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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0화 (42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0화

메인 던전 - Lv.17500 신령 [아후라 마즈다اهورا مزدا](4)

블랑쉐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감각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적과 마주하고 있다.

레벨이 몇인지 모르겠다.

트리플 클래스는 실력 이전에 단순히 포인트가 많아야 기능할 수 있는 빌드다.

뭐, 사실 궁수라는 클래스는 원래 마법사를 겸하게 되는 수밖에 없긴 하다.

엄밀히 따진다면 듀얼 클래스다.

하지만 그런 빌드상의 문제를 떠나 스펙조차도 다르겠지.

편린급 보스로서 출현한 상대이니만큼 일대일로 승리를 자신하는 것은 어리석다.

블랑쉐는 어리석지 않다.

[피안의 검은 정원]은 본래는 감각을 차단하여 암살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강제로 조성하는 형태의 유니크 스킬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시간 끌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스킬이기도 하다.

약간 독립된 다른 공간에서 서로가 어디있는지 모를 시간을 보낸다.

지속시간은 암살자의 스킬답게 그리 길지 않지만 이보다 더 즉각적으로 적을 파티로부터 분리할 수단도 없다.

* * *

* * *

* * *

[부서진 세계의 신]의 유니크 액티브인 [신좌 쟁탈전]은 적절하지 않다.

그건 한쪽이 죽어야 나올 수 있으니까.

적재적소라는 의미다.

블랑쉐는 조용히 몸을 숨겼다.

어둠 속에 스며드는 것이라면 바깥에서부터 해오던 일.

상대의 스펙이 아무리 높더라도…….

화살이 지나갔다.

모든 감각이 차단되어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손상이 있었다.

마구잡이로 쏘는 것일까?

정신을 집중한다.

공감각은 그녀 역시 익숙해진 분야다.

차단된 것은 오감.

공감각은 그녀가 생각하기엔 육감에 걸쳐있는 기이한 감각이다.

그 사이에 화살의 방향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굴려 피해내었다.

까다롭다.

정확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쪽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스킬의 경험이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대처다.

어차피 이 공간에서도 지형 자체는 그대로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이미 문제일 수 있다.

날개가 펼쳐질 것이다.

[검은 날개]

사회에 격리되어 방랑하는 야인으로 일정기간 이상을 지내야만 얻을 수 있는 부정적인 칭호들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녀가 그걸 곧바로 얻지 않았던 것은 친부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은 그의 부하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폭풍의 신이 전사함으로서 그 스킬은 자유롭게 풀려났다.

한 왕국에 하나씩만 주어지는 유니크 스킬은 때때로 선점한 자들이 문제가 된다.

블랑쉐는 그 사실을 늦게 알았고, 리더 역시 그랬다.

없으면 없는 대로 친부가 죽음으로서 풀려난 스킬들은 훌륭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한데.

상대도 자신도 둘 다 그것 보유하고 있다.

블랑쉐도 마찬가지로 날개를 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소리 없는 공방전이 일었다.

시간이 생겼다.

오르골A는 바깥에서 준비하고 있는 파티원들 곁으로 다가갔다.

능숙하다. 흠잡을 곳이 없다. 클리어라는 위업을 위해 연마한 파티답다.

비록 그에게는 지금이 마지막이겠지만, 얼마나 뜻깊은가.

“다들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 자식은 점점 더 강한 신의 기억을 불러낼테니까 가능한 지금 끝내야 해요.”

“알겠네.”

“알겠어요!”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티나지 않게 대해주는군.

좋은 사람들이야.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뽑아든다.

희우가 날개를 진동시키며 준비를 시작한다.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들고 내지르는 공격과, 희우의 녹화 후 일격까지 고스란히 먹인다면 충분한 타격이 될 것이다.

종족이 요정이었던가.

조금 전의 거인은 전사였으며 최선을 다해 거인의 단점을 보완한 빌드였다.

그렇기에 그만큼 버틴 것이지.

미궁도 많은 곳에서 그렇듯, 방어력이 공격력을 앞지르긴 힘든 곳이다.

패링술사 같은 소리를 들을 수준이 아니라면 방패를 들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요정이라면 가뜩이나 튼튼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종족의 육체 강도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즉, 공격을 공격으로 상쇄하려고할 것이며 그 틈으로 한번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끝이다.

