압력을 더 가하자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연 옛 수도의 기술력.
이 왕국을 지배했던 기계신의 기술력이다.
이런 즉각적인 반응성이라니.
로스엘은 열심히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흔드는 것이 아니라 블록에 시동을 걸 듯이 부릉부릉하는 식으로 말이다.
“로스엘이 우리에게 뭔가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캐스팅하다가 머리를 부딪친 미아가 말했다.
그 정도에 끊어질 캐스팅은 아니다.
지능은 곧 정신력.
미아는 용암 속에서도 태연하게 캐스팅을 할 수 있다.
아프긴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땅이 흔들린다.
더 정확히는 뭔가 흔들흔들하면서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특정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알고는 있나봐.”
“괴조들이 슬슬 정신을 차리는데요?”
“으으음.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제니는 슬슬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미아가 출발 사인을 내리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몬스터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일단 강화마법.”
대량의 마법 방벽을 주변에 두른다.
“실피드!”
바람의 정령왕이 나타났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그러나 이제 실피드의 직접적인 공격력으로 이곳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효율이 나쁘다.
미아가 체렌코프 광을 몸에서 내뿜으며 말했다.
“제니, 바닥으로 내려가자.”
“네에에? 어째서죠?”
라고 말하지만 몸은 충직하다. 한순간에 수직낙하하고 ‘어째서죠?’의 ‘죠’는 바닥에 발을 딛으며 발음되었다.
“여기 말고 활주로라고 할 만한 곳이 있을까?”
“아, 알 것 같아졌어요.”
미아가 그 위치로 공간이동 했다.
탁 트인 긴 평지가 보인다.
미아가 손가락을 튀겼다. 가속관문이 허공이 아니라 바닥에 차례대로 설치된다.
“달리는거야. 그리고 이륙할거야.”
“제 다리가 버틸까요?”
“도핑이 있으니까……. 아마도?”
미아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튀겼다.
거의 캐스팅 없이 허공에 빛의 선이 그어지며 그럴싸한 모양을 만들어낸다.
특정 구간에서 강렬하게 강조된 화살표가 있다.
“로스엘. 제발 알아들어줘.”
“저기 도달하면 가속하라는 거지?”
어떻게 저떻게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
로스엘은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도움이 되고 있음도.
뿌듯한 자긍심이 마음속에 차오른다.
눈을 부릅뜨고 미아를 안고 있는 제니가 날아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고양이 천사는 작은 데몬 마법사를 안고 바닥을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이러면 작용을 받을 수 있다.
로스엘은 천천히 버튼을 눌러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발사된 광탄들도 다시 근방까지 모여들고 있다.
땅이 점점 빠르게 움직인다.
그 위를 달리고 있는 제니도 마찬가지로 달리고 있다. 무언가 이상한 바닥의 표식을 지날 때마다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런 식의 마법이구나. 처음 보는데!”
부스터가 발린 블록도, 그 위의 제니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한다. 음속은 이미 넘었다.
괴조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광선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다.
미아가 빛의 선으로 표시한 지점에 제니가 도달한다.
로스엘은 방향키를 꾹하고 눌렀다.
최고속도가 나왔다.
딱 0.3초가 지나고 손을 뗀다.
추격하던 괴조들이 뒤로 날아가거나 허공에 고립되었다.
그 가속을 모조리 받은 제니는 음속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속도로 블록에서 발사되었다.
“이제 수염쟁이들을 저 친구들이 도착할 곳 까지 보내야겠네.”
부스터를 옮긴다.
수염쟁이들은 튼튼하니까 좀 가속한다고 다치진 않을 것이다.
황금빛을 내뿜으며 날고 있는 기묘한 블록은 아직도 [아후라 마즈다]를 향해 비행 중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잘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로스엘!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
스스로를 칭찬했다.
지도 위의 무법자, 로스엘이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