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15화
메인 던전 - Lv.15000 [기계신 - 아후라 마즈다](4)
그렇다고 곧장 그곳으로 날아갈 수는 없다.
애초에 확보되어있지 않다.
광탄은 매정하게도 다시 날아들고 있다.
[누니이임! 다 박살나서 쏟아지는데요?!]
실로 그랬다.
희우는 흘깃 뒤편을 본 다음에 속도를 더욱 높였다.
블록이 원래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던 거지?
어찌되었건 대지의 해일임은 분명했고, 엄청나게 빠르기까지 했다.
워낙 커다랗다보니 느려 보일뿐이다.
지금 날고 있는 속도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것이 땅에 출동하며 토사도 튀어오른다.
멀쩡한 모래는 아니었다.
이미 대화가 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통신 마법이 이어진다.
[이거 왜 이래요?]
몸에 박힌다. 충분히 손상을 일으킬 만큼 강하게.
[여기 모래도 신성으로 강화되어있어! 저거 산탄이야!]
[난리 났네! 진짜!]
쥐새끼 파워에 의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비행 중이던 블록의 아랫부분이 사막 블록과 부딪친 것이 문제였다.
아랫부분은 제동을 받겠지만 윗부분은 아니다.
* * *
* * *
* * *
망가질 대로 망가져 폭발하기 직전이던 상부가 그대로 으스러져 사방으로 날아든다.
농담하지 않고 수백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펼치는 [미티어 스웜]쯤 되는 것 같다.
쓸데없이 단단한 돌멩이들이어서 더 위력적이다.
[리더? 으아아? 이거 맞아요?!]
제니가 비명을 질렀다. 이미 엄청나게 얻어맞아서 너덜너덜하다.
오빠가 소리를 지른다.
[일단 그냥 날아! 가장자리까지 가서 아래로 숨는 게 나을 것 같아!]
실제로 그랬다. 이미 블록의 3분의 1을 날아왔는데도 기세가 전혀 죽지 않는다.
충돌한 기세 그대로 무너진 토사가 사막을 덮어버릴 거라고 보는 게 옳다.
문제는 하나 더 생겼다.
[지금 왠지 사막이 일어서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가장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수가 경고한다.
실제로 그랬다.
사막이 일어선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 모래들이 점점 솟구치고 있다.
충격에 의해 솟구치는 게 아니라…….
[이 블록이 기울어지고 있네?]
충돌의 순간 힘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했는가.
그건 알 수 없지만 꼭지점과 변의 절묘한 충돌과 거기서 야기된 에너지가 사막 블록마저 통제에 벗어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막이 기우뚱 기울며 쏟아지려고 한다.
[추락하는 거 아니겠죠?]
[맞을지도?]
그 말을 듣는 순간 파티원들은 바짝 긴장했다.
[왕국의 문]을 날릴지도 모른다.
부서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아래로 가라앉아버린다면 찾는 것도 일이다.
보스가 남아있는 와중에는 더더욱 큰일이고.
시간이 지체되어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 중간에 차라리 문을 작동 시키는게 낫지 않아요?]
[작동 시간이, 잠시만. 불러오기만 하면 어떻게 될 수도 있겠는데?]
비행은 계속되고 있다.
왕국의 문의 위쪽 끄트머리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저쪽이 기울어지고 있으니 더 가깝다.
[일단 고도를 더 높여요?!]
지금처럼 직선으로 날면 어차피 사막의 대지와 충돌한다.
그만큼 앞쪽이 빠르게 기울어지고 있다.
뒤쪽은 마찬가지로 액체화된 대지가 쏟아진다.
올라가지 않으면 예쁜 샌드위치가 될 판이다.
[마법을 동원하면 충분히 제 시간에 빠져나갈 수는 있겠는데.]
기울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정말로 모래가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래 속에 도사리고 있던 괴물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건 진짜로 싸우면 13층의 그 정령왕과 별 차이 없겠는데요?]
[원래 저런 주요 오브젝트 주변은 더 센놈이 지키고 있는 법이지.]
[맞는 말이라 더 화나네.]
샌드웜이라고 불러야할까.
이빨이 숭숭 난 지렁이들이 꿈틀대며 떠내려가고 있다.
시간이 없다.
대지가 점점 가까워진다.
앞뒤에서 토사와 모래조각, 때때로는 돌덩이나 숫제 바위를 날려대며 점점 파티를 좁혀온다.
희우는 오빠보다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하나 순간 고민했다.
일단은 가짜니까.
그때, 오빠가 결단했다.
[일단 그럼 문으로 처박는다! 저쪽에서 대기 중일 테니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마법이 빚어진다. 블랑쉐도 지시대로 수행한다.
