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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17화 (41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17화

메인 던전 - Lv.17500 신령 [아후라 마즈다اهورا مزدا]

이전 회차들에서 이 테마를 클리어하거나 클리어 시도했을 때, 나는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더 고생하는 루트를 고르지 않았다.

[아후라 마즈다]는 물론이요. [YHWH] 같은 히든 루트의 보스들을 굳이 잡을 이유가 무엇인가.

그냥 상황을 좀 보고 미카엘이나 바알의 편을 들면 제일 쉽다.

왕국이 더 많은 웨이브를 방어하는 편이 내가 혼자 위험부담을 지는 것보다 이득이라 판단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조작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 처음이다.

달리 말하면 그뿐이다.

그것만 익숙해진다면 나는 이것을 잘 다룰 수 있다.

게임에서 사용하던 키보드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하던 대로.

“안 도와줘도 되나요?”

“괜찮아. 이제 다루어야 할 블록이 적으니까.”

로스엘은 생각보다 잘해주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이보다 더 잘하기도 쉽지 않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고 돌아 정석에 가까운 형태로 블록을 배치했다.

* * *

* * *

지도를 본다.

당연하지만 이 기믹의 가장 큰 난점은 보스 주변일수록 블록의 밀도가 높다는 점이다.

파티원들이 버티는 동안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면 블록을 치워야 한다.

도시가 떠오르며 재배치되었고 간격이 벌어졌기에 달려서 통과하기에는 너무 멀고 험난하다.

블록 하나하나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특별히 부스터가 없더라도 그것이 움직이는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다.

안전함을 확보한 블록 하나를 거점 삼아 보스의 포격을 버티면서 가는 편이 좋다.

지금은 둘로 갈라져 있다.

개중에 하나에는 내가 보였다.

“내가 복제되어 있네. 이거 곤란한데.”

“저는 셋이나 있는데…….”

제니는 심지어 서로 다른 둘이 만난 상태다.

본래라면 이 상태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아는 대로 되는 게 잘 없군.”

여기로 떨어지기 직전, 보스의 출현과 함께 떠올랐던 메시지와 문구.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한 번도 대신격들이 그런 식으로 간섭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말하는 메시지였다.

그 뜻을 자세하게 생각해 볼 정신은 없었다.

나는 멍해지는 대신 움직였다.

아래로 떨어진다면 그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반드시 내가 전투에 참가할 필요는 없다.

그런 파티를 만들어왔다.

“일단 집중.”

방법을 알긴 하지만 처음 하는 것이긴 하다.

그러니까 아까 잠깐 조작법을 익힌 것들을 다시 생각하며 침착하게 블록을 옮길 필요가 있다.

파티원들은 모두 근접해 있다.

합류해 있지 않은 점도 좋다.

두 파트로 나눠서 공략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으니까.

다만 이 경우에는 결정타로 에길과 드라간을 활용한다.

블록을 움직인다.

로스엘은 지금도 바쁘게 블록을 만지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좋다.

고생한 친구가 눈치를 채줬으면 좋겠군.

로스엘은 삶에서 가장 똑똑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로 무투파이며 깊은 생각과는 인연이 멀었다.

천사라는 종족이 그렇다.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몸이 나쁜 녀석들이 머리가 고생하는 것이지.

로스엘은 실로 오랜만에 머리를 혹사하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빛기둥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

피해야 할 것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

단순히 손만 빠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빛기둥은 너무 크다.

휘말린 블록을 보자 새까맣게 구워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유배자들이 닿으면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피해야 하는데.

“포위망을 좁혀오잖아?”

비명, 혼란, 공포.

그래도 로스엘은 이를 악문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가운데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블록을 치우고, 유배자들의 블록을 옮겨서 중앙의 보스에 닿게 해야 한다.

“새 블록도 갖다줘야 하고…….”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무너져 해일이 된 블록, 그리고 그것과 충돌한 사막 블록.

그 둘은 이미 끝났다.

완전히 파손되어 가라앉고 있다.