구체가 드러날 것이고 지금 희우가 부른 최후의 일격이 날아온다.

“다들 뭔가 어색한데?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루시가 창을 겨눈 채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오르골A가 쓰게 웃었다.

“복제가 나오는 기믹은 미궁에 은근히 많지 않습니까. 루시.”

“그렇지. 나도 겪어보았거든.”

“여기가 그렇습니다. 저는 복제고요.”

파티원들이 일제히 흠칫한다.

제니즈가 쓰게 웃는다.

“저기 제니들도 복제에요. 아마 해부해보면 기천사같은 기계장치가 덕지덕지 나올걸요.”

“……왜 적이 아닌가?”

“그거부터 묻기입니까?”

“안 물어보면 그거부터 물으라고 혼낼 녀석이.”

그것은 옳다.

오르골A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회차는 꼬라지가 이상해요. 제가 아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처음부터 그랬죠. 메인 던전은 더 난리가 나네요.”

“복제가 잘못 되어서 기억이 틀려먹은 게 아니고?”

오르골A는 그 가설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이 복제 맵 기믹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기억의 결락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결락이라 왜 몰랐는지가 의아할 정도다.

그럼 딱 거기만 지워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의 희망을 품고 희우에게 묻는다.

희우는 이불에 똥 싼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다.

“여기 기믹 그런 거야?”

“……아니요.”

“역시 이 기믹만 지워지는 거잖아.”

오르골A는 생각했다. 그럼 뭔가 잘못될 확률이 높다.

앞으로도 계속 말이다.

여길 지켜보고 있는 본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야한다.

“일단 미리 말해두는데 제니들이랑 저를 너무 믿지 마세요. 갑자기 돌변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이미 주의하고 있어요.”

루시가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음, 주의하도록 하지.”

오르골A가 웃었다.

“원래는 복제라는 걸 알게 될 만한 트리거가 생긴 시점에 보스의 하수인으로 전락해야하는데 왠지 지금 순서가 꼬여서 이렇게 된 거거든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보스의 패턴에 이미 변화는 있었다.

1페이즈는 본적도 없지 않나.

그럼 지금 이것도 이대로 순조로울까?

아니라는데 거는 것이 맞다.

“애초에 저도 제니처럼 둘이 더 복제되야하는데. 뭔가 잘못되었어요. 아마 더 없으니까 지금 이렇게 시작된거일건데.”

왜 그럴까?

제니는 복제하기 쉽고. 오르골은 어려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같다.

고개를 살짝 돌려 딸을 본다. 처음에는 딸이라는 형식으로 묶어 파티에 정을 붙이게 만들려고 했다.

다른 이들의 권유도 있고 하여 지금은 정말로 수양딸 같다.

그 딸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다.

하지만 마법사를 전방에 세울 수는 없지.

“슬슬 돌아오겠군요.”

이 시간을 재는 감각만큼은 무뎌지지 않았다. 그건 그냥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전부인 것이니까.

기억과 스킬은 복제가 된다.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은 몸에 밴 기술이다.

기억은 단순히 복사하는 것일 것이며 스킬은 본디 미궁의 섭리 중 일부였던 것이니 재현할 수 있는 것이겠지.

몸에 밴 기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단 불완전한 복제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르골A는 자신의 사고가 왜 여기까지 도달했는가를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직감인가? 그것도 불길한 직감.

이럴 때는 믿을만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기억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지식이 그대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음…….”

보스도 이제 안 다는 것 아닐까?

본디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계신의 분령은 전투력이라는 것의 기준을 막연하게 밖에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오래 신좌에 앉았던 신들, 긴 데이터를 가진 자들의 형태를 먼저 흉내 내었다.

그러다가 이 기계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기계는 끊임없이 병력을 복제해내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새겨졌던 명령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직접 받은 명령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우선순위가 낮았던 그 작업의 일부가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그래 떠올랐다.

기계에게는 이상한 일이었다.

명령이 있으면 그걸 수행할 뿐이다.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명령을 계속 수행할 수 있으니 급히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으로 명령과는 관계없이 다른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복제한 존재.