앞쪽으로 연속적인 공간이동이 펼쳐졌다.
흘러내리는 사막이 점점 더 눈앞으로 다가온다.
희우는 비행 속도를 더 높였다.
제니도 보조에 맞춰 옆으로 난다.
[그런데 저거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였죠?]
[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완전히 열긴 해야 해!]
[아, 그 우리가 왕국 처음 올 때랑 똑같네요?]
[맞아!]
그때 문이 열리던 감각을 다시 떠올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좀 필요하다.
[되는거 맞아요?!]
[일단 루시건 드라간이 건 불러다 쿵짝쿵짝하면 살아남긴 할 테니까?!]
사실 어떻게 될지가 문제인 것이지 이 사이에 샌드위치 된다고 해서 정말로 죽을 파티원은 없을 것 같긴 하다.
부상을 크게 입고 어디론가 흘러가 리타이어될 수는 있겠지.
물론 저 아래로 떨어지면 진짜로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긴 하다.
평범한 사람의 감각이라면 3층에서 달려 뛰어내리는 정도일까.
육체의 내구도만 믿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믿어볼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당장 죽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도 블랑쉐와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
일단은 제니와 오빠는 일단 복제니까.
따라서, 희우도 동의했다.
[그럼 모래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이 적기긴 하군요!]
[잘만하면 저길 여는 보스전도 스킵이니까?]
지키는 몬스터.
정말로 강력해보이는 정령왕급 샌드웜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해볼 만한 도박이 아닌가.
보스는 많고, 사람은 적다.
물자는 더더욱 적다.
[미궁은 원래 운이죠!]
[시도하지 않으면 행운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역할이 결정되었다.
로스엘은 손에 땀을 쥐고 그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아, 내가 멀쩡했다면. 날아가서 치워줄 수도 있었을텐데……!”
실로 장엄하기 짝이 없다.
문자 그대로 대지가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광경이 아닌가.
화면으로만 보고 있자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멀쩡하던 땅이 반으로 접히며 주인공들을 싸먹는 그런 장면.
하지만 이건 실제 상황이다.
제어를 시도는 해보았다.
당연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이미 바둑판의 배열에서 두 블록 모두 벗어나있다.
날고 있는 괴조들마저 변고를 감지하고 날아서 도망치는 와중이다.
그나저나 대체 이 옛 도시에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필드 보스라고 부를 녀석들이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사막이니까 잘 안보여서 알지 못했다.
실수가 될 뻔했으나, 오히려 저것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블록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이 상황이 더 낫지 않을까?
로스엘도 유배자다.
아니, 진짜 유배자는 아니지만 그 파티의 동료로서 오랜 세월 활약한 기억이 있다.
보통 이런 변수를 잘 이용하는 것이 훌륭한 유배자요, 미궁의 마음에 드는 이들이다.
일단은 척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강대해 보이는 괴물들이 모래와 함께 아래로 쓸려 내려가고 있다.
사막에 사는 것들의 모습을 의태한 정령들에게 비행 기능이 있을 리가 있나.
“한 대씩만 치면 다 경험친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핫, 잠깐만. 이럴 때가 아니지!”
집중력이 어디론가 달아나는 일일 점점 많아지고 있다.
로스엘은 가끔 기천사의 수명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죽어가는 기천사는 생물학적 쇠약보다는 고장을 먼저 일으킬 것이다.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은.
“힘내라! 파이팅! 할 수 있다!”
응원뿐.
이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지도에 눈이 미쳤다.
“어어? 광탄 날아오는데. 아 이거 혹시 막아줄 수 있으려나?”
고정된 높이에 떠있던 블록들이지만 충돌한 두 블록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제어를 잃은 탓인지 서서히 가라앉고 있기에, 다른 블록으로 가릴 수 있어보였다.
“광탄이라도 가려줄 수 있다면?”
재빠르게 조작한다. 이미 충돌했던 에너지가 있는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옆에서 치워지고 있던 다른 블록을 가까이 붙인다.
로스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지도에 보이는 격자와 실제 위치가 이미 어긋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충돌 탓이다.
“어어어어?”
그래서 로스엘이 광탄을 가리기 위해 가져온 블록이 그대로 사막 블록의 뒤편에 충돌했다.
기울어짐이 더 가속된다.
로스엘은 머리털이 바짝 곤두섰다.
가장 빠른 것은 희우.
제니는 같은 기천사지만 상대적으로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희우처럼 가속할 수도 없다.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날개를 다시 울리게 한다.
자연스럽게 공감각 속으로 빠져들고 온 세상을 느리게 직시한다.
자주 반복하여 익숙해진 직관이 그런 세계로 정신을 이끈다.