유배자들은 대신 로스엘이 본의 아니게 들이받은 블록으로 갈아타고 있었다.

거대한 빛기둥들이 그 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이걸 어떻게 빼내지?”

빛기둥의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블록보다는 느리다.

그러니 공간만 있다면 계속 피해 다닐 수 있다.

문제는 느리니까 천천히 따라오며 조여오는 모양새.

수염쟁이들은 몰라도 새로운 유배자가 합류한 서브 리더의 그룹은 상당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로스엘은 다시 [오버클럭 익스텐션]을 쓸 수 없는가를 고민했다.

쿨다운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다시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가겠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

각오를 다졌을 무렵.

“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 다른 블록들이 보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녀가 조작한 것은 아니다.

로스엘은 긴장이 풀렸음을 느꼈다.

“누가 도착했구나!”

리더일까? 리더라고 생각한다.

기지를 발휘하여 그녀를 도가니에서 빼돌렸을 정도니까.

만약 그 자리에 그녀가 남아 있었다면.

그렇게 복제되었다면.

다행스럽기 짝이 없다.

로스엘은 그래도 도우려고 했다.

보스 주변의 블록은 아직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그것을 더 들어낼수록 유배자들의 블록이 지나갈 길이 늘어난다.

그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블록들이 보였다.

전혀 상관없는 곳의 상관없는 블록들이 움직이고 있다.

어째서 저길 움직이는가 생각했지만 착착 달라붙은 블록들은 어딘가 그리운 문자를 만들어낸다.

[STAY]

로스엘은 그게 알파벳이며 영어임을 안다. 유배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자.

곧 그것이 모습을 바꾸며 다른 글자가 된다.

[GOOD GIRL]

로스엘이 피식 웃었다.

“수천 살 먹은 할머니한테 걸이라니.”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젠 쉬어도 되는 모양이다.

제니는, 그러니까 진짜 제니는 감탄했다.

리더의 손놀림은 폭발과 탈출의 직전에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만지면서도 점점 더 정확해지고 있었다.

제니는 잠깐 그것을 도우며 이 기믹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블록의 컨트롤은 꽤나 피지컬을 요하는 동시에 두뇌회전도 요한다.

통제실에서 누르는 즉시 딜레이 없이 반응하게 되어 있다.

디지털 기기 특유의 딜레이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물리 버튼을 생각나게 하는 반응성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광대한 블록 지도가 펼쳐져 있다.

보스급이 드글드글한 위험 블록도 수없이 많다.

그런 곳을 피하지 않으면 공략은 점점 지연되기만 할 것이다.

고난이도의 리듬게임을 즉각적으로 여러 개의 블록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으로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톡톡 하고 블록이 길을 비키면 그곳을 파티원들이 올라서 있는 블록이 지나간다.

지나간 자리는 곧바로 다른 블록들이 채운다.

앞에서 길을 비켰던 블록들이다.

지도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블록들 사이를 헤엄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다른 블록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브 리더의 그룹이 간신히 이동하고 출발하기 시작한 블록들은 빛기둥의 포위망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어어, 그거 위험하지 않아요?”

스칠 듯 말 듯 빛기둥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리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빛기둥이 정면에 나타난다.

방향 전환이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리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손가락만 놀린다.

제니는 지도를 보고 입을 벌렸다.

빛기둥에 블록이 통째로 구워지기 직전, 갑작스럽게 다른 블록을 서브 리더의 블록에 부딪히게 했다.

그 위의 몬스터들이 건너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접촉은 찰나다.

부딪히는 순간, 서브 리더의 블록이 방향을 틀어 움직인다.

미끄러지듯이 빠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는 데 짧은 시간이 필요했다.

구슬치기 같은 요령이다.

밀어서 더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고 블록의 속도를 올린 것이다.

빛기둥의 포위망 사이의 틈이 점점 좁아진다.

각도를 꺾어가며 공간이 생겨나고,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뒤에 있는 블록이 한 번씩 부딪혀서 밀어준다.

그냥 움직이는 것보다 많이 빠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소하게라도 전환이 빨라지고, 그 덕분에 빛기둥의 사이를 극적으로 통과했다.