복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하나밖에 만들지 못하고 중단된 존재.

그 기억을 읽어 들이고 그대로 심는 과정에 당연히 그 데이터는 기계의 안에 남아있다.

[…….]

기계장치의 신의 일부.

[아후라 마즈다]라는 보스로서의 존재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 기억은 일종의 예언서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해서도 하나같이 꿰고 있다.

기계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검토할 시간은 없다.

지금도 자신의 본체는 싸우고 있다. 어떤 암살자 악마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는 있으나 충분히 끝낼 정도는 아니다.

다시 저 무리에게 노출되어 공격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과정이 생략된다.

기계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자는 신이다.

신과도 같은 존재다.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으며 그 바깥조차 알고 있다.

섭리에 어긋나는 기묘한 방식도 사용한다.

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원인이다.

그것을 빠르게 해석한다.

원리까지 분석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는 있다.

유니크 스킬의 복제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기계는 충격을 받았다.

이 복제체의 원본은 틀림없이 신좌에 앉은 자들보다 훨씬 위대한 신.

어쩌면 진정으로 신좌에 앉아 세상을 컨트롤했어야할 신.

미궁의 만물과 섭리마저 꿰뚫고 있는 신.

마치 대신격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기계는 자신에게 있는 데이터 중 가장 강한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랬기에 이 다음에 자신이 취해야할 모습과 방식을 결정했다.

블랑쉐는 당황했다.

[검은 날개]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성이다.

제한 없고 은밀한 순간이동을 수없이 펼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마법도 권능도 아닌 스킬이라는 섭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음의 위치 이동은 암살자에게는 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몸에 상처를 곳곳에 입긴 했다.

상정 내다. 애초부터 정면 승부는 포기했다. 그러니 살을 내주고 뼈를 지킨 셈이다.

상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쉬지 않고 몰아쳤다.

블랑쉐는 스킬 속의 짧은 시간을 억겁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격이 멈췄다.

찰나의 의심.

하지만 두 호흡이 지나도 엇박의 기습은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세 호흡이 더 지난다.

스킬의 지속시간은 다해가고 있다.

블랑쉐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질렀다.

유니크 스킬 [암살자의 작법]

유니크 액티브 [배후의 그림자]

적이 어디 있는지 몰라도 된다.

반드시 그 뒤로 이동한다.

그리고 단 한번, 무조건적인 암습 판정을 낸다.

블랑쉐의 몸은 어디있는지도 모를 적의 뒤편으로 이동했고, 블랑쉐는 그대로 공격을 내질렀다.

상대는 피하지 않았다. 암습이 효과를 발휘한다.

두부를 베는 듯한 암습 특유의 손맛이 전해진다.

그리고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상대의 장비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런 장비는 없다.

어째서?

그리고 블랑쉐는 무언가에 얻어맞았다.

컥하고 날아가는 동시에 스킬의 지속시간이 다한다.

다시 원래 있던 공간으로 복귀한다.

원래 있던 위치, 바로 그곳으로.

블랑쉐는 처음부터 보스와 마주보는 상태였다.

석고상처럼 새하얀 무채색의 얼굴조형.

남자다운 부분도 있으나 어딘가 곱상하기도 한 뭐라 말하기 힘든 잘생긴 얼굴.

그리고 손에 들린 석고 같은 무채색의 마검.

“오르골?”

하지만 저 색채는 틀림없이 보스의 변형이다.

어째서?

그리고.

아티팩트일 레바테인은 어떻게 복제되었는가?

의문을 뒤로하고 블랑쉐는 몸을 빼내었다.

대기하던 파티원들의 포화가 쏟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블랑쉐는 한 가지 가능성을 의심했다.

이미 무언가 잘못된 판이다.

보스 스펙의 오르골?

레벨 17500의 오르골?

알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빨리.

지금 저 포화가 지속되는 도중에 어떻게든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해치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응할 사람이 필요하다.

서브 리더?

무리다. 이미 제어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서?

무리다.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는 도중이다. 엑스칼리버의 아이템 액티브는 다른 신경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짜인 리더가 보였다.

[오르골! 급하다! 저건 네 모습이다!]

리더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쓰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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