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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18화 (41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18화

메인 던전 - Lv.17500 신령 [아후라 마즈다اهورا مزدا](2)

아서는 달렸다. 그대로 내달렸다.

이미 그가 올라탄 블록이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주파하여 보스룸에 해당하는 블록에 때려 박는 상황이다.

굳이 자신의 힘을 들여 도약할 필요도 없다.

제자리 뛰기만 하더라도 그 강렬한 가속은 고스란히 그를 보스의 눈앞까지 옮겨준다.

도가니가 있던 보스룸 블록은 특히나 거대하지만, 그 몇백 배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지나친 가속이었다.

아서는 뛰어올랐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에길과 미아를 안아 든 제니들이 따른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도, 변수도, 이변도 아니다.

[아후라 마즈다] 공략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파티원들은 그러기 위한 전법을 숙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잊은 곳은 아서가 일렀다.

갑작스럽게 매서워진 블록의 움직임은 명백하게 로스엘의 컨트롤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리더가 붙잡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 *

* * *

* * *

그럼 리더의 설계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해야 할 일은 분명.

지금까지는 살아남으며 합류하기였다.

그 순간부터 이것은 이미 공략이다.

잠깐 헛돌던 톱니바퀴가 다시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도 같은 감각.

다른 파티원들도 모두 이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서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파티 오르골에 감화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의 목표는 아직 멀린과 카멜롯에 있으나, 그 과정으로서의 이 파티 플레이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리더가 말하는 소수정예의 의미가 이런 것이리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유기적인 파티.

오랜 기간 함께하며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아가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는 영역이다.

에길이 함성을 내지른다.

“돌겨어어어억!”

그리고 마주하듯 정반대편에서 비슷한 함성이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죽어라아아아아아!”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것 같다.

저쪽에서 왕국의 문을 찾았고, 마침 당직이 드라간이었던 모양이다.

전직 전쟁의 신은 우주 공간에 던져두더라도 저 특유의 함성을 온 우주에 울려 퍼지도록 내지를 수 있을 것 같은 트롤이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오른 파티원들의 뒤편에서 충격으로 반파되는 블록이 보인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지도 위를 내달려왔다.

더 단단하고 더 큰 질량을 지닌 보스룸 블록에 그런 속도로 처박으면 남아날 리가 없다.

아서가 손짓한다.

자신의 뒤편에서 비슷한 속도로 날고 있을 마법사가, 혹은 그 마법사를 안고 있는 고양이 천사가 볼 수 있는 사인이다.

곧바로 마법이 피어났다.

원형의 가속관문이 여럿 설치된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처럼 보이지만, 정교하고도 순차적인 생성이었다.

링을 통과하며 가속, 다시 가속.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형태를 변형 중인 거대한 빛의 구체가 다가온다.

그 뒤편의 풍경이 빨려 들어오듯 당겨진다.

아서는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었다.

리더를 처음 만난 날 이후에도 몇 번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 낡은 성검의 수명이 이제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안다.

그가 카멜롯으로 이 검을 다시 가지고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후라 마즈다]라는 이름을 가진 기계신의 분령은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본래 이 세상에 흐르던 미궁의 섭리 중 일부인 신좌들이 재해석되고 분해된 후 재조립된 어떤 힘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이들은, 그리고 그 이전부터 그것을 만든 미궁은 왕국의 존속이라는 명령을 이 신에게 새겨두었다.

확고한 자아 대신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에 기계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가 유지하고 있던 세계에 끼어든 갑작스러운 이물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배제하려고 막무가내로 힘을 행사해 보아야 역부족이다.

그것은 유지를 위한 힘이지 파괴를 위한 힘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 위협이 자신의 본체마저 노리기 시작하자 방법을 짜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막대한 힘의 덩어리이지 미궁의 섭리는 데이터에서 답을 구했다.

본디 신좌였던 그것은 많은 신들을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미궁의 섭리를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유배자들의 데이터가 축적되었다.

개중 가장 강력했던 신들을 물색한다.

형체를 재현한다.

종족값을 재현한다.

스킬을 재현한다.

기술과 노련함을 재현한다.

자신을 그런 모습으로 재구축한다.

막연한 구체던 모습이 일그러지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루시와 드라간은 사전에 약속된 대로 이쪽의 말을 그대로 따라주었다.