“휴, 한숨 돌렸다. 이래서 미리 다 치워놓고 넣는 게 더 좋은데.”

“와, 와. 방금 대체 뭐예요?”

리더가 씨익 웃었다.

“스피드 런하면 이렇게 해야 했거든. 0.1초라도 줄이려고 말이야. 하여간 변태 같은 녀석들, 게임 퍼즐에 무슨 물리 엔진을 구현해놔서…….”

제니는 리더가 다섯 배 정도 더 변태 같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 게임에 그 유저다.

“근데 멀미나겠네요.”

“뭐, 그 정도야.”

그리고 거리가 더 가까워지자 다음 보스의 패턴이 발동했다.

지도 위에 선이 그어진다.

선명한 붉은 선.

무언가 치명적인 것이 지나갈 것을 예고하는 선이다.

그다지 듬성듬성하지 않았다.

안전지대는 많지 않다.

시간 내에 도달하기 힘들 것 같다.

리더는 얼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전진할 앞의 공간도 끌어오지만, 동시에 뒤편에 여유 공간을 넉넉하게 만들어내었다.

멀리 있는 블록 중에서 더 질량이 크고 무거울 것 같은 블록이 선택된다.

그것이 리더의 조작을 따라 빠르게 날았다.

그리고 곧바로 서브 리더의 블록에 처박혔다.

쾅 하고 지도상으로도 보이는 먼지가 피어오른다.

멀리서 가속한 운동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방식은 과격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일반적인 속도의 두 배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실 움직인다와는 좀 다르다.

충돌로 튕겨 나갔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다.

어느 순간 자력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튕겨 다니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부딪히고, 밀려나고, 그 힘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뒤에서 또 들이받고.

“구슬치기가 따로 없네…….”

얼마나 손이 빨라야 하는 것인가 이전에 블록의 움직임을 미리 다 계산에 넣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대편 블록에도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제니는 미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과언이 아니라 정말로 고양이보다 저질 체력이다.

저런 대환장 구슬치기 속에서 튕겨 다니며 멀쩡할 것인가.

게다가 보스에게 접근은 못하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더 지속 될 것 같다.

그리고 제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아부터 걱정된다.

반년 동안 챙기고 챙기면서 정말로 가슴속 깊이 파고든 모양이었다.

서브 리더가 자기보다 더 엄마 같다면서 투덜거렸던 게 생각난다.

거의 차력쇼에 가까운 손가락 놀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직선으로 길이 생겼다.

리더는 정말로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도의 블록들, 거대한 바둑판의 격자들이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말로 흐르고 또 흐르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무언가 형태가 준비된다.

제니는 리더가 왜 지금 갑자기 저런 형태를 만드는지 눈치챘다.

광탄도, 광선도 모두 잠깐 길을 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만약 보스에게 달려간다면 단숨에 도착한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보스 주변을 빙빙 돌았던 모양이다.

맵 위에 만들어진 모양새는 총기의 내부 구조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파티원들이 올라탄 블록이 총탄의 위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치챘다.

미아가 정말 괜찮을까?

제니가 걱정하는 가운데 리더가 방아쇠를 당긴다.

맨 뒤의 블록 하나가 맹렬하게 뒤를 들이받고, 그 기세가 죽자 곧바로 새로운 블록이 끼여 들어 다시 때려 박는다.

아주 빠른 속도로가 같은 행위를 열 번가량 반복하자 통상 속도의 다섯 배에 가까운 부스팅이 이루어졌다.

보스의 탄막이 다시 형태를 갖추기도 전이었다.

두 블록이 거의 동시에.

제니와 리더가 떨어져 내린 곳.

도가니가 있던 곳.

보스 [아후라 마즈다]가 출현한 위치까지 도달했다.

단지 빛나는 구체에 불과했던 보스가 형체를 바꾸기 시작한다.

새로운 이름이 떠올랐다.

[마지막 편린]

[신령, 아후라 마즈다اهورا مزد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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