정령왕을 상대로 난무할 때처럼 천천히 마음을 웅크린다.
기천사라는 종족의 한계가 하나하나 풀려나가는 느낌.
날개의 움직임과 몸 속 마력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다음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뒤편에서 어떻게 즉석 마법과 스킬의 연쇄로 토사를 잠깐이나마 지연시키는 것을 하기 시작한다.
대체 뭘 어떻게 하나 싶긴 하지만, 에길이나 드라간의 일격 같은 것이라면 부분적으로나마 저 해일을 막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게 헤쳐 나왔다.
초인에게는 그에 걸맞은 사고가 필요한 법.
“으라차차차차차!”
날개가 사정없이 진동하며 시야가 어안렌즈마냥 휘어진다.
다만, 속력이 올라가면 작은 돌의 파편도 치명적인 대미지가 될 수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한 공감각.
거의 유성이 되어 날아간다. 무수한 모래알 중 대부분은 그냥 몸으로 맞되, 자갈이라 부를 만한 것은 검으로 쳐내고 피한다.
머리카락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연히 방향을 제어할 때보다 직선 비행이 더 빠르니까, 마찰열이 잔뜩 발생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눈도 감고 있다.
괜찮다. 소리와 촉각마저도 정보니까.
하지만 아직 묘하게 멀다.
더 빨리 날아야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더 빠르게.
더 빨리.
혹시 이거 역부족인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사막 블록이 뭔가에 치인 것처럼 크게 더 기울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운!
이미 모래는 튕겨나가듯 쏟아지고 있다.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한다.
순차적으로 버프를 켜고, 검에도 인챈트를 켜고.
쌍검을 교차한 채.
[슈퍼 히어로 랜딩]
목표한 정확한 위치에 내리꽂혔다.
충격으로 이미 흘러내리던 모래들이 움푹 패며 온 사방으로 튄다.
한순간이나마 [왕국의 문]의 전체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모래 아래의 바닥도 보인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
우리의 왕국에도 있는 그 문이다.
벽에 착지한 다리가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지만 아직 날개는 작동하고 있다.
뛰는 대신 다시 위로 가속.
문을…….
붙잡았다.
제 머리만큼이나 거대한 문고리를 붙잡고 힘껏 당겼다.
위쪽에서 잠깐 물러났던 모래가 다시 쏟아지고 있다.
입에서 모래 맛이 난다.
피맛도 나는 것 같다.
“사람살려!”
드라간은 최근, 루시에게 꽤나 적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본다고 심장에 충격이 가해져 쓰러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직이 우연히 겹친다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그 유배자의 파티가 [메인 던전]에서 왕국의 문을 열지 모르므로 서는 당직이다.
전직 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이들이 언제나 둘 이상 대기하고 있다.
지금은 루시와 함께 왕국의 문을 보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크흠, 혼돈의 여신이여. 저쪽에서 공물을 좀 구해왔는데.”
“오우, 한정판 케이크잖아? 삥뜯어온 거 아니지?”
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돌아보며 기뻐한다.
드라간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함이 차오름을 느꼈다.
“물론이다. 어제 새벽부터 줄을 서있었지.”
“어, 그건 좀 자제하지 그래.”
“어쩌서인가.”
“시민들이 겁을 먹을 걸?”
전직 전쟁의 신.
너무 두려운 존재가 아닌가.
루시는 그래도 빠르게 자리 잡은 이 도시가 신기했다.
왕국은 놀라울 만큼 쉽게 통합되었다.
그 이면에서 위험분자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암살부대의 활약이 있었다는 걸 모른 척 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그걸 감안하더라도 빠르다.
신들이 내려와 전직 신의 예우를 받으며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까.
특히 혼돈의 여신이었던 루시는 인기가 쓸데없이 높아서 변장을 하지 않고서는 어딜 다닐 수도 없을 지경이다.
“고마워! 다음에는 우리 신전 와서 차나 한잔 할까?”
“그것은……. 설마. 초대인가?”
“뭘 우리 사이에?”
드라간은 잠깐 심호흡을 했다.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흐흥, 뭐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시나?”
“아니. 아니다.”
드라간은 이런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이미 수백수천번은 소중히 간직했지만, 그 안의 저장 공간은 그래도 배고파하고 있다.
더 많은 루시.
더 많은 추억.
본인이 신이었음에도 어느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합장한 모습에 루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큭큭 웃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어어? 야 문 열린다!”
“음?”
드라간은 분노했다.
건방진 유배자 녀석. 하필이면 지금 저걸 처 여는가.
죽인다.
그때, 루시가 창을 들고 폴짝 뛰어올라서 드라간의 어깨에 올라섰다.
“가자! 드라간몬!”
드라간은 건방진 유배자를 용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