희우는 오빠 대신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루시가 약간 의구심을 표한 것 같으나 상관없다.

문제는 오빠 역시 그 사실에 의구심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블록의 급격한 기동이 시작된 직후부터 그랬다.

정신없이 블록이 튕겨 다니는 구슬치기, 온 사방에 제멋대로 관성이 작용하는 물리적 극한 환경 속에서 조용한 중얼거림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실로 그러하다.

희우 자신도 이런 식의 말 같지도 않은 컨트롤을 구현할 수 있는 존재를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가짜 오빠는 무언가를 이미 눈치챘다.

맵 기믹으로써 복제된 존재가 스스로를 이렇게 빨리 의심할 수 있는가?

있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미 미궁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몸을 담고 클리어를 향해 달리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희우는 도리어 보스보다 이쪽을 더 경계했다.

일이 틀어진 것은 안다.

하지만 본래 저 보스의 하수인으로서 만들어졌다는 설정을 가진 복제다.

막상 보스전에선 도가니가 박살 나기에 존재할 수 없는 기믹이지만, 뭔가 뒤틀려 이렇게 되었다.

그럼 가짜들은 보스에게 복종하는가?

상황을 모르는 루시와 드라간이 아무튼 파이팅 하고 희우와 블랑쉐가 가짜 오빠와 제니를 경계한다.

그런 상황에서 보스룸에 가 닿았다.

우선은 무언가 해결할 틈이 없다.

[아후라 마즈다]는 본래 지금의 진행도에서 등장하지 않는 보스다.

산달폰은 영락했다.

그 진정한 힘이 드러난 것은 마지막 3페이즈, 그나마도 꺼져가는 최후의 불꽃일 따름이다.

정면으로 상대하는 메인 던전의 편린급 존재는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찝찝함을 뒤로하고 파티원들이 관성을 이용하여 날아오른다.

가운데 빛나는 구체가 모양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루시가 질문한다.

[그러니까 지금 저게 형태를 갖추기 전에 최대한 세게 후려야 한다는 거지?]

[맞아요!]

이 세계를 거쳐 간 신의 형태를 취하며 패턴을 구사하는 보스다.

그 변신과 변신 사이의 형체 없는 구체일 때가 가장 방어력이 약하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는 건 지금이 아니에요!]

[좋아, 알겠다.]

이렇게 진행되는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으면서도 가짜 오빠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관성을 이용한 점프, 그 가속을 이용하여 기나긴 보스룸을 단숨에 가로지르고.

보스가 형태를 바꾸기 전 짧은 순간 일격을 최대한 체력을 깎는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시작되는 순간 희우는 가짜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안에는 어떤 아련함, 그리고 깨달음.

그리고 각오가 새겨져 있었다.

희우는 몽환의 숲이 아케인에 구현되었을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우선은 날아올랐다.

이 보스전 한정으로는 빛 속성 인챈트나 버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천사들은 주력이 아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뒤틀린 기천사를 잔뜩 찍어낸 존재답게 천사로서의 속성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마법에 강하며, 어둠에 약하다.

그렇기에 물리.

속성에 구애받지 않는 강력한 물리공격이 미궁에서는 가장 만능의 속성이다.

마침 쿨다운이 돌았다.

녹화를 시작한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슈퍼 히어로 랜딩].

이후 이어지는 공감각의 진입.

자잘한 스킬 하나하나도 강제로 연계하며 녹화에 담는다.

보정이 차차 쌓여가고 보스의 눈앞에 도달한다.

드라간의 맹렬한 외침.

반대편에서 에길의 함성도 들리고.

거의 동시에 변형하는 보스에게 모두의 공격이 작렬했다.

그리고 빛이 터져 나왔다.

파티원들의 공격이 만든 여파 때문은 아니었다.

밀어낸 힘은 신성에 더 가까운 것이다.

공격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 충격파에 가깝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보스의 모습이 변할 때마다, 또 다른 신의 모습일 될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한참을 날아가는 느낌이 들어 날개를 움직인다.

수직으로 착지한 후,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어떤 새로운 마법이 흘러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동료들과 이어졌음을 깨닫는다.

미아의 솜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부터는 희우가 지휘한다.

[형태가 변했습니다. 종족과 클래스 확인 후 스킬셋을 알아내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무리하지 말고 침착하게 해요.]

신좌에 앉았던 것이 무슨 종족이요 클래스일지는 알 수 없다.

게임적으로는 랜덤으로 신급의 유배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천사의 속성과 본디 가진 강대한 신성은 그대로 유지한다.

강림한 신을 극도로 강화하여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도 이 기나긴 역사를 가진 왕국의 신 중 가장 강력한 레벨을 말이다.

빛이 사그라들고 피어오른 먼지가 걷힌다.

강렬한 기선제압을 당한 보스의 형체는…….

가장 눈이 좋은 블랑쉐가 제일 먼저 브리핑했다.

사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거인, 무기는 해머. 양손 해머.]

모두가 드라간과 했던 대련을 떠올렸다.

그리고 드라간은 늘 그렇듯 분노했다.

자신과 컨셉이 겹치는 보스를 용납하고 싶어 하는 성격은 아닌 탓이다.

희우가 판단했다.

[에길! 드라간! 빠져요! 루시는 중간까지만 함께하다가 빠지고!]

[어째서지.]

전투에서 빠지란 말을 들은 전직 전쟁의 신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음산한 으르렁거림을 언어처럼 구사했다.

희우는 흠칫하면서도 리더의 역할에 충실한다.

[막타를 당신이 칠 거니까.]

[그렇다면 인정하겠다.]

다음 변형을 보지 않고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다.

거인은 형편이 좋다.

마법사나 암살자로 변형한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거인은 적어도 표적은 크지 않은가.

다음 순간, 희우는 꼭 그렇지도 않나? 하고 고민해야 했다.

거인이 몸에 불길을 두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이다.

이번에는 아서가 브리핑했다.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유니크 스킬이기에.

[‘메기도의 화염’이다.]

거인이 미처 어떻게 대응할 틈도 없이 바닥을 내려친다.

대지가 폭발했다. 사방에 불길이 솟구친다.

[아후라 마즈다]의 변신은 최강급 신을 기준으로 잡는다.

보유 유니크 스킬의 개수는 평균적으로 3개……. 시작부터 골치 아프기 짝이 없다.

오르골A는 능숙하게 지휘하는 희우를 보며 생각했다.

잘 자라주었구나.

여러 가지 부침도 있고 좌절도 있었으나, 그가 처음 2층에서 만나 의도했던 모습 그대로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길 소망했다.

이런 파티가 만들어지길 바랐다.

다 이루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되살아나는 영광] 맵의 통제실이 보여주는 카메라는 랜덤한 위치가 아니다.

대충 어디쯤에서 이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는지는 알 만도 하다.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했으나, 틀림없이 눈이 마주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겠지.

좌절은 오래전에 버렸다.

지난 97년간의 실패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이제야 생각이 난다.

자신에게는 [레바테인]이 없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결여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안다.

본체는 할 수 있으나 자신은 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터.

하지만 말이다.

로그라이크는 원래 목숨을 걸고 하는 게임이다.

이번 캐릭터가 이렇게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위험을 감수하며, 안전빵이 아닌 리스크를 택하며 나아가는 게임이다.

오르골A는 생각했다.

나는 가짜다. 아마 이 맵 기믹에 의해 복제된 무언가다.

흡사한 성능과 흡사한 능력, 흡사한 사고를 하겠으나 저 보스가 만들어낸 하수인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손을 떨친다.

미아가 만들어낸 통신망 이외에도 새로운 채널을 하나 개설한다.

제니가 여럿이었다.

확인된 것만 셋.

세 명의 고양이 천사와 오르골A의 채널이 이어진다.

[어이, 들리나? 여기 혹시 진짜가 있나?]

기억이 없어서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저쪽 파티의 제니는 합류할 때부터 둘이었다.

제대로 알고 있겠지.

[없어요.]

[없는데요?]

[가짜라니, 무슨 말이죠? 왜 제가 셋이나 있죠?]

오르골A는 미소 지었다.

[오히려 좋아. 일단 아직 상황 파악 못 한 저 녀석 설득해 볼 사람?]

제니즈의 리더 전사 제니가 대답했다.

[잠깐만 통신 따로 파주실래요?]

[오케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몇 가지 말만으로 다른 제니 하나가 납득했다.

오르골A는 생각했다.

도대체 평소에 어떤 각오를 하고 사는 거야?

아무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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